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경기교육자원봉사회가 주최하고 보훈원에서 후원하는 행사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 400명 정도가 모였다. 나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는데 할 때마다 문장이 정말 좋아서 스스로 감명받는다. 다른 해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는데 행사의 내용은 매우 좋았다.
![실내_메인[1].jpg](https://anbindr.com/wp-content/uploads/xe_files/60/006/060/%EC%8B%A4%EB%82%B4_%EB%A9%94%EC%9D%B8%5B1%5D.jpg)
3일 전부터
그동안 버려두었던 실내자전거를 30분씩 타고 있다.
오늘은 시간을 늘려 45분 동안 자전거를 탔다.
나의 문제인 무릅을 회복하기 위해 다치기 전에 60분씩 안방에서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탔었는데
자전거 사고 이후 중단하였다가 다시 시작하였다.
여러가지 자료를 보아도 자전거타기가 대퇴사두근을 강화시키는데 적합한 운동이다.
이제는 계단오르기와 자전거타기를 병행할것이다.
< 자료를 모아보았다>
자전거 타기는 달리기, 수영과 같은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면서 전신 운동이다.
특히 하체, 그 중에서도 허벅지 앞쪽에 위치한 대퇴사두근이라는 근육을 집중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
이 근육은 무릎을 펴는 역할을 하고 무릎의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전거 타기는 무릎 관절염, 십자인대파열 같은 무릎 질환에 좋은 운동이다.
물론 달리기나 걷기도 좋은 운동이지만,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걷는 운동은 관절에 부담을 준다.
하지만 자전거 운동은 체중부하가 안 되기 때문에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도 큰 무리 없이 운동이 가능하다.
또한 자전거 타기는심폐기능이 향상되고 걷기나 달리기보다 먼 거리를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퇴사두근(무릎 바로 위 근육)은 대퇴직근, 내측광근, 외측광근, 중간광근의 4가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대퇴직근은 장골(엉덩뼈)에서 시작하고 나머지 근육들은 대퇴골에서 시작한다.
각기 다른 곳에서 시작한 4가지 근육이 모여서 힘줄을 형성하고 슬개골을 감싸고 지나 아래쪽 다리의 경골에 붙는다.
따라서 무릎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근육이며, 골반과 허리의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대퇴사두근 강화운동을 하면 무릎을 보호할 뿐 아니라 허리, 골반의 체형과 허벅지 라인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미용적인 효과까지 함께 얻을 수 있다.
등산이나 마라톤 등 체중 부하가 무릎에 가해지는 운동을 많이 하다보면 무릎 연골에 많은 손상이 가해져서 퇴행성 관절염이 생기게 된다.
큰 통증을 유발하는 퇴행성 관절염에는 무릎 주위의 근육을 강화시켜 무릎에 가해지는 부하를 줄여주는 근육강화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대퇴사두근을 강화하면 무릎 연골 보호에 좋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통증으로 인해 움직임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근육이 더욱 약화되어 무릎 연골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면서 악순환을 벗어나기 힘들다.
대퇴사두근 강화 스트레칭이나 자전거 타기 등 체중 부하가 가해지지 않으면서 대퇴사두근을 강화시킬 수 있는 운동이 바람직하다.
자전거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운동 효과도 걷기보다 2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무엇보다도 바른 자세가 관건이다.
잘못된 자세는 급성요통과 무릎 통증을 부를 수 있다. 먼저, 자신의 몸에 맞는 자전거를 선택하고, 안장과 핸들바 등을 자신의 체구에 맞도록 조절한다.
안장은 걸터앉아 다리를 쭉 뻗었을 때 양 발이 지면에 닿을 정도가 좋고, 핸들은 팔꿈치를 가볍게 굽혔을 때 잡히는 정도가 적당하다.
자전거를 탈 때는 윗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무릎은 핸들과 닿지 않도록 한다. 또한 옆에서 봤을 때 발 앞쪽과 무릎이 일직선이 되면 좋다.
다만, 허리를 너무 숙이거나 꼿꼿이 세우면 요통이 발생할 수 있고, 무릎을 과도하게 굽히면 다리 통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지속적인 운동은 다리와 허리 근육을 동시에 강화시켜 통증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또한 팔과 배 등에도 많은 운동 효과가 있다.
관절이 좋지 않을 경우 허벅지 앞쪽 근육인 대퇴사두근을 강화시켜주면 좋다.
대퇴사두근은 몸무게를 지탱하고 발이 땅에 닿을 때 충격을 흡수하며 무릎 뼈가 항상 일정한 위치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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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어머니를 모시고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나도 받고 어머니도 함께 받으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서 정형외과 옆 건물 파파이스에 갔다.
감자튀김과 치킨을 시켰는데 어머니는 감자튀김을 조금 드시고 치킨은 거의 드시지 않으셨다.
이런 집은 처음 오신다고 하셨다. 내가 무심하였다.
동네에 패스트푸드점이 지천인데 처음 오셨다니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하긴 여기 음식을 먹어봐야 수명을 단축한다는 통계자료도 있으니 모시고 오지 않은 것이 더 잘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어머니는 치킨이 느끼하다며 거의 드시지 않으셔서 내가 거의 다 먹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어머니는 9남매 중에서 4째인데 9명 중에 제일 키도 작고, 힘도 없으며 몸도 부실하게 자랐는데 이렇게 혼자 오래 살아남을 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내 기억에 어머니는 평생 병객이셨다. 지금도 아프시지만 젊은 시절에도 아프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저분이 돌아가시면 내가 어린 동생들과 어떻게 밥을 해먹고 사나! 이런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금년 87세시다. 9남매 중에 밑으로 5동생도 모두가고 이제 혼자 남으셨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붕우 전학수의 모친과 동갑이신데 학수어머니께서는 벌써 가셨다.
내 어머니와 학수어머니와는 아시는 사이고 약간의 친분도 있으셨다.
학수어머니께서 편찮으실 때 문병하지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어찌하여 우물우물하는사이에 기회를 잡지못했다.
집에서 계실 때는 무분별하게 진통제를 드셨는데
요양원에 계시면서 약을 남용하지 않아 더 좋아지셨다고 하여
잘 계신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줄 몰랐다. 내 잘못이다.
역시 붕우 남기완교수의 모친께서는
우리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감사하게도 생존해계시다.
남교수 모친은 신앙을 갖고 계셔서 그런지 아주 밝으시고 정신도 좋으시다.
언제 한번 찾아뵈어야하는데 남교수가 틈을 내주지않는다.
함께가자해도 나에게 알리지않고 혼자다니는 모양이다.
다음에 만나면 같이 찾아뵙자고 단단히 부탁해야겠다.
인명은 재천이라하였던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운동많이 한다고, 건강 열심히 챙긴다고 오래사는 것이 아니다.
생전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고, 그저 조금씩 집안 일만 하셨는데 부실하고 약한 몸으로 오늘까지 살아계시다.
학교 문턱에도 안가보셨는데 총명하기 까지 하시다. 동료 채찬석교장 모친은 치매로 돈을 모르신다.
용돈을 드려도 관심이 없으시다고 채교장이 나에게 한탄을 했다. 날짜도 모르시고 연속극도 보지 않으신다고 했다.
어머니가 어제는 경노당에 친구가 30명이 있는데 해장국을 내고 싶으시단다.
6000원씩 30명이면 삼육십팔! 18만원이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놀랐다. 구구단은 어떻게 아셨을까?
저녁 식탁에서 갑자기 일어나시면서 월계수양복점 연속극 봐야된다고 안방에 들어가시니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도 아들과 며느리의 퇴근시간에 맞춰 된장찌게를 끓여놓으시고, 손자의 입맛에 맛는 찬거리를 사기 위해 하루도 시장에 가시지 않는 날이 없다
어머니! 부디 앞으로 13년만 더 사시어 꼭 100세 까지만 살아주셔요^-^ 하느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오늘은 일요일이다. 내가 매주 일요일은 성당에 모시고 간다.
나는 성당에 들어가지 않고 시작과 끝날 시간에 내가 자동차로 모시기만 한다. 어머니를 성당에 모시고 가는 일도 나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설날이다.
아침 차례를 지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가 얼마되지 않아 우리집 차례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슬프다.
생전에 환갑되던 갑자년에 아버지가 쓰신 병풍을 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에 쓰신 것이다.
해서와 초서의 중간 쯤인 행서체가 아닌가 한다. 명심보감을 쓰신 것인데 지금 보아도 명필이다.
남에 제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것은 잘못이라 했다.
우리집은 내가 내 마음대로 제사형식을 만들어 지낸다.
남여 모두 절을 하는 것이 특징이고 술도 모든 사람이 한잔씩 다 올린다.
내가 시작과 처음에 술을 올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한잔씩 각자 올린다.

< 맹기호, 권창훈선수 아버지>

< 교무부장, 권창훈선수 모친, 맹기호, 권창훈선수 부친, 교감>
오전에 중앙현관을 지나다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간단히 서로 목례를 하고 지나치면서 내가 그 분에게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행정실이 어디냐고 물어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교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있던 중
행정실 직원이 축구선수로 졸업한 학생의 부모님인데 자녀의 영문졸업증명서에 교장의서명을 해달라고 들어왔다.
하여 나는 졸업생 부모님으로 보이는데 들어오셔서 차 한잔 하고 가시라고 내 방으로 불렀다.
자리에 앉으면서 하는 말이 아들이 권창훈 선수라는 것이다!
세상에 그 유명한 권창훈선수!
매탄고등학교 축구부가 창단 9년 동안에 배출한 가장 걸출한 스타! 권창훈선수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밖에 모친도 차에 대기중이라 하여 들어오시게 했다. 모두 모여 차를 한잔씩 대접하고
교무실에 있는 교감과 교무부장을 불러 기념 사진을 찍었다.
권창훈선수는 올림픽대표팀, 국가대표팀에 모두 소속되어 있고
삼성블루윙스의 공격수로 있다. 몸이 크지 않은데도 번개처럼 빠르고 슛감각이 천재적이다.
이번에 프랑스 프로팀으로 이적하는데 영문 졸업증명서가 필요하여 학교를 방문한 것이었다.
프랑스 디종팀은 1부리그 소속팀이며 권창훈의 이적료는 15억으로 결정되었다.
모교를 빛내고 나라를 빛낸 권창훈선수를 칭찬하고 그를 기른 부모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지금도 부모님은 매탄고등학교 시합경기가 있는 날은 운동장에 와서 경기를 본다고 한다.
나의 환대에 대하여 권선수 부모님은 무척 고마워했다.
세상에 소홀이 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지나치려다 들어와 차 한잔 하시라고 불렀는데 세상에! 권창훈선수의 아버지였다.
나보다도 키가 작은것에 놀랐고 권선수 모친은 큰 편이었다^-^
![70519_90820_2546[1][1].jpg](https://anbindr.com/wp-content/uploads/xe_files/60/965/059/70519_90820_2546%5B1%5D%5B1%5D.jpg)
![20160811_102058[1].jpg](https://anbindr.com/wp-content/uploads/xe_files/60/965/059/20160811_102058%5B1%5D.jpg)
2016년 8월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코리아를 구한 권창훈선수 플래카드를 학교 담에 걸었다. 그날의 일상일기이다.
멕시코와 올림픽 본선 16강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90분 내내 몰렸다.
제대로된 슈팅을 날려보지도 못했다.
멕시는 과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브라질을 누르고 올림픽 우승한 전력이 있는 강력한 이번 대회 우승후보였다.
그 팀을 우리가 이겼다. 전반 슈팅수 멕시코11회, 한국1회가 보여주듯이 멕시코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축구 공이 둥글듯이 축구는 정말 모르겠다. 멕시코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기도 했다.
골대를 맞히는 팀은 진다고 했던가! 후반 32분 권창훈이 수비수 9명이 버티고 있는 골문 앞에서 혼자서 휘젓고 들어가더니 결국 혼자서 골인까지 해냈다.
권창훈 혼자서 개인기로 한국 팀을 구했다. 174cm의 크지 않은 키인데도 전광석화같이 쳐들어가며 상대 수비수를 제키는 능력은 천하제일이다.
권창훈선수에게도 모교에 걸린 플래카드를 사진 찍어서 보냈다.
오늘 새벽 권창훈은 코리아의 영웅이기에 충분하다^-^


< 겨울 이야기 >
/맹기호
반세기 전
아버지와 함께
등짐으로 지은 집
간밤 몰래
흰눈으로 쌓였다
나도 한 점 눈으로
눕고 싶다
장독 위에도
계단 위에도
소복하고
올려다 본 하늘은
파랗게 팽팽하다
아버지 오늘 집이 눈부셔요
그간 안녕하셔요?
삶 /
맹기호
58세의 김영숙씨는 매탄초등학교 4거리에서 초록불이 들어와 아무 생각 없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순간 시내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우회전하다 뒷바퀴로 김영숙씨를 타고 넘었다.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그냥 절명하였다. 나는 교차로 길 건너 대각선 방향에서 사고 순간을 보았다.
내가 어릴 적 수원 시장에 살던 철용이네는 아버지 어머니가 일만하시다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가 모두 어렵게 산다. 둘은 벌써 세상을 버렸다.
작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이 좋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억울하다고 하셨다. 그게 마지막 말씀이셨다.
92년의 정신세계가 갑자기 없어지고 그냥 무생물의 아버지만 남았다. 지금도 안방에는 아버지가 주무시던 자리가 그대로 있다.
터키 남동부 가지안테프의 결혼식장에서 10대 초반의 범인이 자살 푹탄을 터트려 44명이 숨졌다.
확인된 사망자 44명 중 22명이 14세 미만의 어린이로 밝혀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번 공격이 IS대원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숙씨가 가고, 철용이가 죽고, 아버지가 가시고, 터키에서 22명의 어린이가 갔어도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생각에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냥 사는 것이다.
김영숙씨와 철용이네와 아버지와 터키 22명의 어린이의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이 안 된다.
내 인생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왕 사는 것이라면 사회와 이웃에 도움이 되는 것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걷고, 생각하고, 시간이 가고, 만나는 것이, 그리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생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비관하거나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 나는 30년은 더 살것이다.
그러나 그 30년의 향후 시간도 그냥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겨울을 30번은 더 맞이할 것이지만 겨울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리 없을 것이다.
그냥 나는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