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

 

앞으로 신호위반을 절대로 안하겠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게로 신호위반을 아주 드물게 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다.

하여 앞으로는 신호위반을 절대로 안하기로 결심하였다.

빨간 신호등에 진입하였기 때문에 범칙금을 내라는 우편물이 왔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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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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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수필가협회장을 지내고, 경기여류문학회장을 역임하셨으며

수원예총 예술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임성자선생님의 수필을 읽었다.

 

임성자 선생님은 수원문학 자랑스러운상 수상

경기수필문학상 수상

경기문학인상 수상

경기여류문학 대상 수상에 빛나는 원로 문인이다.

 

이 책에서는 가족사가 많이 나온다.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특히 두명의 손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여성으로서 아주 섬세한 감정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수필은 남성과 여성의 문체가 다르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여류 수필가가 많고 남성 수필가는 드물다.

남성이 감정 표현에 둔탁해서인가? 피천득씨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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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40년 

 

유암(柔岩) 맹기호 

 

촌사람이 도시로 올라와 어두운 셋방살이 5년 후 1975년 봄에 아버지와 함께 빨간 벽돌 양옥 2층을 지었다.

삽으로 모래를 비비고 등짐 벽돌이 무거웠지만 마음이 들떴다.

마당에 연못을 파고 잉어를 띄웠다. 볕 좋은날 자라가 등껍질을 말리려 잔디에 올라왔다.

아버지 회갑 날 밀려오는 손님들에게 모치를 버무려 회를 냈다.

2층 작은방에서 신혼을 보냈다.

아들을 낳던 날 석자짜리 애기 적송을 심었다.

그 날 왜 사냐고 아들이 물을까 겁났다.

보모가 7년이나 바뀌지 않고 정성을 다했지만 아들은 피냄새로 엄마를 땡겼다.

아침이면 주름치마 밑자락을 붙들고 학교가지 말라고 울었다.

2층 난간에서 놀다가 말벌에 쏘였다며 전화기에 대고 악다구니로 울었다. 매미들이 놀라 숨을 죽였다.

골목에서 자전거를 배우다 얼굴부터 다리까지 온몸에 찰과상을 입었던 날 사내가 되는 과정이라고 기를 세웠다.

마당에 농구대를 세웠다. 토요일이면 3부자 농구공, 축구공, 야구공을 챙겨 박지성이 운동하는 세류초등학교에서 뛰었다.

가을날 주일예배에 다녀오면 2층 베란다에서 전시회에 쫒기는 그림을 그렸고 아내는 옆방에서 밀린 책을 읽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삐지기대장 아버지를 찾으러 온식구가 매산시장을 헤멧고 지하실에서 만취된 아버지를 끌고 나왔다.

몇 살 아래이며 키도 작은 어머니는 거인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열등한 동물이라는 생각은 내 신념이 되었다.

아버지는 연례행사로 나가 살라고 소리치셨다. 세상이 험하고 아직 천지를 구분 못하는 미욱한 제가 떠날 수 없다고 무릎 아양을 떨었다.

장학사 시험 떨어지고 아무도 몰래 다시 재수하여 시험보러 가는 날

아버지가 아범 떨어져도 괜찮아 그만하면 아범 자격 있어이 소리를 듣고 돌아설 때 눈물을 마당이 몰래 보고 있었다.

나무는 크면서 오래된 순서대로 잘려나갔고 마당에 어린 나무를 네번이나 다시 심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심은 적송만 편애하여 목숨을 보전하였다.

어머니는 숯을 가마니로 사셨고 손자를 먹인다고 주말이면 동네 눈치를 봐가며 등심을 구었다.

 재작년 가까운 일가들만 불러 아버지 90회 생신상을 차렸다.

두 손자는 집을 나갔다. 핸드폰을 끼고 살면서 소식도 없다.

아버지는 금요일마다 손자가 오냐고 물으신다.

오늘 4식구의 나이를 합하여 평균을 내보았더니 74.5세다.

어떤 때는 이틀씩 말도 안하고 소 부릴 때처럼 힘으로만 하지 말고 슬슬 구슬려야하며

성질이 더러워 누구에게 주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끼고 산다고 말하는 집사람을 옆에서 보면서

 너도 내 비위 맞추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그대와 함께 산지 불혹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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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유암(柔岩) 맹기호 

 

촌사람이 도시로 올라와 어두운 셋방살이 5년 후 1975년 봄 아버지와 함께 빨간 벽돌 양옥 2층을 지었다. 삽으로 모래를 비비고 등짐 벽돌이 무거웠지만 마음이 들떴다. 마당에 연못을 파고 잉어를 띄웠다. 볕 좋은날 자라가 등껍질을 말리려 잔디에 올라왔다. 아버지 회갑 날 밀려오는 손님에게 모치를 버무려 회를 냈다.

 

2층 작은방에서 신혼을 보냈다. 아들을 낳던 날 석자짜리 애기 적송을 심었다. 그 날 왜 사냐고 아들이 물을까 겁났다. 보모가 7년이나 바뀌지 않고 정성을 다했지만 아들은 피냄새로 엄마를 땡겼다. 아침이면 주름치마 밑자락을 붙들고 학교가지 말라고 울었다. 2층 난간에서 놀다가 말벌에 쏘였다며 전화기에 대고 악다구니로 울었다. 매미들이 놀라 숨을 죽였다. 골목에서 자전거를 배우다 얼굴부터 다리까지 온몸에 찰과상을 입었던 날 사내가 되는 과정이라고 기를 세웠다. 마당에 농구대를 세웠다. 토요일이면 3부자 농구공, 축구공, 야구공을 챙겨 박지성이 운동하는 세류초등학교에서 뛰었다. 가을날 주일예배에 다녀오면 2층 베란다에서 전시회에 쫒기는 그림을 그렸고 아내는 옆방에서 밀린 책을 읽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삐지기대장 아버지를 찾으러 온식구가 매산시장을 헤멧고 지하실에서 만취된 아버지를 끌고 나왔다.

몇 살 아래이며 키도 작은 어머니는 거인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열등한 동물이라는 생각은 내 신념이 되었다. 아버지는 연례행사로 나가 살라고 소리치셨다. 세상이 험하고 아직 천지를 구분 못하는 미욱한 제가 떠날 수 없다고 무릎 아양을 떨었다. 장학사 시험 떨어지고 아무도 몰래 다시 재수하여 시험보러 가는 날

아버지가 아범 떨어져도 괜찮아 그만하면 아범 자격 있어이 소리를 듣고 돌아설 때 눈물을 마당이 몰래 보고 있었다.

 

나무는 크면서 오래된 순서대로 잘려나갔고 마당에 어린 나무를 네번이나 다시 심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심은 적송만 편애하여 목숨을 보전하였다. 어머니는 숯을 가마니로 사셨고 손자를 먹인다고 주말이면 동네 눈치를 봐가며 등심을 구었다 재작년 가까운 일가들만 불러 아버지 90회 생신상을 차렸다. 두 손자는 집을 나갔다. 핸드폰을 끼고 살면서 소식도 없다. 아버지는 금요일마다 손자가 오냐고 물으신다. 오늘 4식구의 나이를 합하여 평균을 내보았더니 74.5세다.

 

나도 아버지 닮아서 어떤 때는 이틀씩 말도 안하고 소 부릴 때처럼 힘으로만 하지 말고 슬슬 구슬려야하며

성질이 더러워 누구에게 주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끼고 산다고 말하는 집사람을 옆에서 보면서

집아 너도 내 비위 맞추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그대와 함께 산지 불혹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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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문인협회 워크숍

 

수원문인협회 워크숍에 다녀왔다.

전남 지방으로 1박2일간 다녀왔다. 고정희시인생가, 김남주시인생가, 명량해전격전지,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등을 둘러보았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소인도라는 작은 섬에서 마을 회관을 빌려 세미나를 하였다

세미나는 분과장 중심으로 발표했는데 시, 소설, 희곡, 시나라오, 평론, 번역 시낭송 등의 분과장들이 발표하였는데

모두 내공이 깊은 분들이어서 공부가 되었다.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다. 마라톤이 걱정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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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3월 26일

 

 며칠 뒤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피격되어 국군46명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피격 5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여 학교 정문에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아마도 경기도 전체에서 나 하나 뿐일 것이다.

세계의 전문가들로 다국적 조사반까지 구성하여 천안함을 조사하여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논란이 있다고 하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 우리는 왜 이럴까? 국론분열, 지역갈등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생떼같은 내 자식이 46명이 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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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발표 천안함 피격 보고서 서문

 

 

머리말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우리 해
군 장병 46명이 산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의 침몰원인과 행위자를 명백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3월 31일 민·군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전문가와 함께 외국 전문가까지도 참여시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서해 사건현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험난한 기상과 조류 등 악조
건 속에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활동을 실시하여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
서 발사된 어뢰에 의해 침몰되었음을 밝혀내고 5월 20일 이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6월 14일 유엔 안보리에 조사결과를 설명하였으며, 그 결과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면
서 대남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
과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사실과 다른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
는 등 무책임한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국방부는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올바르게 알려 불필
요한 오해와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입증 자료들을 수록
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보고서는 개요, 침몰요인 판단 결과, 분야별 세부분석 결과, 결론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조사 내용과 판단 결과는 부록에 수록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침몰의 원인
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모든 침몰 가능 요인을 망라하여 조사한 전 과
정을 서술하였으며, 300개 이상의 각종 그림과 도표를 활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
하였습니다.
특히 4개 국가와 국내 12개 민간연구기관 및 군의 총 73명의 전문가가 과학수사·함정구
조·폭발물·정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조사 및 보고서 작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보고서 내
용에 전원이 동의하여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료가 되었습니다.
본 보고서는 어뢰 공격으로 침몰된 군함의 선체를 인양하여 조사한 세계 최초의 보고서로
서, 결정적 증거물(Smoking gun)인 어뢰 추진체를 수거하고 폭약성분까지 검출한 것은 어떠
한 은밀한 공격행위도 증거로 남는다는 사실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
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는 이번 천안함 사태를 거울삼아 다시는 북한의 기습적 도발을 허용하지 않겠다
는 다짐과 함께 우리 국민의 확고한 안보의식과 안보문제에는 어떤 개인·집단적 이해도 개
입될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데 기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본 보고서는 군사비밀 내용이 제외되었고, 과학적·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용어들을 쉽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음을 이
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금번에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
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동안 제기되어 왔던 모든 오해와 의혹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평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 국민들과 국내외 학자 및 언론인 모두에게 유용한 자
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0년 9월
민·군 합동조사단

 

 

 

— 이상, 보고서의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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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이^-^

 

 

 오랫만에 석영이 사진을 올려본다. 요즈음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집에 온지 한달은 되어간다.

부대에서 바쁘게 지내는 모양이다. 이번 주말에는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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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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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ㅅㅂㅎ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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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예총회장 이취임식^-^

 수원예술단체총연합회장 이취임식에 참석하였다. 문인협회 회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그동안 예총을 12년간이나 이끌어 왔던 사람도 수원문협회장 출신인 김훈동씨여서

우리 문협에서도 김현탁 전임회장이 출마하였으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였다. 예총은 수원의 모든 예술단체들이 모인 집합체로 당선된 전애리씨는 음악을 한 사람이다.

수원대학교에서도 음악을 가르쳤으며 수원시 의회 의원에 당선된 전력도 갖고 있다. 우리나나 대통령도 여자이지만 수원예총도 여자 수장이 거느리게 되었다.

 

전애리 신임 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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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임식에 참석한 문인협회 회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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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이 불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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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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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배를 그렸을까 생각해보니 1997년 대부중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부터 였다.

수업 끝나고 바다에 나가면 고깃배가 떼지어 물때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배를 그렸다.

화가가 그림을 오래그리다보면 어떤 특정한 모티브를 계속해서 그리게 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배다.

대부중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좋은 시절이었다.

교사가 많지않으니 사회과목을 중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6개학년을 가르쳤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들에게는 밤11:30분까지 영어를 가르쳤다. 우리 반은 영어 성적이 평균80점, 옆에 반은 평균45점이 나왔으니

옆에 반 담임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 때 교장이 보기에 맹선생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내가 교장이 되고보니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예쁘다.

위는 싸인펜으로 그린 크로키고

밑에 그림은 수채화물감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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