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중학교 2학년 때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다시 읽었다.

아마도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죄와벌은 축약시킨 완역판이 아닌 학생용 죄와벌이었다.

이번에는 민음사에서 나온 1,2권의 1000쪽이 넘은 장편이어서 여러날에 걸쳐 읽었다.

러시아 문학은 이름 외우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이름이 로자, 로지온, 로젠카, 로지카, 로지멘키, 로마노비치, 로마노이치 등 8개로 나온다.

심지어는 두줄의 문장 안에 같은 사람이 두가지의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로자야! 하고 어머니가 라스콜니코프를 불렀다 이런 식이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대여섯 가지씩 가지고 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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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기 이전부터 이미 죄인이었다고 생각했다.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동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심리적 억압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무더운 날씨, 어머니와 여동생마저 돌보지 못하는 가난한 자신의 처지가 분명 그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을까? 아니다. 더 중요한 동기가 따로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가 나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자신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끔 학비로 사용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와 같이 <비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솔로몬과 마호메트, 그리고 나폴레옹을 예로 들어 자기를 정당화했다. 이들이 그랬듯이 새로운 사회와 법률을 위해서는 낡은 것들을 파괴해야만 하는데,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이 당연히 허용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점 죄의식조차 없이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죄는 자만이었다. 그렇다면 이 죄와 그 벌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가? 있다. 의외로 간단하다. 자만이 원인이면 겸손이 해법이다. 날 세운 이성이 원인이면 바보 같은 신앙이 해법이다. 타인 희생이 원인이면 자기 희생이 해법이다. 창녀 소냐가 그 일을 맡았다. 그녀는 비참하게 살아가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자기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인간이다.  

 

죄라고? 무슨 죄? 갑가지 그가 어떤 느닷없는 광분에 휩싸이며 소리쳤다. 저 추잡하고 해로운 이를 가난한 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무에게도 필요없는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니 마흔가지 죄악은 용서받을 텐데, 그것이 죄라고?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라스콜니코프에 대한  판결은 그가 죄지은 범행을 고려할 때 예상보다 가벼웠다. 왜냐하면 범인이 변명하려 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기 죄를 더 무겁게 하려는 바람마져 내보인 덕분이었다.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까지 범인이 병적이고 참혹한 상태였다는 사실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지적능력이 온전하지 못한점이 참작되었고, 대학재학 시절 마지막 남은 생활비를 털어 어느 가난한 폐병쟁이 학우를 도와주고 반년에 걸쳐 그를 거의 부양하다시피 했고 그학우가 사망하자 홀로 남겨진 고인의 늙고 병든 아버지를 돌봐주고 입원시키고 사망하자 장례도 치루어 주었다는 것이다. 또 대학 때 하숙집 아주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라스콜니코프가 불길에 휩싸인 어느 아파트에서 어린아이 2명을 구해주고 그 와중에 화상을 입었노라고증언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철저히 조사되었고  많은 증인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또 범인이 자수한 사실까지 모두 죄를 경감시키는데 영향을 끼쳐 겨우 8년에 불과한 제2급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죽인것은 오만한 자기중심주의와 자폐적인 선민의식의 산물이었다는 것,   그는  소냐를 앞에 두고 그는 광적인 어조로 고백한다. ‘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을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인거야’  나는 그 때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이에 불과한지 아니면 인간인지를 알아야만 했어

 

 

라스콜니코프는 우연히 가난한  실직 관리 마르멜라도프를 알게되고 그가 죽었을 때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전부 장례비로 내놓는다. 이 때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를 알게된다. 소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창녀였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녀같은 인물이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가 착하고 순수한 젊은이라른 것을 한눈에 알게된다. 죄와벌 전체를 흐르고 있는 어둠은 사회의 가난이다. 예나 지금이나. 너무 가난하면 사실 정의, 진리, 예술, 도덕을 찾을 시간도 공간도 없다. 150년 전의 러시아 사회의 죽음과도 같은 가난이 소설 전체에 어둡게 깔려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 자신의 살인을 털어놓고 소냐는 살인으로 손을 더럽힌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대지에 엎드려 입맞추고 그 대지에 속죄하라고 권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수하고 시베리아의 감옥으로 끌려간다. 소냐는 시베리아의 유형지까지 따라가 라스콜니코프를 자주 면회하고 편지를 쓴다. 어느날 감옥 밖에서 호송병의 감시하에 작업을 하고 있는데 소냐가 살그머니 와서 다가와 앉았다. 호송병은 마침 등을 돌린 상태였다.

 

여러날에 걸쳐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원문대로 옮긴다.

 

그는 울면서 소냐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순간 그녀는 경악한 나머지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질려버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벌벌 떨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바로 그 순간 모든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은 무한한 행복으로 빛났다. 그녀가 깨달은 사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은 사실이란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 무한히 사랑한다는것, 마침내 이 순간이 도래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둘다 창백하고 여위였다. 하지만 병색이 완연한 이 창백한 얼굴에서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놀이(?),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아침놀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기다리며 참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7년이라는 세월이 남아있었다.(라스콜리코프 징역8년에서 1년경과) 그 때까지 참을 수 없는 고뇌가 무한한 행복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는 부활했고 그는 그것을 알고 또 자신의 새로워진 온 존재로 흠뻑 느끼고 있었다. 두사람은 7년을 7일처럼 바라볼 준비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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