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한우를 특화하여 최상의 품질로….

토마토 농사를 평생 지어온


붕우 전학수가 한우사육으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큰 결심을 한 것이다.어쩌면 모험일 수도 있다.


사실 그는 기업규모로 토마토를 재배한 성공한 농사군이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 토마토 농사가 힘에 겹기 때문에 축산으로 전환한것이다.


 


학수는 사실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란 손자로, 그의 조모님은 학수님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 그가 결혼 후 도시 직장생활을 때려치고 시골에 와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다고 할때


다를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성공한 농삿군이 되었다.


우수 영농인으로 소개되어 표창도 받고, 부상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으며, 텔레비젼에도 나왔다.


 


그러나 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시점에서


한우 사육을 생업으로 시작하고


많은 자본을 투자한 것은 분명 역으로 가는 것이다.


 


한우를 특화하여 최상의 품질로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축산의 규모도 아주 컷다. 소는 아주 쾌적한 시설에서 먹이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자연과 같은 최적의 환경에서 소를 길러 최상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전환이 꼭 성공하길 간절이 기원한다.


 


사업하는 송기원,


중국어과 교수 남기완,


나 이렇게 셋이서


 


친구 전학수의 축사를 방문하였다.


학수는 축산에 빠졌있었고, 아주 열심이었다.


그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이 장점이다.


한우 사육 여건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나라의 한우사육 실태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내가 졸립다고하자 송기원이 내차를 몰고 갔는데


천안에 도착하자 마자 힘들다고 차안에서 누워 잠만잤다


저녁을 먹는데도 한술도 뜨지 않고 우리보고 맛있게 먹으라고하고…..


그는 참으로 도량이 넓기도 하다. 그렇게 아픈줄 알았으면 내가 운전할 것을…..


올라오는 길에는 내가 운전하고 수원까지 왔다.


 


붕우 남기완 교수는 지난 달부터 여러번 나에게 전화하여


학수가 거금을 투자하여 큰 결심을 하고 축산을 시작하는데 


한번 구경가서 축하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남교수는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이면서도


여러가지로 남을 배려하고 존중한다.


그것이 그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 소는 다 들어오지 않았다.


다 들어오면 아주 장관일 것이다.


소의 눈망울이 예쁘다!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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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딸 전시회에 가다!

노석순화백!


어쩐지 화백이란 말이 약간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아주 젊기 때문이다. 여류화가라는 표현이 맞을 법하다.


그러나 요즈음 남자, 여자 구분이 어디있는가? 그냥 화백이면 화백이지


 


그런데 그녀에게 화백이 꼭 부적당한 것도 아니다.


그녀가 올해 44살이라고 했다.


마흔넷이라면 화백이라고 불러줄만하다.


 


그런데도 화백이라고 부르기가 어색하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가 스무살 이전이었을 때 부터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그녀를 보아도 학생처럼 보이다.


 


그리고 그녀은 유별나게 체격이 좋고


옷도 젊은 층의 취향을 좋아하여 아직도 스무살 처녀들의


패션으로 꾸미고 다니니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20대 여성이다.


 


오늘 그녀가 수원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


미술관에 들렸더니 노석순 화백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미술관에 관계하는 어떤 30대 후반의 중년 여성이


나를 보더니


 


” 따님 전시회에 오셨군요!”


 


허걱!


원 세상에! 내가 10대 초반에 노석순을 낳았단 말인가?


이게 다 내가 살이 쪘기 때문이다.


살이 찌니 얼굴이 늘어지고 늙어보이지 않는가?


 


 


어쨌거나 노석순 화백은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다.


보기에도 아주 좋다.


위에 있는 추상도 아주 아름답고


요즈음 새로 시작하는 정물에도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딸과 함께(?)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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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나는 돌 쌓은 것에 관심이 많다 ^-^

엊그제 동료 두명과 함께


 


강화도 유적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유적은 대강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나는 성을 보면 돌을 쌓은 솜씨를 눈여겨 보는 버릇이 있다.


 


솜씨 좋게 쌓은 성을 보면 기분이 좋고,


 


당시 공들여 쌓은데 참여한 일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인상 깊은 몇 곳을 올려본다.


 


 



강화 읍내에 있는 강화읍의 배수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조선 숙종 때 쌓았다고 하는데 규모도 크고 홍예문의 곡선이 아름답다.


 


 



강화읍내에 조선시대에 축성된 성벽인데 요즈음에 복원한 것이다.


복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뭐냐? 돌 쌓은 솜씨가 정말 엉망이다.


 



강화 서문 바깥 쪽 벽을 촬영한 것이다. 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돌 표면의 색깔과 가운데 붉은 돌의 철이 산화된 것으로 보아 복원한 것이 아니고 원래 쌓은 성벽이 거의 틀림없다. 공들여 쌓은 표시가 난다. 여기를 보며 반가웠다.


 



계속 강화 서문 외벽 모습이다.


 



역시 강화 서문 외벽모습이다. 같은 구역이라해도 쌓은 솜씨가 다 다르다.


아마도 구역마다 일꾼들에게 별도로 영역을 지정해 준것 같다.


여기서는 자세히 보면 그랭이기법이 보이고 그런대로 공들여쌓은 느낌이 든다.


 



강화 남문 성벽 모습이다. 남문도 부분에 따라 쌓은 형태가 다른데 여기는 매우 엉글게 쌓았다.


 



역시 강화 남문 성벽인데 바로 위 사진과 솜씨가 다르다.


그저 평범한 솜씨에 지나지 않은다.


 



 


강화 성곽에서 제일 공들여 쌓은 것은 내가 보기에 “강도남문” 이라 불리는 남문이다.


목조 누각 앞에 안전을 위해 돌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감히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위에 있는 난간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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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nowadays 2

오늘 함께 근무하는


 


김호철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김선생님은 정말 사진을 잘 찍는다. 사진 전문가다.


 


얼굴 어느 한 부분 내 놓을 데라고는 전혀 없는 못생긴 나를


 


워낙 좋은 사진기로 찍다보니 난네없는 신사로 만들어주셨다. ^-^


 


김호철 선생님은 정말 사진을 잘 찍으신다!


 


이제 나도 내 얼굴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는데……


 


여러모로 부끄럽기 짝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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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나의 과거를 화형에 처한다!


 


내 아들이 진취적이길 바란다. 과거에 연연해 하지 말고 서 있는 현재에 가치를 두고 매진하길 바란다.


다행이 아들은 나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이다. 그는 끊임없이 추구하고 변화하려 한다.


아들이 보고싶어 마땅한 사진을 찾으니 없다. 그의 대학 졸업날 사진이 있어 올려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과거지향적인 면이 너무 많다.


우선 고향이라는 개념에서 그러하다.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나 되었고,


지금 그 고향에는 내가 놀던 강변의 모래톱도 없고,


소에게 풀을 뜯기던 들판도 없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고향의 정감 어린 정서가 동영상으로 잠재한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노래를 불러도 나는 과거 지향적이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수 있다면 아득히 멀어저간 옛날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그 동안 이따위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제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


 


지금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지만


가끔 젊은 날에 교우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 수가 있다.


대상이 절친했던 남자 일수도 있고, 이성으로 사귀었던 사람도 있다.


지금 그걸 생각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가끔은 죽은 사람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30여년 이상 만나지 않은 사람은 이제 기억 속에서 지워야 한다.


아니 10년 이내에 만나지 않은 사람도 모두 잊자!


모두 깡그리 지워버리고 잊자, 


그들은 기억할 필요도 없다.


그 기억 장치에다가 현재와 미래의 계획을 넣자


 


지나간 일들에 미련을 두지 말자.


과거에 연연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과거는 죽은 것이다. 죽은 과거는 죽은채 덮어두자.


 


오늘 나는 감히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앞으로 현재에 의미를 두고 살며,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생각할수록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


오늘 나의 과거를 화형에 처한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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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 오늘 강화성을 둘러보았다. 사진은 강화남문에서 찍은 것이다. 4개의 문중에서 제일 넓고 아름답다.


목조건물 앞에 돌 난간을 세운것이 독특하다. 감히 불국사에 견줄 수는 없지만 문득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위 난간이 생각난다. 함께 사진 찍은 사람은 국어과 신종원 선생님인데


그는 정말 드물게 보는 훌륭한 교사다>


 



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는데


수 일이 지나도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원문을 찾기가 어려워 붕우 남기완 교수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정말 남기완교수는 걸어다니는 사전이다.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풍래소죽 풍과이죽불류성)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안도한담 안거이담불류영)


故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고군자 사래이심시현 사거이심수공)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채근담-


 


하찮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나도 어떻게 보면 과거지향적인 면이 있다. 과거에 연연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가? 과거는 죽은 것이다. 죽은 과거는 이제


덮어두자, 오늘 나는 감히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나도 앞으로 현재에 의미를 두고 살며, 미래을 기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


 


그리고 스치고 지나는 것들을 반기고,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워두어야 한다는것이다.


언제 다시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끝까지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은


이 대목에서 조금 바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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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값이 아주 저렴하였다.

2박3일간 강원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전문직 연찬회에 동료 6명과 함께 다녀왔다.


 


세미나에 참석하고,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선도하는 교육이라는 주제하에 분임토의를 하고


 


그리고 관계기관 견학을 하고 


 


마지막으로 치악산 등산을 하고


 


이렇게 다녀왔다.


 


오랜만에 아주 편안한 출장이었고


 


장거리 였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


 



 


세미나가 열렸던 횡성에 있는 라데나콘도이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귀로에 김유정 문학촌에 들렸다.


 


마침 김유정 탄생 100주년 백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유정의 생가이다.


 


무언가 밸런스가 맞지않는다. 목재가 너무 굻고 둔탁하여 초가집 맛이 나지 않았다.


 


나무기둥을 보면 초가지붕에 어룰리지 않고 기와를 얹어야할 재목을 사용하였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처음에는 기와를 올릴려고 집을 지었는데 당시 기와구하기가 어려워 초가를 올렸다고 한다.


 


하여튼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사진에 웬 나그네들이 찍혔다. ㅋㅋㅋ 


 



 


역시 귀로에 횡성 한우를 먹었다.


진짜 맛이 좋았다.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다 먹지도 못해 남은 것을 싸가지고 왔다.


축협과 연계하여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값이 아주 저렴하였다. ㅋㅋㅋ


 


 



오는 길에 치악산 구룡사에 들렸는데 대웅전, 천불전 등은 내 마음을 끌지 못했고


 


강의실로 쓰는 맞배지붕의 건물이 내 시선을 끌었다.


 


앞면과 옆면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아주 독특하다.


이런 형식의 건물은 처음 보았다. 단하하면서 아주 깔끔하다.


 


맞배지붕에 주포식 건물이었는데 고려의 고건축을


 


보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무언가 장중하면서, 단순 명쾌한 느낌에 툇마루를 보면 실용을 중시한 것 역시 돗보인다.


 



 


 


국어를 전공한 이정현 선생(그는 지난해 장학사시험에 합격한 진짜 천재다)이


 


민족사관 학교에 들르자고 하여 내가 부교장선생님에게 전화하여


 


약속을 정한 다음 학교를 방문하여 관계자로 부터 안내를 받고


 


다산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주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빨간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 정말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설립자인 최명재선생은 파스퇴르매각 후 망한 줄 알았는데


 


지금도 매년 학교 예산의 50%를 재단 전입금으로 출연하고 있다는 설명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교사들은 다른 학교보다 훨씬 많은 봉급을 받고 있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홍보실에서 학교 안내를 시청하고 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는 예절교육을 가르치는 99칸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 일부이다, 정말 멋있었다


나중에 돈이 있으면 한번 저런 집을 짓고 살고 싶다.


 



 


 


 



 


세미나에 참석한 강원도 사람들로부터 소개 받아 의암댐에 있는 민물매운탕 집에서


붕어매운탕을 먹었는데 정말 끝내주었다.


 


먹고 나서 주인에게 “내가 평생 먹은 매운탕 중에 최고라고 말했더니


너무 놀라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정말 맛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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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silver wedding 2


 


올해 결혼 25주년이다.


결혼 당시 처가에서 다이아몬드 반지와 외제 시계를 예물로 가져왔다.


당시 웬만한 커플들은 대부분 다이아몬드반지를 예물로 주고 받던 시절이었다.


 


젊은이는 정의로운 양심이 있다고 했던가? 어려서부터 지금 이 나이까지 나는 한번도 국산이 아닌 것을 사본 적이 없다. 사진기를 사고 싶어도 국산이 개발되지 않아서 사지 않았다가 그 전설적인 삼성 미놀타 카메라가 처음 생산되었을 때 샀으니 나도 정말 보통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당시 교육의 힘일 것이다. 나를 가르친 사회 전체의 힘이 나의 생각구조를 그렇게 지배하였던 것이다.


 


나는  처가에서 가져온 예물을 정중히 거절하고


보석상에 가서 국산 보석제품을 찾았다.


롯데백화점에 갔는데 보석상 주인은 난감해 하더니


보석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수정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18k1.5돈에 연수정 알 2000원짜리를 밖았다. 그것이 내 결혼 반지다.


아내도 물론  같은 것으로 했다. 시계는 오리엔트 국산 시계로 했다.


세월이 지나 내가 나이가 드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여성들을 보면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소홀히 대접 받는다는 생각을 할까봐 겁이 나기도 하였다.


 


큰 맘 먹고 25년전 연수정 반지를 맞추었던 서울 롯데백화점으로 다시 갔다.


아내는 반대하였지만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다이아반지를 샀다.


이제 우리나라도 무역규모 세계11위가 되었고, OECD회원국이 되었으니 외국산 물건을 사는


것을 나랏님도 조금 이해하여 주시지 않을까?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계셨다 해도 흔쾌


하지는 않지만 나의 이번 소비행위를 약간 이해하여 주셨을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지금생각해도 박정희 대통령은 백성의 배고품을 슬퍼한 지도자였다.


오죽하면 “잘살아보세” 라는 노래를 손수 작사 작곡하셨을까!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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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제 잘못입니다!


 



 




 



<그저께, 어제 이틀동안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전국일요화가 스케치 대회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올릴사진이 마땅하지 않아 그냥 여기에 올린다. 주남저수지의 연꽃이 아름답다.>



 


아침 출근길에 동네에서 나오는 조그만 길에 봉고차 한 대가 머리를 빼고 있었다.


멀리서 달려오면서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저만치서 시내버스가 한 대 오고 있었고,


 


아마도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또 이편에서 내 자가용이 지나가면 저 봉고가 가로질러 나오겠지 하면서 운전을 하였다.


 


그런데 버스가 통과하고 나서 봉고차가 내 차는 보지도 않고 중앙선을 넘어 달려드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 차와의 교합지점을 통과하고 있었기에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꽝! 그 차가 나를 향해 달려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뻔히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 내 차가 어떻게 부딪치는지 그 상황을 정확하게 보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브레이크를 밟았다. 덕분에 충격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꽝~꽝!  다행스럽게 상대 차량은 운전석 앞쪽을 들이받았다.


조금 늦게 제동했으면 내 몸을 정확하게 받았을 것이다.


그 짧은 사고 순간에 한 달 전에 다리를 다쳤고, 아직 덜 낫고, 며칠 전까지 목발을 집고 다녔는데,


또 다치면 내일부터 가는 출장은 어떻하나? 공직자로서 출장을 가는 일이 걱정되었다.


차가 없으면 어떻게 출장을 가나?


 


내 차 운전석 앞쪽을 부딪쳤다.


다행이 내 차문이 열렸다.


사고가 나면 먼저 문짝을 열어보아야 한다.


문짝이 열리는 것은 차축까지 밀리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내려서 상대 차량을 보니 아버지와 교복 입은 여학생이 앉아있었다.


내리지도 못하고 떨고 있었다. 한 눈에 학교에 데려다 주는 부녀지간이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상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제 잘못입니다”라고 말했다.


 


“제 딸이 학교에 늦었다고 해서 빨리 가려는 욕심에


반대 차선을 보지 않고 그냥 중앙선을 넘었습니다. 차가 오는 것도 몰랐습니다.“


 


“네! 다치지 않으셨으면 다행입니다. 제가 신고를 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선생님은 어디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예! 다행히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안전벨트를 맺고, 충돌 순간 제가 충격을 제어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병원에 가시지요! 사진도 찍어 보시고….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보다 학생이 학교에 늦으면 어떻하지요? 그게 걱정이군요


 


이때 하늘에 200여 마리 기러기 떼가 울며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저 하늘을 보십시오 V字 대형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모양이 참 아름답습니다.


참! 선생님 여유가 있으십니다. 이 상황에서 어찌 그런 여유가 나오시는지요!


 


보험 들으셨을 테고, 보험에서 제 차 고쳐 줄 것이고…..


양쪽 다친 사람 없고. 그러면 되었지요!


 


그런데 혹, 선생님이십니까?


예, 뭐 그런셈이지요.


귀하는?


예, 저는 저 넘어 불은면 감리교회 목사입니다.


아! 역시 인품이 고매하시다 생각했더니 목사님 이셨군요.


 


명함을 내밀며, 목사님도 명함 한 장 주시지요.


했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면허증도 안 갖고 왔단다.


핸드폰 번호나 가르쳐 주셔요, 목사님의 핸드폰번호를 내 명함 여백에 적고,


이 때 사고처리 담당자 도착, 제가 하는것 보다 목사님이 상황설명을 하시지요,


듣고 나더니 처리 당당자 왈 : 전적으로 100% 봉고차 과실입니다.


이쪽 사장님은 수리완료까지 렌트카를 쓰실 수 있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동료들과 강원도에 일주일 출장을 가는데 동료가 운전하기로 하였습니다.


렌트카는 필요 없습니다.


 


견인차가 내차를 묶더니 수리공장으로 출발하였다.


이때 교육원에서 동료가 연락을 받고 나를 태우러 왔다.


그럼 목사님 안녕히 가셔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셔요!


 


30분 쯤 후에 목사님이 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셨다.


 


“류철현 목사입니다. 지금은 어떠신지요? 아프시면 병원에 가시고 연락 주세요”


 


내가 문자로 답을 보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주 튼튼한 사람입니다,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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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좌파는 ‘진보의 외피’ 벗어라(유영옥의글펌)

 

정원사는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형태를 잡아준다. 수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정원수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자라는 세대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해는 남과 북 모두 정부 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토와 민족이 두 동강 나고 수많은 동포가 한반도 북쪽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는 남쪽에서 여전히 이념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앞으로 후손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걱정이 된다.




한국사회의 좌파는 비겁하다. 좌우 대립을 교묘히 진보·보수 대립 구도로 환치하고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고 뒤에 숨어 활동한다. 원래 진보는 좌파 이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유럽에서 보수는 민족주의 운동, 산업화 등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던 18세기 후반에 이념화되었다. 기존 질서를 보존하고 급격한, 따라서 불안정하고 위험한 변화를 반대하는 것이 보수주의이다. 정치이념으로서의 진보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했다. 경제면에서는 거대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정치면에서는 소수 명망가 중심의 반민주적 정당구조가 공격 대상이었다. 집중화된 정치 및 경제 세력은 착취와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평등, 개인적 자유, 민주주의 등 건강한 시민사회의 덕목을 해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진보는 오히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조직화된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와 연관이 있는 집단주의를 경계한다.




모든 단어는 함축된 의미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그리고 진보는 긍정적 의미로 쓰였다. 사회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했던 관계로 법, 제도 및 시민사회의 성장이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속도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보수·진보의 논리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걸까. 한국의 대표적 갈등구조는 독재-민주였다. 이러한 구도에서 친북세력은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자신들의 진정한 의도를 감춘 채 반독재 투쟁에 편승했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진보 진영은 골수 좌파와 얼치기 동조자로 구성돼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통일전선 전략인 것이다.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세력들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친북 용공세력이다. 특히 이들이 학교에 침투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인식과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6·25전쟁이 북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증거나 논리로 볼 때 허구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직 비판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학교와 스승이라는 권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기 쉽다. 2006년 7월 전교조 부산지부는 통일학교자료집에 북한 공식 역사서를 그대로 수록했다. 심히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학생을 볼모로 하여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주입해선 안 된다. 후손들에게 그릇된 역사관과 국가관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의 소위 진보정권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여러 방면에서 위기에 노출돼 있다. 안보의식,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군 복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대두되었다. 남남갈등을 무릅쓰고 북한에 지원한 경제 원조는 핵과 미사일 그리고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되돌아왔다. 일본이 기술 및 자본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는 동안 우리의 성장동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제 국가역량의 분산을 막고 국가관과 역사관을 재정비해야 한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된 전통과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갖는 도덕적 책무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좌파는 이제 진보의 외피를 벗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염치이다.




유영옥 경기대 국제대학장·국가보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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