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산방일기 11

전에 같은 학교에 함께 근무한 박건웅 선생님은 시인이다.

지금은 명퇴하셨고 교회에서 일요일 주일 예배 시간에 가끔 만난다.

선생님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시절 정년이 갑자기 단축되어 명퇴하셨는데

명퇴식에서 내가 무명교사예찬을 읽어드렸다.

시를 아주 쉽게 쓰는 분인데 새로 7번째 시집을 냈다면서 한권 주셨다

그 시집을 읽다가 [숨어버린 마을]이라는 시가 너무 좋아 수십번 읽었다

산방의 벽에 써서 붙이고 싶다. 우선 여기에 원문을 옮겨본다.

-숨어 버린 마을-

수수 울타리 사이로 오손 도손

이웃 정 나누며 살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비대한 몸집에 밀려

마을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멀리 계양산을 타고 내려온

빨간 저녁노을이

마을에 앉으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남정네는

황소의 방울소리와 함께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을 향해

마을을 향해

들길을 걸어왔고

검불에 불지피며

저녁밥 짓는 아낙은

방울소리 기다리며 몇 번이나

울 너머로 그 하얀 목을

학처럼 빼곤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노을이

자리를 밤에게 양보하고

마을을 떠날 즈음

남정네가 마당으로 들어서면

무엇이 그리 수줍은지 아낙의 볼은

방금 떠나간 노을마냥 빨개졌고

아이는 싯누런 콧물을 소매로 훔치며

아빠를 반겼고

삽살개도 덩달아 꼬리를 치며

마당을 뛰어다녔다

밤하늘의 총총한 별빛이 실비처럼

쏟아져 내리면

멍석 가까이 매캐한 쑥불연기 오르고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운 손자녀석

나무꾼 선녀 이야기해 달라고 칭얼거릴 때

수수울타리 위로 하나 둘

반딧불이 날았다

어른들 아이들 가족 모두가

옥수수 감자를 야식으로 먹으면서

얘기꽃 웃음꽃 피우느라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단란한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옛 마을 흔적조차 찾을 길 없고

차량의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매연이 안개처럼 거리에 흐르고

타이 맨 남자와 양장한 여자들

그리고 예체능학원명이 새겨진

가방 든 아이들이 활개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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