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회자정리

회자 정리

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無常함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 정무학 교장선생님과 이별을 하였다.

반월정보산업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영원히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같은 학교에 근무하다가

이제는 매일 얼굴을 볼 수는 없게되었다는 뜻이다.

1999년 10월, 내가 대부중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만기를 4개월 앞둔 어느 날이었다.

밤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산에 신설되는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자는 정무학 교장선생님의 전화였다.

정무학교장선생님과 같이 근무한 적은 없고

사석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나는 당시 별로 아는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쓸만한 사람으로 입 소문이 나있었다.

이점은 오늘날까지도 그렇다. 빈수레가 요란한 것이다.

이점은 나를 참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4개월 후에는 만기가 되어

떠나야할 몸이었다.그래서 성안중학교로 오게되었고

그렇게 정무학 교장선생님과 만났다.

처음에 학생 1명을 놓고 가르치다가

3년 만에 37학급에 1800여명의 학생을 보유한 큰 학교가 되었다.

어려움도 많았으나 나름대로의 체계를 잡아나갔다.

나는 교무행정의 틀을 세웠고 교육정보화의 체계를 세웠다.

정무학교장님은 학교 수목환경 조성에 관심이 많으셨다.

도심 속에 있는 학교에 정서적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많이 심었다. 특히 교장선생님 개인 농장에 있는 많은 나무를 학교에 기증

하셨다.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금액으로 따져도 많은 액수였다.

학교에는 학부모들이 기증한 나무들이 여러그루 있고 나무 밑에는 기증한

학생의 이름을 돌판에 새겨주었다. 어제 교장선생님의 식수를 기념하는 가

로 세로 30cm의 기념 돌판을 하나 새기자고 말씀드렸더니 거절하셨다.

교육자는 교육을 위해 헌신하면 그 뿐이지 따로 이름을 남길 필요는 없다

는 말씀이셨다.

구령대, 운동장 햇볕가리막, 급식소, 교복공동구매, 도시가스 공사,

파고라 공사, 특수학급설치, 컴퓨터실 증설 등 많은 공을 남기셧다.

나는 그 중에서도 나무를 많이 심으신 것을 제일 큰 공으로 생각한다.

아파트 단지내 학교에서 녹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더 설명이 필요없다.

3년된 학교가 10년된 학교처럼 수목이 제법 우거졌다.

5년만 지나면 정말 대단할 것이다.

어제 송별연에서는 눈물이 났다……

어느정도는 반월정보산업고등학교에 가기를 원하셨지만

내가 잘못 모셔서 떠나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더욱 편하게 모셨어야했는데……

요즈음 교직사회도 갈등의 양상을 보여,

우리 학교에 계시는 동안 보,혁갈등으로 마음고생이 많으셨다.

학생들에게 이임사를 하시면서 당신께서 울먹이셨다. 학생들도 울었다.

공적으로는 직장의 상사이지만 사석에서는 형님과 같다.

사무실에서는 주군으로 모셨고, 밖에 나오면 격의 없이 어울렸다.

정무학 교장님과는 의리로 맺어진 사이이다.

사나이끼리의 맺음이니 평생을 같이 할 것이다.

이제는 공적인 관계를 떠나 사적으로 평생을 모실것이다.

님께서는 서정성 짙은 경향의 시를 쓰는 詩人이기도 하다.

정무학 교장님의 앞날에 영광있으라!

가시는 길에 꽃다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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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책꽃이에 30여년 간 꼽혀있었던 책, 1974년, 대문출판사간, 전혜린의 책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19살 때 읽었는데 28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었다.

옛날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으로 읽었다. 다시 읽게 된것은 쥬블레 님의 영향이기도 하다.

전혜린의 책에서 헤르만 헷세에 대한 추억부분이 좋았는데 그것을 건드리면 명문을 상할까 하여 그대로 옮겨본다. 사실 나는 몇달 전에 데미안도 다시 읽었다. 사실 전혜린은 80이 넘은 헷세와 교류가 있었고 헷세가 직접 그린 수채화도 선물로 받았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

오랜 방황에 헤메이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우연히 데미안을만난다

그 집에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이 있었다 남성과 여성, 신적인 숭고와 악마적인 유혹을 함께 지닌 수수께끼의 여인. 모성이고 애인인 에바부인을 찾아 첫 대면을 했을 때, 그는 오래된 그의 꿈이 이루어졌음을 안다. 전에 베아트리제 숭배에서 피스토리우스의 감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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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여름은 간다.

올 여름방학은 내 영혼을 살찌우는데는 실패하였다.

일요일을 포함하면 38일간이나 되는 긴 연수를 받느라 몸은 바빴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몇몇의 편린들은 도움이 되기도 했으나 처세를 위한 것

을 제외하면 역시 별 소득은 없다.

그나마 건진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을 사귄일이다.

오늘날 사람은 재산이다. 같은 강의실에서 연수를 받은 사람이 130명이었으

니 사람은 많이 사귀었다. 그들에게 좋은 인상이나 주었는지 모르겠다.

폭우로 얼룩진 올 여름은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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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고치고 싶다

어제 몇분의 선생님과 같이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 중에 A와 B는 한자리에 앉기 불편한 관계였다.

한시간 반가량되는 식사시간 내내 그 둘은 아주 편안한 관계인것처럼 농담

을 주고받으며 웃어제꼈다.

나는 속으로 참 처세도 좋다! 나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마 금방

내 얼굴에 싫은 표정이 나타났을 것이다.

내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이 성격을 고치고 싶다.

나도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도 겉으로 너털웃음으로 넘기고 싶다.

이 나이에도 내 성격이 내 마음먹은대로 가지 않으니……

그러나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개인의 성격은 5세 이전에 완성된다고 하니

성격을 자동차 부품 바꾸듯이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다.

할머니들이 덜렁거리는 손주를 매를 들고 질서정연하게 바로잡아보려는 며

느리에게 던지는 말이 있다.

“내버려두어라 생긴게 그런 걸 어떻게 하니.”

Fr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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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사춘기 2

지난 일요일에 둘째녀석(중3)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외식을 하러가면서

아들에게 무엇을 먹고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깐풍기’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중화요리를 먹고싶지는 않았지만

저와 자식간에 의견이 다를때는 무조건

자식의 의견을 따르기로 정했습니다.(2002년 7월부터)

정통 중화요리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너도 어른이 되면 네 자식의 의견에 따라 메뉴를 정하여라”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어른이 되면 아버지에게

맛있는것 사줘야한다” 라고 부탁해서는 안된다.

사주는 것으로 끝이다.”

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아주 좋아했습니다.

아마 거기서 반대로 결정하고 반대로 말했다면

“흥 제멋대로 가지고 놀고, 효도받을려고 낳았나?”

그렇게 생각했을것입니다.

사춘기!! 정말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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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사춘기 그 영원한 숙제

언제부터 사춘기인가?

아이들이 듣는 데서 어른들이 예사로 하는 말을 듣고 누구를 앤줄알아 하고 분개하기 시작

하는 게 사춘기의 도입이다.

이름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지 않고 슬슬 어깨로 폼을 잡으며 어슬렁 어슬렁 나타나서 부

르셨어요? 하고 눈을 척 내리깔면 이제 사춘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신호라고 보아도 틀

리지 않다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대체로 십이삼세서부터 한 이십이삼세까지 보기도 한다.

이 시기를 자 겪어내기만 하면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을 닦게 된다.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여러 가지 문제에 휘말리면서 인생이란 곡예에서 추락하는 경우도

생긴다.

나는 사춘기의 아들을 두명이나 두고 있다.

특히 둘째 녀석은 증세가 심각하다.

석영아 하고 부르면 생글거리며 ‘예’하고 와야하는데

이건 그게 아니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고행의 바다를 건너는 것

과 같다는 느낌의 굵직한 목소리고 ‘왜요?’ 라고 말한다.

어떤 상담가는 구태여 이유를 분석하려고 들지 말고 자녀들의 사춘기라는 태풍이 지나갈 때

까지 가만히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저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해주

면서 방향성이 엇나가지 않도록 돌봐주는 도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의 의견이 다를 때는 아이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제이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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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내가 anbindr 인 이유

춘원 이광수! 자칭 국보이며 향가를 해독한 무애 양주동 박사는 우리나라의 문학을 쌀 한

가마니 라고 한다면 그 중에 아홉 말은 춘원의 것이고 나머지 한말 중에서 아홉 되는 자신

의 것이라고 했으며, 나머지 한 되를 가지고 수많은 문인들의 몫으로 나누어야한다고 하였

듯이 춘원은 훗날 친일적 행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문학의 거봉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광수의 사랑을 읽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진한 감동으로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왜 눈 앞이 부옇게 흐려졌을까?

한번도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아마 사랑

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책 속의 주인공 이름이 안빈(anbin)이다. 그런데 메일을 등록

하려했더니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 안빈의 직업이 의사(dr)였다. 나는 의사가 아니

니 앞에 붙이지 않고 뒤에 붙였다. anbindr !!!!

<춘원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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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오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다.

작가인 바스콘셀로스가 이 책을 출간한것은

1967년이었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과 같은 만 47세였다.

3시간정도의 독서시간 중 적어도 1시간은 울었다

그것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

[“그러면 왜 우리 집에와서

아빠한테 나를 달라고 하지 않는거야?”

뽀루두가는 너무 감격해서 벌떡 일어나 앉아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어요……]

………………………………………….

제제가 뽀루뚜가에게서 받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

내가 20살때 인간유한성에 대한 번민에서

출발하여 끝없는 사유의 항해끝에

도착한 삶의 의미와 목적은 “사랑”이었으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껏 바뀌지 않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차마 말을 할수도 없을 만큼 슬픈 그 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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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0시의 전화

밤 12시 전화벨이 어둠을 가른다.

이렇게 깊은 밤에 전화를 걸 사람은 큰 녀석 밖에 없다.

멀리서 온 전화다.

12학년 영어공부를 미리 하기 위해 이번 여름에 집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섬머수업이 끝난 후 비행기 타고 5시간이나 걸리는 친구 집에 간다고 하였다.

세상에! 친구 집 가는데 비행기를 타고 5시간이나 가야한다니!!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혼자서 비행기표 달랑 한 장 갖고 떠났다

친척 한 명 없는 낯선 나라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늘 걱정이다.

친구를 사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마도 친구는 반듯하고 좋은 학생일 것이다

나는 아들이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알고 있다.

내 아들의 친구는 언제나 최고였으며 멋있는 아이들이었다.

내가 먼저 통화하였다. 아무리 친구집이라고해도

보름 이상 묵을 것이라면 예의를 지킬것이며

몸을 청결히 하고 신사다운 풍모를 가지라고 당부하였다.

아내가 이어서 통화하였다.

아내는 건강하냐고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다.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큰 아이가 보고 싶다면서 흐느껴 울었다.

나는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그렇게 나약한 마음으로 먼 곳으로 아이를 보냈단 말이요.

다시는 내 앞에서 울지 마시오!

아내는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자세로 입을 벌려 울음을 삼켰다. 보기에 측은하였다.

그 동안 나는 아내가 강한 사람인줄 알았다.

음…..나는 강한가?

나는 강하다.

나는 강하다.

내가 중학생 때 너무나 좋아했던

헤밍웨이 사진을 녀석에게 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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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18번째 생일에 붙임

중학생 때부터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물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아직 어리기도 했거니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되지 못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막무가내였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이후에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난감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내방에 들어와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 나중에 물려줄 것이 있으면 물려주시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유학을 보

내주셔요” 라고 말하였다.

물론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녀석을 믿고 싶었다.

겨우 달래서 억지로 1학년 2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척 한 명 없는 곳에 비행기 표 한 장 달랑

들고 김포공항을 빠져나갔다.

나는 걱정이 되어 초조하였으나 녀석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냈다” 라는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비행기에 올랐다.

녀석은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적어도 녀석이 컴퓨터에 중독되기 전 까지는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모의고사에 전교 1등을 한 것도 스스로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이다.

녀석은 사유(思惟)의 영역이 깊고 넓었다.

1년 반이 지났으나 나도 아내도 가보지 못했다.

심지가 깊은 녀석이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특별한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

녀석이 그런 아이다.

녀석은 무엇인가 해낼 것이다.

녀석은 아주 특별한 놈이다.

녀석의 18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아들과 신라문화 답사를 하였다.

불국사에 같이 간 생각이 난다.

석가탑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였다……

진평왕릉 밑에서 라면도 끓여먹었는데 기억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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