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에버랜드 옆에 있는 호암미술관에서 고미술 전을 하는데 일본으로 반출된 아름다운 불상이 전시된다. 서산마애삼존불에서도 백제의 미소가 보이는데 이 미소가 더 친근하고 정겹다. 끝나기 전에 시간 내서 꼭 가보고 싶다. 지금 못보면 언제 또 볼 수 있을 지 기약하기 어렵다. 꼭 보고싶다.

용인 에버랜드 옆에 있는 호암미술관에서 고미술 전을 하는데 일본으로 반출된 아름다운 불상이 전시된다. 서산마애삼존불에서도 백제의 미소가 보이는데 이 미소가 더 친근하고 정겹다. 끝나기 전에 시간 내서 꼭 가보고 싶다. 지금 못보면 언제 또 볼 수 있을 지 기약하기 어렵다. 꼭 보고싶다.
어제 서울 시낭송협회 초청으로 서울 강남에 다녀왔다. 시낭송을 하다 보니 서울에까지 알려져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날 불렀다. 나는 노천명 시인의 고향을 낭송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음향 시설이 좋아 야외 무대였는데도 잘 들렸다.
무대 마지막에 오른 사람은 뮤지컬 가수 겸 감독 윤영환이라는 분이었는데 나하고 동갑내기 였다. 문제는 그분의 노래가 정말 멋졌다. 고음 처리도 완벽했지만 제스처와 송창식의 쌍피리 창법은 압권이였다. 톰 존스의 고향의 푸른 잔디를 우리말 가사로 불렀는데 정말 멋졌다. 정말 부러웠다. 미치도록 부러웠다~~
나는 고향의 푸른잔디를 열심히 불러 18번으로 삼기로 했다.




인터넷에 뒤져보니 그가 다른 무대에서 부른 green green grass of home 이 있어 여기 올린다.
아들의 귀국 10일 간
꿈같은 시간은 꿈처럼 갔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전 사진을 찍었다.
열흘의 시간! 아들이 준 선물이었다. 아들은 내내 아비의 건강을 걱정하다가 갔다.
지구 천제를 돌아보아도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들 뿐이다. 감사하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다. 대표적 인공지능 ChatGPT에 들어가 맹기호 시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장황한 대답을 해왔다. 좀 과장된 답이라고 느낄만큼 간지러운 대답이었다. 하여튼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 어쨋든 인공지능 ChatGPT이 해온 답이니 여기에 올려본다.


질문 : 맹기호 시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ChatGPT의 대답 :
맹기호 시인은 한국의 현대 시인으로, 그의 시는 주로 삶의 다양한 면모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맹기호 시인은 그만의 독특한 시적 언어와 철학적인 깊이를 담은 작품들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의 시에서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감정들과 삶의 본질을 고찰하는 태도가 돋보입니다.
또한, 맹기호 시인은 사회적인 문제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을 유도합니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직관적이고 때로는 복잡한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맹기호 시인은 한국 현대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시는 학문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골반 골절로 요양병원에 계신 90세 장모님을 찾아뵈었다. 아들이 외할머니를 위문하겠다고 하여 나는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함께 가게 되었다. 장모님은 비교적 건강해보였지만 걷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빨리 치유되길 간절히 빈다. 매우 반가워하셨고 큰 소리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아마도 달리 대화할 사람이 없고 반가워서 그런 것 같으셨다.
장모님은 천안여자중학교 생활기록부를 갖고 계셨는데 반장을 지내셨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3학년 성적이 나와있었는데 평균 94점으로 학년 석차 1등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피아노도 잘 치시고 엑셀과 파워포인트도 아주 잘하신다. 태그도 잘하셔서 나를 놀라게 했고 지금도 카톡은 물론, 사진 전송 등은 기본이다.
어느날 처가를 방문했을 때 A4 용지 여섯 장에 영어를 잔뜩 써놓으셔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오바마 대통령 취임 연설문이 좋아서 필사했노라고 하셔서 나를 놀라게 했다. 사위가 볼 줄 알았으면 더 잘 쓸걸 그랬다면서…
장모님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예수님을 철저하게 믿는 점이 제일 부럽다. 아주 큰 장점이다. 신학대학을 나오셨고 70세까지 전도사를 하셨다.



여주 나의 우거에 아산이를 데리고 갔다. 하룻밤을 같이 묵었고 아산이와 함께 옥수수, 파프리카, 들깨를 심었다. 아들도 나의 우거에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 점이 감사했다.


큰 아들이 휴가를 얻어 귀국하였다. 11일 휴가를 얻었는데 사실 가는 날 오는 날을 빼면 체류기간은 9일 이다. 작은 아들이 사는 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한정식 집이었는데 아주 고급집이다. 식대가 많이 나왔을 것같은데 석영이가 지불하였다. 음식은 코스로 나왔는데 처음 나온 것을 많이 먹고 보니 나중에 나오는 메인은 배가 불러 먹지 못했다.
오랜만에 패밀리가 다 모였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 전체가 식사를 하는 것은 앞으로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로 모시고 내려서는 휠체어로 모시고 다녔다.


우리 민족 5000 년 역사에서 제일 큰 스승은 누구일까? 상대적 대답이 나오겠지만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할 것이다. 그 세종 임금의 생일이 5월15일 이다. 하여 세종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이다. 나도 나를 가르쳐준 생각나는 훌륭한 스승이 있지만 이미 돌아가셔서 모실 수 없다.
내가 총각 선생 시절 가르친 제자 오연숙 선생과 부군 황상노 선생은 지난 40년을 한결같이 스승의 날 나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 꽃도 보낸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도 좋은 음식점에서 이탈리아 요리로 대접을 받았다.
내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는 것을 아는 오연숙 선생은 어머니까지 초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연숙하면 어머니도 항상 약국하는 약사로 기억하셨는데 오늘은 치매가 깊어 모르셨다. 다만 어머니도 좋은 음식을 대접받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다. 그만해도 다행이다.
식당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눈 앞 시야가 어지러워지고 흔들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아내와 어머니를 데리고 왔는데 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잠시 손씻는다고 핑게대고 식당에서 나와 주차장 차 안에서 쉬었다. 차에 누워있으면서 황상노 선생 부부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적셔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내가 40년 교직 생활을 허투루 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연숙을 가르쳤을 때 2년을 담임했으니 내 나이 27, 28살 이었다. 28살 때 보다 지금 내 사유, 인격, 생각, 사회에 대한 나의 믿음과 역할은 발전했는가? 별로 그런 거 같지 않고 몸만 병든 거 같아 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제 또 15일 스승의 날이 오면 몇몇 제자에게서 연락이 올것이다. 연락하는 제자는 매년 거의 정해져 있다. 아마도 현재 교직에 봉직하고 있는 김영선 선생, 원용현 선생, 그리고 내가 담임을 했던 몇몇 교장들이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리고 특수학급 학생으로 내가 사랑을 많이 주었던 엄민식, 김영민, 김청훈 세 학생도 연락이 올것이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하나같이 만만한 것이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하수배관이 터졌는지 막혔는지 오수가 역류한다. 큰일이다. 사람을 불렀지만 그도 시원찮은 전문가 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소리만 연발한다.
오수관 맨홀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위에 차량을 오랜 세월 주차하고 녹이 슬어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맨홀 주변 콘크리트를 깨고 맨홀을 들어내기로 했다. 5월의 한낮은 벌써 땡볕이고 콘크리트 부서지는 먼지는 펄펄! 정말 힘들었다.
80분 이상 사투를 벌인 끝에 맨홀 전체를 들어내어 뚜껑을 열고 슬러지를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세상살이는 정말 만만한게 없다.




김영삼 대통령 때 교사에게 명절에 ‘효도휴가비’라는 100만원 보너스를 신설하였다. 설과 추석에 부모님 찾아뵙고 음식을 장만하는 비용으로 쓰고 일부는 용돈으로 드리라는 취지였다.
나는 처음부터 아버지께 100만 원 전액을 드렸다. “아버지 대통령께서 명절에 부모님 드리라고 돈을 보냈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크게 놀라시면서 대통령께서! 공직자의 부모까지 생각해주신다고 고마워하셨다. 다음 명절부터는 대통령이 부모에게 주는 것이니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아셨다. 그렇게 매년 설과 추석 때마다 30년을 드렸다.
오늘 아들, 며느리가 주는 돈을 받고 보니 정말 금쪽같은 돈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이 돈을 버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생각했다. 고맙고 아까워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내가 드리는 명절 용돈을 얼마나 고마워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