시를 쓰려면
-1998. 10, 대부중·고등학교 근무시절 백일장 대회 날에 학생들에게 유인물로 나누어주었던 내용입니다.-
맹기호
오늘 문학 행사를 함에 있어 학생들이 시를 잘 쓰는데 꼭 필요한
함축과 운율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를 선택하고 그것을 짜맞추는 일이다. 때문에 시
의 언어, 즉 시어를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시인은 생명력을 잃고 나자
빠져 있는 언어에 새롭게 혈액을 주입시키고 시라는 구조 속에 참여시켜
그 언어가 새로운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시인
을 만나서 비로소 血行과 호흡과 체온을 얻어서 생활한다.
그런데 우리가 시의 최상의 덕목을 이야기 할 때 언어의 경제성을 꼽을
수 있다. 즉, 절제된 언어의 사용이다. 아주 황홀할 정도로 마른 육신이
시의 모습이다. 결국 시어는 함축된 언어라야 한다. 시인의 어설픈 감정
을 다 퍼버리고 난 다음의 진수를 몇 방울 진액으로 떨어뜨린 것이 시가
된다. 시어에서 함축성을 강조하는 것은 언제라도 정당하다.
우리는 함축의 중요성을 시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시의
본 바탕이 그러하기 때문에 시인의 뜻을 독자에게 가능한 한 힘차게 풍성
하게 생기 있게 전달해 주는 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 가운데 일부이다.
시와 음악의 관계에 대해서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불가분의 관계라
는 생각이다. 예술이 미분화 상태일 때 융합되어 있던 것들이 시대가 지날
수록 각 양식으로 분화되었지만 시와 음악은 여전히 융합되어 있다는 것이
다. 시와 음악은 서로 다른 쌍둥이 자매와 같다. 태어날 때부터 바로 긴밀
하게 서로 결합되어 있다. 시는 소리문자로 기록되어 있고 모든 이에게 보
여주기만 할 뿐 아니라 또한 읊조리고 노래 불리어져 모든 이의 청각에 호
소하게 된다 는 주장에 누구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상에서 시와 음악은 매우 오랜 연원이 있으며, 그 기원은 시와 음악
은 원래 춤과 함께 삼위일체의 혼합예술이었다. 음악·춤·시는 서로 호응
하고 서로 밝혀 셋 모두 리듬을 떠날 수 없으니 이것이 그들의 공동운명
이 되었다. 문화가 점점 진보되자 이 세 가지 예술이 분립되었는데, 음악
은 소리를 전적으로 취하여 매체로 삼으며 그 조화를 중시하고, 춤은 손발
의 형태를 전적으로 취하여 매체를 삼으며 그 자태를 중시하고, 시가는 언
어를 전적으로 취하여 매체로 삼으며 그 의미를 중시하였다. 이 세 가지
가 비록 분립하였으나 리듬은 여전히 공통요소로 남아 있어 그들의 관계
는 연뿌리는 끊어졌으나 그 실 마디가 연결되어 있듯이 서로 이어져 있
다.
시와 음악과는 관계는 더욱 밀접하여 시는 항상 노래할 수 있고, 노래는
항상 음악과 짝한다. ……
그 성격을 말하자면 모든 예술 중에서 시와 음악이 가장 가깝다. 그들
은 시간 예술로 회화나 조각이 다만 공간을 빌어 형상을 드러내는 것과는
다르다. 리듬은 시간이 길게 뻗어나가는 중에 가장 드러나는 까닭에 어
떤 다른 예술보다도 시와 음악 속에서 가장 중요하다. 시와 음악이 사용하
는 매체는 그 일부분과 같다. 음악은 다만 소리를 사용하고 시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소리는 음악 속에서 리듬과 음조(音調)의 조화(harmony)를 빌
어서 그 효용을 나타내며, 시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와 음악이 이렇게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詩歌라는 어휘가 단적
인 증거다. 근대 이전까지는 시와 노래를 확연히 구별하지 않았던 것이
다. 서양의 경우에도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노래와 시의 구별이 이루어지
지 않았다. 노래는 시였고, 시는 노래였다. 그러던 것이 상징주의 사조를
거치고 난 후에 비로소 시와 노래가 분화되었던 것이다.
시와 노래가 아무리 분리된 현대시라고 하지만 현대시에서 음악적 속성
을 결코 경시할 수 없다. 시에서 음악적 속성을 감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시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서지 못한다.
<시인의 작품 소개>
나의 노래(Ⅱ)
맹 기호
창을 열면 보이는 별
나는 노래 부른다
금빛 강모래에 두 다리를 적시고
섬세한 두 손으로 하늘을 보듬었다
나는 노래 부른다
충청남도 아산 땅
푸른 산을 마시고 맑은 물을 마시면
가난한 마음에 노래 흘렀다
때로는 뿌리 뽑힌 아픔에 울고
진리를 얻는 기쁨은 순간이라 해도
나는 노래 불렀다
사랑은 가도 사랑은 남고
남은 사랑은 나를 포용하고 기다리기에 충분하니
나의 노래에 힘이 되었다
창을 열면 보이는 별
노래하자
노래 부르자
시작 노트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썼던 시다. “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여
려 편의 시를 썼는데 이것이 두 번째로 쓴 것이다.
여기서 나의 노래가 의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인생이다. 이 시는 나의 자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사유(思惟)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종교에 기대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치고 쓰러지고, 시궁창에 머리를 쳐박고 쓰러지고, 무릎사이에서는 찐득한 썩은 물이 고여 절망에 빠졌을 때, 어둠을 가르는 빛 하나 즉, 진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유(思惟)는 제자리에 서고 고민은 깊어갔다.
아아!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선과 악은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가? 왜 나는 선천적으로 칸트(Kant)와 다른 심성을 가졌으며 우주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마지막에 창을 열고 별을 보자고 한 것은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노래를 하자고 외치는 것은 니체의 초인(超人)처럼 계속되는 강렬한 삶의 의지를 나타내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계속해서 ‘노래하자’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것은 ‘강조’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운율 즉, 음악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