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내가 쓴 시 [단풍]을 옆에 앉아있는 이정현 선생에게 보냈더니
이선생은 30분 만에 평을 보내왔다.
내가 글을 쓰면서 고민했던,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미진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낸
그의 혜안이 감사하고 부럽기만 하다.
박제상 아내를 넣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당연히 빼는것이 좋을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심상적으로 이해될 것이라 생각하고 넣은 것이다.
역시 시간을 내서 고쳐야겠다. 이정현 선생! 그는 천재다!
주신 시 잘 보았습니다.
1연부터 7연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방식이 참 좋고 시적 대상을 친근하고 일상적인,
그러면서도 동화적인 소재에 비유하여 나타낸 방식이 어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감상하게 합니다.
특히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는 기다림, 그리움, 열정, 성숙, 절제, 간절함의 이미지가 각 연이 전개되면서
구체화 됨은 낯선 비유를 억지로 들어 오히려 시를 생경하게 해버리는 오류를 무리없이 극복한 것 같습니다.
愚生이 보기에
시는 2연에서 3연, 4연으로 갈수록 대상에 대한 간절함이 상승합니다.
5연에서 6연으로 갈수록 시의 상황은 그 간절함이 익고 또 무르익어
하나의 대상에 대한 극한의 심정이 “그리워 그리워 하도 그리워”를 반복하게 합니다.
이러한 간절함의 반복은 그 종말을 하나의 맺음, 닫힘, 내면으로의 침잠으로 귀결하는 것이
더욱 애절한 정서를 형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김소월의 시 “초혼”에서 수용자가 더욱 애절하고 비수가 꽃히는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변형된 수미상관법으로 시상을 마무리한 방식에 있음을 보면 일면 납득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수용자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7연에 대한 감상의 지평은 다양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7연에서 시상이 다소 확장되고 개방되어 텅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압축된 간절함이 갑자기 압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펑 터져 버린 느낌이랄까요?
선덕여왕의 지귀 설화를 차용한 방식은 색채 상징이 적절하게 구사된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오늘 저의 가슴이 열리고 불이 났어요” 라는 구절은 강한 설득력을 얻습니다.
다만 박제상의 망부석 설화를 “오늘 저의 가슴이 열리고 불이 났어요” 의 반복에 접맥시킨 것이
시적 긴장을 오히려 해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시상의 마무리를 열린 공간으로 확장시킬 것인가 닫힌 공간으로 침잠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창작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2연에서부터 6연에 이르기까지의 시상 전개를 자연스럽게 잇는다면
안으로 안으로 하나의 대상에게만 간절함을 집적시키는 것이 아름다운 슬픈 정서를 더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특수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기도 하니까요.
화요일 아침에 모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고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수레의 요란함만 쓸데없이 늘어 놓은 것 아닌지 송구스럽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편안함을 주시는 모습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단 풍
-맹기호-
아직도 코 끝이 시렸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님 향한 일편단심이었어요
너무 이르다고, 얼어 죽는다고 모두 말렸지만
온 세상 눈부시게 연두빛 마차를 타고
세상으로 나왔어요
아지랑이 겹겹이 일고
종달새 높이 울던 날
분단장 곱게 하고
달이 다시 차 오름 보다 더 긴 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기다렸어요
남동풍 사납게 불고
스무 날 넘게 비가 오던 날 정말로 무서웠어요
바람이 저를 먼 곳으로 데려가
님 오신 날 저를 찾아 헤메일까 두려워
몸을 구부려 감으며 눈물로 기도했어요
사랑한다 하셨지요
돌아온다 하셨지요
기다려라 말씀하셨지요
그리워 그리워 하도 그리워
돌이 되어 버린 박제상의 아내처럼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처럼
오늘 저의 가슴이 열리고 불이 났어요
오늘 저의 가슴이 열리고 불이 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