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fati(運命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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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근의 소설 아모르파티를 읽었다.

Amor fati(운명애)란 니체의 용어로서,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단지 이것을 감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말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성취하지 못한다. 그것도 운명이니 사랑해야하나…..내용이 슬프고 어둡다.

주인공이 가족 등 여러 인연을 끊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침 8시부터 수원역 로터리 까페 페스부치에 가서 읽었다. 12시 까지는 그 넓은 찻집에 나 혼자였다. 아무도 나를 방해할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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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찻집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보면서 지하철 공사현장으로 뒤얽힌 로터리 풍경을 찍었다.

멀리 소나무가 그런대로 군락을 이루어 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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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늘 기다린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게 되어있는 팩트를 마냥 기다린다…….

오늘 맹기호는 문득 생각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모두 온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자……

 

단센터에 가서 영기통 훈련(기를 통해 영혼과 만난는 것)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단센터는 마음 수련하고 요가 비슷한 동작으로 기체조 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 송혜근은 몸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육체이탈을 하고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서 윤회의 세계에서 전생의 여러 모습을 만난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말하기도 하고 윤회의 순환에서 벗어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 즉 니르바나의 경지에 간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교리인데 

소설에서는 불교적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불교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뇌의 발견과 유체이탈이란 작가가 소설을 통해 궁구하고자 하는 본질적 질문과 다르지 않다.

즉 뇌속의 정보들을 통해 현재의 기억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소설 속의 노력은 작가 송혜근의 작가적 자기 심문의 구체적 형태이자 제유인 셈이다.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본다.

 

깨어 있음의 가혹함에 눈물이 흐르고 진실의 무서움에 뼈가 저리지만 그것이 곧 삶이고 감각이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우리의 인연이 다했음을 나는 안다.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 식당 주인의 정신을 먹는거예요.

 

내 살을 찢고 나온 자식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제가 떠나면 제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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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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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이종환이 쓴 마침내 그림움을 읽었다.

이종환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쓴 에세이다.

그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중부와 전라도를 거쳐 다시 경상도로

그리고 울릉도에 갔다가 다시 강원도를 거쳐서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자전거길에 얽힌 이야기를 썼다.

 

인상깊은 대목을 옮겨본다 타인에게 추천할 만한 아주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종환의 문학적 깊이와 내적 충만함이 엿보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책이다.

 

이 여행에 목적이 있다면 목적이 없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침묵의 힘으로 걷고, 침묵의 힘으로 페달을 밟는다. 침묵은 견자의 힘이다. 자연 역시 그 힘으로 서있다.

 

막 심어놓은 마늘이 파란 혀를 내밀어 눈부시게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 이런 곳에 살면 어떨까? 나는 내면으로 침묵을 빨아들인다.

 

무시무시한 폭우가 밤새 공기를 찢었다

 

젊음으로 포장된 절망은 달디달아서 우리는 마냥 무너져내렸다.

 

세월은 흘렀고 그 친구와 나는 만남이 뜸해졌다. 별다는 이유도 없이 그렇게 됐다.

우리는 일상의 미로 속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길을 잃었다. 우정마져 흩어졌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전체의 완결은 부분의 완결에 기인한다.

 

조화(만든꽃)의 장점은 생명력에 있는데 그 생명력은 생명 없음에서 연유한다.

 

과유불급-지나치면 탈난다-

내생각에는 과유불급은 지나친것은 모자란것과 같다 라는 의미인데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라고 해석한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인가?

 

수백년은 됐을 성싶은 소나무들이 주춤주춤 허리를 꼬고 서서 이방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이 나로부터 멀어져간다. 현실의 꼭지점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면 거기 나의 고향이 있다.

 

혼자하는 자전거여행에서 나는 피곤함과 허전함을 느꼈다. 포만감 뒤의 통증 같은 무기력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휴식의 처연함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결핍이나 고통의 강도에 민감하다. 굶주린 자에게는 식량만큼 절박한 것이 없고 감옥에 있는 자는 자유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너무 허기가 져 식욕까지 먹어치운 모양이다.

 

텔레비젼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식상하기 짝이 없어서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얼굴들로 구성되어있다. 내용이랄 것도 없다.

오락이면 오락, 스포츠면 스포츠가 차이를 구별할 수 없으리만큼 비슷하다.

게다가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연에인들의 신변방담이나 어이없는 오락 행각이라니 시청률을 의식한 제작이며 편성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들은 이제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다. 물욕에 무릎을 꿇은 자본주의의  저 게으른 악순환이라니…

 

부와 권력은 함께 움직이는 모양이다. 자본의 사유화 과정에서 그 둘은 곧잘 무성생식을 일으킨다.

부와 권력의 결합은 그래서 대개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그런것만은 아니다.

시속을 알고 풍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부는 의미 있는 재원이되기도 한다. 그것이 그 인물의 타락을 막는다.

 

여행 내내 나는 내 마음을 뒤졌다. 그 안에서 외로움의 유전자를 발굴하고 가공해냈다.

몸은 사실 더 외로워져야 한다. 현대의 모든 이기와 합의들은 외로움을 모르게 하는 기제들로 가득차있다.

외로움이 깊어질 ‘여유’란 조금도 없다. 외로움이야말로 이 세상과 연결된 다리라는 것을 모른다.

 

한달이 넘는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생활해야할 본거지로 진입하고 있다.

불야성으로 반짝이는 네온의 거리라 살아가야할 내 터전이다.

저 인공의 빛 속에서 어쨌든 부나비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할 그리움이다.

나는 그 불빛 속으로 자전거 머리를 세우고 천천히 떠다 밀었다.

 

수원역 로터리에 있는 까페 페스푸치에서 책을 읽었다.

2층까페에서 밖을 내려다 보니 젊은 연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손을 잡고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 살짝 찍었다.ㅎㅎㅎ~

상촌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책이다. ‘마침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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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로 세분화 시켰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음악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듣는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직접 해보는것이 더욱 좋습니다.
1학기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을 앞둔 시점에 상촌예능경연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음악, 미술, 무용 분야에서 실시되며 음악도 여러분야로 세분화 시켰습니다. 작곡분야도 개설하였습니다.
수업 후 복도에서 청아한 노래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내일 출연하는데 연습중이라 했습니다. 통기타 반주로 열심히 부르고 있었어요
노래도 아름답고 노래부르는 모습도 예뻐 삼성갤럭시3로 얼른 찍었습니다.
통기타 부문은 경연은 아니고 찬조 출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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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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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개 리트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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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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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이승만의 정적 장면이 쓴 이승만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어제 이승만 바로보기라는 책을 읽었다. 30년 전에 읽은 책만 못하다. 다시 구해 읽었으면 좋겠다.

이승만은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였다. 조선말 과거시험이 매관매직으로 전락한 터여서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소용없었다.

이승만은 실망하고 방향을 돌려 머리를 깎고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공부한다.

외국인 교사의 한국어가정교사를 하면서 배재학당에 다녔고 입학한지 6개월만에 배재학당의 영어교사가 된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서재필이 조지간 독렵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나중에 독립신문의 주필까지 역임한다.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주최하고 고종에게 일본의 세력을 떨치도록 건의한다. 왜놈들은 보부상을 중심으로한 황국협회를 조직하여 독립협회를 탄압한다.

급기야는 황국협회 사람들이 이승만이 고종을 폐위하려한다고 모함하여 이승만은 한성감옥에 갇히게 된다.

한글학자인 주시경이 육혈포를 구해주어 탈옥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종신형을 받게 된다.

6년동안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영어성경을 공부하고 선교사들이 들여보내준 책으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또 교도소에 도서실을 설치하고 죄수들에게 영어와 한글을 가르친다.

6년 옥살이 후 민영환의 건의로 석방되며 민영환에 의해 고종의 밀서를 갖고 미국에 가서

미국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일본의 부당한 간섭을 막는 역할을 해줄것을 촉구하는 밀명을 띠고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간다.

미국에 가서 미국대통령을 만났으나(만나기 전날 을사늑약 체결로 만나지 못했다는 설도 있음)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배재학당 선교사 출신 미상원의원의 배려로 조지워싱턴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하바드대학에서 석사를 했으며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논문제본비용 80달러가 없어 논문을 발간하지 못하고

훗날 논문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여러대학에서 교수로 임용시키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그 때부터 미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활동한다.

상해임시정부에의해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평생 지론인 외교로 독립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전에 미국은 소련을 연합국에 끌어들이면서, 또 중국에서 국공합작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해방 후 한국에서의 정부도 좌우합작 정부가 될것을 희망했으나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인물이었기에 반대하였다.

이에 해방 후에도 미국은 이승만에게 여권을 내주지 않는 등 이승만의 대한민국 입국을 방해했다.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은 것이어서 빨갱이와 타협이나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 였다

군정이후 북한에서 먼저 김일성에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남한에서 5.10총선거가 실시될 때

이승만은 한때 민족화합을 위해 좌우를 아우르는 정부를 세우는데 합의하기도 했으나 이후 김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데 합의하였다.

이후 김구과 의견이 대립되어 5.10총선거를 앞두고 이를 막기 위해 김구와 김규식이 휴전선을 넘어 김일성을 만나러 갈 때

이승만은 만나려면 스탈린을 만나야지 김일성을 백날 만나보았자 무슨 소용있나? 라고 말했다.

김구은 김일성을 만나 실컷 선전에 이용당하고 아무 소득없이 내려왔다. 그리고 5.10총선거가 실시되었으며

200명의 제헌국회의원이 대통령을 간선 할때 이승만 180표, 김구11표가 나왔다. 이것만 보더라고 이승만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는 외교로 독립을, 김구는 힘을 길러 일본을 이기자는 것이었으며(일본에서 보면 김구는 오사마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다),

안창호는 백성을 교육시켜야 독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승만은 두번이나 헌법을 고쳤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에 최대의 오명이다. 그는 6대 독자였다. 아마도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원래 이름은 이승룡 이었는데 이승만으로 고쳤다. 늦게 이씨 왕조를 잇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책도 있다.(30년 전에 읽은 장면 지음)

내 생각에 사사오입개헌에 이은 3.15부정선거와 4.19의거 등의 오욕이 있다 해도 그는 우리나라 국부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4.19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만해도 그렇다.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은 위암 수술차 미국으로 가서 선거정에 죽었으니 대통령선거는 해보나 마나 이승만의 당선이었다.

그런데 야당 장면을 떨어트리고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3.15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었다.

내 생각은 선거지휘의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지만 이기붕이가 원흉이라는 뜻이다.

공산당의 침략을 무찌르고 정부를 안전하게 지켜낸 것이야말로 이승만의 공이다.

아직도 6.25가 북침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미 1990년대 중반 공개된 소련의 비밀문서에 의해 6.25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를 받은 북한 김일성의 침략이라고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 신문도 안보나?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되었다. 원래 우리나라는 전쟁에 침략의 주체를 명시해서 부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신미양요 등이 그것이다.

코리안WAR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다. 침략의 주체를 표시해야한다. ‘북한의6.25남침전쟁’   이 맞는 표현이다.

전세계에서 소련과 국경을 같이하고 소련제 탱크로 침략당한 나라 중에서 공산화 되지 않는 국가는 남한이 유일하다.

6.25북한의 남침 때 미군사고문단 500명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미군의 파병을 요구했던 배짱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으며

반공포로를 과감하게 석방한 일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통일을 누구보다도 바랐으며 결코 휴전협정에 도장찍지 않았다.

미군 35000명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너무커 발을 빼기 위해 서둘러 휴전하려는 미국을 거의 협박하다시피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것도 이승만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토대가 있었기에 외국이 남한을 믿고 투자한 것이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바탕위에 2012년 수출5479억불로 세계 7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인도, 브라질, 캐나다 등의 큰 나라도 모두 수출실적이 대한민국보다 아래다. 이건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자원이있나 나라가 크기를 한가!

백범도 훌륭한 독립의 지도자이며 투사이다. 암살당해 그의 인생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김구에 비하여 이승만은 너무 저평가 되어있다.

내 생각에 박정희의 단속도 한목했으리라 하와이 망명지에서 조국에서 죽고 싶다고 병든 몸으로 여러번 탄원했으나 끝내 박정희는 허가하지 않았다. 죽은 몸으로 입국했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혔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디 있겠는가? 5.10총선거를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하겠다고 북으로 간 김구의 충정을 모르는바 아니며 폄하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김일성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어있었고 남한은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당의 활개로 나라는 혼란했다. 그 때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지 않았다면 남한은 벌써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그런 국제적인 정치감각을 갖고 있었다. 공산당과 대화해봐야 소득이 없다는 것은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위한 6자회담만 봐도 알수 있지 않은가?

맨날 질질끌고 알맹이 없는 회담만 하는 가운데 핵실험을 계속되고 북은 이미 핵을 완성하였다. 미국은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시절 차라리 클린턴 생각대로 원자탄 생산시설을 폭격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공산주의자에게 끌려다니면 안된다. 박근혜대통령처럼 개성공단 회담에서도 국제적 원칙을 준용할 것을 주장하고 굽히지 않으며 끌려다니지 않으니 오히려 효과가 나지 않는가!

맨날 질질끌려다니면 또 언제 개성공단 우리나라 국민을 내쫒을지 모르는 일이며 나중에는 개성공단내 우리나라 국민을 볼모로 잡을 지도 모른다.

이참에 공단 정상화나 가동이 늦어도 국제적 법규를 준수할 것을 확실하게 약속받지 않고는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킬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 화이팅!!!

이승만에 대하여 쓸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 관계상 그만 쓰련다. 나중에 또 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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抒情(풀서 뜻정):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시, rain3)

rain 3

                                                                                  맹기호

비가 내린다.

내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아스팔트 낙엽은

물고기처럼 뒤척이며 파닥거린다.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비가 내렸다. 그것이 생명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끝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방랑자처럼 이 비를 맞고 싶다.

그리고 걸어가련다.

회색 안개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길

그대와 재회의 약속도 없는 길을 간다.

 

나(我)는 무엇이고

도(道)는 무엇이며

비는 왜 내리는가

내 사유(思惟)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는 정말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

 

비가 내린다.

오늘 또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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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파서 안과에 갔더니 대기실에 시집이 한권있어 읽었다.

정성수 시인이 말미에 평론을 썼는데 그 평론 앞부분 글이 좋아서 스마트 폰으로 찍었다가 여기에 타자로 적는다.

 

고대나 현대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지구별에서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시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정을 노래하는 일일 것이다.

즉 시라는 이름을 가진 언어예술은 각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서정적, 주관적으로 읊은 서정시가

 시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가리켜주는 하나의 생태적 모성적 운명적 본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의 모든 예술이 모두 다 그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작가의 감동이나 충격을 전해주는 것을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시는 인간의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이나 시각에 호소하는 미술과 달리 언어 즉 말의 의미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이므로

음악이나 미술처럼 1차적 감성 체계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시는 본능적 감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초적 감동의 체계가 아니라

이성적 활동으로 뜻을 전달하고 감동시키는 의미의 쳬계이다.

따라서 시는 음악이나 미술보다도 오히려 더욱 감각적, 감성적인 데에 보다 강렬한 열정을 투사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특수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구체적 사물의 체계가 아닌 가장 추상적인 언어를 매개체로 삼고 있는 시는 독자에게 원초적 감동을 전해 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인의 정신적 특성상 한국시는 서구시와 달리 사고의 전달, 의미의 전달보다

감성과 감정의 전달에 더 투신해야 하는 보다 근원적인 서정시 중의 서정시 그 고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대한민국의 윤재근 평론가가 이 세상에 영원히 남는 것은 서정시 뿐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시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고 쉽게 짚어 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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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마을!~

학생들이 집에서 안쓴느 물건을 가져와 500원, 1000원에 파는 아나바다 행사를 벌였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176만원! 정말 많은 금액이 모였다.

어머니들이 먹거리장터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판것이 186만원 합하여 362만원이 모였다.

362만원은 이디오피아에 보내져 학교를 짓고, 우물파고, 식량을 지원하는 사업에 쓰이게 된다.

 

에티오피아는 6.25북한의 남침전쟁 이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좌파정부에 의해 한국에 파병되었던 군인들이 핍박을 받았다 한다.

핍박받던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는데 그 마을이 코리아마을이다.

그 코리아 마을에 지원금을 보내기로 했다.

월드비젼 경기본부 신재권본부장님이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학부모대표들에게 감사의 인사을 했다.

우리는 모은돈 3627750원을 월드비젼 관계자에게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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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실수 나의 뱃살 나왔다 ㅋㅋㅋ~  머리도 안빗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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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집 마당에 핀 공작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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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립도서관

큰 아들과 함께 도서관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고르게 하는게 좋겠다 싶어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다.

경기도립도서관, 수원시립도서관, 수원선경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이 어려서 제일 자주 다닌 도서관은 경기도립도서관이다.

버스 타고 가서 한번 가면 5권을 빌려주는데 일주일에 2번 갔으니 일주일에 10권을 빌려와서 읽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책을 공책에 기록하라고 시켰다.

읽은 책 중에서

그림이 없는 200쪽 이상의 책을 제목, 지은이, 출판사, 쪽수를 기록하라고 했더니

1년에 450권을 읽어서 매우 놀랐다. 독후감은 쓰지 말라고 했다.

 

경기도립도서관은 경기도의 모든 도서관을 총괄하는 곳인데

일선학교 교장으로 야전에서 독서교육을 열심히 했더니 그게 소문이 났는지

지난 달에 경기도립도서관 운영위원에 위촉해도 좋으냐고 연락이 왔다.

경기도립도서관 운영위원은 경기도 도서장책을  결정하는 자문기구다.

위원장은 경기도의회 교육분과를 맡고 있는 강관희의원이 되고

내가 부위원장에 위촉되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다닌 도서관이어어 더욱 감회가 깊다. ^-^

 

<앉아있는 분이 장애를 가진 강관희의원이다. 내 옆 왼쪽은 수원교육청 최화규 교수학습국장님>나머지도 다 유명한 분들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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