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버스 종점 절집에 처음 들어가 보았는데 밖에서 보는 바와는 다르게
대웅전을 제대로 지었다. 내부를 보았는데 부처님을 모신 닷집은 정말 아름다웠다.
요즈음 지은 절집이지만 아주 아름다운 목조건물이었다.
다음에 다시 사진을 찍어야겠다. 마당에 석등도 아주 수준급이었다.
광교산 버스 종점 절집에 처음 들어가 보았는데 밖에서 보는 바와는 다르게
대웅전을 제대로 지었다. 내부를 보았는데 부처님을 모신 닷집은 정말 아름다웠다.
요즈음 지은 절집이지만 아주 아름다운 목조건물이었다.
다음에 다시 사진을 찍어야겠다. 마당에 석등도 아주 수준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금요일 저녁 직장에서 돌아와 쉬실 시간에 이렇게 많은 아버지와 학생들이 아버지–자녀 캠프에 참여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
가을의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을은 당신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나뭇잎은 물들고 들녘의 곡식은 익고 하늘은 끝간데 없이 높아질 것입니다.
성숙한 가을에 혼자 가 된다는 것은 과거를 깊은 성찰로 뒤돌아본다는 것이고 동시에 내가 현재 서 있는 위치를 뚜렷이 인식하고 포기할 수 없는 본원적인 꿈으로 앞날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가을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가을은 사람이 혼자임을 깨닫게 하고 그리고 자신을 뒤돌아보고 깊이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넓어진 내면의 뜰로 들어가 가만히 있어 보면 지난 여름의 방종과 오만과 편견도 막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잎새를 흔들고 가는 가벼운 바람 소리도 들리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버렸던 옛 꿈이 나를 부르는 소리도 마침내 환히 들립니다.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미쳐 보지 못했던 가족과의 관계도 보입니다. 가족에게 소홀이 했던 것,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것,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 가을에 조용히 사색하면서 눈물겹게 내 시선 속으로 들어와 나를 깨우는 축복의 시간이 바로 가을입니다.
오늘 아버지와 자녀 캠프를 맞아 학생들은 부모님을 슬프게 한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고
아버지는 자녀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들어주었는지, 또 사느라고 바빠서 젊은 날 품었던 묻혀두었던 꿈에 대하여 진지하게 사유해보는 시간이 되면 아주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혼자가 되어 자신을 성찰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스스로를 정화시킬 뿐 아니라 명치끝을 누르고 있는 상처의 덩어리를 녹여냄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생성의 기운을 얻게 됩니다.
이 어지러운 경쟁 중심의 세상에서 그나마 충만감을 얻으려면 뼈저린 자기 성찰의 고백을 통해 새롭고 고유한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우선입니다.
용기있게 고백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일단 벗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것이 자기 성찰에 따른 참된 고백이 우리의 삶에게 주는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혼자가 돼보지 않고서는 사람에게로, 사랑에게로, 무엇보다 세상과 역사에게로 가는 큰 길을 계속 찾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올가을엔 진실로 혼자 돼서 이렇게 당신 자신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괜찮은가?
저도 요즈음 깊이 생각하고 있는 화두가 있습니다.
맹기호 너의 삶이 지금 이대로…… 좋은가?
감사합니다. ^-^
능실중학교 채찬석 교장님 부부와 율전동 덕성산에 올랐다.
나는 아침부터 경기도청 도서관에 가서 자유학기제 관련 서적을 읽었다.
학교에서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4시간 정도 도서관에서 자유학기제에 관하여 읽었더니 어느정도 머리에 이론이 정립되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율전동 청개구리공원에서 채찬석교장님 부부와 만나 덕성산에 올랐다.
채찬석교장님은 오전에 보훈원에서 강의가 있어 오후에 만나자고 한것이었다.
채교장님은 강의도 많이 다니시고, 진로관련 책을 내셨고, 대한민국교사상을 수상하신 유명한 분이다.
나와 교유하고 지내는데 수필가이면서 아름다운 시도 쓰신다.
함께하면서 여러가지로 공부가 된다.
나이 차이도 별로 없고(실제로 객지벗은 3살까지 반말을 해도 크게 허물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취미가 같아 노년의 벗으로 삼기에 감사하다.
사모님도 인품이 훌륭한 분이셨다. 등산코스도 아주 고적하고 좋았다.
자동차 소리가 심하게 들리는 것이 흠이었지만 사람이 드문 등산길은 자동차 소음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여러가지 먹을거리를 갖고 오셔서 하산 후 도저히 식사가 불가능한 것이 아쉬웠다.
사실 나는 약으로 감기 기운을 속인 상태여서 등산이 쉽지 않았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위장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등산 중 나는 자꾸 뒤쳐졌는데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다음에 식사대접을 하리라 생각하고 헤어졌는데 사모님에게 대접을 소홀이 한것 같아서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등산 중에 채찬석 교장님에게 교육계의 훌륭한 분에 관하여 들었는데 역시 공부가 되었다. 감사한 하루였다. ^-^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는 하교 버스에서 탈레반의 총격을 받았다. 정체물명의 남성이 버스에 올라 유사프자이가 누구나? 고 물으며 소총을 발사했다.
총탄은 유사프자이의 왼쪽 눈 옆과 어깨를 관통했다. 치명상을 입은 유사프자이는 인근 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은 후 영국으로 옮겨져 수차례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유사프자이를 저격한 사람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 조직인 탈레반 소속이었다.
유사프자이의 고향을 장악한 탈레반은 모든 여성의 외부활동을 금지하고 여학교를 폐쇠하였다.
유사프자이는 2008년 부터 필명으로 이런 탈레반의 만행을 영국 BBC현지어 사이트의 불로그에 일기형식으로 고발했다.
그의 글이 반향을 일으키자 BBC는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병상에서 일어난 말랄라는 영국으로 건너와 여성과 아동의 교육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3년 열여섯번째 생일을 맞은 말랄라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 총탄은 우리를 침묵시키지 못한다며 한명의 어린이,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모든 이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에게도 이 소녀의 말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억압받던 1970년대 한국을 생각하면 그 시절 답답했던 내 마음이 생각난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투쟁을 한답시고 나섰다. 개나 소나 다했다.
나는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1970년데 박정희 독재에 비하면 1980년데 전두환독재는 조족지혈, 구우일모, 창해일속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의 독재는 정말 무서웠다. 어디가서 말 한마디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사람들이 박정희가 죽자 전두환정권에서 민주투사로 자처하고 나섰다.
김영삼, 김대중은 민주화투사로써 자격이 있다. 박정희독재에서 그 두 사람만이 목숨걸고 투쟁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둘은 자격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박정희에 대한 내 개인적 평가는 바뀌었다.
오죽 대통령이 국민을 먹이고 싶었으면 “잘살아보세”라는 노래를 작사작곡 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의 경제발전의 공로를 생각해본다.
5000년 민족의 역사 속에서 박정희 만큼 백성을 먹이려고 노심초사했던 지도자가 있었는가 생각해보았다.
나는 경제 논리로 박정희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박정희에 대한 내 평가는 바뀌었다.
나는 지금도 경제를 위해 민주주의를 회생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고 박정희를 이해하다는 뜻이다.
오늘 말랄라의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민주화를 위한 말랄라의 노력을 들으면서 암울했던 1970년대가 생각났다.
말랄라의 이런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이 세계의 일부를 구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어쩜 사진이 이리도 잘 나왔냐!!! 감사합니다. 변난훈 교장선생님!
배추를 우선 반으로 가른다.
4쪽으로 자른 후 다시 가온데로 칼집을 낸다. 이 때 배추꼬리 안쪽으로 약간만 칼집을 낸다.
너무 안쪽으로 깁게 자르면 고갱이가 풀어진다. 배추꼬리 보다 조금 더 길게 칼집을 낸다. 이 때 여기서 양손으로 배추를 벌리면 고갱이가 부서진다.
소금으로 절인다음 양손으로 찟어야 부서지지 않는다.
굵은 천일염을 준비한다.
술술 소금을 뿌린다.
물을 붓고
이 때 소금물의 농도는 달걀을 띄웠을 때 달걀이 소금물 위로 500원짜리 동전만큼 올라오면 적당하다.
배추꼬리 가까운 부분은 소금을 쑤셔 넣어도 좋다. 깊은 곳은 잘 절여지지 않는 수가 있다.
90분 동안 담근 다음 물로 소금물을 헹구어낸다. 3번을 헹군다.
30분 동안 물을 뺀다.
양념을 준비한다. 생강, 마늘, 새우젖 고춧가루, 쪽파를 넣으면 더욱 좋다.
무상치를 넣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집은 속이 너무 많으면 지저분하고 실제로 잘 먹지 않는 경향이 있다하여 무상치는 넣치않는다.
양념을 골고루 버무린다.
잘 버무려 졌다. 오늘은 쪽파 대신 대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배추 잎 사이에 양념을 바른다. 적당히 넣고 손으로 문질러 바른다.
배추김치 완성되었다.
김치 통에 넣고 실온에서 하루동안 발효시킨 다음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치를 담갔다. 야호^-^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