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밝는 미소로 먼저 다가가겠습니다.


 

오늘 서울대학병원에 갔다.


채혈을 하기 위해 아침밥을 먹지 않고 아내의 출근길에 전철로 동행하였다.




서울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채혈실을 찾았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뽑아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피를 나중에 뽑으려고 꽁무니를 빼는 사람도 없다. 서울대학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으니 채혈실에 사람이 줄을 서게 되고, 그저 빨리 뽑으려는 마음 뿐이다.




번호표를 뽑는 곳에 사람이 몰려있어 다가가보니 번호표 기계가 고장 나서 같은 숫자만 계속 나왔다. 어떤 젊은 여자가 2층에 가서 뽑아도 되지요? 라고 묻더니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도 빨리 피를 뽑으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2층 채혈실은 아주 한산하였다. 그런데 여자 간호사가 아니고 젊은 남자였다. 20대의 젊은 남자는 머리를 약간 고추세워 기름을 바르고 하얀 가운을 입었는데 혼자서 피를 뽑고 있었다. 이 젊은 남자의 옆에는 “밝는 미소로 먼저 다가가겠습니다.”라는 서울대학교병원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진찰권을 받아보더니 “이승훈교수님의 혈액검사 신청으로 채혈하겠습니다. 약간 따끔하실 것입니다.” 음…..친절하기도 하구나! 왜 남자는 주사가 서투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 젊은 친구의 솜씨는 최고였다. 딴 곳을 응시하다가 다 끝났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끝난 것을 알았다. 바늘이 들어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아프지도 않았고 따금 할 것이라더니 아무런 느낌도 없이 채혈이 끝났다.




세상에! 유리대롱으로 4개나 피를 뽑았다. 나노공학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약간의 피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검사가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헌혈인구가 모자라니 이것을 모아 수혈로 돈을 버는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다. 


아깝다! 피 한방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채혈을 끝내고 동숭로를 걸으면서 식당을 찾았다. 아침을 안먹고 왔으니 시장하였다. 많은 식당이 있었는데 문득 30년 전통이라고 써붙인 ‘오감도’라는 한식집이 있어 들어가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앞좌석에 앉아있는 여성을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2층으로 채혈하러 따라갔던 그 여성이었다. 내가 그 여성 다음으로 채혈하였으니 알고 있었다. 내가 오늘 채혈하셨지요? 라고 말을 건네니 깜짝 놀랐다. 그녀도 선지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음……피를 뽑았으니 둘다 선지해장국을 먹은것인가?




채혈을 한 젊은 임상병리사는 안의상이었다. 안익태와 윤이상을 합한 이름인가? 병원을 나오면서 보니 벽에 병원브랜드파워 1위 서울대학병원이라고 써있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채혈하고 나서, 약솜을 주면서 문지르세요 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는데 여기는 약솜을 대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이런 병원은 처음 보았다. 정말 밝는 미소로 먼저 다가가는 병원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도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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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용인열차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어머니에게 녹두빈대떡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 이번 명절에는 녹두빈대떡이나 하고 아무것도 하지맙시다”

이건 뭐냐? 아무려면 명졀에 녹두빈대떡 하나 놓고 사위을 맞이할 수는 없

지 않은가! 결국 녹두빈대떡은 꼭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프로이드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없고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하고 있다가 어느날 실제의 행위가 되어 밖으로 나온다고 했고, 우리

가 경험하는 세계는 무의식 세계의 1/10도 안되며 특히 어릴적 경험에 바

탕을 두고 모든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녹두빈대떡을 잘 먹는 이유도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된 것이었다.

나는 요즈음 집에 있으니 인터넷을 뒤적거리게 되는데

우연히 맛기행 관련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그 유명하다는 열차집에 대하여

찬사를 늘어놓은 것을 보게되었다. 세상에 아직도 이집이 있었다니!

내가 그 집을 간것이 30년도 넘은 일이다. 50년 된 집이라 했다.

붕우 남기완 교수가 어느날 만나자고 하여 스무살 짜리 총각 두명이 용인

열차에 가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얼마나 낭만적인일인가! 안주는 딱

한가지 빈대떡을 팔고 있었고, 아주 맛이 좋았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즈음 젊은 애들이 술을 과하게 먹으면 보기에 좋지 않은데 이

제 흐린눈으로 그리고 낭만으로 봐줘야겠다.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기 어려운데 인터넷은 친절하기도 하다. 교보문고 후

문으로 나오면 버거킹이 있고 바로 옆골목 피맛골이 시작되는 초입에있다

고 한다.

어제 밤늦게 남교수에게 전화를 했더니 용인열차집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

도 용인열차집인데 인터넷에는 열차집으로만 표기되어있다. 한번 가보자

고 했는데 물어보면 확인될것이다.

음……용인열차 맞는데……수원에서 여주까지 다니던 수여선 상의 용

인역이 있었다. 그럼 협괴였던 수여선이 없어지면서 용인열차집도 용인이

라는 글자를 버렸나?

빈대떡에 소주 한잔!
정말 술생각 난다.

<인터넷에서 찾은 열차집의 그 유명한 빈대떡이다>

돼지기름으로 지져내는 열차집빈대떡
삼겹살 몇 조각 올려진 것이 고명의 전부일정도로
화려한 맛은 없지만 진짜 맛있는 녹두빈대떡이다. 제주도에서도 옛맛을 찾아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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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Picnic

안산시에 있을 때 YMCA에서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과 교우하였고

나름대로 학생 환경교육을 열심히 했다.

10년 전 쯤인가?

당시 수원시장인 심재덕씨가

수원천을 복개하여 도로로 이용하는 사업을 중단하고

수원천을 청소하고 맑은 물을 흘려보내어

하천을 살리는 운동을 시작할 때

하천복개로 인하여 이익을 보게될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지자

시장실에 몰려가 데모를 하여 시장이 곤경에 처했다.

사실 수원천을 복개하면 그 위에 불법주차만 성행하지 도로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복개하면 하천 위에 세워진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화홍문이 훼손되는 문제가 또 있었다.

당시는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천 복개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있었다.

그때 나는 수원시장에게 시장님이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밀고 나가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낸적이 있다.

그 후 심재덕 시장은 과감하게 하천을 정비하고,갈대를 심고,

징검다리를 만들고,우수와 하수를 분리하여 내보내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사실 서울 청계천의 성공보다 수원천의 성공이 10년은 앞섰다.

그 수원천에 지금은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며 다니고 개체수도

걱정할 정도를 많이 늘었다. 여름에는 어린아이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물놀이도 한다.

그 수원천에 튜울립이 예쁘다고 하여 아내와 둘이 나들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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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할 때도 못 본체 하였다.

출발 전에 마음속으로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나는 기록을 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 건강에 대한 중간점검이다.
그리고 오늘 출전선수 중에서 고령자에 속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느린 속도로 달린다는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할 때도 참고 못 본체 하였다.
나보다 배가 더 나온 사람이 나를 추월할 때도 내버려두었으며,
젊은 여성 선수들이 나를 추월할 때도 체념하였다.
약간 살집도 있고, 꺼부정하게 엉거주춤한 폼으로 달리는 여성이
나를 추월할 때도 내버려두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성은 폼만 엉성한 것이 아니라
흰머리도 듬성듬성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도 어느 정도 먹은 여성이었는데
그런 여성이 나를 추월해도 내버려 두었다.

내 페이스대로 달리니까 전혀 지치지 않았다.
이런 정도라면 하프마라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1km를 남겨놓고 스피드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러다가 혹, 문제가 생기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9킬로 지점에서 어떤 사람이 혹, 교감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망포중학교에 딸이 다녀서 그 때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아주대학교 병원에 근무하는 추황보선생이라고 했다.
미술을 잘했던 추원희학생의 아버지다.
추원희 학생은 얼굴도 분명히 기억한다. 안양예고 2학년에 다닌다고……

사건은 여기서 반전되었다.
나는 시계가 무거워서 차지 않았는데
이때 시간을 물어보니 53분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평상시 최고 연습기록이 9km지점에서 60분이었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기록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시 실전에 강하다!

결국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1km를 남겨놓고 스피드를 내기 시작하였다.
거의 전력질주!

나를 추월했던 배나온 사람도 떨쳤고,
꺼부정한 여자 선수도 떨쳤다.
중반이후 나를 추월했던 경기도교육청 제2청사의
오덕환선생님이 물을 먹으러 급수대로 가는 것을 보았고
그 틈에 오덕환 선생님을 추월하였다,

평소 연습기록 중에서 제일 좋은 기록이 66분 15초 였는데
59분 15초 81로 결승선을 통과하였다.(59’15″81′”)

7분을 줄였다.
마라톤에서 7분을 줄인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본 사람은 안다.

5년 전의 기록에 2분 정도 뒤지는 좋지 않은 기록이지만
그 때의 기록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 한 것 같다.
오늘의 경기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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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상 차림

석영이가 집에 왔다.

엄마는 학교에 출근하고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하셨다.

나는 같이 먹고 설거지를 했다.

정성이 들어간 상차림이다.

식탁 유리 밑에는 가족 사진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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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창틀까지 닦다

오늘 아침에 둘째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금요일인데 시험이 끝나서 집에 온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들뜬다.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 아들이 온다니 기분이 좋다.

얼굴 본지가 한 달도 넘은 것 같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마 신학기 엠티에 이어서 중간고사 시험으로 바빴으리라

약학과 공부는 2학년부터 어렵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처럼 빡세게 공부한다고……

성안중에 함께 근무하던 유해경 선생님은

아들이 마루에 왔다 갔다 지나다니는 것만 보아도 좋다고 했다.

나도 닮아가나?

아내는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하지만

나는 오늘 아들방 청소를 했다.

창문을 틀에서 빼내고 창틀의 먼지를 걸레로 닦아냈다.

아들은 비염이 심해서 먼지가 있으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부터 이불을 너는 것에서부터

2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청소를 좀 하고(열심히 한것은 아닌데)…….

하여튼 선비가 글씨 한줄 보지 않은 날이다. 쩝!

아들 방을 청소하면서 여러가지 상념에 젖는다.

내가 20세부터 살아오고 있는 집이니

두아들도 당연히 태어난 집에서 한번도 이사가지 않았다.

이 방에서 두 아들을 키웠다.

태어난 것도, 한글을 깨우친것도, 목욕을 시킨것도

모두 여기다. 정말로 추억이 서린 곳이다.

사내가 피아노를 치는것은 정말 보기좋다 둘째 아들은 피아노를 친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때 산 피아노이다. 큰아들은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준 책상과 의자 지금도 쓰고 있다.

빨간 방석이 붙은 의자를 사온 날 몹시 좋하했던 아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책장은 내가 열여덜살때 목공소에 부탁하여 만든것이다.

정말로 튼튼하다.니스칠을 해야하는데 황토를 바르고 칠한것이

지금도 아쉽다. 아주 좋은 나무로 만들어서 대를 물려 쓰고있다.

오래된 책에서 먼지가 날까봐 책을 모두 비닐로 낱권으로 쌌다.

두 아들이 한방에서 컷으니 책장도 둘이 함께 사용하였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그 긴박했던 시절에 어느날 느닷없이

혼자서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음악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린 최후의 만찬이다.

나를 닮았는가?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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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몸만들기 중간 점검

내 평생

이렇게 약을 열심히, 그리고 많이 먹어본 적은 업다.

그리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 동안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

시험 삼아

제 5회 경기마라톤 10km에 출전신청을 하였다.

모든 식구들이 걱정이다.

혹, 달리다가 큰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기록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도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중간점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봉주 선수의 마라톤 기록과 비교하면

반 정도의 속도로 뛰는 것이다.

젊은 날의 내 기록에 비해도 너무 초라한 예상 기록이다.

나도 맨 날 청춘이 아니지 않는가! 이미 50을 넘었으니 조심해야지……

요즈음 10km 연습기록은

처음에 76분

그 다음 주는 69분

그리고 최종연습 기록은 66분 16초 이다.

더 이상 기록을 단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습기록을 자세히 보면

출발부터 시속 9km의 속도로 천천히 뛴다.

1km 6분 44초

2km 13분 24초

3km 20분 3초

4km 26분 43초

5km 33분 23초

6km 40분 3초

7km 46분 43초

8km 53분 23초

9km 60분 3초

9km부터 나머지 1km는 시속 10km로 속력을 높여 달리면

나머지 1km 돌파시간 6분 13초

마지막 결승점 도착시간 66분 16초

군중심리에 끌려 혹, 스피드를 높이게 된다면 65분에도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른다……

<전년도 경기마라톤 출발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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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가슴 아픈 일

미국 사상 최악의 총격사건으로 기록된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은

한국 교포학생인 조승희(23.영문학과)였다.

범인 조승희는 영문학과 4학년으로 미국 영주권자이며,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이 학교 하퍼 홀 기숙사에서 거주해왔다.

미국 영주권자는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영주권을 갖고

미국에 기간 제한 없이 거주할 수 있지만

‘외국인 거주자(a resident alien)’로 분류돼 국적은 한국인이다.

조승희는 9mm와 22mm 권총 두 자루를 가지고

16일 오전 7시 15분께(현지시각)

이 학교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에서 2명을 사살한데 이어

약 2시간 뒤 공학부 건물인 노리스홀에서도

총기를 난사해 30명을 사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미국내 한인사회가 보복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매우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다.

조승희가 8살 때 이민 왔다면 이것은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미국 교육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 론등 주류사회의 시각은 이번 비극의 원인이

특정 국적을 보유한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개인이며,

아울러 총기보유 허용을 둘어싼 문제점을 주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성숙한 시민의식인가!

주한미군 장갑차 군사훈련도중 사고로 죽은

미순. 효순이 사건으로 친북반미주의자들의 데모가 극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민의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주한미군 병사가 술 먹고 한국 대학생 32명을 사살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친북반미세력들이 촛불 들고 난리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얼마나 슬플까?

조금이라도 위로의 심정을 보태고자

3일간 우리 집 대문에 조기를 달았다. 정말 슬픈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지……

<슬품에 잠긴 버지니아공대 학생들>

<우리집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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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신문 광고지

조선일보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새벽 5시경

아버지는 대문에 신문을 가지러 나가신다.

신문은 아버지가 당번이다.

아버지는 중요한 신문기사만 보시고, 광고지를 챙기신다.

광고지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는 농산물을 어디서 세일하는지 관심이 많고,

실제로 약간 먼 곳도 자전거를 타고 사러간다.

며칠전부터 감자탕집 광고지를 보시고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감자탕집이라면 내가 아는 집에 가도 되고,

또 광고지에 나오는 음식 세일집에 내가 나서기는 좀 불편한(거시기한) 생각이 들어

흔쾌히 내키지는 않았으나 아버지가 가고싶어 하신다고하니 어쩌랴!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에 광고지에 나온 감자탕집에 가자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신다.

12시에 차를 몰고 아버지, 어머니, 나 셋이서 감자탕집을 찾아나섰다.

어렵지 않게 찾았다. 수원시 인계동 “청진동해장국”

청진동해장국이라면 서울 종로에 있는 박정희가 다녔다는 그 유명한……

메뉴판을 보니 광고지에 나온 것과 다름이 없어 기분이 좋다.

어떤 곳은 선전과는 딴판인 집도 있지 않은가!

감자탕전골,

라면사리,

수제비,

떡,

그리고 가시오가피 한병

합하여 13000원 셋이 배불리 먹었으니 참 싸기도 하다!

앗! 마이 미쓰! 밥 한공기 1000원 총계 14000원

맛있게 먹었다.

사뎅이 감자탕! 정말 맛깔스런

서민의 음식이다.

점심시간이라 주위사람도 많았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내 디카로 찍었다.

<열심히 끓고있는 사뎅이를 건져서 먼저 먹고>

< 라면, 떡, 수제비를 넣고 다시 끓여 2차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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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약국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처방전을 받고 나서 병원에 딸린 약국에 갈까? 하다가

다른 약도 필요하고 해서 차를 몰고 제자가 운영하는 약국에 갔다.

한달만에 보았나? 오선생의 얼굴은 좋아보였다. 다행이다.

오연숙은 특별한 제자다.

학창시절에 항상 1등이었고, 운동도 잘했으며 인품도 훌륭하였다.

자존감이 컷고, 어떤 때는 강한 성향을 나타내기도하였다.

짙은 녹색의 교복을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정갈하게

내려 딴 모습이 생각난다.

스승이 몸이 아프다고 하니, 좋은 약만 골라서 준다. 안보아도 안다.

오랜 전 일이지만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보약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

하루에 한알씩 그냥 씹어드세요 라고 말해서

나는 우황청심원 정도의 약인 줄 알고 심심할 때 마다 씹어 먹었다.

다 먹어갈 무렵, 지나는 길에 들렸더니

“그 약 잘 드시고 있지요”라고 물어서 거의 다 먹었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그 약이 아주 비싼 약이라 하며 약값을 가르쳐주어

너무 놀란 적이 있다.

사전에 값을 알았다면 당연히 먹지 않았을 것이다.

오선생도 내가 그럴 것이란 것을 짐작하고

약값을 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냥 심심할 때 씹어드세요” 라고 말한 것이다.

하여튼 오늘도 약을 받아왔다.

갈 때마다 몇 번 약값을 줘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받지도 않고

이제는 그냥 약을 받고 “고맙구나 잘 먹을게” 이런 정도로 감사를 표시하고 그냥 나온다.

병원에서 처방한 한달치의 약을 받았고,

그리고 별도로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근본적인 치료를 위한 약을 받았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약 열심히 먹어야지……

<오늘 받아온 약>

<내가 한번에 먹는 약의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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