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인협회에서 시낭송, 시창작 강의를 하고 있는데 1박2일 연수를 가자고 하여 강원도에 다녀왔다.
팬션에 머무르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강의도 했다.
그리고 팬션 주변에 있는 풍수원 성당을 보았다. 성당은 한국에서 4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고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풍수원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또는 1803년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이다. 이후 풍수원 교우촌에서는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1866년(고종 3년, 병인년) 교회 대박해(병인박해)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프랑스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대주교가 1888년 6월 20일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출신 르메르(Le Merre)이 신부가 부임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고종 33년(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93∼1943) 신부가 부임하여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건축 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너 뛴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성당 건물은 아름다웠다. 이런 오지에 성당이 있는 것도 신기하였고 1888년 프랑스 신부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크리스트교도는 아니지만 보다 더 낮은 곳으로 임하여 복음을 전파하려는 성직자들이 정신이 새삼 존경스럽다.
풍수동 성당. 성당 유물관을 구경하고 팬션으로 돌아와 한우 불고기를 곁들인 저녁을 먹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을 보고 고마웠다. 맥주와 막걸리도 마셨다.
팬션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어 모두들 흥겹게 놀았다. 이상정 부회장의 색소폰 연주도 좋았고
한미숙 시인의 신랑은 성격이 정말 좋아보였다. 사회적 친화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노래실력이 대단하였다.
식사와 노래를 끝내고 나서 문학 연수에 들어갔다.
나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이승하교수가 뽑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시를 해설과 곁들여 읽으면서
시 창작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금년에 경기수필 작품상을 받는 나의 수필 ‘겨울이야기’를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팬션 주변 산길 산책으로 5000보 걸었는데 이상정 수원문협 부회장님이 동행하였다.
팬션에서 아침 밥을 먹었다. 양평에서 제일 좋은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셨고 돌아오는 길에 다산 정약용 생가에 들렸다.
잠자리도 괜찮았고 여러 끼 좋은 음식을 대접받았다.
고맙고 감사한 연수였다.
집에 와서 씻고 무게를 재보니 너무 잘 먹어서 체중이 늘었다. ㅠㅠ~


성당의 뒷면도 아름다웠다. 110년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짓다니 놀라웠다.
나는 제대로 된 내 집을 지어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 한심하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