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부산 스케치 여행-종근형을 만나다.

[종근 형을 만나다!]

아내와 함께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일요화가 스케치 대회에 참석하였다.

나의 평소 주말 스케치에 아내는 교회에 빠질 수 없어서 함께 가지 않지만,

멀리 가는 스케치 여행은 놀이 삼아 함께 동행해주는데 고마울 따름이다.

숙소인 부산의 글로리콘도호텔에 도착하니 로비에 종근 형이 나와있었다.

1년 전에도 구례의 산수유 축제에서 종근형을 바람처럼 만났었다.

종근형은 고개 숙인 후리후리한 키를 구석에 구부려 세우고 있었다.

주인이면서도 그는 마치 객처럼 수줍고 겸손해 했다.

그리고 내가 반가운 만큼 그도 반가워 했다.

우리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맥주를 몇 잔 서로 권했고 따뜻하게 손을 잡기도 했으며

다음 날 다시 만나 커피를 한잔 같이 마셨다.

말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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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나의 특별한 제자……

나의 특별한 제자 오연숙!!

시골의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니 20년도 더 넘은 일이다.

오연숙, 그녀는 정말 특별한 제자이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18살 쯤 되었을까?) 담임을 맡았고, 고3도 역시 내가 맡았다.

내가 27살 때이니 젊은 나이었고, 학생들을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오연숙은 전교 1등이었고, 친구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전 과목에 걸쳐 골고루 공부를 잘했고, 항상 표정이 밝았다. 몸에는 건강미가 넘쳐흘렀다. 지금도 기억한다. 교내체육대회 때 우레탄이 아닌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농구를 하던 모습을……억척같이 공을 빼앗아 골인시키던 장면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내 머리에 남아있다.

물론 예의도 바르고 행동이 반듯한 학생이었다.

송제선, 이정희, 이런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 들도 모두 훌륭한 학생들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가지 않으려는 것을 내가 억지로 설득하여 약학대학에 진학시겼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여러 번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녔다. 지금은 수원시 연무동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데 친정부모와 시부모를 잘 모시고 여러 동생들을 거두고 있다. 참으로 대견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성격이 멋있었다. 항상 밝은 얼굴이었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굽히지 않았다. 선생님에게도 굴하지 않고 덤비기도 하였다. 물론 나에게 덤빈 것은 아니고,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 억울해서 신체마비증세까지 와서 숙직실에 뉘고, 여학생인지라 내가 손을 대지 못하고 친구들로 하여금 몸을 주무르게 하였다. 몸이 점점 굳어가서 너무나 놀랬다. 급히 의사를 왕진시켰는데 놀랍게도 의사는 “히스테리” 라고 하였다. 쉽게 말하면 제 성질을 못 이겨 넘어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질이 고약하다고 말 할 수도 있으나, 나는 지금까지 그 날의 기억을 아주 멋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그에게 잔다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대쪽 같은 성미가 잔다크나 유관순을 연상시킨 것이다. 대학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빨간색 투피스 한 벌을 사주었는데 입혀놓고 보니 날렵한 모습이 마치 건강한 야생마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그 모습도 분명히 기억한다.

4년전인가? 내가 아프다고 전화를 했더니 즉시 신랑과 함께 학교로 달려왔다. 교무실에서 나에게 약을 먹이고 신랑이 내 머리통에 정성스럽게 침을 놓았는데 너무 감사하여 눈물이 났다……

지금 아마도 40살쯤 되었을 것이다.

항상 나의 건강을 걱정하고, 우리 집 식구들의 건강을 모두 챙기며 보약도 여러 번 받아먹었다. 매년 스승의 날에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식사대접을 하는데, 얻어먹는 것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염치가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랑이 전화를 하여, 돌아오는 토요일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물론 우리 부부와 연숙이 부부 이렇게 4명이 항상 만난다. 어떤 때는 가뭄에 콩나 듯 내가 음식값을 내보기도 하지만 음식값보다 훨씬 큰 선물을 또 주니 내가 밥값을 낸다는 명분도 없다. 부담스럽기도 하여, 한 동안은 연락을 끊고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같은 수원시에 살면서 원수진 것도 아닌데 벽을 쌓고 살수도 없고, 갑자기 내가 아프면 밤늦게 전화를 걸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약을 갖고 달려오고……또 한참을 안보면 그들 부부를 보고싶기도 하여 결국 서로 연락을 하게된다. 오연숙 그는 정말 특별한 제자이다.

그녀가 더욱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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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맹샘의 몸만들기 2

오늘 현재 체중 57.75 kg

운동을 시작하기 전의 체중이 66.5 kg였으니 8.75 kg(약 9 kg)을 감량한 것이다.

내 키에 대한 표준 체중은 56.25 kg

그렇다면 1.5 kg을 오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은 잘 줄지 않고 있다. 약간 답보상태이다.

운동을 하면서 생겨난 신체상의 변화는 허리가 12cm나 급격하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다리가 굵어졌고, 다리근육이 발달되었다 허벅지 근육이 특히 발달하였고 무릎을 거쳐 장딴지도 굵어졌다. 운동을 하면서 식사 량은 줄이지 않았고, 사실 밥맛이 좋아 먹는 량은 약간 늘어났다.

그런데 조금 불만이 있다면 내 눈으로 보기에 전체적인 체형이 아직도 복부가 약간 나온 형태가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인간의 몸이 아랫배에 여러 가지 장기와 내장이 있어서 약간 나와있는 것이 정상이지만 10대 운동선수 같은 날렵한 몸매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근육운동을 시도했다가 허리가 아파서 런닝훈련만 해서 그런지 상체근육이 빈약하고 하체만 발달한 것도 불만이다.

아내는 나이에 따른 체형의 변화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내 몸을 아주 건강하고 날렵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 몸매가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샤워장에서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 그런 대로 보아줄 만한 몸매로 돌아왔다. 그 동안 배가 나와 입지 못했던 양복들도 모두 다시 입게 되었다. 옷값을 많이 절약하게 되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언제든지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운동을 중단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면 살은 다시 찔 것이다.

교감은 수업을 하지 않고 주로 책상에 앉아서 교육행정 사무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방심하면 금방 살이 찌고 복부비만으로 돌아갈 것이다.

맹샘의 몸 만들기는 계속된다.

아래 사진은 지난번 경기일보 마라톤에서 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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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할렐루야!

< 장모님께서 인터넷을 하신다니 놀랍다. 홈에 글을 올리셨다. 그 글에 대한 나의 답글이다>

할렐루야!!

교감선생님으로 승진한 것 을 축하하네,

새로 신설된 학교라 신경 쓸 일이 많겠지,

모든 일을 지혜롭게 순리대로 처리해 나갈 것을 나는 믿네,

건강에 유의하길 바라며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해 주길 바라네.2003년 4월30일—-장모–이한림 전도사 씀

Re: 할렐루야 !! 2003/04/30 (20:36:36)

존경하는 장모님!

이렇게 홈을 방문해주시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장모님은 저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분입니다.

제 아내를 훌륭하게 길러 저에게 출가시켜 주신 은혜는

제가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장모님께서 딸을 얼마나 소중하게 길렀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장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저는 평생을 기울여 제 아내를 소중하고 귀하게 대우할 것입니다.

제가 장모님을 보면서 제일 부러워 하는 것은

장모님의 굳건한 신앙심입니다. 신앙은 억지로 키워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기도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길러지는 것일것입니다.

제가 아직 용렬하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믿음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장모님 보시기에 만족하지 못하실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점은 저 스스로도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훗 날 제가 어떤 계기로 스스로의 신앙심을 키울 기회를 갖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지난 번에 뵈었을 때 기력이 많이 쇠잔하신 듯 하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부디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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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어린 영혼을 위하여……

< 나에게 고민을 보내온 어린 영혼을 위하여 학생의 글과 답글을 올렸다.>

이 글을.. 정말 큰 맘먹고 올립니다.

저는 망포중학교 *반 ***입니다.

오늘 첫 중간고사 시험을 봤는데 시험 점수가 너무 않좋게 나왔더라구요.

너무 걱정돼요. 시험 점수와 등수를 게시판에 붙여두면 점수가 낮게 나온 아이들은 정말 크나큰 스트레스가 되요.

반에서 5등까지만 공개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냥 집에 보내는 성적표에만 등수와 점수를 알려 주시는게 어떨지요.

전 너무 걱정됩니다. 열심히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점수가 이렇게 나왔으니…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점수 때문에 얼굴을 못들고 다니겠어요. 때로는 다른 학교로 전학가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어요.

하지만 자살같은 죽음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옛날에도 죽음을 몇번 생각해 본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 때 죽었었으면 지금 이 시대에 내가 가지고 있을 일들을 모를거에요. 하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이 세상까지 살아왔습니다.

부모님에게 시험점수와 등수는 부끄럽지만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성적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님한테 보여드리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학교의 전 아이들에게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너무 떨리고 때론 죽고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교감선생님..

이런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하실 수도 있는 교감선생님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발 등수를 게시판에 붙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선생님들께도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공부를 못하는건데 교감선생님께 이러는 것이 저도 무척 속상합니다. 제 자신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걱정됩니다. 중학교 성적은 당현히 초등학교때의 성적보다 더 좋아햐 하기 때문에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전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지도해 주시는 것이 저는 더욱 났다고 생각합니다. 교감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성적을 게시판에 올리지 말기를 건의합니다.

2003/04/30 (20:54:02)

<답 글>

음……

중학교 들어와서 처음 시험인데

성적에 굉장히 민감한 학생이구나.

더구나 지금은 지나간 오늘 시험은 잊어버리고, 내일 시험볼 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야할 중요한 시간인데 지난 시험 성적에 불안해 있다면

효율적인 공부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네가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너를 그냥 “사랑”이라고 부르겠다.

사랑아! 마음을 굳굳하게 갖도록 하여라

사람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란다.

물론 공부를 잘 하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공부를 잘 할수는 없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한 학생이 꼭 훌륭한 사람이되는 것은 아니란다.

세상에는 학교다닐때 공부 못하고도 어른이 되어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서 훌륭한 사람이 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단다.

아마도 초등학교에서는 시험도 보지 않고, 즐겁게 공부만 하는 분위기 여서 네가 중학교 첫 시험에 당황하는 것 같구나.

그러나 앞으로 너에게는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너무나 많은 시험이 다가올 것이다. 그런 모든 시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고, 특히 시험을 두려워하는 태도 보다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맛서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한번 말하거니와 학교공부를 잘 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떠한 소질이 있는지 스스로 잘 살펴서, 그 방향으로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한가지 이상의 소질을 주셨단다. 사랑아!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11가지 과목의 성적을 일일이 한사람씩 귀에다 대고 불러주기에는 학생수가 너무 많단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가 성적을 게시판에 붙이고 공개해서 이의 신청을 받고, 잘못 채점된 성적을 정정할수 있도록 하는것이다.

그러나 너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선생님들하고 진지하게 의논해보겠다. 교감선생님은 지금 포전에 있는 율곡연수원에 연수중이고 5월 2일에 학교에 출근한다. 그렇지만 전화로 선생님들과 의논하겠다. 걱정하지 말고 잘 자거라.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라.

사랑아!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성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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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4320번 선수

10km 마라톤 도전기

경기일보에서 주최하는 10km 마라톤에 출전하였다. 아내와 함께 수원종합운동장에 갔다. 총성이 울리고 출발하였다.

출발 500m 후에 나는 내 마음 속으로 페이스메이커를 선정하였다. 나보다 10여세 젊은 사람이었다.저 사람 정도는 같이 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라톤에 처음 출전한 나로서는 무리는 금물이었다. 30년 전에 군대에서 뛰어보고 달리기를 해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만만한 상대를 골라야했다. 나보다 30m 정도 앞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붉은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눈에 잘 보였기 때문에 놓쳐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등번호는 4320번이었다.

그런데 그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자세히 보니 하체 근육이 잘 발달되어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언덕을 오르는 동안이나 내려가는 동안이나 속도가 아주 일정하였다. 따라서 언덕을 올라갈 때는 도저히 내가 따를 수 없었고, 내려갈 때는 내가 시속 15km 이상으로 속력을 내어 따돌렸다. 그러나 다시 언덕이 나오면 나는 금방 추월 당했다. 이런식으로 엎치락 뒷치락 하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추월을 허용하고,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한 참을 포기하고 달리던 중 결승점인 운동장의 조명탑이 눈에 들어왔고,전방 30미터에 4320번이 보였다. 그도 지쳤는지 속력이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추월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라스트 스퍼트를 하였다. 4320번 선수도 라스트 스퍼트를 할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동안에 그도 내가 경쟁상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싸움을 걸은 것은 물론 나였다. 나는 미리 스퍼트를 해서 먼저 따돌릴 계획으로 길게 스퍼트하였다. 숨이 찼다.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50m미터 이상 따돌렸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는 사이 슬쩍 뒤를 보니 4320번도 스퍼트를 하여 나를 2미터 이내로 따라오고 있었다. 결승점 100미터 전이었다. 나는 여기서 다시 스퍼트하였고 4320번을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골인하였다. 골인하면서 아내에게 촬영을 부탁한 지점을 향해 내달렸으나 아내를 찾지 못하였다.

골인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나의 평상시 10km 주파속도는 80분이었는데 오늘 마라톤 대회에서 57분에 주파하였다. 4320번 때문에 23분이나 단축한 것이다. 기록에 만족한다. 지난 1월 3일부터 3개월 2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5km 이상 뛴 결과 내 나름대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었다. 경기 전 아내에게 평상시 내 기록을 말해주었더니 아내는 그 시간에 맞추어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결국 골인장면은 촬영하지 못했다. 기록에 만족한다. 아래의 두 사진은 출발 전에 찍은 모습이고, 뒤의 두장은 경기일보에서 전송받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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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이 땅의 딸들 2

이효림!

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생질녀(甥姪女)이다. 나와는 촌수로 3촌간이니 아주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얼굴이 예뻤고 특히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끔찍한 효녀이다. 우선 인성(人性)이 훌륭하다. 그래서 특히 귀엽다.

피아노를 아주 잘 쳤고, 난파음악제에 나갔을 정도였다. 난파음악제가 열리던 날 나도 수원시민회관 무대에서 구경했는데 아주 멋있게 피아노를 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줄 곳 우등생이었다. 수시모집으로 이화여자대학 통계학과에 들어갔다. 수학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아이였다. 정시모집에 응시했더라면 더 좋은 대학에 합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력보다 하향지원했다. 나는 효림이가 진학상담을 해왔을 때 교육대학에 가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교사인 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아마도 이번 여름학기에 졸업을 하게될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취업걱정을 한다고 들었다.

음……그렇겠지! 대학을 졸업하게되었으니 취업을 하고 싶을 것이다. 바로 시집을 가기에는 너무 이르고 딱이 정한 혼처도 없을 것이니……..

이쯤에서 우리나라 여성 취업의 좁은 문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은 공직이 아니면 남자에게 밀려서 제대로 취업을 할 길이 없다. 그러니 여성이 학교 선생이나 의사 아니면 약사로 몰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안되면 학원선생이다. 고급 여성인력이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에 내가 담임을 했던 여학생 중에 이화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보다 아주 조금 성적이 뒤지는 학생이 인천교육대학에 지원하였다. 지금 인천교대를 졸업한 학생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보람되게 근무하고 있지만, 이화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차심부름도 하고 경리업무를 본다고 들었는데 그 후로는 소식이 없다.

어린 효림이가 취업 걱정을 해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가장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가 아닐까?

아직 효림이는 나이도 어리고, 다시 교육대학에 학사 편입시험을 보거나 다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나 대학원을 졸업해도 취업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대학교수가 되는 일은 남자보다 몇 십배 힘들며, 실제로 대학에 여자교수는 거의 없다.

효림이는 머리가 좋으니 마음을 정하면 해낼수 있을 것이다. 효림아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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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이 땅의 딸들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학생들이 교복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망포중학교 교복을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종합하고,

전문 디자이너의 자문을 받아서 완성하였다.

교장실에 완성품을 마네킹에 입혀놓고 보니 너무나 예뻤다.

여학생들이 교장실을 기웃거리고, 어떤 여학생들은 어려움도 없이

교장실에 들어와 저희들의 교복을 보고 나간다.

교장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이 조금 무례해 보이기도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여학생들의 그러한 행동이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

오히려 스스럼없이 교장실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귀여운 생각이 든다.

남학생들은 자기들의 교복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여학생 교복이 예뻤는데 딸을 두지 못한 나로서는 여학생 교복을 입혀볼 내 자식이 없으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예쁜 여자아이들의 옷이 진열되어있는 가게를 자나 칠 때 마다 나에게 딸이 있으면 사줄텐데……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젊은 시절 아이를 낳을 때는 아들을 바랬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의 일생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기르는 과정에서도 남자아이보다 조심스럽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 일에서도 불리하며, 결혼 후에도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남성보다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사에 관한 일은 대부분 여자의 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귀엽고 기르는 재미가 있는 것을 알지만 아들을 바랬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들만 둘을 두었다. 이제는 훗날 며느리를 귀여워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딸을 두지 못해서 그런지 질녀인 맹하영을 나는 특별히 예뻐한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볼수록 예쁘다. 학기 초만 되면 조카딸의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부탁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으며, 부산에 사는 당질녀도 귀여워한다. 당질녀는 이번에 중학교 영어선생님을 신규발령을 받았는데 축하의 장미꽃 바구니를 보냈다. 혜영이가 좋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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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종근 형은 갔다.

결국 종근형은 갔다.

절대 고독 속으로 갔다.

바람처럼 갔다. 그렇게 갔다.

바다를 즐겨 그렸던 종근 형!

그의 비끌린 머리에 슬픈 해풍이 인다.

혹, 운이 닿는다면 훗날 소주나 한잔 함께 기울였으면……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는 기약일지 모른다.

도대체 만난다는 것은 무엇이며 만나지 않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나 혼자일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길에서 동지는 없다.

나는 너와 함께 할 수 없으며 언제나 나는 혼자다.

그래서 종근 형은 갔다. 보고싶을 것이다.

종근 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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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용렬하기만한 저를……

○○○교장선생님 前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안중학교에 근무하다 이번에 수원의 망포중학교로

옮긴 맹기호입니다. 지난번에 재주도 없고 용렬한 저를 불러 주신 점에 대

하여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은바 있

고, 저 역시 평소에 존경하던 분이라 제의를 받고나서 매우 놀랐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중학교에서 제가 모셨던 ○○○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

함께 근무하자고 2년 전부터 말씀하셔서 이미 제가 모시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여서 교장선생님의 부르심을 받자 옵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중

학교에 자리가 나지 않아 결국 저는 지금 망포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만. 지난 날 용렬한 저를 불러주셨던 점에 대하여는 영광스럽게 생각하

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훗날 다시 모실 기회가 있으면 미력하나마 최선

을 다할 것입니다.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십시오

2003. 3. 28일

수원시 망포중학교 교감 맹기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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