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바라 보기만해도 좋다^^


저녁 시간에 아내와 함께 시화전이 열리는 행궁 마당에 갔다. 일몰 시간에 맞춰 불이 들어왔는데 황홀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원시에서 돈을 많이 들여 정성스럽게 전시해주어 감사했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400 평 밭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 채찬석 교장이 농막 땅에서 길렀노라며 국화를 베어 왔다. 식탁에 놓았더니 온 집안에 국화향이 가득하다. 그가 부럽다.
나도 쉬면서 노후를 보낼 터를 찾아다니는데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곳을 찾기 힘들다. 나는 이미 야성을 잃었다. 이제 집을 지을 힘도 없고, 남이 지은 적당한 집에 적당한 터를 찾는데 그게 힘들다. 어찌 이렇게 결정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경기도는 전체가 난개발로 인하여 공장이 주거지역 안에 있는 경우가 많고, 농촌지역게 가면 곳곳에 축사가 있다. 인구도 많은 수도권이라 공장과 축사를 피하기 어렵다. 나는 또 최소한 300 평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300 평 정도의 집터는 거의 없고 대개 200평 이하이다 보니 그것도 어렵다.
몇 군데 후보지가 있어 가보았으나 모두 결점이 있다. 70%만 맞아도 결심하려 했는데 그것도 잘 안된다. 어렵다.

수원시 화성문화제 기간 중 행궁 주변에 시화전을 한다고 시를 내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만들어서 게시했다고 수원시문인협회에서 전갈이 왔다. 언제 시간 내서 아내와 함께 가봐야겠다.

안경을 잃어버렸다. 2개 모두 잃어버렸다. 어디서 나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한 시력을 측정하기 위해 오랜만에 안과에 갔다. 차가 뜸한 시내 뒷길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오는 길에 부국원 건물에 들어가 보았다. 일제 치하 부국원이라는 이름으로 종묘상을 했었던 100년이 넘은 서양식 건물이다. 해방 후 검찰청, 수원교육청, 공화당사, 병원 등으로 쓰이다가 건물주가 헐고 새로 지을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수원시에 청원하여 수원시가 사들이고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50년 전 부국원 건물 지하에 고입학원이 있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날 어머니가 다른 집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데 너는 이게 뭐냐고 한탄하는 말씀을 듣고 내 발로 재수 학원을 찾아갔다. 늦가을, 10월 하순에 찾아가 보니 재수생 열 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었다. 두달 공부하고 입시를 치루었는데 인문계고등학교에는 나 혼자 합격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실업계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거기서 친구 송기원을 만났다.
안내하는 여직원에게 50년 전 고입학원이었던 지하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지하실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한것 같다.
그 학원에 아주 멋진 남자 음악선생님이 있었다. 총각으로 보였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모습이 잔상으로 남는다. 그 분에게 어떤 음악 이론을 공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그냥 바바리 코트를 입고 늘 음악을 듣는다고 말씀하시는 멋진 장면 하나만 남아있다.
동네 안경점에 가서 일반 안경 1개, 돋보기 2개를 맞췄다.

내 머리칼은 곱슬 머리다. 그렇다고 흑인처럼 구불거리는 것은 아니고 비교적 커다란 웨이브를 그린다. 그래서 머리가 짧을 때는 커다란 웨이브의 초기단계 이기 때문에 곱슬머리 형태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약간 길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웨이브의 형태가 나타난다. 과거 1980년대 장발이 유행할 당시에는 교사 임에도 불구하고 길게 길렀다. 세상이 모두 그랬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대학생 시절 장발 단속에 걸린 적도 있다. 신혼 여행 사진을 보면 긴 장발 그대로 결혼식장에 섰다.
퇴직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머리를 길렀다. 어디를 가든지 접대 멘트가 들어온다. 몇몇은 긴 머리의 웨이브가 멋지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백만불짜리 머리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려니 하고 듣는다.
엊그제 마음먹고 긴 머리를 잘랐다. 늙수구레한 이발사 였는데 신사 머리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무지막지하게 잘랐다. 집에 오니 집사람이 무슨 귀순용사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며 긴머리가 예술가 다워 멋진에 왜 잘랐냐고 지청구다.
어제 저녁 경기수필가협회 수필낭송회가 열렸다. 금년에 경기수필의 회장을 맡았다. 사람들이 좋고 지역사회 문인단체 중에서 제일 품격이높은 단체다. 짧은 머리로 연단에 섰다. 시낭송은 함축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수필은 그렇지 않다. 들으면 내용을 알 수 있어 좋다.
오랜만에 자른 머리를 보니 내가 보기에도 어색하다. 머리칼은 또 자라기 마련이니 부지런히 길러야겠다.
먼지가 되어


그룹 데불스에서 보컬과 리드 기타를 맡았던 가수 이대헌,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콘서트홀 ‘쉘부르’에서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과 같이 노래했던 가수 이대헌!!!
자신의 힛트곡 ‘먼지가 되어’를 직접 작곡한 작곡가 이대헌, 먼지가 되어는 김광석도 불렀던 클래식한 노래다. 그는 같이 활동했던 다른 가수들처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직도 언더그라운드 가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부르는 노래가 딱 내 취향이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가수를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우연한 기회에 가수 이대헌을 알게 되었다. 수원 광교에 ‘ 피아노21’ 이라는 라이브 까페가 있다. 노래도 감상하고 양식 식사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몇몇 시인들과 두 번 간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가수 이대헌의 노래는 완전 내 취향이었다. 내가 상아의 노래, 허무한 마음, 과거는 흘러갔다.윤수일 갈대를 신청하면 어쩌면 자기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하느냐며 기꺼히 불러주었다. 알아보니 나와 동갑이었다. 그러니 음악적 감성이 같을 수 밖에 없다.


어머니를 태우고 등원하는 주간보호센터 차량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차량 의자에 타고 있던 어머니가 통로로 튀어 나와 쓰러지셨다. 그날 차에서 힘없이 내리던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괜찮다며 차에서 내려 평소보다 천천히 걸어 집에 들어오셨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드시라고 깨웠더니 걷지 못하셨다.
세상에! 이를 어쩌나! 토요일 아침 휠체어에 태워 동네 정형외과 두군데를 갔는데 한글날과 토요일이 겹쳐 두군데 모두 휴업이었다. 등에 땀이 흘렀다. 긴급하게 정형외과 전문병원에 전화해보니 오전 진료를 한다고 하여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골절은 아니고 인대가 찢어지는 경우 매우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큰 병원에 가라고 한다. 다음 날 카톨릭대학 부속 병원에 모시고 가서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이미 찢어질 연골이 남아있지 않으며 골절이나 금이 간것 같지는 않은데 더 자세한 것은 CT나 MRI를 찍어야 하는데 인공심장박동기를 장착하여 그런 촬영을 못한다고 한다. 약을 줄테니 며칠 투약하면서 지켜보자고 한다.
집에 와서 약을 드리고 주간보호센터에는 등원하지 못했다. 주간보호센터에는 첫날 부더 내가 먼저 전화하여 평소 내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 정성을 기울였는지 잘 알고 있으니 이번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등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주일 쉬면서 투약한 결과 어머니는 많이 호전되셨다. 이제 다시 노치원에 등원하신다. 오늘 저녁 내가 오징어볶음을 했다. 야채를 넣어 볶다가 마지막에 양념장에 비빈 오징어를 넣으면 된다. 양념장을 잘 만들어야 한다. 간장, 고춧가루, 맛술, 매실, 설탕, 파, 마늘, 후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맛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치기 전의 기력을 찾으셨고 이제 혼자 걸어서 화장실도 가시고 아내가 도와주면 샤워도 하신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운전을 한 요양보호사가 잘못했다며 금일봉과 사과 편지, 그리고 포도 몇 송이 사왔는데 포도는 어쩔 수 없이 받았고 봉투는 돌려주었다)

굵고 진한 연필 그림이다. 4B 이상의 연필로 그렸다. 그림에 서명도 있다. 몇 해 전 사진 모음 집에서 찾은 그림이다. 누가 나를 위해 그려준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려준 이가 생각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나? 어느 화가 인지 그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건망증 검사, 치매 검사를 해봐야되나? 사인을 아무리 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럴수가……

독후감 쓰기 대회를 주관하는 곳에서 심사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수락하고 나서 원고를 받았는데 무려128부였다. 엄청난 양이었다. 읽는데 3일이 걸렸다. 시, 군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것이었는데 읽어보니 잘 쓴 사람도 있고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도 있다.
독후감을 쓰는데는 우선 읽은 책의 제목을 밝히고 그 책을 읽게된 연유를 밝히면 좋다. 그 다음 책의 줄거리나 감명 깊게 읽는 부분을 언급하고 자신의 느낌을, 생각을 써내려 가면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하고 자신의 느낌은 마지막에 짧게 언급한다. 또 책의 내용은 거의 없고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 전부인 사람도 있다.
열심히 읽다보니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다음에는 읽어야할 양을 물어보고 맡아야겠다. 아주 힘든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