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라는 책을 읽었다.
잊기 전에 책에서 나오는 공감가는 문장을 적는다.
고은 : 나의 문학은 폐허로부터 시작했다.
내 문학은 폐허를 떠도는 자의 비가 이기를 자처했다. 그래서 시의 본적지는 폐허이고 시의
현주소는 폐허의 기억을 가진 미완의 역사현장인 것이다.
문학의 힘은 해답에 있지 않고 치열한 질문에 있다.
저녁은 숭고하고 슬프다.
김광규 : 내 자신은 목적으로서의 자본 축척을 이해할 수 없고 시간을 돈과 함께 계량적으로만
파악하는 경영마인드에 동의할 수 없다. 숫자의 정확성 보다 문자의 상징성에
이끌리는 것이 문학인의 숙명적 체질이다.
김지하 : 너는 왜 문학을 하는가? 넋의 풍류 탓이다. 그 뿐
도종환 : 내 문학은 가난과 외로움에서 출발했다.
마종기 : 내 문학의 화두는 자연히 생명이었다. 인가의 생명은 언제나 회망과 사랑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따뜻함이 그리워 나는 시를 써왔고 시를 쓰는 동안은 어줍잖은 고통까지도
껴안으려고 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모든 인생은 비슷하게 힘겨운 짐을 지고 있다는
말에 나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런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굽은
허리의 겸손과 그 고통이 사실은 사랑의 속성이라는 것에도 동감한다.
그 사랑의 속성을 찾아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세상을 헤멘다.
박범신 : 어머니는 부러진 가위로 내 탯줄을 당신이 직접 잘랐다. 하필 부러진 가위라니…..
나의 출새은 여덟달반! 출생부터 나는 결핍이었다. 그 결핍 때문에 글을 쓸수밖에 없다.
결핍은 결핍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핍되어있다고 느끼면 그것은 타는 듯한 상처가 될것이고
그 상처를 통해 그는 결핍을 채우려 할것이다. 그러니까 결핍은 곧 충만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충만에의 그리움이 없다면 누가 읽고 쓰려하겠는가.
고독하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불멸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내가 느끼는 결핍감 속에
운명처럼 깃들어 있다. 그 모든 그리움을 다 채울 길이 없으니
쓰지 않고 어떻게 내 목숨 견디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