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학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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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모임

 

 

노조 망국으로 가는 귀조노조 민노총에 대항하기 위한 세력으로 자유우파 진영에서 설립한 ‘국민노동조합’이 서울 종로에 있습니다. 노조의 주인이 국민이란 뜻입니다. 여기는 노조의 목적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입니다! 오늘 경기 자유 우파 모임을 국민노동조합 사무실을 빌려 모였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우남의 젊은 시절 모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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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ing

오늘 경기수필가 협회 사람들이 나의 우거를 방문해주셨다.  모두 글을 쓰는 분으로 인품이 좋은 분들이다. 이창식 선생님은 사진 찍는 순간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자고  제안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밭에 나가 내가 심은 옥수수를 삶아서 먹었는데 첫 수확이었다.

과연 세계 최고 품질 대학찰옥수수 명성대로 최고의 맛이었다.

가는 길에 옥수수를 따서 개인당  12 개 씩 봉투에 담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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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 1000년 넘은 그릇을 만지면서 숨결을 느낀다.  난 그 느낌이 좋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숨결이 좋다. 아버지가 주신 것도 있다.  하나만  빼고  모두 진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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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통일신라 토기 두 점이 들어왔다.  두 개 다 마음에 들지만 특히 위에 것이 더 마음에 든다.  명칭은 그냥 신라토기장경호 라고 이름을 붙였다. 비교적 덩치가 큰 물건이다.  둘 다 1300년 이상 된 물건이다. 난 이런 토기를 만지면서 멀고 긴 시간의 깊이에 고인 사랑을 느낀다.  박물관에 가면 눈으로만 보는데 나는 이걸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싶어서 샀다.

흙으로 빚은 그릇 중에서 기면(器面)에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을 통칭해서 토기라고 부른다.유약을 입힌 것은 도기나 자기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약 12000년 전에 발명된 토기는 인류문화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날것으로 먹거나 구어먹는 방식에서 벗어나 삶거나 쪄서 먹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물을 담아 부엌이나 일터에 옮길 수 있어 인간 활동 공간을 넓혔다. 토기로 신석기시대 농경으로 생산된 곡식을 저장할 수 있었다.  토기는 점토를 가열해서 물에 용해되지 않는 소성물로 변화시키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점토는 500도 이상 열을 가하면 수분이 증발하여 흙 용기가 된다. 토기는 손빗기, 띠쌓기 후 회전력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무늬를 새기고 그늘에서 말린다. 직사광선에서 급하게 말리면 토기의 모양에 변형과 뒤틀림이 온다. 그 후 불에 구우면 토기가 된다.

가소성이 있는 점토는 500도 이상이 되면 점토의 수분이 이탈하여 흙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다른 물질로 바뀐다.  막음 장치가 없는 가마에서 700~850도의 열을 가하면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가 된다.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연질토기이며 구울 때 산소가 차단되지 않아 붉은 색을 띤다.

막음 장치가  있어도 수평으로 이루어진 가마에서 구우면 850~950도 이며 이 온도에서 구운 것이 와질토기이다. 산화알루미늄이나  규산 등이 용융되지 않으므로 토기 표면에 피막이 형성되지 않아 손을 대면 묻어난다.  이 와질토기가  원삼국시대 취사와 저장용기, 제사용기, 묘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다.

가마를 경사진 곳으로 옮겨가면서 경사진  터널식 가마가 등장하여 1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바탕흙에 들어있는 산화알루미늄과 규산이 견고한 결정으로 바뀌면서 도질토기가  만들어진다. 가야, 백제, 통일신라시대까지 생산되었다.  도질토기는 바탕흙 속에 있는 산화알류미늄과 규산 등이 용융되면서 점토 밖으로 흘러나와 토기 표면에 피막을 형성하는데 표면이 묻어나지 않고 아주 단단하고 반짝 거린다. 이후 고려로 진입하면서 도기로 대체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발견된 무늬가 없고, 토기를 만들 때 풀과 같은 것을 더해서 만든 ‘고산리식 토기’이다. 대략 1만 년 전에 사용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후 기원전 6000년 무렵 부산, 김해, 양양, 고성 등 우리나라의 동남해안에서 덧무늬 토기, 누른무늬토기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된 토기가 바로 빗살무늬토기. 지역적으로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점차 토기 겉면을 가득 채웠던 무늬가 간단해지고 불규칙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기원전 1500년경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빗살무늬토기를 대신해 민무늬토기가 사용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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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2015년에 세운 나의 버킷리스트는 18개다. 그 중에 7개를 실천하였다. 그  일곱번 째가 전원주택이다. 비록 월세집이기는 하지만 내 수준에서 그런대로 만족한다. 100% 만족할 곳을 찾기는 힘들었다.  70% 만족한다. 내가 어려서 태어난 고향집과 비슷한 위치의 산 밑 집이다.  나는 산 밑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네 맨 끝 집이어서 누구랑 말할 사람도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고독한 시간이었다.

여기는 건평 30평 짜리 집이 있고,  그 앞에 텃밭이 있다. 내가 대학찰옥수수 300 포기를 심었다.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6월 초 가뭄이 극성으로 치닫던 때여서 살까 걱정했는데 옥수수의 생명은 끈질겼다. 50일 만에 무럭무럭 자라 그 기상이 자못 씩씩하여 국군의 날 열병하는  군인의 당당한 보무처럼 보인다. 쳐다보면 나도 힘이 난다.  뙤약볕에서 선비가 땀을 흘려가며 애쓰고 심었는데 보람을 느낀다.

옥수수밭 곁에 가니 우~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옥수수꽃에  먹을 것이 있는지 토종벌 수백마리가 날아와 날개짓하는 소리가 밭 전체에 울린다. 정말 장관이다. 벌도 귀하다는 요즈음 쏘일 걱정은 하지 않고 그저 반갑기만 하다.

한꺼번에 익을 텐데 이걸 다 어떻게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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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왕

경주시 금령총에서 금관과 함께출토된 한 쌍의 토기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주인상은 높이 23.4㎝, 길이 29.4㎝이고, 하인상은 높이 21.3㎝, 길이 26.8㎝이다. 금령총에서 1924년에 배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으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하여 저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보 91호로 지정되었다.

뜬금없이 이게 뭐냐고? ‘기마인물형명기’ 이게 무덤에서 출토된 명기다.  과거 왕이 죽으면 신하들을 따라서 묻는 순장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성을 사랑한 고구려 11대 동천왕이 순장을 금지시켰다. 신라 지증왕도 금지시켰고 공자도 순장을 필요 없는 제도로 말하였다.  순장을 금지시킨 후 토기로 만들어 부장한 물건이 바로 명기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명기의 숫자가 정해져있었다.

말 엉덩이 위에 물을 붓는 구멍이 있고 말 앞부분 삐쭉한 부분으로 물이 나오며 말의 몸통은 액체를 간직하기 위해 비어있다. 물이나 술을 넣고 마시기 위한 도구로 보인다.

우리집에 복제품이 하나 있다.  하인상은 없고 주인상만 있는데 내가 복제품을 구입하였다. 인물이 아주 친숙한 느낌이 들고 볼수록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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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운동을 해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가뿐하였다. 마라톤처럼 격한 운동을 했을 경우는 예외로 며칠 다리가 아팠지만 다른 운동은 자고 나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몸이 가뿐하였다.

 

그런데 금년 들어 그렇지 않다.  가만이 있어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일모도원 (日暮途遠) 이라 했던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몸이 옛날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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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비

경인일보, 경기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내고 경기수필의 회장을 지낸 이창식 선생님이 책을 냈다. 금년 9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 동안 3권의 책을 내셨다. 컴퓨터를 못하시니 모두 육필로 원고를 썼다.

이 번에 낸 물고을의 양지와 그늘은 물고을(수원)의 향토사를 연구한 논문집이다. 412쪽의 방대한 분량이며 책의 크기가 국판보다 훨씬 커서 원고량도 매우 많았을 것이다.

경기수필 회장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이창식선생님의 출판기념회를 기획하였다. 선생님에게는 정확하게 말씀드리지 않고 경기수필 임원들과 일을 추진하였다. 그저 경기수필 회원  20여명과 축하 점심을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행사 당일 내가 차로 모시고 행사장에 입장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경기수필 회원 중 한 분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다른 선약으로 출판기념회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연락하는 바람에 이창식 선생님이 알게 되었다.

선생님과 전화 통화한 분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걱정하기에 내가 직접 전화로 전후 사정을 알리고 선생님의 건강과  고령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출판기념회를 다시 열기는 어려우니 이번 한 번은 넘어가 달라고 말씀드렸으나 무조건 철회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후학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어준다고 하면 고맙다고 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창식 선생님은 정말 강경하게 반대하셨다.

저녁 늦게 댁으로 찾아뵈었다.  2시간 가량 독대하고 간청하였으나

선생님은 글쟁이가 책을 내서 우편으로 발송했으면 그만이지 공연히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 것은 폐를 끼치는 일이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깔끔하게 한다고 해도 축하금이라고 주머니에 돈봉투를 찔러주고 달아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출판기념회를 연다면 당신 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평생 50여권의 책을 냈으나 단 한 번도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은 소신을 지키게 해달라고 오히려 간청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달라고 하셨다.

섭섭하지만 나에게 공부가 되었다. 너무나 강경하셔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인물도 만들고 플래카드도 제작하였고, 대형 얼굴사진을 걸개그림으로 걸려고 제작하였다.  화성박물관 강당도  사용허가를 받았는데…  또 행사 후 음식점 예약도 했는데….결국 모든 행사를 취소하였다.

이번 일을 추진하면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창식 선생님!

이 시대에 남은 마지막 선비다.

댁에서 힘없이 나오는 내 어깨를 안으며 이 일로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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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냈다!

임태희 교육감의 취임식에 다녀왔습니다.

경기교육콘서트라는 다소 생소한 잔치였습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옵니다!

우리는 이겼고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좌파를 물리첬습니다.

경기교육은 지난 13년간 김상곤, 이재정과 전교조의 좌파교육 수렁에서 허우적댔습니다.

제 자식들은 특목고에 보내고 경기도 모든 학생들에게는 평등교육을 강요하였습니다.

그결과 경기도 학력은 전국 최하위로 떨어졌습니다.
교육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교육이 행복한 인생을 위한 수단이 됨은 틀림없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적성을 살려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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