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수원 만석공원에 가서 한국과 포루투칼의 축구경기를 응원하였다.아내와 함께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데 우리 동네 골목에서부터 화제였다. 옆집의 새댁은 우리
를 보고 넘 부러워하였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파이팅’ 하면서 말을
걸었다.
저녁 7시 30분, 만석공원에 도착하니 경기가 시작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5만
명 정도가 모여있었다. 나와 아내는 붉은악마단에 섞여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함성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다. 일찍이 이런 광경은 보지 못했다. 나는 1970년대 김대중씨
의 대통령 후보연설에 모인 청중도 보았고, 1980년대 초의 김영삼씨의 대통령 후보 연설회
에 모인 많은 청중도 직접 보았으며, 1980년대 민주화 시위 현장도 보았지만 붉은 악마 집
회는 그런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과거의 집회는 민주화를 위한 민중들의 모임이었기
에 한스러웠고, 투쟁적이었으며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의 집
회는 유럽의 시민혁명에서나 있음직한 절대주의 시대 군주에 대한 민초들의 항쟁 같은 것이
었다. 그러나 붉은 악마 응원은 모두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율동이여 함성이었다.
모든 스포츠 중에서 축구가 가장 이변이 일어나기 쉬운 경기라 한다. 축구는 그 날 선수들
의 정신력과 응집력에 승부의 관건이 달린 경기다.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가 열세였다. 1994
년과 1998년 세계청소년축구를 우승한 포루투칼은 그 때의 주역들을 출전시켰고, 현재
FIFA 세계랭킹 5위의 월드컵 우승 후보였다. 태극전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정말로
멋진 명 승부였다. 운도 따라주었다. 상대의 슛팅은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폴랜드가 난데없이 미국을 잡아주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16강에서 이탈리아와 붙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우리의 다음 경기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우리 나라는 반세기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수원 시내의 모든 차량은 붉은 악마 박수 리듬으로 경적을
울렸고, 젊은이들의 승용차는 문을 내리고 창문 밖으로 대형 태극기를 휘둘렀다. 길거리마다
대-한민국 소리가 울렸다. 정말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10시 30분에 경기가 끝난 후 나와 아내는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와서 흥분이 가시지 않은
대학생 붉은 악마 응원단에 합류하였다. 거리 응원단에는외국인도 함께 섞여있었다. 11시가
되자 아내가 집으로 가자고 할 때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응원단 대열의 중앙으로 파고들면
서 마지막 응원을 한다는 것이 그만 아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열심히 응원대열에 있다보
니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아내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본 그 동안 집회는 모두가 투쟁적이고, 한스러운 것이었는데 붉은 악마 집회는 전혀
달랐다. 부르는 노래도 모두 좋았다. 애국가로 시작하여 붉은 악마 응원가, 즉, 코리아팀 응
원가, 그리고 구호 등이 전부였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집회라면 얼마든
지 좋다. 이것은 축제였다. 아!!!!!!!!!!!!! 축제의 밤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