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kjs님으로부터 온 편지는 명문이어서 여기에 실었다. 내가 이렇게 고뇌하면서 마음을 닦아가는 분과 보이지 않게 교감하였다는 것이 영광이다. 그리고 이 편지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것이가에 대하여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 진실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영원히 어려운 문제라 할 지라도 내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선생님들을 격려하고 돕는 일이다.
—henkjs님으로부터 온 편지—
맹기호 선생님
마땅히 서 있는 길 위에서 순간과 실체와 무실체 마저도 따뜻한 눈길로 함께 어루만지며 걸어가셨던 분에게 단지 조금 큰문으로 들어서셨다고 해서 팡파레와 꽃다발과 박수가 이 시점에만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찬사와 축하는 어쩌면 선생님의 모습보다 교감이라는 자리에 보내는 것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늘 선생님의 메일을 읽으면서 일관했던 침묵을 오늘은 거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위치 변화는 우리 교사들이 꼭 알아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베란다 창 밖으로 빗물이 흘러내리던 일요일에 3월 3일 입학식부터 걱정하는 직업적 관성이 생각의 물길을 한쪽으로만 자꾸 치우치게 하는 교사로서의 15년 세월 동안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아울러 모순으로 가려진 나의 모습을 벗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와 욕심으로 상대방을 가릴 때 그 때 선생님의 홈페이지를 만났습니다. 재작년이니 벌써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 후 소중한 발견 하나를 담게 되었습니다. 상처와 욕심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지 경력과 나이가 원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홈페이지를 처음 열었던 그땐 나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교사에 대한 회의와 매일 학교에 가는 한숨과 걱정으로 학교 생활에 대한 위기와 좌절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어서 느끼는 불편함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이 아닌 것 같은 죄책감과 그러면서 관두지 못하는 생활인의 모습 등등이 그런데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자잘한 이야기에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보았을 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늘 헤매면서 작년 신설학교에 근무지를 옮긴 후 많은 애착과 노력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같은 교사의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언제쯤 아이들과 그렇게 웃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거리낌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 저에게 과제 하나를 남겨주고 그렇게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젠 어떤 모습으로 꽃보다 더 예뻐하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실지… 눈길에서는 함부로 발자국을 남기지 말라고 했던가요? 저는 선생님께서 어떤 발자국으로 저와 같은 뒷사람에게 길을 보여주실지 그 길이 어렴풋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이는 날 그때는 정말 오늘 못한 팡파레, 박수, 꽃다발 등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발자국을 힘있게 찍으시려면 더욱 몸 만들기에 열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교감 선생님 칭호가 왠지 어색하여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얻어야 하는 자리 값의 모습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같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열정으로 삶을 아끼고 늘 사랑하며 그렇게 완두콩 줄기처럼 뻗어 오를 수 있는 과정 중의 일부임에도 변화 중 하나를 저와 같이 멀리 있으며 어떤 사람이었지? 라고 느끼는 사람도 당연한 결과임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일관되게 살아오신 결과로 얻으신 성취와 달성이 그것만을 위해 줄기차게 걸어오신 것이 아님을 알고 유난스럽지도 않으셨기에 단지 주변과 자신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얻은 행복의 열쇠가 되기에 꽃보다 아름다운 새로운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 변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고 합니다. 좋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간혹은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이 본래 모습을 흐리게 만드는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궁금해지게 됩니다. 교감 선생님의 일상 일기는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또 다른 신선한 생각의 실마리로 다가올까? 선생님을 지켜보는 주변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결과에 찬사 하나를 얹어 기쁨이 배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