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으로 기억된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게 호사스런 나들이를 하였다.
조카 효림이가 쌀4가마니 값(놀래라!)에 해당하는 티켓 2장을 보내온것이다.
그 표를 가지고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위해 서울예술의 전당에 갔었다.
당시 오리지날 캐스팅이었고, 외국에서 직접 셋트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음악도 감동적이었고 무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테마곡을 오늘은 사라 브라이트만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어본다.
재작년으로 기억된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게 호사스런 나들이를 하였다.
조카 효림이가 쌀4가마니 값(놀래라!)에 해당하는 티켓 2장을 보내온것이다.
그 표를 가지고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위해 서울예술의 전당에 갔었다.
당시 오리지날 캐스팅이었고, 외국에서 직접 셋트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음악도 감동적이었고 무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테마곡을 오늘은 사라 브라이트만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어본다.
오늘 이 노래를 10번 정도 들었다.
틈만 나면 들었다.
사라브라이트만 의 음성으로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을 들었다.
바쁜 중에도 들었다.
좋다……
산비둘기(wood pigeon)였다!
교육원 뜰앞에 작은 향나무가 서있는데
아무래도 수상한 느낌이 있어 살짝 들여다 보니
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었다.
산비둘기는 야생성이 강하여 사람을 경계한다.
20m 정도 다가가면 어김없이 날라간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아도 도망가지 않고 알을 품고 있었다.
지난 주일에 발견한 이후 이틀에 한벌 꼴로 가 보는데 물론 조심스럽게 살살 접근해서 본다.
주말을 지나고 나서 어제 들여다 보았더니 어미가 없다.
이상하다, 혹, 내가 자주 들여다 보아서 위험을 느낀 산비둘기가 도망가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다음순간 자세히 보니 세상에! 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놀라웠다. 그 조그만 알이 부화되어 알보다 다섯배도 더 커보이는 새끼가 태어나다니! 알속에서 쪼그려있어서 가능했나?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왜 그 많은 나무를 마다하고 눈에 뜨이기 쉬운 교육원 도로변 향나무에 알을 낳았을까? 나무가지가 다복하여 비를 피하기 좋아서 그랬을까? 음……비를 피하기는 좋게 생겼구나……
원어민교사 Bruce 에게 말해주었다.
The eggs hatched out (부화하였다)
< 외로이 서있는 작은 향나무 속에 산비둘기가 두개의 알을 품고있다>

< 자세히 보면 흰 솜털을 쓰고 있는 새끼가 보인다>

아내는
내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니
머리가 아픈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제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경쓰지 마시오”
오늘 아내에게 이렇게 야단 맞았다.
여기 저기 신경쓰는 바람에 늙는다고 하였다.
그런가?
<구글에서 야단맞았다 를 이미지 검색하니 아래 사진이 나오길래 그냥 올렸다>

지난 일요일에 양노원에 들렸다.
하늘아래편한집(산방)의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양노원에 맡겼지만 가뵌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진작 양노원에 모실것을……
할머니는 그 집을 떠나면 죽는줄 아신것이다.
여러번 권했지만 거절하셨다. 그러다가 비봉면사무소 사회복지담당공무원에게 할머니를
내가 데려갔고 우여곡절 끝에 양노원에 들어오게 된것이다.
독거노인이어서 양노원도 무료이다.
내가 결정적으로 할머니늘 양노원에 모시기로 한것은
어느날 집에 가보니 3일째 아무것도 먹지않고 난방도 없는 방에 누워있는 것을 본 날이었다.
당시 겨울이었으니 89세의 노인이 그 고초가 어떠했으랴!
양노원을 운영하는 목사 부부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 나를 보더니 반가이 맞아주셨다.
사과 한상자를 사가지고 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하더니 이내 눈물을 펑펑 쏟으셨다.
나 말고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난 자식이 두명있고, 의붓자식은 3명이 있다.)
살이 많이 쪄있었다. 밥을 적게 먹으라고 충고하였다. 내가 산방에 처음 가던 3년전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얼굴에 살이 많이 올랐으며 인간다워 지셨다.(?)
<3년전 산방의 내 방에서 커피를 대접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많이 야위었다.이때는 염색한 머리였다.>
<어제 양노원 앞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살이 많이 찌셨고 얼굴에 윤기가 있다.
살이 찌면 혹, 성인병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지만 이미 할머니의 나이는 90이다.
잘 먹고 잘 사시면 되지 않았는가? 할머니는 매일 놀고 먹고 아주 좋다고 하셨다.>

<양노원 주방에서 할머니와 한 컷, 치아는 송곳니 하나밖에 없다. 양노원 원장님은 “틀리를 해드리려고 했으나 이가 없는 상태로 시간이 너무 경과되어 불가능하다”고했다. 이 말을 듣던 할머니는 사과도 씹어먹을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먹나? >

교육원에 온 이후 나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난다.
특별하게 부지런해서가 아니고 5시에 눈이 떠지기 때문이다.
사실은 5시 이전에 이미 잠에서 깬다.
특별하게 모닝콜을 해놓지 않아도 자동으로 일어나지만
습관적으로 모바일에 모닝콜을 입력해놓고있다.
오늘 아침에도 5시에 일어나
사과를 한개 먹고
운동을 한시간 하고 들어오니
6시가 되었다.
김호철선생님이 아침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나를 찍어주었다. 마침 조평호 교수님도 운동하러 나왔다. 함께 찍혔는데
사진이 멋있다. 조평호교수는 인천교육대학에 출강하고, 우리 교육원에도 강의를 맡고 있는데
아주 강의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는 절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고, 조용하게 강의를 한다.
나보다 두살 더 많다.
팔을 뻗어 멀리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조평호교수이고 그 옆이 내 모습이다.
<사진을 올리려하니 용량이 커서 안올라간다. 멋있는 사진인데 아쉽다.>
어! 이게 뭐야?
아니 뭐 이런게 있어?
어제까지 등에 땀이 줄줄 흐르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겨울이네!
아니 뭐 이런게 있어?
<은행잎도 추위에 떨다 모두 떨어졌다>

내가 김정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년 전 쯤 일것이다.
집 수리를 맡기면서 알게되었다. 맡겼다기 보다는 나와 둘이서 함께 했다는 표현이 맞다.
나는 옆에서 보조일을 하고 김정일은 미장,조적, 보일러, 수도, 전기 등 여러가지 일을 하였다.
김정일은 7년전 방광암 수술을 받았는데
지금은 방광암이 문제가 아니고 암세포가 척추로 전이되어
앉지도 못하고 척추의 통증을 호소하였다.
의사는 아프면 4시간 마다 진통제을 줄테니 말하라고 했다.
또 4시간 이전이라도 참지 말고 말하라고 하였다.
본인도 눈치채고 있는 듯 하였다.
말기 암 환자였다. 온뭄에 암이 퍼져 있었다.
어제 밤에 김정일 형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나를 보자 통증으로 이를 악물로 있으면서 웃음을 내보였다.
지난 6개월간 휴직하는 동안데
가끔은 그가 혼자 사는 집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기도 하였다.
산방에서 잠을 자고 나서 이른 아침에 전화하여 해장국을 사준 기억이 있고
사과를 사가지고 찾아간 기억이 있다.
또 가끔은 집수리하는공사 현장을 찾아가 정담을 나누곤 하였다.
스무날 가까이 움막같은 골방에서 누워있었다 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니 아무도 아픈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간호원이 오늘 무엇을 먹었느냐 물으니
언제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대변을 언제 보았느냐는 물음에는 20일쯤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았을까?
병실에는 나와 내 아내 뿐이다.
가족과 친척은 아무도 없고……
나는 왜 이 일에 연류되었을까?
나보고 빨리 집에 가란다.
동네 청년 한사람이 오기로 했는데 병실에 사람이 있으면
병실을 지켜 줄 사람인줄 알고 청년이 가버릴것이니 나보고 빨리 가란다.
요즈음 교육원에서 너무 바빴서 몹시 피곤하였다. 아내도 내일 출근을 해야하니
더 있을수도 없어 병실을 나왔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말기 암 환자의 병상에는 아무도 없을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소변도 받아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했을까?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돈이나 억수로 많았으면……
김정일 형!(북한국방위원장과 이름이 같지만 그 김정일이 아니고 수원에서 집수리하는 사람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이 오래된 집이라 겨울이 되면 추워서 살 수가 없었다. 단열이 전혀 안된 집이어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집을 고치려고 마음 먹었는데 마땅한 일꾼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가 일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혹 집수리 할 것이 있으면 시켜보라고 권하여서 일을 부탁하였더니 아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보통 저녁노을이 지면 막일하는 사람들은 연장을 거두고 일을 끝낸다. 하지만 이 사람은 보통 저녁 9시는 돼야 일을 끝내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수리하는데 여름방학 내내 한 달이 걸렸다. 1,2층의 보일러를 다시 놓았고, 단열공사를 완벽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임금을 계산할 때 나는 더 주어야한다고 우겼고 이 사람은 덜 받아야한다고 우겨서 서로 다투었다. 세상에 주인이 더 준다고 하는데 너무 많아서 못 받는다고 말하는 일꾼이 어디 있는가?
여름 방학 내내 이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서 집수리를 하는 동안 서로 정이 들은 것이다! 하여튼 나는 이게 병이다. 정이 많은 것! 어쩌면 좋으랴!
집수리가 끝났으면 돈을 지불하고 나면 그만인데 일하는 도중에 어디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물어보고 대화하면서 정이 깊어지고 공사가 끝난 다음에도 만나고 인간관계를 지속시켜 나간다.
그 후로 내가 자동차를 사면서 대문을 크게 고칠 때도 김정일씨와 함께 하였고,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집을 두어 채 새로 지을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김정일씨에게 공사를 맡겼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아래 편한집, 일명 산방도 김정일형님이 수리하여 준것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도 많이 해주었다.
박영복 원장이 갤러리를 만들 때도 소개하여 일을 맡았고, 송기원 사장이 집을 고칠 때도 일을 맡겼고, 우리 동네 환경사업하는 사장님에게도 소개하여 여러 가지 공사를 맡았다.
김정일씨의 장점은 그가 미장, 조적, 보일러시공, 전기, 수도, 타일, 목수일 등 못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집을 고치거나 지으려면 여러 가지 전문가를 불러야하는데 이 분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기 때문에 아주 편하다. 다만 자동차가 없이 걸어 다니기 때문에 기동력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옆에 붙어서 재료를 사다 주어야 일의 능률이 오른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가지고 있는 장비의 전문성이 약간을 떨어져 공사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아주 큰 건물공사는 할 능력이 없고, 그저 집수리 정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는 그런 사람이다.
오래 사귀는 동안 정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형님이라고 불렀다.
휴일에는 가끔 전화하여 김정일 형님이 공사하는 현장을 방문하여 정담을 나누곤 하였다. 집수리하는 일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내가 가서 막걸리도 함께 마시고 어울리면 김정일 형님은 맹교감님, 맹장학사님, 어떤 때는 교육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 친구 쯤 되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하였다.
김정일 형은 7년 전 방광암으로 수술을 했다. 나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많이 낳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한달 전인가? 수도꼭지가 시원찮다고 전화를 걸었더니 내가 없는 사이에 고쳐놓고 갔다.
오늘 큰일이 나고 말았다.
내 동생이 전화를 했다. 함께 일을다니던 최사장이라는 분이 카톨릭의대부속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전화가 왔다.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수원에 도착하는대로 가봐야겠다. 평생을 성실하게 산 것 밖에 없는 사람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김정일 형! 불쌍하고 불쌍하다!
김정일 형을 떠올리면……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내가 도움받은 것에 대하여 1/10 이라도 돌려 줄 시기가 되었다.
물론 돈을 주고 일을 시켰지만 김정일형과는 그 이상의 관계가 있다.
오늘 퇴근하면서 여동생에게 전화했더니
간암으로 수술한 남편이 오늘 퇴원했다고 한다.
요즈음 교육원에서 내 일이 너무 바빠서 전화도 하지 못했다.
여동생에게도 가봐야한다.
양노원에 보내드린 산방의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실까?
한번 찾아가 보아야 하는데……아무리 바빠도 오늘 양노원에 가볼까 한다.
이런 때 돈이나 억수로 많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