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나의 우거에 아산이를 데리고 갔다. 하룻밤을 같이 묵었고 아산이와 함께 옥수수, 파프리카, 들깨를 심었다. 아들도 나의 우거에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 점이 감사했다.


여주 나의 우거에 아산이를 데리고 갔다. 하룻밤을 같이 묵었고 아산이와 함께 옥수수, 파프리카, 들깨를 심었다. 아들도 나의 우거에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 점이 감사했다.


큰 아들이 휴가를 얻어 귀국하였다. 11일 휴가를 얻었는데 사실 가는 날 오는 날을 빼면 체류기간은 9일 이다. 작은 아들이 사는 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한정식 집이었는데 아주 고급집이다. 식대가 많이 나왔을 것같은데 석영이가 지불하였다. 음식은 코스로 나왔는데 처음 나온 것을 많이 먹고 보니 나중에 나오는 메인은 배가 불러 먹지 못했다.
오랜만에 패밀리가 다 모였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 전체가 식사를 하는 것은 앞으로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로 모시고 내려서는 휠체어로 모시고 다녔다.


우리 민족 5000 년 역사에서 제일 큰 스승은 누구일까? 상대적 대답이 나오겠지만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할 것이다. 그 세종 임금의 생일이 5월15일 이다. 하여 세종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이다. 나도 나를 가르쳐준 생각나는 훌륭한 스승이 있지만 이미 돌아가셔서 모실 수 없다.
내가 총각 선생 시절 가르친 제자 오연숙 선생과 부군 황상노 선생은 지난 40년을 한결같이 스승의 날 나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 꽃도 보낸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도 좋은 음식점에서 이탈리아 요리로 대접을 받았다.
내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는 것을 아는 오연숙 선생은 어머니까지 초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연숙하면 어머니도 항상 약국하는 약사로 기억하셨는데 오늘은 치매가 깊어 모르셨다. 다만 어머니도 좋은 음식을 대접받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다. 그만해도 다행이다.
식당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눈 앞 시야가 어지러워지고 흔들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아내와 어머니를 데리고 왔는데 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잠시 손씻는다고 핑게대고 식당에서 나와 주차장 차 안에서 쉬었다. 차에 누워있으면서 황상노 선생 부부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적셔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내가 40년 교직 생활을 허투루 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연숙을 가르쳤을 때 2년을 담임했으니 내 나이 27, 28살 이었다. 28살 때 보다 지금 내 사유, 인격, 생각, 사회에 대한 나의 믿음과 역할은 발전했는가? 별로 그런 거 같지 않고 몸만 병든 거 같아 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제 또 15일 스승의 날이 오면 몇몇 제자에게서 연락이 올것이다. 연락하는 제자는 매년 거의 정해져 있다. 아마도 현재 교직에 봉직하고 있는 김영선 선생, 원용현 선생, 그리고 내가 담임을 했던 몇몇 교장들이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리고 특수학급 학생으로 내가 사랑을 많이 주었던 엄민식, 김영민, 김청훈 세 학생도 연락이 올것이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하나같이 만만한 것이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하수배관이 터졌는지 막혔는지 오수가 역류한다. 큰일이다. 사람을 불렀지만 그도 시원찮은 전문가 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소리만 연발한다.
오수관 맨홀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위에 차량을 오랜 세월 주차하고 녹이 슬어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맨홀 주변 콘크리트를 깨고 맨홀을 들어내기로 했다. 5월의 한낮은 벌써 땡볕이고 콘크리트 부서지는 먼지는 펄펄! 정말 힘들었다.
80분 이상 사투를 벌인 끝에 맨홀 전체를 들어내어 뚜껑을 열고 슬러지를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세상살이는 정말 만만한게 없다.




김영삼 대통령 때 교사에게 명절에 ‘효도휴가비’라는 100만원 보너스를 신설하였다. 설과 추석에 부모님 찾아뵙고 음식을 장만하는 비용으로 쓰고 일부는 용돈으로 드리라는 취지였다.
나는 처음부터 아버지께 100만 원 전액을 드렸다. “아버지 대통령께서 명절에 부모님 드리라고 돈을 보냈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크게 놀라시면서 대통령께서! 공직자의 부모까지 생각해주신다고 고마워하셨다. 다음 명절부터는 대통령이 부모에게 주는 것이니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아셨다. 그렇게 매년 설과 추석 때마다 30년을 드렸다.
오늘 아들, 며느리가 주는 돈을 받고 보니 정말 금쪽같은 돈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이 돈을 버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생각했다. 고맙고 아까워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내가 드리는 명절 용돈을 얼마나 고마워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수필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45인 버스에 40명이 참석하여 만석을 이루었다. 몇 자리는 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40석이면 만석이다. 속리산으로 다녀왔는데 매우 흡족한 여행이었다. 회장으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저녁까지 먹여서 귀가시켰다. 여러 분들이 찬조를 해주어 실제 경비 이상으로 돈이 좀 남았다. 역시 고마운 일이다.
친구 임동균은 기지떡을 41상자를 사와 회원들에게 한 상자 씩 선물로 주었다. 나는 찬조금 10만원을 냈는데, 동균 친구는 100만원을 내서 경기수필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여 모두를 감동시켰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3개 방송사와 호스피스 재단 주최로 호스피스전문병원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열린음악회 및 바자회가 열렸다. 나는 맨 처음 문을 여는 시낭송 초대를 받았는데 노천명의 시 고향을 낭송하였다. 감사한 일이다^^


일요일은 주간보호센터가 문을 닫기 때문에 여주 우거에 옥수수를 심기 위해 가야하는데 어머니를 어디 맡길 데가 없어 함께 모시고 갔다. 아내는 쌍둥이 손녀을 돌보기 위해 아들네에 갔다. 여러 끼니를 해먹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었는데 식당의 서너개 계단을 오르는데도 매우 힘겨워하신다. 쇠고기 무국을 시켰는데 나와 어머니가 모두 그릇을 비웠다.
이제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에 다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부축해서 걸으시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때가 올것이다.
주인은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는 것이 보기에 그랬는지 밑반찬을 몇가지 싸준다. 다음에 지날 때는 과일이라도 사서 보답을 해야겠다. 감사한 식당 아주머니다^^
KBS 황금연못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출연자 그룹으로 선정하기 위해 자기 이름, 고향, 나이, 출연 하고 싶은 이유, 제일 기뻣던 일, 제일 슬펏던 일을 촬영하여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대강 셀카로 찍어 보냈는데 보내고 나서 텔레비젼으로 과거 방송된 황금연못을 보았더니 내가 출연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여주 나의 우거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다. 작고한 문인들의 문학비를 세워주는 모임인 문학기림회 회원 여덟 분이 오셨다. 나는 하루 전에 도착하여 찜질방에 군불을 때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일본문학전공인 이응수교수님, 독일철학을 공부하신 홍혜랑교수님, 국사편찬위원회 하혜정 교수님, 공연예술과 김성진교수님, 아름답고 슬픈 소설을 쓰시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빛나는 소설가 김지수 선생님, 문학평론가 이명재교수님, 채찬석교장님 등이다. 모두 정년을 지내고 평화롭게 지내는 분들이다.
네 분은 당일 올라가고 네 분은 일박하였는데 부족하나마 정성들여 아침을 한식 코스요리로 대접하였다. 별것도 아닌 내 솜씨를 모두 맛있어했고 좋아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8분의 방문에 감사한 마음 내 뼈에 깊이 새겼다. 언젠가 이 감사를 갚을 것이다. Thank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