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1학년 2반 박용헌이……

수업중에 반장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용헌이가 숨을 못쉬겠다고 합니다.”

나는 매우 놀랐다. 그리고 반장에게 양호실로 데리고 가도록 하였다.

한참 후에 반장은 돌아왔고 양호실에 가니 양호선생님이 없어서 교무실에

가서 교감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병원에 가기위해 집으로 갔다고 하였다.

퇴근 길에 교감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용헌이를 아느냐고?

나는 “오늘 수업시간에 아프다고 하여 집에 보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매우 아픈표정의 용헌이를 보고 교감님이 “너 그렇게 아프면 집에

가지 왜 안가고 있었니?” 라고 물었더니 용헌이가 “맹선생님 수업을 듣고

가려고 아픈것을 참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 나는 숙연해졌다, 세상에 내 수업을 듣기 위해 그토록 아픈것을 참고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니!!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고 했는데……

얼마나 감사하고, 기특하고, 두려운 일인가!!

수업내용은

– 춘추전국시대의 학문과 생활상

– 제자백가의 의미(공자,맹자,순자,노자,장자,묵자,손자,한비자 등)

– 제자백가와 같은 많은 학파와 사상가가 나오게된 배경

– 철기 사용으로 진나라 때보다 늘어나게 된 농업생산량, 전투력의 향상

등이었었다.

수업준비를 더욱 철저히해야겠다. 더 연구하고 더 책을 보고 더 많이 준비

해야한다. 학생들이 나를 보고있다. 그리고 대강하는 수업은 내 자신이 용

서하지 못한다. 더욱 근신하고 반성해야한다. 용헌이는 다행스럽게도 내 수

업을 좋하하고있는 듯 하지만 모든 학생이 그렇다고 볼수는 없다. 시간이

모자란다는 핑게로 대충 넘어간 부분은 없는지, 아마도 있는것 같다……

용헌아 내일 상담실로 오너라 네가 배우다만 춘추전국시대에 대하여 1:1로

수업하자!! 오후 3시30분부터 기다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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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혼자 있는 시간은 참 좋다.

새벽에 잠이 깼다. 일요일 아침으로는 이른 5시였다. 할일은 많았지만, 나는 메일을 검색하였다. 멀리 떠난 큰아이에게서 소식이 왔다. 오락만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로 게임을 많이 하지만, 나름대로 제 인생의 목표가 뚜렷한 놈이다.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모든 과목이 A학점이고, 한 과목만 B학점이었다.

녀석이 어릴 때 체계적으로 독서교육을 시켰다. 도서관에도 데리고 다녔다. 녀석은 무서울 정도로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책 중에서 그림이 없는 200쪽 이상의 것만 목록을 쓰게 했는데 1년에 286권을 읽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녀석은 동서양의 웬만한 고전은 대충 읽었다. 녀석이 보고 싶다. 7시에 아침을 먹고, 마루에 나와 월간 문학 11월호를 읽었다. 김창직 시인의 시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분은 나의 등단을 허락한 분이기도 하다. 10시까지 책을 읽다 아내를 깨워 과일을 주고 교회에 갔다.

교회에 앉으면 나는 누구하고도 교감하지 않는다. 아내가 옆에 있지만 교회에서는 완전히 나 혼자다. 나는 이 시간이 넘 좋다. 교회의 층계를 오르면서 나는 잠시 후 갖게 될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다. 사실 아무런 방해 없이 혼자 있을 기회는 여기 말고는 없다.

요한복음 14장 “나를 믿는 자는 모든 것을 이루리라” 이 말이 오늘 설교의 주제였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다. 청마 유치환의 시집 서문에 보면 “신을 믿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나는 신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불행하다” 라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실감나는 말인가!! 청마의 마음을 충분히 알겠다.

요즘 부쩍 늙으신 아버지, 감기로 차안에서 죽을것 처럼 아프셨다는 정무학 교장님, 잘 먹지 않는다는 변난훈 교감님 손자, 멀리 가있는 나의 아들, 대학원 문제로 생각이 많은 임숙미 선생님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나오는 길에 불에탄 개척교회를 위한 모금함에 만원을 넣었다.

교회에서 국수를 먹고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가르칠 교재 내용을 정리하였다. 중국 고대사 부분인데 오랜세월을 가르쳐도 나는 왜 자꾸 까먹는지 모르겠다. 춘추전국-진-한-위촉오-진-남북조-수-당까지 정리하고 찾아보았다.

그리고 시범학교 일로 11개 학교와 경기도교육청, 경기교육정보연구원에 공문을 발송하였다.

그리고 오늘 낙엽을 한장 먹었다.

그리고 오늘 낙엽을 한장 먹었다.

참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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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La Traviata

대문을 닫으면서 우편함에서 편지를 뽑았다.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서 보

낸 11월 공연안내 팜플렛이었다. 넘기면서 이 가을에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공연이나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마지막 장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

랐다. 12월 7-8일 오후 7시에 국립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 공연 예고가 있

었다. 텔레파시인가?

나에게 두 시간의 방해 받지 않는 여유가 있다면 춘희를 듣고 싶고, 그 중

에서도 오페라 라트라트라비아타의 서곡을 듣고 싶다. 관현악으로 연주되

는 서곡은 아주 조용하고, 오페라 전체의 슬픔을 예고하는 듯한 애절한 현

악기 위주의 곡인데 나는 슬픈 감정보다는 조용하고 착 가라앉는 것이 마

치 평화로운 감정에 놓이게 된다. 이상하다. 슬픈곡인데 왜 나는 평화로운

가? 내가 평화로울 때 들어서 그런가? 슬픔이 평화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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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훗날 내가 가고 싶은 곳

나의 어린 여름날은 신발을 신지 않고 살았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길에는 발을 찌르는 유리도 없었다. 마을 앞 강변에는 모래가

뜨거웠고 물은 빛났다.

언제부터인가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갈 때면 나는 의례히 창밖을 본다. 내

가 앞으로 살만한 집을 고르는 것이다. 나는 16년이 지나면 정년을 한다.

그 때는 정말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산속에서 혼자 사는 것은 싫고, 7-8

가구의 이웃이 어울려있는 작은 마을이면 좋을 것이다. 시골에 가서 새로

집을 짓고, 요란을 떨것도 없이 누가 살다가 도시로 떠나버린 집을 사서 내

부만 조금 수리하면 될것이다. 잠자는 방 하나, 그림을 그리는 방 하나, 그

것이면 족할것이다. 작은 공간에서라도 그림 전시회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시집도 내고 싶을 것이다. 조그마한 텃밭을 일구면 좋겠다. 재미로

일구는 것이니 농사가 잘 안되어도 좋다. 연금에 의존하면 조금 궁핍하게

살것이지만 덜 쓰면될것이다. 밥도 조금만 먹을 것이다. 몸이 허락하는 날

까지 대부분의 시간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낼것이다. 그러다가 혹 중병이

걸리면 크게 병원신세를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이 아니겠는

가?

나는 요즈음 충청북도 괴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나는 정말로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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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의 원리…..

내 나이 47세!! 47세가 되어 나는 나 자신에게 준엄한 약속을 하려한다. 나

는 도덕적으로 완성되고 싶다. 47년이나 배웠는데도 도덕적으로 혼자 서지

못한다면 내가 너무나 불쌍하지 않은가!! 나는 10대 시절에 매우 도덕적으

로 민감하였으며 조그마한 부도덕한 일에도 몹시 괴로워하고 자책에 빠지

곤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어른이 되면서 도덕은 나의 관심에서 멀어

졌다. 그리하여 어른이 된 이후의 나 자신은 매우 비도덕적이었다.

Kant는 “네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

하라”고 하였다.

나는 오늘 부터 도덕적으로 완성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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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내 나이 47세!!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오늘 부터 일기를 쓰기로 하였다. 매일 쓸수는 없지만, 이렇게 공개된 공간

에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 인생을 이대로 보낼수는 없다는 자책감

이요, 할일없이 먹는 나이에 사회적 책임을 보태기 위함이며, 내 자신의 생

활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공자는 40을 不惑之年이라 하였다. 나는 7살이나

더먹은 뒤 늦은 나이에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존재 확인의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이제는 “어떻게 사는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재작년 여름날 안산시 선부중학교에 근무하는 한창엽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우리집에 왔다. 그분은 나 보다 여러살 아래인 후배인데 나는 한창엽 동지

가 “교수 학습 이론에 대하여 논하려 방문한줄 알았다. 그는 놀랍게도 “선

배님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까” 라고 물었다. 나는 몹시 당황하였

고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기억도 없다. 이제야 한창엽동지의 말이 가슴에 온

다.

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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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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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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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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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아랫목보다 더 따뜻한 금빛 모래톱을 뛰어가면

후두둑 날개 털며 물새들 날아올랐다

수정처럼 맑은 강물에 개헤엄치면
옆구리 모래무지 간지러웠다

언덕배기 안개 피어나는 뽕밭에 어머니 아버지 김매는데
팽개친 소 옆에 밀서리로 입술만 까맣게 그을렸다

어린 날의 시간은 길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 스무곡을 부르고
클레멘타인을 다시 불러도 해가 남았다

저녁 노을이 루소의 그림처럼 어둠을 내릴 때
어머니는 그 희고 긴 목을 싸리울타리 위로 뽑으며
소 몰고 나간 나를 기다렸다

바람과 햇볕이 나를 키웠고
강물은 나의 친구였다
내 생애에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시작노트 :

내가 소에게 풀을 뜯기던 강변 풀밭에 지금은 아산고속철도역사가 세워졌다.
내가 그 강물에 다시 갈 희망은 없다.
나는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고향 비슷한 곳이라도 좋다. 나는 꼭 간다……

 

상사화

기다릴 때마다 님이 오신다면 슬픔이 무에 필요있으랴!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시지 않을 때
너무나 외로워 절대고독 속에서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결핍과 패배,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질 때

글이라도 쓰자

 

rain 2


비가 온다

기와지붕 골을 타고 쑬쑬 거리더니
무에 그리 할 말이 많은가
마당에 자지러진다

님도 저 비를 보실까
엊그제 보았던 다람쥐는 어디로 가나
이 빗속에 점심은 먹었을까

비를 맞으며 누런 털에 먹물 빛으로 스미도록
오지 않는 소년을 기다리던 암소는
지금도 강변에서 나를 기다릴까

빗물에 사랑을
빗물에 고향을
모든 그리운 이를 띄워라

이 아침 강화에
또 비가 온다

 

짝사랑

작가 김훈이 쓴 글에
풍경은 스스로 그러하며,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고,
인간에게 아무 말도 걸어오지 않는데
인간이 풍경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짝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니 풍경은 그 자체로 보아야 하고 거기에 인간의 정서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김훈의 말은 풍경 즉 자연은 가치중립이라는 말일 것이다.
하긴 착한 산이 달리 없고, 마음 나쁜 산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허~…….
사물을 보면서 사물 그 자체로 보려면 얼마나 많은 내공을 쌓아야 할까?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혹, 풍경에 언어를 결합하는 것이 더 보기 좋은 것은 아닐까?

오늘 이른 아침
뒷산에 올라 셔터를 눌렀다.
아름다워서 눌렀다.
가만히 있는 자연에 대한 짝사랑인가?
이게 잘못인가?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rain 3


비가 내린다

내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비가 내렸다 그것이 생명의 시작이었다
끝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방랑자처럼 이 비를 맞고 싶다 그리고 걸어가련다

회색 안개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길
그대와 재회의 약속도 없는 길을 간다

나(我)는 무엇이고
도(道)는 무엇이며
비는 왜 내리는가
내 사유(思惟)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는 정말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

비가 내린다
오늘 또 비가 내린다

 

나의 아둔함은 끝이 없다


경북지방의 전탑을 보기 위해 이틀간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전탑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단순철창을 보인 불국사 석가탑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나라의 웬만한 탑은 모두 보았으니 이제 전탑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전탑이란 벽돌로 건물을 짓듯이 차곡차곡 쌓아올려 탑을 만든 것이다. 경주의 분황사탑, 신륵사의 전탑이 그러한데 볼 때마다 예쁘지도 않고 그저 그렇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생각을 180도 바꾸어 놓은 전탑을 이번 여행에서 발견하였으니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5번지에 있는 국보 187호 봉감모전5층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처럼 네모지게 다듬어 탑을 만든 것이다. 통일신라의 탑으로 보는 순간 대단한 물건임을 한눈에 알았다. 아! 이런 탑을 이제야 보다니 나의 아둔함은 정말 끝이 없다. 집에서 사진으로 보고 말았다면 어쩔 뻔 했나?

수성암의 검붉은 색도 아름다웠는데 강이 굽이쳐 흐르는 냇가의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국 탑의 정수인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시기에 전탑을 고집했던 어느 천재적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탑의 옆구리 스카이라인을 보면 5층에서부터 내려오는 감축률이 황금비를 이루었고, 감축의 상쾌함이 탑의 둔중한 느낌을 없애고 절대의 영역으로 두둥실 날아갈듯한 느낌을 보인다. 각층의 몸통 돌에 돋움 띠를 둘러 자칫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면의 디자인 밀도를 높여 고급스럽게 승화시켰다. 전탑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장중하고 감동적인 탑이었다.

나는 탑 앞에 서서 가슴을 두드리는 두터운 예술적 감동에 몸을 떨었다. 1300년 전에 이렇게 장대한 탑을 만들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 탑을 만든 장인이 탑을 완성하고 나서 하늘 높은 맑은 가을날 전체 높이 11m의 탑을 우러르며 얼마나 감격했을까! 볼수록 아름답고 장엄하다. 사진을 찍는 순간 하늘도 도와주었다.

국보 187호 봉감모전5층석탑
삼성디지털카메라 ST710 으로 촬영함

 

산방예찬(山房禮讚)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니
머리가 시원하다.

아! 좋은 곳에서 잠을 잤구나

여닫이 문을 열면
새아침의 청량한 빛이 가슴으로 온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의 신비함도 이러 했으리

샘물로 차를 달여
우주가 몸으로 들어온다.
자연과의 합일이로다.

바쁠 것도 없다
오늘은 비도 오시는 구나
편안한 낙수물 소리와 함께하는 오수는
선인(仙人)의 일상이요 니르바나의 세계로구나.

밤하늘에 뿌연 그리움으로 은하수 널릴 때
그대와 함께 이별, 저별 손짓하며
정다움 나누고 싶어라

 

파 도

얼마나 그리우면 저토록 끊임없이 달려와 제 몸을 부술까!

 

 

아들의 친구가 캐나다에서 온다고 한다. “마이클”이라고 하는 사내인데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공부를 무척 잘 하는 친구이다. 며칠전에 우리 집에서 자고 갔는데 어쩌면 그렇게 잘 자랐는지 정말로 오랜만에 반듯한 청년을 본다. 그 친구가 우리집에서 2주 정도 묵어간다고 하는데 그일로 인하여 오랜만에 도배를 하기로 하였다.

방의 묵은 짐을 밖으로 내놓는 일로 토요일부터 나는 분주하다. 짐을 정리하다가 19년 전 내 생일에 아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시를 발견하였다. 지금 보아도 명문이다. 여기에 올려본다.

그대 서른 해의 생일에 붙임

-임송순-

오늘
오월 여드레
그대 신록의 푸르름을 안고 태어났듯이
늘 오월의 이파리처럼 푸르러라

그대

가슴을 텅 비운 채 마주하여
모든 질서와 혼돈을 뒤로 한 채
잠시 우리의 생활을 벗어버리고
언제부터인가의 바램을
무언으로 얘기하자.

영원히 비워지지 않을
한잔 술로 축배를 들며
촛불의 아스라한 흔들림 저 편에서
그대 살아온 서른 해가 타는 것을 보네
온갖 색의 어우러짐 속에
그대 서른 색의 삶이 녹아 내리네

그리운 이도 하나 없이
늘상 그리움에 지쳤던 시절
때로는 빈 가슴 가득히 허전함이 차오르던 날
종종 오늘을 꿈꾸었다.

물오른 나무의 싱싱함을 닮은
그대를 위한 아침을 마련하고
그대 부드러운 눈빛 하나에도
내 스물아홉 해의 그리움이 채워질 수 있는 저녁을 꿈꾸었다.

언제나 샘솟는 기쁨으로
와 닿은 그대 사랑에
가만 가만 맨살로 다가가
그대 곁에 머물 수 있는
하늘 가득히 떠도는 바람으로 있고 싶어라.

언제나 마음에 꽃이 피고
항상 바람이 불었던 시절
내 강물 같은 기쁨으로 와 닿는 그대 사랑에
가만 가만 조용한 눈빛으로 다가가
그대 서른 해의 세월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달을 담고 가는
하늘로 있고 싶어라.

1985. 5. 8.
그대의 서른 해 생일 날 아침에
-아내 임송순-

 

적송(赤松)


저와 함께 사랑한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에게 해주신 맹세를 기억하시나요

그렇게 바람 따라 가신 날부터
봄이면 송화가루 비단처럼 날리어
님 오시는 길 영접하였고

가을 마다 편지에 날개 달아
소식을 보냈습니다.

그 길에 앉아서
세월 흘러 곱던 얼굴 그늘 서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온몸 붉게 물들었습니다.

끝끝내 님 오시지 않는다면
끝끝내 님 오시지 않는다면

새봄 오기 전에
이제는 제 마음 가져가시고
남은 숨도 거두어 주시옵소서

 

단 풍


아직도 코끝이 시렸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님 향한 일편단심이었어요
너무 이르다고 모두 말렸지만
온 세상 눈부시게 하며 연두빛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어요

아지랑이 겹겹이 일고
종달새 높이 울던 날
분단장 곱게 하고
달이 다시 차 오름보다 더 긴 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기다렸어요

남서풍 사납게 불고
스무 날 넘게 비가 오던 날 정말로 무서웠어요
바람이 저를 먼 곳으로 데려가
님 오신 날 저를 찾아 헤메일까 두려워
몸을 구부려 감으며 눈물로 기도했어요

사랑한다 하셨지요
돌아온다 하셨지요
기다려라 말씀하셨지요

그리워 그리워 하도 그리워

돌이 되어 버린 박제상의 아내처럼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처럼
오늘 저의 가슴이 열리고 불이 났어요
오늘 저의 가슴이 열리고 불이 났어요

시작노트:

사람이 목숨을 거는 일은 다음의 몇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유관순이나 잔다르크, 논개와 같이 명분을 내세우며 정의를 추구할 때이다.

둘째, 자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가 있다. 자동차에 치일 것 같은 자녀를 구하고 자신은 희생당하는 일이다.

셋째,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살리거나 또는 사랑 그 자체에 목숨을 거는 경우이다. 목숨을 걸고 사랑을 추구한다면 못이룰 사랑이 어디 있으랴!

이른 봄 새싹이 틀 때의 날씨는 사실 겨울 날씨처럼 춥다. 때를 잘못 알고 나온 새싹은 변덕스런 날씨에 얼어죽기도 한다. 새싹은 목숨을 걸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왜 목숨을 걸까? 님이 오신다기에 님이 오시는 길에 목숨을 건 “님 마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님에게 바쳐지는 것이다. 활활 타오르면서……..

 

여명(黎明)


잠이 덜 깬 바람이 창문에 휘파람을 널었다.

세월이 동지(冬至)를 데려왔으니 나도 이 해를 보내야지
지난 해 내가 남긴 발자국에 무엇을 넣었을까?
사랑, 용서, 눈물……

귀 기울이면
任午(임오)년 햇살이
담에 기대는 소리 들리고,

멀리 홰치는 수탉 있어
바람이 먼동을 깨워 나를 태울 때
주머니에 버석거리는 소리 있어 들여다보니
종이에 ‘희망’이라 적혀 있다.

 

나의 노래 II

창을 열면 보이는 별
나는 노래 부른다

금빛 강모래에 두 다리를 적시고
섬세한 두 손은 하늘에 담겼다
나는 노래 부른다

충청남도 아산 땅
푸른 산을 보고 맑은 물을 마시면
가난한 마음에 노래 흘렀다

때로는 뿌리뽑힌 아픔에 시달리고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순간이라 해도
나는 노래 불렀다

사랑은 가도 사랑은 남고
남은 사랑은 나를 포용(包容 )하고 기다리기에 충분하니
나의 노래에 힘이 되었다

창을 열면 보이는 별
노래하자
노래 부르자.

시작노트 :

나는 금수( 禽獸)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초인( 超人)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코스모스


덤프트럭이 달릴 때마다

몸을 떨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녀가 준 한번 눈길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

햇볕이 따갑고 목마른 날
단비에 생명을 얻었다
우리는 왜 기뻐하는가

하늘 높고 푸르른 날
가슴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우리는 왜 숨쉬는가

바람이 차가운 날
뿌리가 얼어오는 아픔에 몸을 떨었다
우리는 왜 다시 태어나는가

시작노트 :

관념은 정말 싫다. 그래도 나는 그 관념의 카테고리에 있다.

왜 나는 산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는가? 나는 왜 신을 신 자체로 믿지 못하는가?

나는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그리움


개구리 울음이 참기름처럼 동동 뜨고

어둠이 가득한 밤

나 홀로 대지 위에 섰다

모두 없다

이대로 영원으로 가는가 그대여
영겁의 세월로 가는 평행선이라면
선로를 교차하여 충돌한다 해도
이제는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

이 밤도 그대 생각에 베개 적시며
꿈길로 만나러 간다.

 

빈 자리


뜻이 있어 마음을 모았더니

갈 데가 없다

강물은 흐르되 강은 그래도 있으니
마음은 어디 가고 뜻만이 남았구나

오늘 붓들은 젊은 이 있어
뜻마저 지워버리니

불붙던 예지는 통한을 생매장하고
응어리진 마음들이 커튼을 드리운다

아해야 탄생의 의미를 묻지마라
우주는 말없이 넓고 별은 이미 빛나있다

바라보자
바라보자

 

외지( 外地) 에서


지지배

지지배
다리 운다

하얗도록 슬프구나
계집애야 너 왜 거기 있느냐

하늘 두른 보송 뺨을 느꺼워 함은
마음은 구름이기 때문이다

개구리
개구리
개구리 운다

뱀꽃
민들레
유월은 간다

 

BLOOD


동그랗게 솟는 순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격한 음성을 듣자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그 길에 묻힌 이의 가르침을 알 바 아니다

눈을 들면 왜 보이는가
그 길에 묻힌 이의 통한을 알 바 아니다

오늘은 기쁜 날
미치도록 화나는 날
꺼럭을 털자 솟는 방울로

 

영겁(永劫)


창을 여니

가을이 목을 돌아
그리움으로 앉네

그리워
그리워
하도 그리워

하도 그리워

 

 

◎ 당선 소감

붉은 피로 토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에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소에게 풀을 먹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넓은 들판에서 소와 단둘이서 몇 시간을 보내야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도 20곡쯤 부르면 더 이상 부를 것이 없었다. 나는 조숙한 편이었나 보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 유한성’에 대한 자각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누르고 참으면 목줄때기가 간지러워지고 더 이상 참기 어려워 이마에 핏발이 섰을 때 원고지를 펼치면 붉은 피로 토하곤 했다. 20살 때 사유(思惟)의 끝이 보이는 듯하였다.

등단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 내가 시인(詩人)이 되려고 목줄때기가 간지러웠나?

내 사유(思惟)의 끝은 아직도 먼데…… 그래서 눈물이 났다.

묵묵히 지켜 보아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70년대 서울 명동 ‘에저또’극단에서 연극을 하며 詩를 같이 읽던 친구들이 보고 싶다. 부족한 글을 당선시켜주신 심사위원님, 김창직 주간님, 도와주신 김태룡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1998년 12월

월간 문예사조 공모 당선 소감문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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