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읽었다.
워낙 많은 책을 쓰신 분이라 박완서의 책을 여러권 읽었는데 왠일인지 이 책은 읽지 않았었다. 재미었어 단숨에 읽었는데 아름다운 부분을 여기에 타자해본다.
코흘리개를 표현한 부분이 재미있다.
—-철부지 어린아이를 싸잡아서
코흘리개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박완서씨가 당신 아이들을 기르면서 감기가 들지 않으면 절대 코를 흘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음….그러니까 감기로 병든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알아주지 않고 코흘린다고 나무라고 철부지 코흘리개라고 부르면서 업신여기고…..그랬었구나….
나도 어릴적에 양소매는 문지른 코로 언제나 번들거렸으니…..이제와 생각하니 정말 불쌍하다 코흘리개들아 맹기호도 사과한다. ㅎㅎㅎ~
소나기가 오는 풍경을 그린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들에 나가 있을 때 멀리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우리가 마을 추녀 끝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함께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미친둣이 환성을 지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웅성대던 들판도 덩달아 환희의 춤을 추었다.
그럴 때 우리는 너울대는 옥수수나무나 피마자나무와 자신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환희뿐 아니라 비애도 자연으로부터 왔다.
——대강 줄여서 옮겼는데 너무나 문장이 아름답고 내가 어릴적 들판에서 만난 소나기를 눈앞에서 보는것 처럼 생생하다.
어쩜 글을 이리 쉽게나열하며 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뱉을까? 천재 박완서!!
비애를 표현한 대목도 좋다.
—-내가 최초로 맛본
비애는 다섯살 때 어머니 등에 엎혀서 본 유난히 빨간 저녁노을이었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것 같았다. 마을의 풍경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그냥 딴동네 갔았다.
정답던 사람들도 모닥불을 통해서 보면 낯설듯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울음을 터트렸다.
—바람이 유난히 을씬년스럽게 느껴지는 저녁나절 동무들과 헤어져 홀로 집으로 돌아올 때
홍시빗깔의 잔광이 남아있는 능선을 배경으로
텃밭머리에서 너울대는 수수이삭을 바라볼 때의 비애를 무엇에 비길까
다음에는 이곳 저곳에서 문장이 아름답거나 특이한 표현이 있는 부분을 그냥 발췌하여 적어본다.
—방학이 되면 서울을 떠나 시골에 갈수 있었다. 집에 가려면 고개를 넘고 들을지나고 개울을 건널 것이다.
풀과 들꽃과 두엄냄새가 어울린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초여름 첫새벽에 달개비가 깔린 푸른 길의 이슬을 맨발로 밟을 때처럼 순수한 희열을 느꼈다.
그건 향수라기보다는
짐승같은 굶주림이었고 서울 아이들에 대한 최초의 우월감이었다.—-
오빠가 맏상주 였으므로
굴건제복을 했다
—텃밭에는 먹을게 한창이었다. 당장 따서 쩌낸 옥수수의 감미를 무엇에 비할까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 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양반의식 중에서 선비정신은 빼버리고 아전근성같이 고약한 것만 남아난 것이 우리 집안의 소위 근지가 아니었나 싶다.—-
—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온 범상한 그것들하고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오빠는 왜 결핵을 앓고 있는 여성과 결혼을 서둘렀을까?
나도 그 까닭을 끝내 모르고 말았지만
세상의 누가 돌연
젊음을 엄습하는 운명적이고도 무분별한 정열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여기서 중략하고 나중에 또 써야겠다. 아내가 헬스장에 가야할 시간이라고 재촉한다.
나는 엄마가 오줌을 누는 줄 알고 일부러 딴데를 보았다. 한참 있다가 돌아보았더니 아린애처럼 땅을 주무르고 있었다.
나하고 시선이 마주치자
감자꽃처럼 초라하고 계면쩍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땅이 어쩌면 이렇게 거냐? 햇볕이
졸리도록 따스한 봄날이었다.
은방울꽃은 밥풀만 한 크기의 작은 종이 조롱조롱 맺힌 것 같은 흰꽃이 잎사이에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앙큼하도록 농밀한 꿀샘을 가지고 있었다.
-음…..
나도 은방울 꽃을 아는데 너무 작아서 꿀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해보지 못했다 다음에 꼭 먹어봐야지!
내가
이 세상에 나와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진미를 대라면 서슴치 않고 게장을 대리라.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이면 암게는 딱지 속에 고약처럼 검은 장이 꽉찬다.
이 때 담아 오래 삭혔다 먹는 게장 맛은 아무리 극찬을 해도 모자라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는
좀 야만적인 표현을 써야만 성에 찬다.
나는 숨넘어가는 늙은이처럼 헐벗고 정기 없는 산을 혼자서 매일 넘는 고독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추억을 만들고 서울 아이들을 경멸할 구실을 찾았다.
그러다가 서울아이들이 아카시아꽃을 먹는 것을 보고 따라 먹었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하여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 해야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 만큼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이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벝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나는 오빠를 딴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대해 묘한 긍지를 느꼈다. 나야말로 무엇을 알아서라기 보다 전형적인 속물의 세계에서
별안간 우뚝 솟은 어떤 정신의 높이를 본 것 같은 환각이었다. 그런 건방진 느낌은 그 무렵 왕성해진 독서체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좋은 표현들을 나열해본다.
, 그날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뜨악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서로 마음이 어긋난다고 느꼈다.
두집이 공평하게
노느매기를 했다.
그 여자 앞에서 숙부는
흐늑흐늑해 보였다.
그 집을 벗어난 후에도 무언가 크게 오염된 것처럼
께적지근한 자기혐오감을 느꼈다.
대낮에도 뒷간은
어둑시근했다. 넓은 벌을
풍성한 치맛자락처럼 거느리고 있었다.
나의 심미안에 조악한 원색으로 처바른 반닫이는
생급스러웠다.
사랑의 할아버지는 반년 전보다 훨씬 더 고적하고
추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