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즉 정확한 표현으로는 일본군 성노예
(
日本軍性奴隸
,
영어
: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는
2차대전에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
위안부가 되는 방법으로는 징용 또는 납치
,
매매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였다
.
위안부의 구성원으로는 조선인
을 포함한 중국인
등이 포함된다
.
그 밖에 필피핀
과 태국 베트남
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
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에게 징발되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 가운데 유일한 유럽 국가인 네덜란드 여성도 있었다.(출전: 위키백과)
1993년 일본 관방장관 고노 담화를 통해서 위안부(성노예)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과 한 것으로 이후 모든 일본 총리가 8.15 추도사에서 사죄의 뜻을 표명하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
1993년 8월 4일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왔으나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됐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지(戰地)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나라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
어쨌거나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또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
덧붙여 말하면 본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있으며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오늘 내가 다시 전문의 내용을 읽어보니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교육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위안부강제동원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등 그런대로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라야마 담화라는 것도 있다. 1995년 일본 총리 무라야마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하여 사죄한 것으로 이후 매년 8.15 종전기념일에 일본총리가 추도사에서 언급하였다.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라야마 담화 전문]
1995
년
8
월
15
일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
(
英知
)
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
또 아시아
·
태평양 근린제국
,
미국
,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 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
·
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
지금 전후
50
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
패전의 날로부터
50
주년을 맞이한 오늘
,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
(
肝要
)
합니다
.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
」
고 합니다
.
이 기념할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
역시 오늘 다시 읽어보니 무라야마 담화 역시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으며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하는 등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추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베 내각은 지난
2
월 말 정부 안에 민간 지식인
5
명으로 구성된 검증팀을 설치하고
,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간에 문안을 조정했는지 여부 등을 검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그리고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
河野
)
담화가 한
·
일 정부 간의 문안 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입증할 자료가 없는데도 한국의 요구에 따라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는 극우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일본 정부의 반성을 담은 담화라는 입장을 사실상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
더구나 양국 간에 비밀로 하기로 한 외교적 대화 과정까지 공개한 것은 외교 관례를 무시한 도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고노 담화에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설치 시 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포함하도록 요구했고
,
문안 조정 작업을 벌였다고 했다
.
일
본 정부는
“
양국 외교 당국이 문구 사전 조정을 비밀로 하기로 서로 합의했다
“
고 주장했다
.
이 보고서는 또
“
일본 정부는
‘
위안부 강제 연행
‘
을 확인할 수 없었다
“
며 사실상 강제성을 부정하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
菅義偉
)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
고 말했다
.
검증 보고서에선 고노 담화를 사실상 부정하면서도 말로는
“
고노 담화는 타당하다
“
고 한 것이다
.
이에 대해 고노 전 관방장관은 이날
“(
담화는
)
국내외의 많은 자료와 옛 군인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다
“
고 밝혔다
.
6월 21일 고노 전 관방장은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모집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노는 야마구치시 강연에서 “군 시설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많은 여성이 위안소에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노씨는 1993년 당시 미야자와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고노담화를 발표했던 당사자다.
그는 특히 위안부 모집에 해해 “여러가지 모집 형태가 있었겠지만 위안소에 들어가면 군의 명령으로 일했고 돌아가려해도 돌아 갈 수 없었다면서
그렇다면 위안부 모집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인 피해자 16명의 증언청취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아야기를 들어봐야 비로서 가해자로서의 생각을 확실히 알수 있다는 뜻에서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 계승방침을 밝힌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내각이 인정한 이상 그 이외의 발언은 불규칙 발언이라고 극제사회에 분명히 이야기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2014
년
2
월
8
일 중국 상하이 사범대학 인문학원 원장이자 중국위안부 문제연구센터 수지량
(
蘇智良
)
주임교수
,
천리페이
(
陳麗菲
)
사범대 교수 겸 연구원 등이
한국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와 상하이에서 이틀간의 일정으로 개최한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유와 연대
’
라는 제
1
차 한중일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을 침략한 시기에 일본군 성 노예자는
20
만 명을 초과하고
,
강간당한 중국 부녀는
‘
위안부
’
를 훨씬 초과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