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박경리


경기문학포럼에서 원주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왔다.

박경리!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을 나타내는 한국의 대표 문학가이다.

박경리 문학관은 비교적 단촐하였다. 치악산이 바라다 보이는 조용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박경리는 지역 사단장의 관사로 쓰였던 건물을 사서 만년을 보냈다. 식구가 많치 않는 사람이 살기에는 꽤 큰 집이었다.

해설사는 놀랍게도 박경리가 살던 집 안으로 우리를 안내하였고 거실 주방 그리고 집필하던 방까지 들어가 보게하였다.

나는 박경리의 집필실 탁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 호사를 누렸다.

박경리가 살기에는 비교적 넓은 집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기념관으로는 넓지 않았다.

박경리가 주는 문학적 넓이를 생각하면 사후에 더 크게 집을 넓혀 방문객을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시던 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문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정말 좋았다. 크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좋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요즈음 전국 여러곳을 다녀보면 지자체 마다 기념관 같은 시설을 너무 크게 확장하여 고유의 의미를 손상키는 현장을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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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개업


5년이나 남의 집 종살이를 하던 막내가 내 품을 떠났다.

자금이 부족하여 도시에서 개업하지 못하고 지방 소도시로 갔다.

개업식 하는데 오늘 어머니 상태가 좋으시고 손자 가게를 보시겠다고 하여 모시고 다녀왔다.

첫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라며 신장개업에 맞는 몇가지 도움말을 했더니

돈이 부족해서 바꾸지 못했다고 알아서 하겠다며 짜증을 낸다.

그래 알아서 해라. 괜히 말했다.

12:50에 도착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다.

경리아가씨가 민망했는지 농번기라 손님이 없어요 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아니 모내기 끝난지가 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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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불


어머니의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오늘 쇠고기 등심을 넉넉히 샀다.

마당에 자리를 깔고 숫불을 피웠다.

아주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가 49년 전에 지으신 집에서 여지껏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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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밥하기 귀찮는 날이 있다. 아침 먹고 얼마되지 않아 점심 때가 되면 더 그런 경우가 있다.

도시에 살면 가까이에 식당이 많아서 좋다. 몇 발만 떼면 식당이 나래비로 서있다.

우리 동네에 새로 우동과 김밥을 파는 집이 생겼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우리 셋은 마음이 동했다. 가자! 개업집으로

하여 오늘 점심에 새로 개업한 식당을 갔다.

김밥, 잔치국수, 콩국수를 시켰다.


가끔은 김밥집의 가벼운 점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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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런던 윈스톤 처칠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처칠은 영국의 제42·44대 총리. 자유당 내각에서 통상장관·식민장관·해군장관 등을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을 맡았고, 전후 정계에 입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해군장관에 임명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 1945년 8월 포츠담 회담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53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을 지도했던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군인이자 정치인이었으며, 작가이고 역사학자이고 예술가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갖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의 동상은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매우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헤비스모커였는데 90세까지 살았다.

아마도 지금 세상에서 살았다면

합리적인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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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쏘렌토


내가 즐겨 부르는 이탈리아 노래 중 돌아오라 쏘렌토로가 있다.

고음이 몇 군데 있지만 내가 감당할 만한 고음이라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

나는 쏘렌토를 보지도 못하고 맨날 노래만 부른다.

이번 여행에서 이탈리아의 쏘렌토 항구를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항구였다! 그러니 돌아오라고 하지!!!


‘돌아오라 소렌토로’ 덕분에 소렌토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지중해 바닷가의 절벽 위에 세워진 소렌토는 아말피 해안 도시를 여행하는 데 거점이 되는 도시이며, 카프리 섬으로 가는 페리도 자주 있는 편이다.

소렌토는 아름다운 해안 전망을 볼 수 있어서 사랑을 받고 있는데, 특히 세계3대 미항이라고 할 수 있는 나폴리의 항구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도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나폴리항은 깨끗하지 않았다. 쏘렌토가 나폴리보다 더 아름다웠다.



참고자료 :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는 이탈리아 음악가 에르네스토 데 커티스가 작곡, 시인이자 화가인 그 형제 지암바티스타 데 커티스가 작사한 나폴리의 노래다.

1905년 공식적으로 저작권 등록되었다. 그 이후로 〈오솔레미오〉, 〈푸니쿨리, 푸니쿨라〉, 〈산타루치아〉와 더불어 고전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프랭크 시나트라, 베니아미노 질리, 엘비스 프레슬리, 딘 마틴, 제리 베일, 엔리코 카루소,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루제로 라이몬디, 미트 로프, 마리오 란자, 프랑코 코렐리, 로버티노 로레티, 주세페 디 스테파노, 무슬림 마고마예브, 프란세스코 알바네세, 제리 아드리아니, 호베르투 카를루스,

알피 보, 애나 칼비, 카렐 고트, 노튼 버팔로, 조지 카후모쿠 2세, 세르지오 프랜치, 빌리 코널리에 이르는 다양한 공연자들이 불렀다.

클로드 에이블링이 〈Come Back to Sorrento〉 제하에 영어 가사로 번역했다. 독 포머스와 모트 셔먼이 재편곡 및 재작사한 것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Surrend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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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12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아들이 미국에 유학하고 정착하는 바람에 미국은 여러번 다녔지만

유럽은 이번이 첫발을 디딘것이었다. 명목은 지난 달 정년퇴직한 아내를 위한 여행이었다.

영국, 프랑스, 모나코, 스위스, 이탈리아 등 5개 나라를 돌며 여행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이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이탈리아의 로마였다. 콜롯세움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건축은 장엄함 바로 그것이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앉아서 위로 사진을 찍으면 피사체가 길게 느껴진다. 짧은 키의 내가 장신으로 보인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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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th




어머니 올해 90세가 되셨습니다.

마당에 모란이 피었어요.

앞으로 모란이 핀것을 10번만 더 보시도록 해주셔요.

그러면 100살이 됩니다.

그 때까지 건강하게 계셔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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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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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병 갑질로 구속되었다가 무죄 선고받은 박찬주대장이 후배군인들에게 전역사를 띄웠다..

박찬주대장은 역사적으로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전쟁은 왔다며 정치가들이 상대를 믿더라도 군인은 절대 믿지 말라고 했다.

정권이 무너지면 다른 정당이 정권을 인수하면 되지만 나라가 무너지면 끝이라고 했다.

군은 언제나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굳건하게 국가 방위태세를 유지하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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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멈추지 않는다!



원래 남기완교수와 함께 출전하기로 했었는데 남교수가 중도에서 가을에 뛰자고 취소하라는 제의가 왔다.

나는 나누어주는 운동복만 받아도 3만원 값은 되는거 같아서 취소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최소 3개월은 연습을 하고 뛰어야되는데 이번에는 전혀 연습 없이 그냥 참가하였다.

뛴다는 결심도 이틀 전에 하였다. 이번에 뛰게 된 것은 내가 과연 연습없이 10km를 달릴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뛴것이다.


혼자 뛰다보니 우선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처음부터 빨리 뛰거나 기록을 단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냥 즐긴다는 기분으로 아주 천천히 뛰었다.

처음 출발해서 3km쯤 갈 때까지는 숨이 차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5km 쯤 가서는  힘도 별로 들지 않고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5km를 지나면서 오른쪽 무릎이 새끈 거렸다. 새끈새끈 아파왔다. 약간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뛰었더니 6km를 지나면서는 무릎이 아픈 줄도 몰랐다. 아니 아픈 것이 가신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앞만보고 천천히 뛰었다. 가로수는 물이 올라있었고 벚꽃은 모두 졌다.

도로변 화단에 예쁘게 핀 튜울립은 아주 깔깔대며 웃어주어 뛰는 이의  힘을 덜어주었다.


뛰는 사람 중에는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무리 언덕길이라 해도 절대 쉬는 법이 없다.

속도가 느릴지언정 절대 쉬지 않는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9km지점에서 오른쪽 고관절 윗쪽이 아파왔다.

허리와 만나는 윗 고관절 부위였다.

과거에도 이런 증세가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

내가 마라톤 주로에서 아주 드물게 고관절이 아픈 기억이 있다.

아파도 참으면서 달렸다. 큰 아픔은 아니었기에 참을만 했다.

결승선이 보일 때 약간 스퍼트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달리던 속도로 그냥 들어왔다.

경기일보가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을 보니 정말 리얼하게 나왔다.ㅠㅠ~

들어오면서 기록을 보고 놀랐다.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뛰었는데 기록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달렸는데 기록은 힘들게 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

금년 기록 : 1시간 08분 00초(연습없이 뜀)

작년 기록 : 1시간 05분 07초(연습하고 뜀)

정말 모를일이다. 수영을 해서 몸이 단련되었는가?

수영과 육상은 사용하는 근육이 조금 다른데….정말 이상하다.

가을에는 남교수와 함께 뛰기로 했다.. 그 때도 이번처럼 아주 천천히 달려야겠다.

천천히 달리니 뛰고 나서 몸이 아프지도 않고 후유증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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