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수필가이신 김원중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부음을 전하지 않아 모르고 있다가 며칠 전 납골당에 다녀왔다. 문학기림회 회장을 지내셨고 포항공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정년하셨다.
매우 인자한 분이셨고, 자상한 분이셨다. 혈관질환으로 두 차례 쓰러졌다가 다시 재활과정을 거쳐 지팡이를 집고 다니셨는데 90세에 가셨다. 슬프다. 부디 아프지 않은 곳에 가셔서 평안하시길 빈다.


신문에 난 기사를 찾아 여기에 올린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끝내 시가 된 삶…김원중 포스텍 명예교수 별세

1936년 4월3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고인은 안동에서 자랐다. 10대 초반 부친을 여읜 뒤 소년가장이 돼 잡화상, 화장품 행상, 초등학교 급사 일을 하며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12년간 야간부를 다녔다. 대구 오성고와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대학원을 거쳐 1980년 중앙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난 속에서도 고인을 붙든 것은 문학이었다. 시인 유치환과 박양균의 영향 속에 시와 희곡 연구의 길로 들어섰고, 고등학생이던 1957년 시집 ‘별과 야학’을 펴냈다.
고인은 1968년 영남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영남여자초급대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가 됐다. 이후 영남전문대와 영남대, 대구한의대, 포항공대(현 포스텍)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2001년 퇴직 이후에도 삶은 그를 여러 차례 시험했다. 2002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왼쪽 손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고, 2007년에는 낙상으로 고관절 수술도 받았다. 처음에는 휠체어에도 오르지 못하고 말도 하기 어려웠지만, 아내와 며느리의 도움 속에 3년간 재활한 끝에 다시 지팡이를 짚고 바깥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투병 뒤에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필집 ‘아버지가 주신 연필 두 자루’, ‘사람을 찾습니다’, ‘걷고, 웃고, 읽으며’를 냈고, 평론집 ‘영남의 인물 인문학사’도 펴냈다. 2019년에는 시집 ‘명당 죽집’을 출간했다.
고인은 대구 반월당의 한비문예창작대학과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에서 10년 넘게 문학 강의를 이어갔고, 경북문인협회에서도 활동했다. 2024년 5월 다시 쓰러진 뒤 2년간 투병하다 끝내 눈을 감았다.
아들 김기현씨는 “휠체어를 탄 채 택시를 부르겠다고 하시기에 불가능하다고 말렸더니, 아버지가 ‘너는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고 하셨다”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주인공처럼 어떤 시련이 와도 끝내 버텨내신 분”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이옥희씨와 1남1녀, 며느리 한희정씨, 사위 크리스 포터씨가 있다. 빈소는 대구전문장례식장 특30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천주교 안성추모공원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