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경매 화면을 찍었다. 내가 산 그 질화로다. 아직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기후를 보통 온대기후라고 말하는데 온대기후의 범위는 넓어서 우리보다 따뜻한 유럽 해안지역의 서안해양성기후나 지중해성 기후, 캘리포니아반도 안쪽의 기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후는 온대 중에서도 겨울이 더 춥고 길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기후를 엄밀히 말해 냉대기후에 가까운 온대기후로 본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정에서 방에 불을 때는 기간은 보통 10월에서 다음 해 4월 말까지다. 6개월을 난방하는 나라다. 일 년이 4계절이라고 하나 겨울이 반이다. 젊은 날 군대 시절 2월 말이면 난방을 끝낸다. 막사 안에서 연중 3월 1일이 제일 추운 날이었다. 지금 군대는 많이 좋아졌으리라.
이렇게 길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온돌을 사용해왔다. 더하여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남아있는 숯불을 용기에 담아 방으로 들여왔는데 이게 바로 화로다. 이것만큼 상하 계층이나 빈부의 차이 없이, 그리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두루 쓰이는 살림살이는 드물다. 손님을 맞을 때 화로를 손님 가까이 밀어주어서 따뜻한 정을 표시하였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도 화로가 있었다. 주물로 만든 투박한 무쇠화로 였다. 마치 갓을 엎어놓은 것 같은 넓은 귀가 달렸고 다리는 특별히 없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아궁이에서 화롯불을 방으로 들이며 언 손을 비비면 우리 형제도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화로에 디밀었다. 창호지 한 장으로 북서풍을 막는 방에서 화로는 구세주였고 방안 가득히 정다움을 채웠다. 아버지는 된장 투가리를 올리셨고 우리는 고구마를 구웠다. 인두로 다독거리며 불을 잘 관리하면 오후 점심 후까지도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
동네 부잣집 남참봉댁에는 백동화로가 있었다. 두어 번 구경했는데 투명한 은빛에 눈이 부셨다. 나는 남참봉을 본적도 없는데 과거 참봉벼슬을 한 집안이라 모두 남참봉댁으로 불렀다. 우리집에도 백동화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성년이 되어 수원 태장면 고개를 지나는데 골동품가게가 있어 들여다보니 세상에! 백동화로가 있었다. 들어가 물어보니 25만 원 이란다. 30여 년 전인데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옆에 무쇠화로가 보였다. 우리 집에서 쓰던 그 화로였다. 보는 순간 내 방에 가득 찼던 정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0만 원을 주고 샀다. 옆에 있던 인두도 달라고 했더니 덤이라며 주었다. 집에 가져와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더니 그냥 데면데면하셨다. 시골에서 이사 올 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물건은 챙겨왔는데 연탄을 때는 도회지에서 화로는 필요 없으니 웬만한 살림살이는 숙부댁에 모두 주고 왔다, 아버지에게 화로는 그런 물건이었다. 당신에게는 도회지로 이사 와서 식솔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절박함이 더 우선이었지 한가한 겨울날의 낭만은 그냥 과거였다. 나는 그런 면에서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존경하며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로 느낀다.
거실에 무쇠화로를 놓았고 현관 열쇠, 손톱깍기, 동전지갑, 구두주걱 등 여러 가지가 담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쇠화로를 사던 날 돈을 더 주고서라도 백동화로를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잣집 남참봉댁에서 봤던 눈부셨던 백동화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20여 년을 아쉬움으로 지냈다.
어느 날 수원 행궁 거리에서 시화전을 열어 작품을 냈다. 그런데 행궁 옆길에 새로 생긴 골동품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안에 백동화로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백동화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만져보니 역시 귀티가 난다. 몸체와 다리를 따로 주물로 만들고 리벳 공법으로 결합하였다. 조선 말 어느 양반집 아랫목에 있던 물건이다. 다음에 오겠다고 하니 카드도 받는다고 한다. 40만 원을 주고 샀다. 집에 와서 거실에 놓고 보니 역시 눈부시다. 구리와 니켈을 섞은 것이 백동인데 니켈을 많이 섞어 할머니 쪽진 머리에 꼽혀있던 비녀처럼 은빛이 났다.
그 후 여러 개의 백동화로를 구입하였다. 가마에서 사용했던 작은 백동화로, 박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면에 모란을 음각한 백동화로, 정말 대감님댁 같은 지체 높은 집에서 사용했던 대형 백동화로도 샀다. 골동품가게를 순회하면서 특별한 화로가 있으면 샀다. 나중에는 무쇠화로도 형태가 특별한 것을 보면 구입하였다.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 아내도 평생 집안 식구를 위해 헌신한 나의 공을 봐서 그러는지 말리기는 하지만 그 강도가 감내할 만한 수준이어서 나의 화로병은 계속되었다. 왜 사냐고 물으면 만지고 싶은 것이다. 박물관에 가면 눈으로만 화로를 본다. 나는 화로를 사갖고 와서 손으로 품고 마음 놓고 만진다. 만지면서 100년 동안 거쳐 간 사연과 그리움을 감촉으로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궁이 있는 집을 마련하여 군불을 때고 화롯불을 방안으로 들이는 기쁨을 기대하며 살아왔다.
지난여름부터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아궁이가 있는 시골에 거처를 마련하고 주말에는 그곳에 가서 조용히 지낸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 자주 갈 수는 없지만 주말에는 집사람에게 어머니를 전적으로 맡기고 시골집에 간다. 아내는 내 소망을 잘 알기에 어머니가 더 나빠지시기 전에 시골 주택에 자주 가라고 권한다. 고마운 일이다.
인가가 드문 시골 밤은 어둡다. 마당에 나오면 더욱 어둡다. 보이는 건 별이고 들리는 것은 풀벌레 소리, 볼을 스치는 바람이 전부다. 아무도 없고 홀로 외롭다. 외로움은 글쟁이의 밥이다. 나는 그 외로움이 좋다. 어차피 사람은 외롭다. 갈 때 같이 가줄 동무도 없다. 아버지도 92세로 비교적 장수하셨지만 어머니를 홀로 남기고 가셨다.
무쇠화로, 백동화로, 시골 아궁이를 갖추웠다. 이제 추운 겨울만 오면 된다. 그런데 마음이 허전하다. 무언가 모자란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답은 질화로다. 어릴 때 옆집에 가면 할머니가 질화로를 끼고 사셨다. 설날 동네 어른에게 세배를 다니던 날 할머니에게 가면 질화로를 다독거리시며 달달한 엿을 내주셨다. 마지막으로 그 질화로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골동품상을 뒤져도 질화로가 없다. 내 기억에 질화로는 떡시루 같은 질감을 갖고 있다. 비교적 연질이었을 것이고, 당시 무쇠화로보다 값이 쌌을 것이다. 연질이다 보니 쉽게 깨져서 오늘날 남아있는 것이 없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그 질화로를 만나고 싶다.
어제저녁 골동품 경매시장에 질화로가 등장하였다. 눈이 번쩍 떠졌다. 최소 100년은 된 물건이다. 어떻게 저게 살아남았을까!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넘쳤다. 무조건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쟁자가 붙었다. 그 사람이 값을 올릴 때마다 나도지지 않고 더 올렸다. 자꾸 값은 높아졌다. 통장에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걸 놓치면 내가 얼마나 후회할 것을 알기에 그가 지치기를 기도하면서 계속 올렸다. 드디어 그가 줄을 놓았다. 경매사가 맹기호 선생님께 최종 낙찰합니다!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었다.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고 들여오시던 화로의 정다움, 겨을날 삼태기처럼 생긴 오목한 동네, 삼태기마을에 집집마다 울안에 정다움을 가득 차게 했던 무쇠화로, 백동화로, 질화로까지 모두 갖추었다. 오라 겨울이여! 내 기꺼이 너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