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
나는 대학교 1학년이 되면서 되면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담배는 조금씩 태우다가
22살에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피우게 되었다. 제대 후에는 더 많이 피웠으며
40대 중반까지 25년이나 피웠다. 다른 사람은 연기를 대충 내보내고 피우지만, 나는 연기를
가슴속 깊이 마시는 광적인 애연가였다. 정말 줄기차게 피웠다. 몇 년 전에 금연에 성공하
여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 술은 배워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범생이 였던 나는 술도 역시 대학에 입학
하면서 선배들이 먹으라고 하여 먹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술 못 마시고 죽은 놈 할레루야
남촌옥 앞에다 묻어주 할렐루야 !”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선배들이 주는 술을 마셨다. 그러
나 술을 마실 때 마다 머리가 아프고 괴로웠다. 술을 많이 마시면 구토증세가 나고, 손가락
을 목에 넣고 우엑! 우엑! 해보지만 침만 흘리고 토하지 못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위에서 식
도로 역류하지 못하는 체질인 것 같다. 평생에 걸쳐 토해 본 기억이 어려서 소화불량으로
두어번 토한 것이 전부다. 나는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인 듯 하다. 술을 마시면 너무나 몸이
괴롭다. 비 오는 날 걸쭉한 흙탕물이 고인 길에 얼굴을 묻고,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사람
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선(詩仙) 이백은 “석
잔을 마시면 통하고 한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친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아무리 마셔도 그
런 경지에 가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실 기회가 있어도 마음
껏 마시지 못했다. 늘 술을 피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술을 마시면 몸이 괴롭기 때문이다. 나
도 풍류를 즐기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명색이 시인이 아닌가! 그런데 필름이 끊기
는 경지는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다. 너무 괴로워 그 이전에 술잔을 놓아버린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제대로 술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한번 제대로 먹어보면 완전히
필름이 끊기고 술이 술을 먹는다는 것이다. 과감하게 한번 도전해보면 신선의 경지에 닿는
다고 말한다. 그런데 몇 번 시도해보았으나 그럴 때마다 더 마시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어 중단하고 만다. 가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죽는 사람에 대한 기사가 나지 않는가. 내가
그런 체질인 것 같다. 언젠가 술을 많이 마신 날 집에 와서 아내에게 “ 내가 죽을 것 같으
니 잠을 자지 말고 나를 살펴주시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내는 얼마나 놀랐을까! 정말
책임 없는 가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나일남 교감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만나
는 것이 고역이었다. 사람이 좋아 만나기는 하지만 이 양반이 꼭 3차를 가야 나를 집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세 차례나 술집을 거쳐야 하니 비싼 집은 가지도 않고, 길거리 허름한
대포집에서 닭발, 돼지 껍데기 등의 안주를 곁들여 소주를 먹다가 생맥주 집에 입가심하러
2차가고, 슈퍼앞의 파라솔에서 3차를 한다. 셋이면 잔을 미룰 사람이라도 있는데 둘이 술을
먹으면서 잔을 돌리니 미칠 지경이다. 내 앞에 두잔의 술잔이 있다는 것은 나일남선생님 앞
에는 술잔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도저히 술친구를 할 수 없다고 했더니 나중에는 각자 잔
을 쓰기로 하였다. 알고 보니 이 양반은 술이 먹고 싶은데 딱히 불러낼 사람도 없어 나를
부르는데, 나는 세 번정도 부르면 한번 꼴로 나간다. 또 나일남 교감선생님이 아직도 워즈
워드의 애너벨리를 원어로 줄줄 외우고, 내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人生讚歌)를 외우면 한
소절마다 영어로 따라 외우며 흥을 돋우는 그의 낭만이 좋아 만나곤 한다. 그는 진정한 시
인이며 평론가다. 이 양반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 몇 년 동안의 고역이었는데 요즈음에는
퇴근길에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이 솔솔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서 먹을 수도 없고,
갑자기 술 먹자고 불러낼 만한 사람도 없고……
이럴 땐 혹, 술 먹자고 전화하는 사람 없나
하고 기다려지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의 초기증상인가?
요즈음에는 백화점에 가서 포도주
코너를 지나면서 눈길을 준다.
지난번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료들에게 두 번이나
술 먹자고 내가 먼저제의하기도 했다.
요즈음 술이 슬슬 먹고 싶어진다.
술 생각이 자주 난다.
그냥 취하고 싶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맥주 두병 정도는 언제든지 먹어줄 수 있다.
의사는 뇌혈관 질환 때문에 어떤 술이든지 한잔 이상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실천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 말을 따를 생각도 없으며 맥주 두병정도 먹어도 죽을 것 같지는 않
다. 오늘도 술 먹고 싶다. 아내와 함께 생맥주 집이라고 가고 싶은데 아내는 절대로 술을
먹지 않는다. 아무리 분위기를 잡고 술을 먹자고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집에서 내가 촛불
을 켜고 포도주를 따라도 거의 먹지 않는다. 오늘도 술을 혼자 먹을 수도 없고……
이런 때는 그냥 참는다. 내일 누구한테서 술 먹자는 전화 한통 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