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양평 정약용 생가에 들렸다.
생가에는 여유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는데 그렇게 지은 연유를 다산이 설명하는 글이 있어 여기에 옮겨적는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 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한다.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나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의 말에 여( 與)는 겨울의 내를 건너는 듯하고 유(猶)는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 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500여권의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도 자신에게는 만족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산은 자신을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 위와 같은 표현을 썼으리라 생각했다.
나야말로 머리에 들은 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그런 사람이다.
다산이 자신을 저렇게 표현했을 진데 그렇다면 나는 어쩔것인가? 상상하기 두렵다.
500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에 비하면 나는 앞으로 남은 내 생에 몇 권이나 더 낼까?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더하여 2세기 이상 새로운 문명 생활을 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한량없다.
과거 목민심서를 학생용으로 읽었는데 언제 제대로 읽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