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

전원에 쉴 곳을 마련한다는 오랜 나의 꿈이 실현되었다.  여러가지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으나 모두 해결하였고  오래 기다린 꿈을 이루었다.

여러 곳을 찾으러 다녔으며 그 중에서 내 맘에 100% 드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지금 이곳이 내 마음에 가장 근접한 곳이어서 결정하였다. 여기서 최소한 10년을 살려고 한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것은 30만년 전이지만, 인간이 그릇을 사용한 역사는 신석기 시대 즉 1만 년 정도이다. 불은 음식을 구워 먹을 수 있었고,  그릇은 음식을 삶아 먹을 수 있었다.  삶는 것은 혁명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릇에 관심이 많다.  박물관에 가면 만져볼 수 없다. 나는 만져보고 싶고, 그 느낌을 갖고 싶어 그릇을 모았다.

신라토기, 고려청자, 조선백자

40여 년 사회 선생을 하면서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대부분 무덤의 부장품으로 나온 것이고 대부분 파손된 것을 수리한 것이다. 완전한 물건은 비싸기 때문에 살 수 없었다. 하여 수리한 것을 위주로 모았다. 문화재 급은 아니지만, 모두 재현품이 아닌 진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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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들 혼례

고등학교 동창의 아들이 혼인하여 다녀왔다. 아내는 손녀 돌보러 가고 어머니와 둘이 지내는데 치매 어머니를 맡길 데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를 모시고 혼례식장에 함께 갔다.  24km 떨어진 안산시 예식장이어서 조금 죄송스러웠다. 트렁크에 휠체어를 싣고 가서 예식장 지하주차장에서부터는 휠체어로 모셨다. 신랑 아버지가 주례를 섰는데 아주 말솜씨가 좋았다. 그는 내가 성안중학교 교무부장으로 재직할 때 운영위원장을 맡아주어 그 일이 두고두고 고마웠다.

사실 어머니가 부페 음식을 드셔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오랜만에 드시는 부페 음식에 아주 만족해하셨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우한코로나가 좀 걱정이 되었지만 4차 접종까지 했으니 좀 덜하겠지 아는 마음으로 혼례식장에 간 것이다.  물론 맡길 데도 없었다.   음식을 두 번 떠다드렸고 마지막에 과일을 드셨다. 아주 좋은 식사를 했다고 좋아하셨다. 오늘 모시고 오기를 아주 잘했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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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허가 서류 제출

고향의 조상 묘 38기를 화산공원묘원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개장허가서 38개를 제출해야한다.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고 개별 묘마다 한 건으로 서류를 작성해야했다. 원칙적으로 직계 비속이 서류를 제출해야하나 담당자를 만나 나 혼자 모두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말했다. 집안을 대표해서 내가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허락해달라고 했다.

우선 내가 400 년 전의 조상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증명해야 했다. 개별 묘마다 모든 증명을 해야했으므로 족보를 보고 복사하고 연결고리를 밝혀야했다.  그리고 출생과 사망 일을 적어야 하는데 족보의 기재내용이 충실하지 않은 분이 여럿 있었다. 출생일은 있는데 사망일은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출생일은 없고 제삿날만 있는 분도 있었다.  묘가 있는 장소의 지번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1968년 이후는 주민등록 번호를 부여했고 그걸 개장 허가서에 적어야 하는데 1983년에 돌아가신 분의 제적증명서를 떼어보니 앞자리만 있고 주민등록 뒷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담당자에게 설명했더니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며 사정을 들어주어 내가 더 놀랐다.

38기의 서류를 제출하였는데 첨부물까지 합하면 약250쪽에 달하였다. 담당공무원이 아주 친절하였다. 내가 모든 서류를 수기로 쓰지 않고 타자로 쳐 출력해서 제출했는데 서류가 완벽하다고 검토하기에 아주 좋다고 말하였다. 처리 기한이 2일 인데 워낙 서류가 많아 며칠 더 달라고 해서 얼마든지 좋다고 말해주었다.

어제 드디어 담당공무원에게 전화가 왔다. 모든 검토가 끝나 38기 모두 허가가 났는데 금요일 오후라 우편으로 보낼 수 없다고 월요일 부치겠다고 한다. 내가 등기우편료를 부담하겠다고 말했더니 그런 정도는 행정복지비에서 지출한다고 해서 또 놀랐다.

이제 업자를 선정하고 굴착하여 꺼내고 화장장으로 이동하여 화장해서 함에 넣어 화산추모공원에 갖고 가면 된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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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 방문하시면서 윤수천 선생님이 육필로 적은 액자를 선물로 주셨다>

< 수필가 임성자선생님, 한글학자 겸 수필가인  밝덩굴 선생님, 아동문학가 윤수천선생님>

아동문학가 윤수천선생님,   한글학자이면서 수필가인 밝덩굴 선생님, 수원예술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수필가 임성자 선생님 이렇게 세분이 나의 여주 우거를 방문해주셨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윤수천 선생님은 전국적 브랜드를 가진 아동문학가 이다. 내가 자주 만나는 문인 중 인세로 생활을 하는 접업 작가는 윤수천 선생님 한 분 뿐이다. 같은 문인으로 함께 자부심을 느낀다. 후학들에게 밥도 잘 사주신다^^

밝덩굴 선생님은 한글학회 회원이고 수필가이며 우리나라 한글 역사에 한 획을 그으신 분이다.  안산 성포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하셨는데 현직에 계실 때도 교육이라면 굽히지 않고 본인 철학을 실천하셨으며 아주 강직한 선비셨다.

임성자 선생님은 경기수필 회장을 역임하셨고 수원예절학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여류 문인이시다. 옳다고 생각하면 역시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분이다.

내 키가 작은 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 윤수천 선생님보다 내가 더 크다! 놀랍다. 내가 이정도는 되는구나^^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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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어머니에게 식사를 드리면서 단백질, 탄수화물, 야채, 과일의 균형을 맞춘다.  그 중에서도 야채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내가 어머니에게 자주 드리는 야채는 시금치다.  추석 명절에 시금치 한 단에 7000원이었는데 오늘 5000원으로 떨어졌다. 1만원에 두 단을 샀다.  찜판에 넣고 살짝 찐 다음 고추장 양념으로 무쳤다. 어머니가 아주 잘 드셨다. 감사한 일이다.

<시금치의 효능>

1. 당뇨병 개선

시금치는 혈당이 낮고 산화방지제로 알려진 알파-리포산이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시키고 당뇨병을 개선시킨다.

2. 뇌 기능

시금치에 풍부한 엽산이 뇌의 혈관을 압박하는 호모시스테인의 작용을 억제한다. 또한 두뇌를 활성화 시켜 뇌 관련 질환을 예방한다.

3. 항산화 효과

시금치에는 13종류 이상의 플라보노이드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다. 또한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C도 풍부해 강력한 항산화 기능을 해 다양한 질병이나 노화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4. 심장 건강

비타민C와 산화 방지제인 플라보노이드가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고 엽산이 심장혈관 시스템을 개선시킨다. 그리고 마그네슘을 비롯한 다양한 미네랄이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을 준다.

5. 빈혈 예방

시금치에는 산소를 세포로 운반해주는 헤모글로빈의 구성성분인 철분이 풍부한데 철분결핍성 빈혈을 예방한다.

6. 피부

비타민A는 피부와 모발을 포함한 신체 조직의 성장에 필요하고 콜라겐 형성에도 관여하여 피부를 좋게 한다.

7. 뼈 건강

시금치에 풍부한 비타민 K는 칼슘의 흡수를 향상시키므로 뼈를 튼튼하게 한다.

8. 여성 건강

여러 미네랄 성분이 생리중인 여성에게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특히 임신기간에는 엽산을 많이 소모하는데 시금치는 엽산이 매우 풍부하다.

9. 눈 건강

시금치의 루테인과 제아잔틴은 황반변성, 백내장 등 눈 질환을 예방한다.

10. 항암효과

시금치의 베타카로틴, 엽산 등의 성분은 강력한 항암성분들인데 이런 녹황색 채소를 매일 먹으면 위암 발생이 약 35%, 대장암은 40%나 감소한다.

11. 변비와 위장 건강

섬유질이 풍부한 완전 알카리성 식품으로 변비에 좋고 위장을 편안하게 한다. 주독도 풀어주고 장속에 있는 찌꺼기를 배설시켜 준다.

12. 다이어트 효과

시금치에 들어있는 성분 중에 하나인 <틸라코이드>는 포만감 자극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식욕 억제를 돕는다. 이런 효과를 보려면 생채 그대로 먹는 것보다는 즙을 짜서 먹으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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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다

지난 달 그러니까 9월 13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으로부터 교육감 공관에서 점심 초대를 받았다.  나 혼자가 아니고 중도보수교육감 후보 단일화 모임 임원 18명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사과를 먹고 있는 분이 임태희교육감이다.

나는 지난 13년간 좌편향된 경기교육을 바로잡을 것을 부탁하였다.  김상곤, 이재정 좌파 교육감들이 혁신학교라는 미명 하에 편중되게 특정학교의 예산을 증액시켜 핏자 사주고 사탕발림하는 혁신학교 제도를 폐지함은 물론 아직도 썩어빠진 혁신학교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숙청하도록 당부하였다. 나는 과감하게 숙청이라는 표현을 썼다. 과거 김상곤, 이재정 좌파교육감이 바른 말하는 많은 교육자를 숙청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3월이면 교육감이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교에 세월호 코너를 설치하라. 세월호 플래카드를 교문에 달아라. 세월호 글짓기대회, 세월호 포스터그리기 대회, 세월호 그림그리기 대회 등을 열어 대입내신에 가산점이 되는 학교장 표창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세월호라는 해난 사고에 전 국민이 울었고 학생 1인당 공식적 금액만 8억2천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그만하면 되었다. 천안함 사건은 3월 26일이다.  순국 장병들은  5천만원씩 받았다. 임태희교육감에서 세월호, 천안함 폭침 등을 균형있게 교육하고 다루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이번 선거말고 그 직전 선거에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좌파가 단일화 하지 못하고 분열하였는데도  보수가 졌다. 서울과 인천은 보수가 분열되어 졌다는 말이 되지만 경기도는 그렇지 않다. 좌파가 단일화에 실패했는데도 보수가 졌다.  하여 경기도에는 이번 선거에 아무도 나서지 않아 우리 후보단일화 추진단의 애를 태웠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여러 유명인사에게 출마하라고 접촉을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임태희다! 우리는 보수 단일화 후보로 임태의를 추천하였고 응원하였다.  임태희교육감에게 말했다. 교육감님은 당선된 그 자체만으로도 하실 일을 다 하셨다.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수고하셨다고 말했다.

마지막 일어설 때 내가 일어나 모두 잔을 잡으라고 말했다. 내가 선물이다! 라고 말하면 모두 선물이다! 라고 소리치라고 말했다.

임태의교육감이 경기도에 온 것은 선물이다! 선물이다!!(일동 모두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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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움

<인터넷 경매 화면을 찍었다. 내가 산 그 질화로다. 아직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기후를 보통 온대기후라고 말하는데 온대기후의 범위는 넓어서 우리보다 따뜻한 유럽 해안지역의 서안해양성기후나 지중해성 기후, 캘리포니아반도 안쪽의 기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후는 온대 중에서도 겨울이 더 춥고 길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기후를 엄밀히 말해 냉대기후에 가까운 온대기후로 본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정에서 방에 불을 때는 기간은 보통 10월에서 다음 해 4월 말까지다.  6개월을 난방하는 나라다. 일 년이 4계절이라고 하나 겨울이 반이다. 젊은 날 군대 시절 2월 말이면 난방을 끝낸다. 막사 안에서 연중 3월 1일이 제일 추운 날이었다. 지금 군대는 많이 좋아졌으리라.

이렇게 길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온돌을 사용해왔다. 더하여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남아있는 숯불을 용기에 담아 방으로 들여왔는데 이게 바로 화로다. 이것만큼 상하 계층이나 빈부의 차이 없이, 그리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두루 쓰이는 살림살이는 드물다. 손님을 맞을 때 화로를 손님 가까이 밀어주어서 따뜻한 정을 표시하였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도 화로가 있었다. 주물로 만든 투박한 무쇠화로 였다. 마치 갓을 엎어놓은 것 같은 넓은 귀가 달렸고 다리는 특별히 없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아궁이에서 화롯불을 방으로 들이며 언 손을 비비면 우리 형제도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화로에 디밀었다. 창호지 한 장으로 북서풍을 막는 방에서 화로는 구세주였고 방안 가득히 정다움을 채웠다. 아버지는 된장 투가리를 올리셨고 우리는 고구마를 구웠다. 인두로 다독거리며 불을 잘 관리하면 오후 점심 후까지도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

동네 부잣집 남참봉댁에는 백동화로가 있었다. 두어 번 구경했는데 투명한 은빛에 눈이 부셨다. 나는 남참봉을 본적도 없는데 과거 참봉벼슬을 한 집안이라 모두 남참봉댁으로 불렀다. 우리집에도 백동화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성년이 되어 수원 태장면 고개를 지나는데 골동품가게가 있어 들여다보니 세상에! 백동화로가 있었다. 들어가 물어보니 25만 원 이란다. 30여 년 전인데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옆에 무쇠화로가 보였다. 우리 집에서 쓰던 그 화로였다. 보는 순간 내 방에 가득 찼던 정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0만 원을 주고 샀다. 옆에 있던 인두도 달라고 했더니 덤이라며 주었다. 집에 가져와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더니 그냥 데면데면하셨다. 시골에서 이사 올 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물건은 챙겨왔는데 연탄을 때는 도회지에서 화로는 필요 없으니 웬만한 살림살이는 숙부댁에 모두 주고 왔다, 아버지에게 화로는 그런 물건이었다. 당신에게는 도회지로 이사 와서 식솔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절박함이 더 우선이었지 한가한 겨울날의 낭만은 그냥 과거였다. 나는 그런 면에서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존경하며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로 느낀다.

거실에 무쇠화로를 놓았고 현관 열쇠, 손톱깍기, 동전지갑, 구두주걱 등 여러 가지가 담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쇠화로를 사던 날 돈을 더 주고서라도 백동화로를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잣집 남참봉댁에서 봤던 눈부셨던 백동화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20여 년을 아쉬움으로 지냈다.

어느 날 수원 행궁 거리에서 시화전을 열어 작품을 냈다. 그런데 행궁 옆길에 새로 생긴 골동품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안에 백동화로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백동화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만져보니 역시 귀티가 난다. 몸체와 다리를 따로 주물로 만들고 리벳 공법으로 결합하였다. 조선 말 어느 양반집 아랫목에 있던 물건이다. 다음에 오겠다고 하니 카드도 받는다고 한다. 40만 원을 주고 샀다. 집에 와서 거실에 놓고 보니 역시 눈부시다. 구리와 니켈을 섞은 것이 백동인데 니켈을 많이 섞어 할머니 쪽진 머리에 꼽혀있던 비녀처럼 은빛이 났다.

그 후 여러 개의 백동화로를 구입하였다. 가마에서 사용했던 작은 백동화로, 박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면에 모란을 음각한 백동화로, 정말 대감님댁 같은 지체 높은 집에서 사용했던 대형 백동화로도 샀다. 골동품가게를 순회하면서 특별한 화로가 있으면 샀다. 나중에는 무쇠화로도 형태가 특별한 것을 보면 구입하였다.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 아내도 평생 집안 식구를 위해 헌신한 나의 공을 봐서 그러는지 말리기는 하지만 그 강도가 감내할 만한 수준이어서 나의 화로병은 계속되었다. 왜 사냐고 물으면 만지고 싶은 것이다. 박물관에 가면 눈으로만 화로를 본다. 나는 화로를 사갖고 와서 손으로 품고 마음 놓고 만진다. 만지면서 100년 동안 거쳐 간 사연과 그리움을 감촉으로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궁이 있는 집을 마련하여 군불을 때고 화롯불을 방안으로 들이는 기쁨을 기대하며 살아왔다.

지난여름부터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아궁이가 있는 시골에 거처를 마련하고 주말에는 그곳에 가서 조용히 지낸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  자주 갈 수는 없지만 주말에는 집사람에게 어머니를 전적으로 맡기고 시골집에 간다. 아내는 내 소망을 잘 알기에 어머니가 더 나빠지시기 전에 시골 주택에 자주 가라고 권한다. 고마운 일이다.

인가가 드문 시골 밤은 어둡다. 마당에 나오면 더욱 어둡다. 보이는 건 별이고 들리는 것은 풀벌레 소리, 볼을 스치는 바람이 전부다. 아무도 없고 홀로 외롭다. 외로움은 글쟁이의 밥이다. 나는 그 외로움이 좋다. 어차피 사람은 외롭다. 갈 때 같이 가줄 동무도 없다. 아버지도 92세로 비교적 장수하셨지만 어머니를 홀로 남기고 가셨다.

무쇠화로, 백동화로, 시골 아궁이를 갖추웠다. 이제 추운 겨울만 오면 된다. 그런데 마음이 허전하다. 무언가 모자란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답은 질화로다. 어릴 때 옆집에 가면 할머니가 질화로를 끼고 사셨다. 설날 동네 어른에게 세배를 다니던 날 할머니에게 가면 질화로를 다독거리시며 달달한 엿을 내주셨다. 마지막으로 그 질화로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골동품상을 뒤져도 질화로가 없다. 내 기억에 질화로는 떡시루 같은 질감을 갖고 있다. 비교적 연질이었을 것이고, 당시 무쇠화로보다 값이 쌌을 것이다. 연질이다 보니 쉽게 깨져서 오늘날 남아있는 것이 없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그 질화로를 만나고 싶다.

어제저녁 골동품 경매시장에 질화로가 등장하였다. 눈이 번쩍 떠졌다. 최소 100년은 된 물건이다. 어떻게 저게 살아남았을까!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넘쳤다. 무조건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쟁자가 붙었다. 그 사람이 값을 올릴 때마다 나도지지 않고 더 올렸다. 자꾸 값은 높아졌다. 통장에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걸 놓치면 내가 얼마나 후회할 것을 알기에 그가  지치기를 기도하면서 계속 올렸다. 드디어 그가 줄을 놓았다. 경매사가 맹기호 선생님께 최종 낙찰합니다!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었다.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고 들여오시던 화로의 정다움,  겨을날 삼태기처럼 생긴 오목한 동네, 삼태기마을에 집집마다 울안에 정다움을 가득 차게 했던 무쇠화로, 백동화로, 질화로까지 모두 갖추었다. 오라 겨울이여! 내 기꺼이 너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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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무리다완

햇무리 사진이다. 눈부시다.

고려청자 햇무리다완이다.  비색이 아름답다. 인터넷에서 따온 사진으로 투명한 비색이 환상적이다. 최고 명품이다.  밑굽에 3개의 흰색은 구울 때 여러 개를 포개고 붙지 않게 넣은 규석 받침이다. 언젠가 이런 명품을 한 개 갖고 싶다^^ 중국 청자에는 없는 투명하고 청아한 한 비색이 일품이다.

내가 갖고 있는 햇무리 다완이다. 11C 전남 강진에서 만든 것이다. 형태는 햇무리굽다완이  맞는데 빗깔이 좋지않다. 산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다. 대부분의 도자기는 무덤 출토품인데 흙에 오랜동안 뭍혀 있다보니 산화된다.

안쪽을 찍었다. 왼편에 쪼개진 것을 접착제로 붙인 흔적이 보인다.  산화가 되기는 했지만 11C 강진에서 생산된 햇무리청자다완이 틀림없다.

세워놓고 찍었다.  유약이 덜 뭍은 곳이 보인다. 1000년 가까이 된 물건에서 이 정도는 흠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도자기는 색깔이 제일 중요한데 이건 산화되어 청자의 빗깔이 많이 변했고, 수리한 것이다. 깨진 것을 붙인 자기는 아주 헐값이다.  그래도 좋은 기회가 있어 아주 싸게 구입하였다.  흠이 있는 도자기는 정품에 비하여 말도 못할 정도로 싸다. 5만원에 구입하였다. 흠이 있지만 1000년 된 물건을 만져보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중국  9C~10C 월주청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집트의 고대유적지에서 월주청자의 햇무리굽 다완이 발견되었는데 그만큼 월주청자는 세계에 귀중품으로 수출되었다.  9C 중국은 세계를 경탄시키는 자기를 만드는 유일한 나라였다.

그런데 중국에만 있다고 믿었던 청자가 11C 고려에서 생산되었고 미륵사지에서도 출토되었다. 11C 고려햇무리다완은 굽이 약간 좁은 형태였다. 바다 속에서 발굴된 청자에서 중국 청자와 같은 명문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려에서는 처음에 월주청자를 모방하여 청자를 만든것으로 보인다.

고려청자가 중국청자와 다른 것은 중국 청자는 비색이 불투명한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투명한 물빛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다르다. 강진은 고려청자에 알맞은 흙과 물을 가진 곳으로 500여년간 왕실에 청자를 공급하였다. 고려청자 비색의 비밀은 불과 공기의 싸움에서 흙가마에서 소성시 공급되는 산소의 양을 통제하는데 있다.

12C 고려는 태토를  칼로 파내고 그 속에 다른 색의 흙을 집어넣어 만드는 상감기법을 개발하여 그 유명한 상감청자를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고려청자가 송의 기술을 뛰어넘자 남송시대에는 고려 귀족들이 중국 청자를 수입하지 않고 고려청자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남송의 수도 항저우 발굴에서 고려청자들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오히려 고려상감청자가 남송으로 수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2C 고려청자는 중국 관요에 영향을 주어 형식과 모양에서 고려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고려 주전자에 있는 뚜껑 결합 고리가 중국에 나타나게 되고 중국이 자랑하는 명의 명품 청화백자의 형태와 문양에서 고려자기 형태가 나타난다.

필리핀에서 고려청자가 발굴되었는데 규석받침으로 특징되는 증거가 확실하다.  또  일본의 무사계급 상류계층에서는 고려청자를 갖고 있는 것이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징표였을 정도 였으며, 몽고지역에서도 고려청자가 출토되는 등 당시 고려청자가 일본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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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내가 교장으로 재직하는 8년 동안 학교 회계를 농협으로 지정하여 농협과는 비교적 좋은 인연으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퇴직한 뒤에도 동네 농협을 출입하다 보니 은행 직원과 낯을 익히게 되었다. 가끔 지점장실에 들어가 차도 마시고 한담을 나누기도 하였는데 수원농협 권혁진지점장은 유달리 친절하여 가까이 사귀게 되었다. 그는 정년 퇴직하면서 아랫 직원을 불러 내가 나가더라도 맹교장님께 잘 해드리라고 부탁을 하기까지 하였다. 사실 은행에 돈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별 중요한 손님이 아닌데도 권지점장의 나에 대한 배려는 특별하였다.

그가 퇴직하고 나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해서 나갔는데 아들 혼인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까지 가는 일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마다할 수 없어 오늘 영등포에 가서 주례를 서고 왔다.

예식 중간에 혼주가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더니 아주 만족해 하였다.  혼주가 손님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 당연히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례를 맡으면 늘 하는 소리인데 성공하려 하지 말고 만족하라고 했다. 만족하는 저점 ! 거기가 바로 성공이라는 말을 당부하였다.

김은주 작가의 출판기념회가 동시간에 열려 참석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역시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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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여주에 마련한 내 우거에 사과가 열렸다. 지난 주 따서 먹어보니 맛이 들었다. 모두 딸까 하다가 식구들에게 먹여주려고 남겼다가 다시 가보니 새가 와서 거의 다 파먹었다. 새도 기다림의 맛을 안다. 풋과일은 먹지 않고 맛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파먹는다. 다행이 남은 3개를 수확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는 이것 저것 쪼지 않고 먹는 것만 집중적으로 쪼아서 남은 3개는 온전하였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모양은 정말 흉하였다. 일년 내내 농약 한 번 살포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온갖 병충해에 시달리다가 저런 처참한 몰골을 만들어 냈다. 이른바 기적의 사과다! 먹어보았더니 정말 맛이 좋다! 아! 기적의 사과!!

기적의 사과 관련 신문에서 발췌한 것을 여기에 옮긴다. 여간해서 남의 글을 옮기지 않는데 이것은 특별한 내용이라 신문에서 끌어다 쓴다.

지난 100여년 사이 인간이 가장 활발한 품종개량을 해온 과일이 사과다. 그러는 동안 사과는 농약 없이는 기르지 못하는 과일이 되어 버렸다. ‘과학영농’을 표방해온 현대농법은, 비료와 농약과 농기계라는 형태의 석유에너지를 원료로, 자연물의 짝퉁인 ‘합성식량’을 제조하는 공정일지도 모른다.

 

사과를 재료로 사과 수프를 만드는 레스토랑(히로사키의 ‘레스토랑 야마자키’)의 주방장이 우연히 발견한 사실 때문에 사과 생산자 기무라씨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무라씨의 사과를 반으로 갈라 냉장고 위에 방치했는데 2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고, 일반적인 갈변도 없이 달콤한 향을 내뿜으며 시든 것처럼 조그맣게 오그라든 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기적의 사과’라고 불렀다.

 

 

평범한 사과농사꾼 기무라 아키노리는 우연히 ‘자연농법’을 접하고 그것에 꽂히게 된다. 자연농법은 말 그대로 자연회귀의 농법. 땅을 갈지도, 풀을 뽑지도 않으며, 화학비료나 농약은 일절 치지 않는다. 다만 퇴비와 토착미생물을 이용해 작물의 생명력을 북돋울 뿐이다.

 

 

야생에서 가장 멀어진 사과를 야생농법으로 길러보려 한 그의 시도는 어찌 되었을까.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자 아니나 다를까 과수원은 잡초천지가 되고, 해가 갈수록 나무들은 지실이 들어갔다. 아예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몇 년 새 절반가량이 고사해 버렸다. 주변에선 그를 바보, 파산자라고 놀렸다.

 

절망이 거듭되던 어느 날,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뒷산에 오른다. 그랬다가 거기서 야생 수목들을 보고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도토리나무는 인간의 손길을 타지 않고도 어떻게 저토록 충실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까? 그가 깨우친 답은 바로 흙이었다. 비료와 농약 범벅인 농장의 흙은 영양분이 넘쳐 나무들이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다보니 뿌리의 힘도, 생명력도 허약해져 있을 수밖에! 깨달음을 얻고 내려와 과수원에 콩을 심자 뿌리혹박테리아가 생겨 땅이 살아났고, 사과나무도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콩을 심은 지 3년, 자연농법을 시작한 지 8년째 되던 봄, 남은 사과나무 중 한 그루에서 일곱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두 개가 결실을 맺었다. 그런데 그 맛이 실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9년째이던 이듬해, 마침내 기적이 현실로 나타났다. 온 과수원에 사과꽃이 만개한 것이다. 그해 가을, 꽃을 솎지도 않아 탁구공 만해진 사과를 산더미처럼 거두었다.

 

1991년에는 사상초유의 태풍 속에서도 그의 사과밭은 80% 이상이 끄떡도 없었다. 이 이야기가 NHK의 다큐로 세상에 알려지자 ‘기적의 사과’는 먹어보는 게 소원인 명품이 되었고, 자연농법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까지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기무라씨의 ‘야생 사과’는 우선 놀라울 정도로 맛있다고 한다. 생생한 풍미와 신선한 과즙이 살아있다는 게 먹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게다가 냉장고에 넣지 않고 두 조각으로 가른 채 방치해도 몇 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고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찾는 사람이 많아 온라인 판매 개시 3분 만에 품절될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그는 어떻게 농약도 안 쓰고 사과를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실은 내가 아니라 사과나무가 힘을 낸 거지. 이건 겸손이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를 돕는 것 정도야”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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