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3시간을 겨우자고

 



 


 


아침 4:00에 일어났다.


이제 습관이 들것도 같은데


아직도 교육원 관사에서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


1시가 넘어서 잠을 청했는데 3시간을 겨우자고 깼다.


 


강화에서 불면의 밤을 또 얼마나 지내야 할것인가?


앞으로도 8개월 보름이나 더 근무해야하는데…..


 


뒤척이며 여러날치의 신문을 보다가


라디오의 새벽 뉴스를 듣기도하고……


 


7시에 관사의 현관을 나섰다


아직도 해가 뜨려면 30분 이상 더 있어야 한다.


 


멀리 동이 트고 있었다.


얼른 다시 방에들어가 카메라를 가져와 셔터를 눌렀다.


교육원에서 보는 일출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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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토악질

미술전시장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오는 손님들과 담소를 하고 차를 마시고


그림 이야기를 하였다.


 


아침 나절에는


손님이 뜸하여


잠시 글을 썼다.


종이가 없어서


오픈식에 상에 깔았던 종이를 잘라서 그 위에 적었다.


 


[ 줏대있는 글을 보고 싶다]


 


세상에는 사물을 지배하는 이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세상에 대입하면 도리라고 부르는 것이 된다.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일컷는 것은


그가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소피스트의 상대적 진리관을 비판하며


진리란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서양 최초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육철학에서 항존주의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는 인간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나 어떤 원칙이 있는데


교육을 통하여 이것을 꼭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어느 시대건 옳은 것은 있는 것이고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갖기도 한다.


 


요즈음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을 보면 줏대있는 주장을 보기 힘들다


줏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


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것을 찾기 힘들다


 


여당이 어디어디가 잘못이라고 써놓고는


계속 읽어보면 후미에 역시 야당도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도대체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다.


그런 글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언어의 낭비이다.


칼럼이나 시론에서 이것도 저것도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을 보면


목구멍에서 토악질이 난다.


그렇게 용기가 없나?


어떤 순간에서건 정확하게 옳은 것은 하나다!


 


시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지식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지식인은 세상에 대하여 분명한 방향을 가리키고 앞장서야 한다.


오늘 따라 줏대있는 글을 보고 싶다.


 



 



 


수원미술관 전시장에서 오랜동안 수원일요화가회 활동을 함께 해온 조영희씨, 최경옥씨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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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breakfast


 


2008.12.14. 아침식사 2인 분이다.


 


어머니가 마련해주셨다.


 


삶은 호박고구마,


껍질채 먹는 사과,


역시 껍질과 씨까지 씹어먹는 포도,


허부차


컵은 두 사람이 하나로 공동 사용,


포크 2개


다 먹지 못하고 조금 남겼다.


 


이것을 아내와 함께 둘이서 먹고


어머니를 성당에 모셔다 드리고


아내는 교회에 가고


 


나는 오늘 교회에 못가고


전시회가 열리는 수원미술관에 간다.


오늘 전시장 지키는 당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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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정말 존경한다!


 


이희용씨!


핸드폰으로 찍었다!


 


오늘 한양대학교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한양대학교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이희용씨가 생각났다


토요일인데 매점을 열고 있었다. 학생 기숙사에 딸린 매점이었다.


 


그의 가게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나도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오랜만에 본 모습은 많이 야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도 보았는데 부인은 더 병색이 완연했다.


 


정무학교장님, 변난훈 교감님과 함께 성안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교장, 교감님의 지시로 부모가 없는 두 여학생을 결연시켰는데


그 학생들이 벌써 대학 4학년이 되었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는 15년전에 간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는데


간염이 이제는 간경화로 진전되었다고 했다


 


 


이희용씨는 성안중학교에서 결연한 아무게 여학생이


간을 잘라주겠다고 했다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희용씨가 여학생의 간을 받지 않을 사람인것을 알고도 남는다.


다만 그 여학생의 마음이 감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또 고등학생을 하나 입양하여


결혼까지 시키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어린 아이를 입양하면 결혼시킬 때까지 자신이 살기 어려울것이니


이미 성장한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말했다.


재작년에 사회복지 법인에서 고등학생을 입양하기로 날짜까지 약속 받았는데


갑자기 부인이 쓰러지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존경스럽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이 전부라고 했는데


어뗳게 저런 인품이 길러졌을까?


정무학교장님, 변난훈 교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언제 한번 모시고 식사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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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행복한 눈물


수원미술관


 



수원일요화가회  전시포스터, 주남저수지 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풍경이다.


 


포스타 사진 중 빨간 모자를 쓰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맹기호다.


 


지난  10월 람사르총회가 열린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동생, 조카, 아내, 그리고 나



캐나다에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조카를 오랜만에 보아서 반가웠다.



맹석재 작 ‘행복한 눈물’


 


명예회원인 아버지가 그려 전시회에 출품한  행복한 눈물이다.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그리셨다!


 


 


수원일요화가회 제 26회 정기전시회가 수원미술관에서 열렸다.


금년에도 바쁘다는 핑게로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아버지는 보행이 불편하셔서 작품만 3점 출품하시고 오픈식에도 오시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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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22 시간 ^-^


지난 5년간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암은 전립선암과 대장암이었다.


그림의 1, 2번 부위에서 대부분 대장암이 발생하는데 8번 전체까지 내시경 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발견되는 용종(폴립)의 5%가 15년 이내에 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있다고 한다.


 


 


나는 5년 전에 처음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 유발 가능성이 많다고 하던데


나보다 술을 훨씬 많이 먹는 동생은 아무 이상이 없고


나는 폴립이 3개나 발견되어 수술로 잘라냈다.


 


의사는 4년 후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5년이 지난 오늘 대장 내시경 예약을 했다.


어제 저녁 7시부터 19시간 째 굶고 있다.


 


더구나 설사하는 약을  먹는것이 고역이다.


토하면 안된다고 하여 참고 있는데 계속 구역질이 난다.


 


예약하지 않고 갔더니 2주 후에 오라고 하여


그냥 가장 빠른 3일 후 오후로 예약하였는데


그것이 오늘 오후 2시다.


2주 후에 하면 그냥 아침에 할 수 있는데 내 성질도 알아줘야한다.


 


수면으로 예약했는데


내시경 검사 후 최대 2시간 까지 잠을 잔다고 하니


22시간 이상 굶는 셈이다. 5시에는 먹을 수 있으려나……쩝! 


 


평상시에는 공복의 기쁨 어쩌구 운운하며 굶어보았으면 했는데


막상 해보니 하루 굶는 것도 꽤 힘이드네  아! 배고프다! 으~ ^-^


 


 



대장암을 예방하려면 편식을 하지 말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며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하여튼 운동은 안끼는데가 없다.


(훌라훌프를 돌리는것도 대장암 예방에 좋다고 한다.)


절주와 금연은 대장암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장암 발병의 위험요인으로는


식이요인,


유전적 요인,


선종성 용종,


염증성 장질환,


육체적 활동 수준 ,


50세 이상의 연령 등이 있다.




▶ 식이 요인




식이 요인은 오랫동안 대장암 발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동물성 지방 또는 포화 지방 식이를 할 경우 대장암의 위험도가 증가하며 돼지고기, 소고기 같은 붉은 고기의 섭취가 대장암 발생 위험을 높이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 외에 저섬유소 식이, 가공 정제된 저잔여 식이, 알코올 등이 대장암의 발병 위험을 높이며, 일부 연구에서는 육류를 굽거나 튀기거나 바비큐 할 경우 대장암 발생 위험이 상승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 유전적 요인




대장암의 5%는 명확히 유전에 의해 발병한다고 밝혀져 있으며, 전체 대장암의 약 15~20%는 유전적 소인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선종성 용종




용종(polyp)이란 장 점막의 일부가 주위 점막 표면보다 돌출하여 마치 혹처럼 형성된 병변을 말합니다. 용종은 양성종양이지만 그 중 조직학적으로 선종성 용종(그냥 ‘선종’ 이라고도 합니다.)이라 불리는 용종이 악성 종양, 즉 대장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종성 용종은 크기가 클수록(표면 직경 1.0cm 이상), 고등급 이(異)형성증을 보일수록, 그리고 융모(絨毛; villous)같은 특성을 보일수록 발암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염증성 장질환




염증성 장질환은 궤양성 대장염(ulcerative colitis)과 크론씨병(Crohn’s disease)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 질환이 있을 경우 대장암 발병위험은 4배에서 20배로 상승하고, 이로 인한 대장암은 일반 대장암보다 20~30년 일찍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육체적 활동수준




최근 대장암 발생률이 높은 서구국가를 중심으로 수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노동량이 많은 직업군에서 결장암의 발생 위험이 감소되며, 일과시간뿐 아니라 여가 시간에서의 육체적 활동량도 결장암의 발생위험을 낮춘다고 보고하였다.




신체활동이나 운동은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시켜 대변의 장내 통과시간이 짧아지게 함으로써 대변 내 발암물질과 장 점막이 접촉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어 발암과정을 억제하게 된다.


 


▶ 50세 이상의 연령



 


대장암은 연령에 비례하여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50세 이상의 연령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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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이은미가 좋다^-^

           이은미

직업

국내가수


데뷔

1992년 1집 앨범 ‘외면’


경력

2007년 리메이크 앨범 ‘Twelve songs’

2006년 11월 미국 라스베가스 힐튼 초청 공연


수상

2002년 문화관광부 문화의 날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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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마음이 조급하다

 



 



 


 


엊그제 강화도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맞배지붕에 그럴듯 하게 기와를 얹은 운치있는 한옥을 발견하였다


그냥 그집 마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주인은 50세 정도 되어보였고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안채는 번듯한 양옥이었고


조경도 매우 아름다웠다.


 


집이 좋다고 부러워하고 맞배지붕의 기품있는 집을 칭찬해주었다


그는 안채가 있지만 아내가 병이 들어 부인을 위해 황토로 한옥을 마당에 별채로 지었다고 했다.


 


오늘 갑자기 내 인생이 앞으로 얼마를 갈것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쎄다 아침 신문에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나와있던데, 그것대로 계산해보면


앞으로 25년 정도 더 살수 있다. 그 중에 건강 수명은 얼마나 될까? 운이 좋으면 15년 정도 될까?


 


빨리 집을 짖고 싶다.


25평 정도 되는 단층 양옥집 한채와 별채로 황토집 방한칸!


 


오늘 최순우 옛집을 보면서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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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서른 즈음에

아내는 아주 오래전에

나의 서른 생일에 시를 한 수 보내왔다 ” 그대 서른날의 생일에 바침” 이었다.

지금 보아도 명문이다.아내의 언어적 내공은 정말 대단하다.

나의 서른날 풋풋한 시절이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김광석 버전이 아닌 이은미 버전을 더 좋아한다.

이은미가 김광석보다 더 서정성 짙게 잘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김광석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자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자살을 자기 살인으로 규정한다

나는 집에서 기르는 닭도 먹지 않으며 새싹 비빔밥도 먹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에 이르르면 말할것도 없다

외숙 두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년 전 쯤에 막내 외숙이 갔다

외숙모와 그렇게 금술이 좋더니

어느날 외숙모가 갑자기 집에서 숨지고 난 후

서둘러 3남매를 출가시고, 막내딸 시집가던 날

신혼여행 떠나는 것을 보고 집에 들어와 그대로 제초제를 마셨다.

외숙모를 뒷동산에 모시고 매일 묘에가서 울고 다녀

묘지 앞으로 길이 났다고 하더니 그렇게 갔다.

또 다른 외숙 하나는 4년 전에 걌다.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분수없이 벌이다가

수십억 빚을 지고 부도를 내고 15년 전에 미국으로 도망갔다

주유소를 27개나 운영했고 그 옛날에 외제차를 타고 다니더니……

외숙이 벌어놓은 전 재산을 다 날리고도 빚이 수십억 남았다고 했다.

어머니도 그 조카에게 수천만원을 빌려주었지만 받지 못하셨다.

부자는 가난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 많던 토지와 상가를 아들이 다 날렸으니…

외숙은 충격으로 평소 앓던 당뇨병이 악화되고 급기야는 말소리도 어눌해졌다

어머니는 매일 외숙과 전화하며 걱정하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외숙을 찾았다.

셋이서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데 나와 어머니가 보기에 참혹하엿다.

외숙은 식사하시는데 반은 입밖으로 음식을 흘렸다. 이미 입이 마비되어있었다.

100만원을 드리고 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달만에 외숙은 감나무에 목을 맸다.

아직 큰 외숙 한분이 살아계신다

올해 86세 남자로는 장수하는 편이다

몸이 많이 아프시다고 했다.

오늘 토요일 휴일인데 아무 할일이 없다

그렇게 결혼 초대장이 많이 오더니 이제 모두 끝났나 보다.

음….어머니를 모시고 큰 외숙에게 다녀와야겠다.

용돈이나 드리고 와야지! 아직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말씀드리면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며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관절염 때문에 대중교통으로는 다니시지 못한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친정에 가는것을 너무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신다. ^-^ 앗싸 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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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으시대지 마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87년 6월 29일 이른바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내용의 골자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는 방법 대신 국민직선제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사실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정권은 7년 내내 정권의 정당성 시비에 시달렸다.


그리고 전두환정권 말 대통령국민직선제 개헌 요구가 한창이던


1987년 4월에 4.13호헌조치라는 것을 발표하여 헌법을 개정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당시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필자도 호헌의 정당성에 대하여 주민을 계도하라는 공문이 있었지만


실제로 주민을 계도한 사람도 없었고, 하려고 마음먹은 교사도 없었다.


하여튼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는 계속되었고, 6월 9일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이한열군 사망이 있었다.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 군은 호헌철폐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 했다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6월 10일 여당은 노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7년 임기의 대통령을 다시 체육관에서 뽑겠다는 것이다. 7


년이면 4년짜리 대통령을 두 번하겠다는 것이다. 박대통령 시절에는 4년이었으니까! 전두환은 7년을 했다.




바로 이날(6월10일) 시작된 6월 민주항쟁에는 전국에서 연인원 500여 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혼란 정국을 수습해야 했던 전두환 정권은 노태우 후보의 이름으로 ‘6·29민주화선언’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한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내걸었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6월28일 오후 6시쯤


학교에서 퇴근하여 버스에서 내린 나는 수원역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보았다.


6월 내내 수원역에서는 시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의 시위 규모는 대단했고,


나는 그 현장을 보고, 이미 이 정권은 정당성을 잃었으며 민의에 굴복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현장을 보고 있던 나는 집에 가서 아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만 3세였던 아산이를 목에 태우고 시위대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주인수건축사무소 소장을 만났다. 주소장은 내가 아끼는 동네의 후학이다.


나 보다 한 살어린 주소장은 어린시절부터 옆집에 살면서 우정을 키운 사이다.


(지금도 만나면 나에게 꼭 형님 형님하면서 따른다. 나도 주소장님이라고 부른다.)


 


아니 형님 어디가십니까?


응, 이 정권은 이미 기울었어, 민주화 역사의 현장을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가네!


주소장은 어린아들을 목에 태우고 최루탄 냄새가 자욱한 도로를 따라가는 나를 어이없어 했다.




주소장과 헤어지고 나서 수원소방서를 지날 즈음 경찰병력이 최루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덥쳤다.


나는 아들을 감싸안고 잽싸게 아무 집에나 들어갔다.


마침 대문이 열려있는 가정집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 집에서 한참을 지난 다음에 밖을 살펴보니 추척하던 경찰이 없어진 것 같아서


동네 골목길로 돌아서 집으로 걸어왔다.




6월10일을 민주화항쟁기념일로 정했다 한다.


일제하 3.1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학생들이 벌였던 6.10만세운동이라면 모르되,


1987년 6월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이것에 동의할 수 없다.




박정희 독재는 무서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박정희대통령 시대에 교육받은 내가 어떻게 자유의식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초, 중학교를 거치면서 막연하게나마 자유와 평등이 소중한 가치이며,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우리나라 헌법의 중요한 두 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유물론이 어떠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물질이 아닌 정신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갖게되었다.


 


박정희대통령이 유신헌법 개정안을 발표하던 날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그날 나는 서울역에 있었다.


석간신문을 사서 그 자리에서 개정헙법안의 모든 내용을 읽었다. 


유신헌법은 매우 잘못된 법이라는 판단을 했다. 


서울역 주변의 사람들이 개정헌법안이 발표된날 신문을 보지 않고,


다른 날과 변함없이 평안히 길을 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하긴 지금도 전철 안에서 조간신문을 읽을 아침 출근시간에


너나 할것없이 스포츠 신문을 들고있는 사람들을 보면 공연히 화가난다.


 


나는 어려서부터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나보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교육을 받았는데, 수업이 끝날 때 멸공구호를 주먹을 들고 합창한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


4가지 구호 중에서 마지막 이룩하자 유신과업은 입밖으로 소리내지 않았다. 군에 입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1학년 때 동아일보 광고탄압사태가 일어났다.


동아일보 광고란이 공란으로 발간되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하러 다녔다.


기업은 무명으로 광고내용 없이 광고란에 네모칸만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 위험을 무릅쓰고 실명광고을 내는 기업이 있었다. 부광약품이다.


나는 지금도 그 회사 사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용기있는 기업인이다.


나는 지금도 부광약품에서 생산하는 물건을 산다. 블랜닥스 치약으로 유명하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해서는 개인적으로 자유에 대한 갈망이 포화상태에 있었다.


당시는 박정희 독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였다.


유신헌법으로 집권연장하더니 그 유신헌법으로 두번째 체육관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을 때였다.


그 때 새벽에 혼자 대학에 가서 벽에 글을 붙였는데


내용은 대체로 국민에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라는 것이었고,


유신정권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내가 부르는대로 당시 여고에 다니던 여동생이 썼다.


정말 나는 영원한 자유인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음성적인 반정부 학생운동이 어떠한 벌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나의 행동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나 혼자 한 일이었으며 이것은 인간의 천부인권인 자유에의 열망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나에게 가르쳐 준것은


바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시대의 교육이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생각해보니 반공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자유와 민주주의의,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게되었던것 같다.


 


장황하게 나열하다 보니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말하는것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수 있겠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고 그저 한 젊은이로서, 민초로서, 가만히 침묵할 수는 없었다는 의미다.


무슨 일을 했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나는 글자 그대로 소시민이었다.


 


박정희 독재는 정말 무서웠다.


그 때는 감히 시위할 생각을 못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는 세상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는 박정희독재에 비하면 구우일모, 창해일속, 조족지혈이었다.


 


박정희독재에 항거하려면 목숨을 걸어야했다.


박정희독재에 맞서서 싸운 사람들이 진짜 민주화 인사들이라고 감히 나는 단언한다.


누구일까? 김영삼, 김대중이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대통령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의 노선에 대하여 나 개인적으로 다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중에 내 생각과 다른 사람도 있다.)


나머지는 민주화 투쟁인사 대열에 넣고 싶지 않다.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는 개나 소나 다 데모하고 시위했다.




6.10 민주항쟁기념일이라고?


볼썽사납다. 


일하고 나서 했다고 나대거라!


한 일도 없으면서 나서기는……


 


 


민주화투쟁을 했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자유와 민주주의에 목숨을 걸었어야지,


어린 아들 목마 태우고 시위대에 참가했던 맹기호는 감히 민주화투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소시민이다.  




박정희독재에는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했으면서


박정희 죽고나니까 갑자기 민주투사가 이곳 저곳에서 막 나오는데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나는 박정희의 경제개발 공을 인정한다. 오죽 백성의 배고품을 해결하고 싶었으면


“잘살아보세” 노래를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 했을까!


우리 역사상 어느 지도자가 백성이 굶는것을 이토록 진정으로 가슴아파한 사람이 있었는가? 


새마을노래도 직접 작사작곡했는데 그 가사를 생각하면


굶는 백성을 가슴아파하는 대통령의 마음을 보는듯하여 기가막히다.


새벽종이 울리는 소리들 듣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름답게 우리마을을 가꾸자는 것이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하다가 박정희가 그들을 붙들고 함께 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무도 돈을 꿔주지 않던 시절 박정희는 광부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빌렸고 그 돈으로 공장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경제개발의 시초였다!


 


그러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억눌린 자유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는 내가 피부로 절절하게 느꼈다.


박정희는 공이 큰 만큼 과실도 크다. 그 시대의 논리로 봐도 국민이 감내하기에는 버거운 사람이었다. 




오늘 내가 조금 흥분한 것 같다.


그러나 1987년 6월에 투쟁했다는 사람들,


특히 386세대 어쩌구 하며 으시대는 사람들은 조심하고 겸손할지어다.


노찾사 노래를 들으면 코웃음이 난다. 그런 노래부른 시절은 저항도 아니었다. 놀이였지!


그대들은 별로 한일 없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런 말 들어보기나했는가?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할레트카는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라고 했다.


그렇다, 역사는 한 시대의 단절이 아니다.


절대과거도 없고, 갑자기 떨어져 나온 현재도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다. 


나도 진화하는가? 요즈음에는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엊그제 어느 학교의 전교조 선생님들이 이사장과 학교장의 대문에서 여러날 플랜카드를 들고


소리지르고 시위한 것에 대하여 법원에서 교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는 요지의 판결을 했다고 한다.


그 교사는 집회허가를 받았고 그리고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 해도 과정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보고 무엇을 배우겠는가? 선비는 정신으로 사는것이다.


나도 많이 바뀌었다. 음…..내 나이가 올해 몇인가?  그러나 386이라고 함부로 으시대는 사람들은 못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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