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열차를 타고 2

왠일인지 앞페이지에서 봉정사 대웅전 사진이 올라가지 않는다.


전날 일기의 수정 보턴을 눌러도 수정모드로 들어가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여기에 봉정사 대웅전을 올린다.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여겨지는 것으로서 남성다운 기상이 넘쳐흐르는 건물이다.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성과라면 바로 봉정사 대웅전을 본 것이다.


나는 사실 한 번도 보지못한 국보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인 봉정사 극락전을


보러 간 것인데 봉정사 극락전은 수덕사 대웅전에 비할 바가 못되었고 수리한 흔적이 너무 많아


실망이 컷다. 그런데 오히려 그 옆에 있는 조선 초기의 건축인 봉정사 대웅전이 나를 감동시킨 것이다.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서 본 팔작지붕 건물 중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비록 국보는 아니고 조선시대 건립된 보물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맞배지붕을 좋아하고 팔작지붕을 별것 아닌것으로 여겼던


나의 눈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만한 물건이었다. 정말 물건이었다! 


 


팔작지붕은 대개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기 쉬운데


이것은 달랐다. 무엇이 원인일까 생각해보았다


 


답은 처마 밑의 공포에 있었다.


 


처마 밑의 공포는 대부분 비상하는 날렵한 모양이 많은데


여기는 약간 두껍고 부드러운 모양이었다.


날카롭게 찌르는 공포가 아니고 모든 선이 네모지면서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 장중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내부 법당도 들어가 보았는데 내부로 설치된 공포도 밖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묵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공포가 전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꽉차있는 것이 보였다.


최근 본 것 중에서 역시 보물인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팔작지붕이 여성스럽다면


여기 봉정사 대웅전은 넓은 남성 가슴의 넉넉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경상북도 안동 봉정사 대웅전 전경 보물 제 55호 >


 



 


 


야후 이미지에서 봉정사 대웅전 공포를 찍은 사진을 발견하였다. 야호!


대웅전 내부에 있는 공포를 찍은 것이다. 누군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촬영했으리라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면이 날카롭지 않고 네모지며,


네모진 면은  각을 둥글게 처리하여 부드러운 맛이 흐른다.


내부에도 외부의 공포와 같은 모양의 것이 달렸다.


사진에서는 잘 느끼기 어려운데 실제로 보면 공포의 굵기가 대단하여 그 장중한 기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안동이 이육사의 고향이었던가?


안동을 지나는 길에  이육사 시비가 있어서 한장 찍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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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열차를 타고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주일 연휴에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3명이 갔다왔다.


열차를 타고 버스에 연계하여 다니는 여행이어서 아주 좋았다.


보고 싶던 것을 모두 보았다.


 


소수서원


하회마을


부석사


봉정사 를 구경하였다.


 


 


<소수서원에 있는 퇴계의 글>


여러사람의 글을 찍었는데 그 중 퇴계을 글만 올린다.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고려시대의 목조건축 중에서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이 제일 오래된 목조건축물인데


무량수전은 이상하게도 팔작지붕이다. 나머지 두개는 맞배지붕인데…….너무 많이 수리되어있었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기둥을 자세히 보니 역시 수리한 흔직이 역력하였다.


팔작지붕은 다포식 건물이 많은데 그나마 공포가 기둥에만 있는 주심포 건물인 것이 나를 위로하였다.


주심포 건물이좋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개인적으로 주심포 건물을 좋아한다.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건축물 중에서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이 최고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석사 무량수전 밑 누각>



 


 


<부석사 석등 국보 제 17호>


정말 단순한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호화롭기 그지없는  석등이다. 첫눈에 국보급임을 알아보았다.


기단 위에 8방향으로 거북머리를 달았고 무엇보다도 석등 윗부분의 6면에 보살상을 조각한 것이 뛰어나다.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을 옆으로 찍어보았다-엔터시스시스템>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을 옆으로 찍어보니 먼 쪽 기둥은 정말 배불뚝이다.


 



 


 


<국보제 19호 부석사 조사당>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아한 맞배지붕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 15호>


사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봉정사 극락전을 보는 것이었다.


고건축에 관심이 많은 내가 이상하게도 봉정사 극락전은 볼 기회가 없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실망이 컷다. 기둥은 모두 수리 되어 있었고……전체넉으로 단아하고 간결한 멋 이외에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였다. 그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건축물 중 하나라는것…..



 


<안동 하회마을>


처음 가보았는데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별신굿을 보았는데 코메디였다. 탈춤이 항상 그렇지만……




 


 


 


<봉정사 대웅전 보물 제 55호>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성과라면 바로 봉정사 대웅전을 본 것이다.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서 본 팔작지붕 건물 중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비록 국보는 아니고 조선시대 건립된 보물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맞배지붕을 좋아하고 팔작지붕을 별것 아닌것으로 여겼던


나의 눈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만한 물건이었다. 정말 물건이었다! 


 


팔작지붕은 대개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기 쉬운데


 


이것은 달랐다. 무엇이 원인일까 생각해보았다


 


답은 처마 밑의 공포에 있었다.


 


처마 밑의 공포는 대부분 비상하는 날렵한 모양이 많은데


여기는 약간 두껍고 부드러운 모양이었다.


날카롭게 찌르는 공포가 아니고 모든 선이 네모지면서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 장중하고 목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내부 법당도 들어가 보았는데 내부로 설치된 공포도 밖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묵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공포가 전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꽉차있는 것이 보였다.


최근 본 것 중에서 역시 보물인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팔작지붕이 여성스럽다면


여기 봉정사 대웅전은 넓은 남성 가슴의 넉넉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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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Kim 지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할 때가 어제 같은데


세상에!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


키가 173cm로 자랐다


 


늘씬한 키가 빛나기도 하거니와


어린 학생의 눈빛에 깊은 내공이 보였다.


 


얼굴의 윤곽을 자세히 보니


대리석으로 깍은듯 정확한 윤곽이 조각처럼 예쁘다.


아빠 엄마가 귀하게 기른 표가 나는 아이였다.


 


나를 알아보기나 했을까?


아마 잘 몰랐을 것이다.


나도 간신히 알아보았다.


사실 이름이 없었다면 못알아보았을 것이다.


 


아주 어렷을 적에


내가 동료 와 함께 댁에 갔더니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 아이가 그릇을 들고 주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할머니 시중을 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귀여워 했던지…… 


 


 


광성보 답사 중 양재길장학관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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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여러 걱정이 있지만 모여서 좋았다!


 



 



 




그저께 큰 아들이 귀국하였다.


 


1) 아들은 금년에 징병검사를 받았으니 군에 가야하고


2) 컬럼비아대학교 경영과학대학원에 합격하여 입학 계약금만 낸 상태이고(500$)


3) 골드만삭스 런던지점에 인턴사원으로 6월21일부터 출근하도록 되어있고


4) IBM 캐나다지사에 정규사원으로 응시하여 9월부터 출근하라는 최종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어떠한 결정을 하든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한다…….


 


10월에 군에 입대해야하지만


대학원에 낙방하고 나서


(스탠포드, 코넬,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합격하면 연기되는데 전공을 바꾸는 바람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컬럼비아대학은 경영과학으로 합격이 되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해외취업을 한 경우에 1년간 연기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서


급하게 몇 군데 회사에 시험을 본 것이다.


 


아들은 내년에 다시 금융공학에 응시하려한다. 금년 1년 취업 경험이 금융공학과에 합격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카네기멜론, 컬럼비아,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코넬, 스탠포드, 토론토, 등의 대학원 금융공학과에 모두 낙방하였는데 1년 취업경험 후 내년에 합격시켜줄지 의문이다. 세월은 자꾸 가고……걱정이다. 케임브리지대학원에서는 차점으로 불합격했으니 내년에 더욱 정진하라는 답이 왔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오늘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하는 도중 아주 좋은 생각을 하였다.


석영이가 시험기간이어서 형이 귀국하였는데도 집에 오지 못하여 가족이 모이지 못했는데


우리가 석영이 기숙사로 찾아가면 될 것을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토론회 도중 로비에 나와 식구들에게 급하게 연락하였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퇴근 길에 서울에 친구 만나러 간 아산이와 용산에서 만나서


삼육대학 기숙사로 오라고……


나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직접 차를 몰고 삼육대학 기숙사로 가고…..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 4명은 외대 앞에 있는 안동찜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언젠였든가? 한번 온 기억이 있는 학교이다.


학부 졸업 당시 붕우 남기완은 만학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석졸업이어서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하긴 학생시절에도 EBS교육방송에


허아무개(허세욱?) 교수와 함께 출연하여


일찍부터 이름을 날린 유명한 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남교수와 수원에서 찜닭을 먹은 기억이 있다.


 


큰 아들 일로 여러 가지 걱정은 많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였다. 아주 좋았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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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충남서산집 꽃게탕!



 



오늘 양재길 장학관님과 함께


박인희 (전)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장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하였다.


내가 젊은 시절 연단 아래서 그 분의 강연을


감명 깊게 듣곤 하였다. 박인희 원장님은 경기교육의 거목이셨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잘 하시고 파워포인트로 강의록을 작성하신다.


오늘 호국교육원 프로그램의 특강강사로 모셨다. 내가 일선학교 교장으로 나가도 특강강사로 모실분이다.




영문학 전공이면서도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강연을


오랜 세월동안 경기도의 수많은 교원들이 숨죽이며 듣곤 하였다.


 


성주중학교장, 이천중학교장, 경기도교육청장학사, 장학담당장학관, 부천교육장, 동두천교육장,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장, 율곡연수원장, 경기도교육청교육국장 등


경기교육의 중요한 자리를 모두 거친 경기교육의 원로이다.




이런 분과 점심을 함께하다니


내가 교육전문직이 되었기에 가능한,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가장자리에 계신 키가 큰 분은 내가 모시고 있는


양재길 장학관님이다.


90년대 초반에 교과연구회 일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는데


호국교육원에서 또 만나게 되었으니 사람의 일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94년, 양재길 장학관님이 수석으로 장학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선부중학교 홍창후 교장님이 중앙중학교에 다녀오시더니


당시 교무부장이었던 나에게


중앙중학교 양재길 부장님은 교육학 책 1000권을 읽었다고 하던데


당신도 본받아서 공부좀하라고 조언하시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은 양재길 장학관님이 교육학 관련 서적을 3000권이나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 내공이 얼마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양재길 장학관님의 지적 권위는 경기도는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양재길장학관님은 요즈음에도 사무실에서 인식론에 관계된 책을 열심히 보고 계신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결국 오늘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존경하는 두 분을 모시고 점심을 먹은 것이다.


양재길장학관님은 박인희 원장님을 사표로서 존경하였고 자신의 모델이었다고 겸손해 하셨지만


두분이야말로 내공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기교육의 최고 이론가임에 틀림없다.


점심을 먹고 나서 식당 앞에서 셋이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는 한마디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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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엄마가 뿔났다

나는 주 중에는 텔레비젼을 보지 않는다.


교육원의 텔레비젼은 총무부에 반납한지 오래다.


 


그러나 주말에 집에 오면 본다. 연속극도 본다.


엄마가 뿔났다, 형사 박정금을 보는데


누군가 세종대왕을 보라고 권하여


다음 주 부터는 세종을 볼까한다.


엄마가 뿔났다는


서민 가족이 오손 도손 살아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오늘 엄마가 뿔났다를 보는데


신랑이 조각 케익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케익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림질해야한다는 아내를 달래서


산책을 겸하여 크라운베이커리에 가서 케익을 먹었다.


 


초코케익 두조각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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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


 


내가 과연 올바른 스승의 길을 걸었는지


자신하기 어렵다.


 


돌이켜 보면


나는 실력있는 교사도 아니었고


아이들을 감동시킬 만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혹, 마음 착하고 성실한 것이


교사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면


그런 점은 조금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교사의 자격이라고 할 수 있으랴……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허접하고 부끄럽다.


 


그런데 어제 스승의 날


제자로 부터 과분한 꽃을 받았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남은 잔여 기간 동안


더 읽고 배워 내 지식의 크기를 늘리고 마음을 닦는 길만이


지난 날을 속죄하는 길이다.


 


< 자료>


 


스승의 날은 1958년 
당시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JRC.현RCY)
단원들은 병중에있는
전.현직교사들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했다

이런선행을 확산시키기 위해
RCY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21일을 충남도내
‘은사의 날’로 정했다.
1964년 RCY 협의회는
명칭을 ‘스승의 날’로,
날짜는 5월26일로 바꿨다.
1965년4월에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바꿨다.

1982년 5월 국가 지정 기념일로 정식 선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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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아! 신비로운 5월 14일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되는 날 새끼뻐꾸기에게


진짜 어미의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뻐꾹 뻐꾹 소리 내어 우는데


그 날이 5월 둘째 주말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개 5월 14일경이 된다.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에 어미의 소리를 들려주고


기억하게 한 다음 나중에 자라면 데리고 떠난다는 것이다.


 


이상은 같이 근무하는 동료 고성봉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고선생님은 인품도 훌륭하거니와


쌓인 내공도 대단한 분이다.


고선생님은 입으로 뻐꾸기 소리를 흉내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똑같은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을 감고 들으면 뻐꾸기 소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언젠가 고선생님이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뻐꾸기가 눈앞에 나타난 적도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어제 아침 교육원 뜰을 걷고 있는데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날짜를 짚어보니 세상에 5월14일이 아닌가!


그렇다! 부화된 새끼에게 진짜 어미가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구나!


붉은눈이오목눈이 둥지에서 오늘 부화되었구나!


정말 자연은 놀랍다. 고성봉 선생님에게 말하고 나서 서로 감탄하였다.




[ 관련 자료 ]


두견이목 두견이과의 새. 곽공(郭公)이라고도 한다. 전체길이 약 35㎝. 몸 윗면과 가슴은 잿빛이고, 배는 흰 바탕에 검은 가로줄무늬가 있다. 꼬리는 길며, 날개도 가늘고 길다. 날 때는 매종류와 비슷하다. 뻐꾸기라는 이름은 <뻐꾹 뻐꾹>이라 들리는 울음소리에서 유래한다. 겨울철에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서 월동한다. 한국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5월 하순부터 8월 상순이며, 이 시기에 같은 종류인 두견이나 벙어리뻐꾸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종류의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가 주로 탁란(托卵)하는 곳은 개개비류, 까치류, ·멧새류, ·할미새류 등의 둥지이다. 암컷은 각기 일정 범위의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그러한 새들의 번식상황을 돌아본다. 그리고 알을 품어줄 임시어버이새가 산란을 시작하면 알을 1개 빼내고 자기의 알을 둥지 속에 1개 낳는다. 알은 임시어버이새가 낳은 알과 색깔이나 무늬가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 크기는 조금 크다. 새끼는 보통 임시어버이새의 새끼보다 1∼3일 빨리 부화한다. 부화한 뒤에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임시어버이새의 알을 등에 하나씩 업고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 후 둥지를 독점하며 임시어버이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둥지를 떠날 때쯤 되면, 새끼는 임시어버이새보다 몇 배 크게 자라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는데, 모충(毛蟲)을 즐겨 먹는다. 둥지를 떠난 뒤에도 1개월 이상 임시어버이새의 도움을 받는다. 머리 꼭대기에 눈에 잘 띄는 흰 반점이 1∼2개 있는 것이 이 새끼의 특징이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하며, 한국에도 전역에 걸쳐 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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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 다음은 어디로 가는 거야?”


홍도 일몰


 



 



홍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오르다.



 



 


홍도 해안 유람선을 타고….



 



흑산도 정상에서


 



홍도 해안의 절경



흑산도 여객 터미널에서……



 


다른 집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여행을 갈 때 나는 여행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아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하기 때문에


나는 날짜만 정해주면 된다.


그 점이 정말로 편하다. 행복하기까지 하다.


세상에 이처럼 편한 여행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날짜만 정해서 명령을 탁 내리고,


그 날이 되어서 간단히 속옷 넣고 책 몇 권 넣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2박 3일의 연휴에 홍도와 흑산도를 다녀 왔다.


홍도은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다.


300년 이상 된 동백꽃 자생지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해안의 기암 절벽이 아름다웠다.


섬의 숙박시설은 불편하였지만


해외여행의 물결 속에서 국내 관광지는 거의 쑥대밭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홍도는 활기가 넘쳐있었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봄, 여름, 가을의


3계절 동안 언제나 관광객이 넘친다고 하였다.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특별한 바가지 요금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배안에서 1000원짜리 과자를 2000원에 파는 것을 빼놓고는


커피를 비롯한 모든 음료는 1000원이었다.


이에 비하여 흑산도는 홍도보다 큰 섬이었지만


거의 볼것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가야할 섬이었다.


 




여행 계획은 아내가 다 짰다.


홍도에 가서도 아내를 쫏아 다니면서 늘 묻는다.


“여보 다음은 어디로 가는 거야? 유람선은 언제 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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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돌계단을 올라서 배치한 쌍사자석등은 전체적인 조화와 날렵한 균형으로 보아 첫눈에 국보급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본당 정면으로 오르는 돌계단이다. 비록 무너졌지만 조각의 형태로 보아 불국사의 정운교, 백운교를 조각한 솜씨에 비견될 만한 솜씨이다.


 


 



 


주춧돌만 남은 본당이다. 주춧돌도 그냥 아무 돌을 놓은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조각을 한 것이 범상한 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본당 기단부에 여러마리의 사자가 돋을 새김되어있었다. 1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자가 움직이는 듯 한 대단한 솜씨이다.


 


 


 



 


감은사 탑에서 더 발전된 형대로 가는 과정의 탑임을 알수 있다.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가 신라 시대의 수준급 탑이다.


2중 기단에 3층의 지붕돌을 올렸는데 처마선의 경쾌함이 잘 나타나 있다. 



 


 


 



 


탑의 한 층 아래 마당에 있는 전체적인 절터의 맨 아래에 있는 구조물인데 이것은 그냥 석축이 아니고 아마도


이 위에 나무 구조물이 있었을 것이다. 쌓은 솜씨가 범상하지 않아 셔터를 눌렀다.
 


 



본당의 옆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사진의 순서가 바뀌었다. 3번째로 올려야하는데…..하여튼 솜씨가 대단하다.



 


 





 위에 언급하여 더 설명하지 않겠다.


 



 


본 당 뒤쪽의 석축이다. 산비탈을 까서 절터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본당 뒤 쪽에 이런 석축을 쌓게 된다.


뒤 쪽의 석축도 이렇게 정교하게 쌓은것을 보면 이 절은 보통 절이 아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즉 경남 합천 황매산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 고찰 영암사지에 들렸다.


 


한마디로 감동적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쌍사자석등과 3층석탑은 국보급임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한국 고대문화를 보려면 영암사지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암사지는 복원된 흔적없이 그대로 둔 것이 나를 감동시켰다.


우리가 앙코르와트에 가서 감동을 받는 것은 인공을 가미시키지 않고


무너진 상태를 그대로 보는 즐거움인데


바로 여기에서 나는 그런 감동을 느꼈다.


 


세미나를 마치고 들린 황매산을 하산 하다가 우연히 들린 것인데 큰 감동을 받았다.


석등과 탑은 보물이었으나 법주사 석등이 없었다면 당연히 국보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바빠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것이 안타깝다.


 


어떤 연유에서 인지


목조로 된 부분은 철처히 파괴 되고


돌로 만든 부분은 보존된 것이다.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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