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그림은 제가 15살 때까지 살던 충청도 고향을 떠나기 전 날 밤에 착찹한 마음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았는데 훗날 1987년에 32살이 되어 15살이던 그 밤의 느낌을 그린 것입니다.

선의지(善意志)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긴 겨울방학에 우리들의 놀이문화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이전이었으니 겨울 농한기에 어른들도 할 일 없이, 사랑방에 모여 투전과 술로 시간을 보내
며 개울이 봄으로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어른이 화투치러가서 집에 아이만 남
은 집을 아지트로 삼아 눈을 피해 소위 ‘뽕’이라 불리는 투전을 했다. 그런데 재종형제인 나
이가 한 살 더 먹은 아무개(나이는 한 살 많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는 투전판에서 사탕 장
사를 하였다. 참으로 영악한 아이였다. 시내에 가서 사탕 한 봉지를 사다가 투전판에서 이문
을 붙여 낱개로 파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천안시내로 물건 사러 가는데 같이 가
서 주인을 혼란하게 하고 훔칠 수 있다면서 꼬드꼈다. 8km를 걸어서 갔다.
아!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천안 시내 큰 재에 있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대성상회!!
당시로는 큰 상점이었다 나와 재종은 주인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키고 혼란하게 한 뒤, 옷
을 열고 앞가슴에 물건을 넣었다. 문턱을 넘어오는데 뒤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
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한다. 가게를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긴 후 20m를 벗
어 난 다음 전봇대 10개가 지날 때까지 뛰었으니 500m는 족히 뛰었다. 나는 앞가슴을 열고
오리온 별사탕을 내보였다. 삼각형의 비닐봉지에 빨강, 노랑, 파랑색 별모양의 사탕이 들어
있는 10원짜리 ‘오리온 별사탕’!! 내가 세상에서 최초로 한 도둑질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겨우 그거냐면서 잠바를 여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과자가 꽉 차있었다. 50원짜리 사탕봉지
가 10여 개 나왔다. 나는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자랑삼아 그 날의 전과를 말씀드렸더니 아
버지에게 일렀고, 아버지는 그 집에 다시 가져다주고 용서를 빌라고 하셨다. 도저히 갖다줄
수가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모두 먹어버리고 갖다 주었다고 거짓말까지 하였다 . 이 사건
은 남의 꼬임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에는 순수한 내 의지만으로 도둑질을 하였
다. 중학교 1학년 때 교실 청소 후 남이 두고 간 우산을 훔쳤고, 역시 청소 후 책상 속에
두고 간 플라스틱 필통을 집으로 가져왔다. 우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나서 버렸지만……
아! 문제의 그 필통! 겉에 다보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던 그 필통! 썩지도 않고, 녹슬지
도 않으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나의 양심을 괴롭혔다. 나는 카인의 후예로 생각되었다. 선
천적으로 나는 악인일 수밖에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세 번에 걸쳐서 남의 물건을
훔친 사실로 인하여 아주 오랜 세월동안 괴로움에 시달려야했다.
나는 칸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는 출신성분부터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칸트가 말한 ‘선의지’란 이성(理性)의 가르침에 따른 옳은 행위를 ,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이든 관계없이 단지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는 의지이다. 결과에 대
한 고려나 자연적인 경향과는 추호도 타협함이 없이, 도덕률(道德律)을 준수하는 것이 우리
에게 주어진 절대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의무의식에서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
를 가리켜 Kant는 선의지(善意志) 라고 하였다.
마흔 여덟이나 먹은 오늘
이제는 나도 정언명령에서 나오는 선의지(善意志)대로 살고 싶다.
정말 선의지(善意志)로만 실천하고 살고 싶다. 행동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