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죄명이가 성스러운 광복절날 서울 광화문에서 국민임명식을 한다고 야단이다. 한 번 취임했으면 그만이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생하신분을 위한 성금을 빼먹은 윤미향이까지 사면하면서 국민임명식은 무슨 뜬금없는 짓거리냐!
나는 가만 두고 볼 수 없어서 동지들과 함께 광화문과 서울역에 가서 친북좌파정권 물러가라!고 소리지르고 왔다! 그래도 분이 안풀린다.



이죄명이가 성스러운 광복절날 서울 광화문에서 국민임명식을 한다고 야단이다. 한 번 취임했으면 그만이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생하신분을 위한 성금을 빼먹은 윤미향이까지 사면하면서 국민임명식은 무슨 뜬금없는 짓거리냐!
나는 가만 두고 볼 수 없어서 동지들과 함께 광화문과 서울역에 가서 친북좌파정권 물러가라!고 소리지르고 왔다! 그래도 분이 안풀린다.




수원이 낳은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은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을 위해 수원에 삼일중고등학교 설립에 부지를 제공했고, 교장을 역임했으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분교인 앙성중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보지못하고 193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큰 아들 임우상도 독립운동가로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냈습니다.

임면수 독립운동가의 친손자 임병무 詩人이 시집을 냈다고 해서 오늘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조부와 100%똑같이 생겼습니다)
수원역 13번 출구에서 옛날 버스터미널 가는 뒷골목으로 50미터 들어가서 복권방을 하고있는데 저도 가끔가서 삽니다^^

오늘 점심 외식을 하러 아내와 같이 나가는데 날이 몹시 더웠다.
어떤 신발을 신을까 생각하다가 아들이 신던 샌달을 신었다. 발 닿은 면이 매우 부드럽다. 약간 무거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감촉을 느끼게 해준다. 걸으면서 아들을 생각했다. 이 신발을 신었을 아들을 느끼며 걸었다. 본지 오래되었다. 보고싶다.

영덕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때 이디오피아 어린이를 돕기 위한 바자회를 열었다. 교장도 물건을 하나 내놓아야 하는데 내가 그린 청화백자 물고기 접시를 내놓았다. 담당 교사가 작품의 가치를 잘 모르고 1만원에 판매했다는 소리를 듣고 최소 10만원은 받으라고 했더니 당시 박대선 운영위원장님이 10만원을 내고 가져가셨다.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입을 크게 벌린 씩씩한 물고기를 그린 것이다. 내 필체가 잘 드러난 빼어난 작품이다. 오늘 그 분에게 회수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고려청자 접시를 드릴테니 바꿔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고마운 일이다.

여주시 강천면장님!
안녕히신지요?
강천면 도전리798-1 토지에
옥수수 400개
고구마 300포기 심었는데
멧돼지가 습격하여 완전히 초토화시켰습니다.
금년 농사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금년에 멋돼지와 고라니가
몇 차례 왔었는데 어제 밤에는 대대적인 습격이 있었습니다. 야생 동물이 너무 많습니다. 적절한 조절이 필요합니다.

그렇찮아도 이쟈명, 정청래 같은 전과자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멧돼지까지 힘들게 하네요. ㅠㅠ~


면사무소에 신고한 지 1시간 만에 포수가 배치되어 현장에 오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냉커피 타놓고 포수를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행정 대단합니다.
(이재명만 없으면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
어제 김호영 교장님과 함께 수원역 노숙자 봉사활동을 했다.
김호영 교장님(장로님)!
수원역 노숙자 봉사활동에서 님은 성자같은 모습이셨습니다. 빵과 삶은 옥수수를
나누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숙인의 고민을 들어주시고, 상담도 하시고!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저야 가물에 콩나듯 나가지만 김호영 장로님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노숙자 봉사를 하시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노숙인들이 먼저 다가와서 안기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Thanks!






경기교육바로세우기 시민연합(경세연)의 임원들이 서울 을지로 조선옥에서 모였다. 조선옥은 1937년에 개업한 유서 깊은 한식집이다.
나라 돌아가는 꼴에 대하여 모두 비분강개하였다. 모인 사람들 모두 광화문 아스팔트 전사들이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 경세연의 외연을 넓히고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토론이 끝난 다음 식사를 했고,
마지막 순서로 조선 독립의 아버지 국부 이승만의 생애에 대하여 내가 발표를 했다. 40년 전 우연히 우남의 정적이었던 장면이 쓴 이승만 전기를 읽고 그 때부터 우남을 존경하게 되었다. 가능한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이승만의 소년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 그러니까 해방 전까지 설명을 했고 나머지는 훗날 하기로 했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셔 약간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 했는데 모두 감명깊었다고 말해서 매우 면구스러웠다.

집에 와서 단체 카톡을 보니 감동적 설명이었다는 글 일색이다. 감사한 일이다.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은 답글을 올렸다.
어제 강호의 우파 맹장들이 모인 자리에 제가 감히 발표자로 나서서 매우 송구하였습니다. 널리 용서바랍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지식인 사회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중요시 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의 공산주의가 더 우월한 정치체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해방 직후 남한에서 여운형, 박헌영 등의 주장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에트 70년은 실패로 끝났으며, 중공의 사실상 시장경제로의 전환, 대한민국 건국 후 77년이 지난 지금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분명합니다. 모두가 잘사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균등이 아닌 불평등이야 말로 자유와 창의성 발휘의 원천이며 결과입니다. 계급과 국가를 우선시하는 전체추의 관료적 지배체제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은 억압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모두가 빈곤해지고 말았습니다.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으로 당선된 이승만은 헌법 제정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사유재산제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였습니다. 이승만은 배달겨레의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집사람이 이름 아는 배우, 가수 이름을 적어보라고 한다. 향 후 치매에 걸릴지 안걸릴지 알아보는 시험이라나 뭐라나? 자기는 35명 적고 더 이상은 못적겠다고 한다.
나도 적어보았다. 시간 제한 없이 적는 것인데 사실 약간 긴장되었다. 그래도 100명을 채웠다. 정말 더 이상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정도면 괜찮은지……

자식 자랑은 팔불출로 절대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사적 공간이기도 하니 그냥 올려본다. 아들 맹인영은 그의 아들이자 나의 손자인 맹형주 교육에 아주 충실하다. 스키와 아이스하키를 시키더니 방과 후 활동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농구교실, 축구교실에 다니고 수영을 배우고 있다. 아주 잘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스키
아이스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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