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은 시인을 만났다.
1933년 생으로 우리 어머니보다 3살 아래 만 83세이다.
고은문화재단인가 하는 단체에서 고은을 따르는 문학인 3명, 수원문협에서는 7명이 참석하였다. 총11명이 만났다. 찻집의 안쪽 좁은 공간에서 등근 원탁테이블에 11명이 아주 가까이서 대화하였다.
박병두수원문인협회장, 부회장 2명(맹기호 신금자), 수원문협번역분과위원장 윤형돈, 시분과위원장 송소영, 수필분과위원장 권월자, 소설분과위원장 김용복이 참석하였다.
고은씨가 수원에 이사온지 만3년이나 되었는데 지역사회 문인들과 만난적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수원문협은 고은문학관 건립에 반대입장이다.
염태영수원시장이 수원성 내에 2천여평의 대지에 엄청난 규모로 고은 문학관을 짔겠다고 발표했을 때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입장을 천명하였다.
그러니 고은시인은 수원문협이 여러 행사 때 초청하였으나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수원문협과는 아주 껄끄러운 관계임이 틀림없다.
고은과 수원문협 집행부와 만나는 자리가 있다고 하여 그냥 차만 마시고 고은이 연설만 듣는 자리라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해 문학관 건립 반대기자회견을 하던 박병두회장이 요즈음은 옆에다가 수원문학관을 지어주면 찬성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여
내가 참석하면 반드시 문학관 건립 반대이야기를 하게 되면 박병두회장이 곤란할 것이니 나는 불참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부드럽게 이야기해주시고 꼭 참석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약속장소에 걸어가는 동안에도 박병두회장은 소통하려 만난 자리이니 다른 이야기는 않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못들은척 하며 지금에라도 내가 불편하면 나는 빠지겠다고 했더니 또 하고 싶으면 이야기 하세요 라고 말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하여 집행부의 일원으로 수원지역사회 문인들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결국 문협사무실로 오지 않고 약속 장소는 단오라는 문학인들이 출입하는 찻집에서 만났다. 다음에 집사람에게도 구경시켜 주고 싶은 분위기다.
우리는 미리 가서 기다렸는데 고은 시인은 정확하게 6시에 입장하였다. 고은은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노동자들과 함께한 이야기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만83세의 노인이라고 믿기 어려울정도로 건강했다 담배도 끊었고 술도 끊었다고 했다. 오래 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수원문협회장은 고은에게 자신의 저서이며 김대중의 일대기를 소설로 쓴 인동초를 선물하였다.
수원문협회장이 그런 책을 쓴것을 보고 고은은 놀라워했다. 수원문협에서 간 사람들 중 일부는 고은의 기쁨조라도 되는 양
젊은 시절부터 고은의 시를 읽고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은은 매우 고무되었고 좋아했다.
고은은 힘을 받았는지 장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모임이 끝나기 전 드디어 할말을 터트렸다.
고은시인의 저서가 팔을 벌려 안을 만큼 많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늘 가져온 시집을 포함하여
3권의 시집 밖에 못읽었으니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로 서두를 꺼낸 다음
들어서 아시겠지만 수원문협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어서 고은문학관을 수원에 건립하는데 반대한다고 말했고 텔레비젼과 신문에서도 여과없이 그대로 방송한것을 아실것이다.
문학은 예술 중에서도 인간의 기본적 정서를 담고 가장 지고지순한 장르인데 문학관을 짓는다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에는 40여개의 문학관이 있는데 그런 문학관을 지을 때 단 한번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이 아닌지요?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2015년 12월 수원문인협회는 긴급이사회를 열어 40명 전원이
수원에 고은문학관을 세운다는 것에 결단코 반대한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산시에서는 문동신시장이 시장입후보 공약으로 고은문학관 건립을 내세워 당선되었으며
군산시민들은 수원에 고은문학관을 뺏길 수는 없다며 군산예술의 전당 건립으로 유용성이 떨어지는 군산시민회관을 리모델링하여 고은문확관을 유치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고은 시인님이 수원문인협회가 고은 문학관 건립에 반대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이러한 자리에 나와주신 점은 크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고은에게 말한 내용이다.
이말에 대해 고은은 짧게 대답했다.
앞으로 내 앞에서 고은문학관 건립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은 때리겠다.
그리고는 기념사진 촬영이 있었다. 나는 화장실이 급하다고 그냥 나왔다.
사실은 함께 사진 찍기 실었다. 지난 달 어느 시인 출판기념회에 갔더니 시집 앞부분에 고은과 함께 찍은 사진을 실은 것을 보고 심사가 뒤틀렸다.
화장실 갔다가 다시 테이불로 들어가는데 나가는 고은과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사진도 같이 못찍었다고 하며 손을 내밀어 할 수 없이 악수하였다.
손은 가늘고 길어 마치 일하지 않은 여성의 손처럼 느껴졌다.
나간 다음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당신하고 왜 사진을 찍어!
다음 내용은 고은에게 하고 싶었는데
고은의 다음 약속이 있어 자리가 폐회되었고 사진을 찍자고 하여 나는 함께 찍기 싫어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말을 못했다.
그러나 말하려고 준비한 말이어서 잊기 전에 여기에 실어둔다.
작년에 군산시는 고은 모친의 생가를 2억에 매입 완료하여 고은문학관 건립에 관한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문학관은 작가의 출생지에 있습니다. 군산시에는 고은문학관 건립에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군산에 세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부분의 문학관은 작가의 출생지에 있습니다. 군산으로 가시지요!!!!!!
수원문협에서 토론 할 때는 고은이 걸어온
정치적 경향에 대하여 말했지만
어제 고은 앞에서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주장 등 민감한 그의 주장
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견해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고령의 노인이고 또 수원문협 임원진과 대화하겠다고 몸소 찾아온 사람이어서 말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윗사진에는 내가 없고 이 사진 모니터 옆에서 고은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핸드폰 만지고 있는 아주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맹기호다.
어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해서 내가 나오지 않도록 얼굴을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