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문자메세지

그러니까 며칠 전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서울에 갔다.


여의도 63빌딩 안에 있는 결혼식장이었는데 아주 화려하기 이를데 없었다.


피로연 음식값이 1인당 6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하객이 신랑신부측  합치면 1000명은 돼보였는데 그렇다면……


예식장비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인지라 호화스런 건물에서 하는것도 좋지만


날씨 좋은 봄날 가까운 집안식구와 친지들만 모여서


야외에서 하는  결혼식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 있겠는가!


 


인상파 이래 많은 화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예식장을 아무리 예쁘게 꾸몃다 해도 그것을 그렸다는 화가를 본적이 있는가?


 


예식 참석 중 남기완 교수에게서 문자가 두번 왔다. 우리집에 온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연락을 해야하겠는데 예식중에 문자를 치기도 거시기(이럴 때는 거시기라는 표현이 편하다) 하여


그것을 그대로  받아 핸드폰의 전달  메뉴를 이용하여 남교수가 보낸것을 그대로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가 그 문자를 받고 황당했으리라  발신자는 내 이름이니 더 황당했으리라


내용인즉


 


서울가는 중


저녁 때 수원에 있냐?


011-205-2333 맹기호


 


오케바리


어머니하고 장인어른 뵙고 내려 갈께


011-205-2333 맹기호


 


위의 문자메세지를 나에게서 받은 아내는


해석하는데 한참 걸렸다 한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문자메세지를 보고 남교수가 저녁에 우리집에 온다는 것을


알아들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대단하다. 보내는 나도 그렇고 읽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아내도 대단하지 않은가!


 


저녁에 남교수는 우리집에 왔고,


저녁을 먹은 후 오랜만에 둘이서 백세주를 세병이나 먹고


내방에서 같이 잤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학교의 엄무, 학문연구, 학회 일, 세미나로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자주 나가는 정말 바쁜 사람인데……


내 집에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잠까지 자고 가니……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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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인내천




 


우리집 아래층 마루에 공작선인장이 하나 있는데


어제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얼른 디카로 찍었다.


 


공작선인장의 몸체는 정말 볼품이 없다.


세상에 이렇게 못생긴 선인장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일년을 참고 견디면서 꽃을 한번 피우는데


정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한번 핀 꽃은 금방 지고 마는데 오래가면 2일간 꽃을 피운다.


꽃의 아름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름하여 공작선인장!


정말 이름값을 하는 꽃이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얼굴이나 몸체를 보고 미리 단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 속에 들은 영혼의 아름다움과 인품은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백화점에 가면 종업원들에게 내가 낮춤말을 한다고


아내에게 여러번 지적을 받았다. 어디 말뿐이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언제나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스스로 조심할 일이다.  


동학에서는 인내천이라고 하였고,


2대 교주 최시형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고 하였다.


내가 남을 진정으로 존중하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멀리 가 있는 큰 아들이 집에 공작선인장이 꽃을 피운것을 알면


기뻐할텐데……..메신져로 사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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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아침 식사



 


 


나는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고


 


한시간 후 06:30에 아침을 먹는다.


 


3개월 전부터 아침 식사를 정식 식사가 아닌 간편식으로 바꾸었다.


 


 


사과, 고구마, 녹즙, 커피는 고정메뉴이고


 


토마토는 때에 따라 참외, 바나나. 딸기 등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과와 고구마는 껍질채 먹는다.


 


 


웰빙이라고 해도 되지만 자연식이라는 말이 적당할것 같다.


 


틱나한은 우리가 당근 하나를 먹는 것이 우주와 만나는 것이라 했다.


 


아침마다 나도 우주와 만난다.


 


 


 


양이 많은것 같지만 아내와 함께 먹는 2인분이다.


 


커피는 한잔을 둘이 나누어 마시고


 


풀무원 녹즙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걱정이 많은 아내가 십여년 전부터 먹고 있다.


 


나는 이렇게 먹는 아침 식사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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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하프마라톤 (21.0975km)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혼자 나와서 참가하였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나중에 대회주체측에서 보내온 작은 사진인데 결승점 50미터를 남겨 놓은 지점이다.>


 


 


오늘 경인일보사에서 주최하는


제8회 화성효마라톤 하프코스에 출전하였다.


병휴직 후에 몸만들기를 해오고 있지만


사실 하프마라톤은 가벼이 볼 수 없는 거리이다.


 


2주일 전에 경기일보 10km마라톤에 출전했었다.


당시 기록은 59분 16초,


그러나 이번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하프마라톤은 거리가 길으니


처음부터 페이스를 올리면 완주하기 어렵다.




평소 10km를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달리는 연습기록은 66분


 


그렇다면 20km 까지 132분


 


나머지 1.0975m에 7분,


총 139분이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만 10km를 달리던 페이스를


후반 20킬로에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 가능한 기록이다.


하프마라톤의 제한시간은 180분이다.




집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나왔다.


하프마라톤을 뛰겠다고 하면 아내가 너무 무리라고 반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운동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스타트라인의 첫줄에 섰다. 차분하고 담담한 기분으로 출발하였다.


긴 여정이기 때문에 초반에 스피드를 내면 금방지치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였다.


내가 추월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습다. 이 나이에 나를 추월한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다니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나의 경쟁심은 못 말린다. ㅎㅎㅎㅎ)


 


3km지점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추월당한 젊은이가 나왔다.


보나마나 평소 연습도 하지 않고, 젊은 혈기에 초반에 내달렸다가


낙오한 것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나에게 추월당한 사람은 레이스 전체를 통해서 30명 정도였다.




8킬로 지점에서 웬 젊은 여자(30대 중반)가 옆에서 함께 뛰었다. 몸이 날렵하고 탄력이 있어 보여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풀코스를 두 번이나 뛴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핸드폰에 리시버를 연결하여  음악을 들으면서 뛰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손목에 감은 손수건도 제일 가벼운 가제 손수건으로 했는데 그녀는 핸드폰, 모자,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참 기운도 좋다! 나는 페이스가 느린 사람이니 기록을 위해 빨리 앞으로 튀어나가라고 권유했지만 계속 옆에 붙어서 달렸다.




10km지점을 통과하면서


시간을 보니 놀랍게도 57분이었다.


비교적 좋은 기록이다. 이대로 계속 달린다면


120분에 결승선을 통과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발칙한(?)생각을 잠간 했다.




함께 10킬로 이상을 뛰다가 17km지점에서 그녀는 튀어 나갔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달렸다. 중간 중간 속력을 내볼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발목뼈가 10킬로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아파왔기 때문이다. 20킬로 지점까지 평소페이스대로 달리다가 마지막 1km를 남겨놓고 스퍼트하기로 마음먹고 달렸다.




18km를 지나면서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으나 나는 결코 걷지 않았다.


걸으면 다시 뛰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레이스 중에 의료진을 세 번 불러


 


스프레이파스를 발목에 뿌렸고,


물을 4번 먹고,


스펀지물을 두 번 머리에 뿌렸다. 




19km지점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이 가로막았다.


긴 언덕길이 나타난 것이다.


스퍼트가 문제가 아니었다.


전진 자체가 어려웠다.




초반부터 나하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40대 중반의


기아자동차유니폼을 입은 1235번 선수도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천천히 언덕을 오르다가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기록이 좋을 리 없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전광판 시계를 보니


2시간 16분이었다. 아쉬운 기록이다.




뛰고 나서 붕우 남기완 교수에게 전화하였다.


함께하지 혼자 뛰냐고 자기는 몰랐다고 말했다.


물론 함께하고 싶었지만 내가 이 대회를 신청할 때는


경기일보 10킬로 마라톤 뛰기 전이었기 때문에 내 몸을 내가 믿기 어려웠다.


 


남교수는 바위처럼 의지가 단단한 사람이다.


인생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고있으며


풀코스를 3번이나 뛰었다. 다음 기회에 함께 뛰기로 하였다.


오늘 기록이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레이스에는 만족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한 것을 스스로 느낀다.


 


집에 와서 체중계에 올라서니 예상대로


몸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적은 체중이 나왔다. 59.90kg!


점심을 먹으면 팍 올라가겠지만 오랜만에 60kg 벽을 부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 힘이 남아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풀코스를 거뜬히 뛸 힘이라는 말은 아니다.


역시 하프마라톤도 결코 쉽지 않았다.




바람이 있다면 평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풀코스(42.195km)를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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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밝는 미소로 먼저 다가가겠습니다.


 

오늘 서울대학병원에 갔다.


채혈을 하기 위해 아침밥을 먹지 않고 아내의 출근길에 전철로 동행하였다.




서울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채혈실을 찾았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뽑아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피를 나중에 뽑으려고 꽁무니를 빼는 사람도 없다. 서울대학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으니 채혈실에 사람이 줄을 서게 되고, 그저 빨리 뽑으려는 마음 뿐이다.




번호표를 뽑는 곳에 사람이 몰려있어 다가가보니 번호표 기계가 고장 나서 같은 숫자만 계속 나왔다. 어떤 젊은 여자가 2층에 가서 뽑아도 되지요? 라고 묻더니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도 빨리 피를 뽑으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2층 채혈실은 아주 한산하였다. 그런데 여자 간호사가 아니고 젊은 남자였다. 20대의 젊은 남자는 머리를 약간 고추세워 기름을 바르고 하얀 가운을 입었는데 혼자서 피를 뽑고 있었다. 이 젊은 남자의 옆에는 “밝는 미소로 먼저 다가가겠습니다.”라는 서울대학교병원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진찰권을 받아보더니 “이승훈교수님의 혈액검사 신청으로 채혈하겠습니다. 약간 따끔하실 것입니다.” 음…..친절하기도 하구나! 왜 남자는 주사가 서투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 젊은 친구의 솜씨는 최고였다. 딴 곳을 응시하다가 다 끝났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끝난 것을 알았다. 바늘이 들어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아프지도 않았고 따금 할 것이라더니 아무런 느낌도 없이 채혈이 끝났다.




세상에! 유리대롱으로 4개나 피를 뽑았다. 나노공학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약간의 피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검사가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헌혈인구가 모자라니 이것을 모아 수혈로 돈을 버는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다. 


아깝다! 피 한방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채혈을 끝내고 동숭로를 걸으면서 식당을 찾았다. 아침을 안먹고 왔으니 시장하였다. 많은 식당이 있었는데 문득 30년 전통이라고 써붙인 ‘오감도’라는 한식집이 있어 들어가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앞좌석에 앉아있는 여성을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2층으로 채혈하러 따라갔던 그 여성이었다. 내가 그 여성 다음으로 채혈하였으니 알고 있었다. 내가 오늘 채혈하셨지요? 라고 말을 건네니 깜짝 놀랐다. 그녀도 선지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음……피를 뽑았으니 둘다 선지해장국을 먹은것인가?




채혈을 한 젊은 임상병리사는 안의상이었다. 안익태와 윤이상을 합한 이름인가? 병원을 나오면서 보니 벽에 병원브랜드파워 1위 서울대학병원이라고 써있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채혈하고 나서, 약솜을 주면서 문지르세요 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는데 여기는 약솜을 대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이런 병원은 처음 보았다. 정말 밝는 미소로 먼저 다가가는 병원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도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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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용인열차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어머니에게 녹두빈대떡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 이번 명절에는 녹두빈대떡이나 하고 아무것도 하지맙시다”

이건 뭐냐? 아무려면 명졀에 녹두빈대떡 하나 놓고 사위을 맞이할 수는 없

지 않은가! 결국 녹두빈대떡은 꼭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프로이드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없고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하고 있다가 어느날 실제의 행위가 되어 밖으로 나온다고 했고, 우리

가 경험하는 세계는 무의식 세계의 1/10도 안되며 특히 어릴적 경험에 바

탕을 두고 모든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녹두빈대떡을 잘 먹는 이유도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된 것이었다.

나는 요즈음 집에 있으니 인터넷을 뒤적거리게 되는데

우연히 맛기행 관련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그 유명하다는 열차집에 대하여

찬사를 늘어놓은 것을 보게되었다. 세상에 아직도 이집이 있었다니!

내가 그 집을 간것이 30년도 넘은 일이다. 50년 된 집이라 했다.

붕우 남기완 교수가 어느날 만나자고 하여 스무살 짜리 총각 두명이 용인

열차에 가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얼마나 낭만적인일인가! 안주는 딱

한가지 빈대떡을 팔고 있었고, 아주 맛이 좋았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즈음 젊은 애들이 술을 과하게 먹으면 보기에 좋지 않은데 이

제 흐린눈으로 그리고 낭만으로 봐줘야겠다.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기 어려운데 인터넷은 친절하기도 하다. 교보문고 후

문으로 나오면 버거킹이 있고 바로 옆골목 피맛골이 시작되는 초입에있다

고 한다.

어제 밤늦게 남교수에게 전화를 했더니 용인열차집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

도 용인열차집인데 인터넷에는 열차집으로만 표기되어있다. 한번 가보자

고 했는데 물어보면 확인될것이다.

음……용인열차 맞는데……수원에서 여주까지 다니던 수여선 상의 용

인역이 있었다. 그럼 협괴였던 수여선이 없어지면서 용인열차집도 용인이

라는 글자를 버렸나?

빈대떡에 소주 한잔!
정말 술생각 난다.

<인터넷에서 찾은 열차집의 그 유명한 빈대떡이다>

돼지기름으로 지져내는 열차집빈대떡
삼겹살 몇 조각 올려진 것이 고명의 전부일정도로
화려한 맛은 없지만 진짜 맛있는 녹두빈대떡이다. 제주도에서도 옛맛을 찾아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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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Picnic

안산시에 있을 때 YMCA에서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과 교우하였고

나름대로 학생 환경교육을 열심히 했다.

10년 전 쯤인가?

당시 수원시장인 심재덕씨가

수원천을 복개하여 도로로 이용하는 사업을 중단하고

수원천을 청소하고 맑은 물을 흘려보내어

하천을 살리는 운동을 시작할 때

하천복개로 인하여 이익을 보게될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지자

시장실에 몰려가 데모를 하여 시장이 곤경에 처했다.

사실 수원천을 복개하면 그 위에 불법주차만 성행하지 도로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복개하면 하천 위에 세워진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화홍문이 훼손되는 문제가 또 있었다.

당시는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천 복개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있었다.

그때 나는 수원시장에게 시장님이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밀고 나가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낸적이 있다.

그 후 심재덕 시장은 과감하게 하천을 정비하고,갈대를 심고,

징검다리를 만들고,우수와 하수를 분리하여 내보내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사실 서울 청계천의 성공보다 수원천의 성공이 10년은 앞섰다.

그 수원천에 지금은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며 다니고 개체수도

걱정할 정도를 많이 늘었다. 여름에는 어린아이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물놀이도 한다.

그 수원천에 튜울립이 예쁘다고 하여 아내와 둘이 나들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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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할 때도 못 본체 하였다.

출발 전에 마음속으로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나는 기록을 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 건강에 대한 중간점검이다.
그리고 오늘 출전선수 중에서 고령자에 속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느린 속도로 달린다는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할 때도 참고 못 본체 하였다.
나보다 배가 더 나온 사람이 나를 추월할 때도 내버려두었으며,
젊은 여성 선수들이 나를 추월할 때도 체념하였다.
약간 살집도 있고, 꺼부정하게 엉거주춤한 폼으로 달리는 여성이
나를 추월할 때도 내버려두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성은 폼만 엉성한 것이 아니라
흰머리도 듬성듬성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도 어느 정도 먹은 여성이었는데
그런 여성이 나를 추월해도 내버려 두었다.

내 페이스대로 달리니까 전혀 지치지 않았다.
이런 정도라면 하프마라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1km를 남겨놓고 스피드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러다가 혹, 문제가 생기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9킬로 지점에서 어떤 사람이 혹, 교감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망포중학교에 딸이 다녀서 그 때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아주대학교 병원에 근무하는 추황보선생이라고 했다.
미술을 잘했던 추원희학생의 아버지다.
추원희 학생은 얼굴도 분명히 기억한다. 안양예고 2학년에 다닌다고……

사건은 여기서 반전되었다.
나는 시계가 무거워서 차지 않았는데
이때 시간을 물어보니 53분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평상시 최고 연습기록이 9km지점에서 60분이었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기록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시 실전에 강하다!

결국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1km를 남겨놓고 스피드를 내기 시작하였다.
거의 전력질주!

나를 추월했던 배나온 사람도 떨쳤고,
꺼부정한 여자 선수도 떨쳤다.
중반이후 나를 추월했던 경기도교육청 제2청사의
오덕환선생님이 물을 먹으러 급수대로 가는 것을 보았고
그 틈에 오덕환 선생님을 추월하였다,

평소 연습기록 중에서 제일 좋은 기록이 66분 15초 였는데
59분 15초 81로 결승선을 통과하였다.(59’15″81′”)

7분을 줄였다.
마라톤에서 7분을 줄인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본 사람은 안다.

5년 전의 기록에 2분 정도 뒤지는 좋지 않은 기록이지만
그 때의 기록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 한 것 같다.
오늘의 경기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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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상 차림

석영이가 집에 왔다.

엄마는 학교에 출근하고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하셨다.

나는 같이 먹고 설거지를 했다.

정성이 들어간 상차림이다.

식탁 유리 밑에는 가족 사진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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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창틀까지 닦다

오늘 아침에 둘째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금요일인데 시험이 끝나서 집에 온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들뜬다.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 아들이 온다니 기분이 좋다.

얼굴 본지가 한 달도 넘은 것 같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마 신학기 엠티에 이어서 중간고사 시험으로 바빴으리라

약학과 공부는 2학년부터 어렵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처럼 빡세게 공부한다고……

성안중에 함께 근무하던 유해경 선생님은

아들이 마루에 왔다 갔다 지나다니는 것만 보아도 좋다고 했다.

나도 닮아가나?

아내는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하지만

나는 오늘 아들방 청소를 했다.

창문을 틀에서 빼내고 창틀의 먼지를 걸레로 닦아냈다.

아들은 비염이 심해서 먼지가 있으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부터 이불을 너는 것에서부터

2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청소를 좀 하고(열심히 한것은 아닌데)…….

하여튼 선비가 글씨 한줄 보지 않은 날이다. 쩝!

아들 방을 청소하면서 여러가지 상념에 젖는다.

내가 20세부터 살아오고 있는 집이니

두아들도 당연히 태어난 집에서 한번도 이사가지 않았다.

이 방에서 두 아들을 키웠다.

태어난 것도, 한글을 깨우친것도, 목욕을 시킨것도

모두 여기다. 정말로 추억이 서린 곳이다.

사내가 피아노를 치는것은 정말 보기좋다 둘째 아들은 피아노를 친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때 산 피아노이다. 큰아들은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준 책상과 의자 지금도 쓰고 있다.

빨간 방석이 붙은 의자를 사온 날 몹시 좋하했던 아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책장은 내가 열여덜살때 목공소에 부탁하여 만든것이다.

정말로 튼튼하다.니스칠을 해야하는데 황토를 바르고 칠한것이

지금도 아쉽다. 아주 좋은 나무로 만들어서 대를 물려 쓰고있다.

오래된 책에서 먼지가 날까봐 책을 모두 비닐로 낱권으로 쌌다.

두 아들이 한방에서 컷으니 책장도 둘이 함께 사용하였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그 긴박했던 시절에 어느날 느닷없이

혼자서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음악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린 최후의 만찬이다.

나를 닮았는가?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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