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얼굴들……

수첩을 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보고 싶은 사람을 적어본다.

멀리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아산이

강천중학교 최원국선생님

성안중학교 변난훈 교감님

발안정보산업고등학교 정무학 교장님

평생 아름다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밭대학교 남기완 교수,

천안에서 농사짓는 전학수,

사업하는 송기원,

매원중학교 나일남교감님,

강원도로 간 뒤 소식도 없는 서양화가 박영복님,

신앙심이 좋은 강완모선생님, 그리고 능력있는 워킹걸 임숙미샘

대부중학교 제자 홍아름, 김성아, 김다니엘,

집고치는 목수 김정일씨,

경기체육고등학교 선재복선생님,

서양화가 황은선씨,

백현중학교 황은희샘,

정발고 조수진샘,

정헌무 교감샘,

통영세무서 김채일 사무관,

서울시교육청 홍석 장학사,

교육인적자원부 오재덕 장학사

서양화가 고숙진샘

장곡고등학교 박찬일샘

서양화가 용환옥 형

영일중학교 김학규교감

외사촌 여동생 공영숙

건축사 주인수,

원곡중학교 정재필샘. 나장규샘,

전병혜샘, 이난희샘

자원봉사자 이희용님,

둥지소년의집 김문선스님,

안산시청에 있는 제자 이영분,

인제약국 오연숙약사, 그리고 신랑 황상로

고려대사학과에 다니는 제자 김영선,

부산일요화가회 지종근 형

남양중학교 박명옥샘과 그의 부인

YMCA 남윤형간사

세무사 정호열,

세계일보 편집부장 임국현

연극을 했던 제자 김영심, 신혜선

해뜨는집 김수잔나 수녀님

경기미협회장 이선열화백

군자공고 박현수샘

서양화가 권대균 화백

음식점정원가든 사장 고원진

어디사는지 모르는 젊은 날의 전우 김진수

박건웅시인

김태룡시인

서양화가 노석순님

대학동창 한병구

원곡고등학교 정전택샘

컴과 LCD전문가인 지원이 아빠

서울대학교 역사학과에 다니는 제자 정선훈,

그는 내 영향으로 역사학을 선택했다.

세모에 보고싶은 얼굴을 적어보았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들에게 복을 내리소서……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제가 밤 값은 합니까?

어머니는 이제 며칠 있으면 74세가 된다. 많이 늙으셨다.

젊어서는 허리가 가늘고 날씬하셨는데 이제는 몸도 두리뭉실 해지셨다.

오늘 아내 는 동료의 집들이가 있어 늦는다고 했다.

저녁 7시 40분!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저녁을 차리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벌써 저녁을 잡수셨고 아버지는 안방에서 주무신다.

흰쌀 한 톨 없는 100% 현미밥 한 공기,

노란 배추 고갱이 쌈,

날배추를 삶아서 갖은 양념하여 나물처럼 무친 것,

김치국 한 그릇,

고구마 삶은 것 1개

이것이 오늘 저녁 메뉴의 전부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식성과 거의 같아진다. 어머니도 고기를 즐기시지 않고, 김치를 주 반찬으로 하시는데 나도 요즈음 들어 채식 위주의 식단을 원한다. “어머니 우리 집에서 어머니와 제가 식성이 제일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맞아 너랑 나랑 제일 비슷하게 먹는다.”라고 좋아하신다. 어린아이처럼 웃으신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마주 앉아 내가 어떤 반찬을 잘 먹는가 구경하면서, 쉬지 않고 말씀 하신다. 아들과의 대화는 정겹다.

세대차이, 문화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다. 우리 집은 식탁 옆에도 텔레비전이 있는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현숙’이 노래를 한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현숙이는 참 효녀다. 양부모가 모두 중풍에 걸렸는데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이제 어머니만 남았단다. 효녀상도 받았지! 오빠도 있는데 오빠가 모시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숙이가 스스로 부모를 모시고 싶어서 모신다더라! 오빠도 좋은 사람이라고 자기 오빠 말을 좋게 했단다.”

음……나도 그 정도는 들어서 알지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주요 일과인 어머니가 연예계 소식은 나보다 한수 위다. 그러니 어머니가 신나게 설명을 하실 수 있지!

동네 황금부동산 주인이 동네 집들을 너무 싸게 소개해서 손해 본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매산시장에서 옷과 구두를 수선하는 형제가 열심히 살아서 자식들을 다 잘 키우고 좋은 집도 샀다는 이야기, 나도 그 형제를 잘 안다.

역전시장 황정아네 가게에 들렸더니 날씨가 춥지 않아서 옷이 안 팔린다는 이야기,

밤을 까서 파는 할머니가 있는데 한 봉지에 3000원씩 두 봉지를 사면서 5000원만 하자고 했더니 안 깎아주어서 그냥 6000원주고 샀다는 이야기,

내가 말했다. “어머니 밤 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것을 깎아요. 다음부터는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사셔요! 했더니 ”안다 힘들고 말고! 그래서 6000원 다 주었다니까!

날밤을 먹는 맛이 좋다. 아드득 경쾌한 소리를 내며 씹힌다.

“어머니 날밤! 맛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밤 값은 하는 겁니까? 밥 한 그릇 다 먹고 또 밤을 먹으니”

“하고말고! 우리 아들이 왜 밤 값을 못해?

-종득이 형 생각이 난다.

어머님이 편찮으시고 모든 수발을 종득이 형이 다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종득이 형은 정말 효자다!!

나도 어머님이 누우시면 할 수 있을까? 해야지!!!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아름다운 보리사

아름다운 보리사 부처님!

지난 2일간 내년에 수학여행을 다녀올 장소를 답사하고 왔다.

2일 동안에 30시간 정도 차를 탔으니 강행군이었다.

수원에서 출발하여 기흥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에 오르고, 신갈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한 다음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내가 들린 곳은

소수서원

부석사

경주 불국사

경주 남산

양산 통도사

부산 태종대

부산 광안대교

현대자동차

현재조선 등이었다.

경주에는 3가지의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 불국사, 석굴암, 경주남산이다. 이

중에서 경주남산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이번에 꼭 보려하였다. 경주 남산에는 140개의

절이 있었다 한다. 남산에서 “미륵곡 석불좌상(보리사부처), 탑곡마애조상군, 남산동쌍탑, 감

실부처, 삼릉, 배리삼존불” 등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 보리사부처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리사처님은 1300년 동안 야외에서 비를 맞았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조각이 정

교하게 남아있었고, 얼굴의 선이 아직도 신선하게 살아있었다. 얼굴의 가는 선이 살아있었

던 것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행운도 있었겠지만 석불의 재료인 화강암의 질이 좋았

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부처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은근한 미소, 오뚝하게 살아

있는 콧날. 도톰한 볼, 예쁜 입술 등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전체적인 얼굴의 모습에서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대왕의 영향이 동방의 조용한 나라

신라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문화의 전파와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 결과를 이루어 내는가 하는 감동을 또한 느꼈다.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이 실크로드를 따라 신라에 까지 온것이다.

내가 보았던 야외의 모든 부처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상이었다.

잔잔한 미소에는 저절로 평화로움이 흘렀다.

내가 불상을 극찬하자 따라왔던 가이드가

“학생들도 교감선생님처럼 감동받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학생들에게 이런 감동

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을 갖고 교육에 임하는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얼굴에 비하여 몸통이 조금 작아 전체적인 비례가 맞지 않는 것이

흠이었으나 단아하고 정교한 얼굴은 그것을 커버하고 남음이 있었다.

보리사 부처(경주남산미륵곡 석불좌상)! 잊지 못할 것이다.

보리사 부처(경주남산미륵곡 석불좌상)부분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술(酒)

술(酒)

나는 대학교 1학년이 되면서 되면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담배는 조금씩 태우다가

22살에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피우게 되었다. 제대 후에는 더 많이 피웠으며

40대 중반까지 25년이나 피웠다. 다른 사람은 연기를 대충 내보내고 피우지만, 나는 연기를

가슴속 깊이 마시는 광적인 애연가였다. 정말 줄기차게 피웠다. 몇 년 전에 금연에 성공하

여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 술은 배워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범생이 였던 나는 술도 역시 대학에 입학

하면서 선배들이 먹으라고 하여 먹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술 못 마시고 죽은 놈 할레루야

남촌옥 앞에다 묻어주 할렐루야 !”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선배들이 주는 술을 마셨다. 그러

나 술을 마실 때 마다 머리가 아프고 괴로웠다. 술을 많이 마시면 구토증세가 나고, 손가락

을 목에 넣고 우엑! 우엑! 해보지만 침만 흘리고 토하지 못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위에서 식

도로 역류하지 못하는 체질인 것 같다. 평생에 걸쳐 토해 본 기억이 어려서 소화불량으로

두어번 토한 것이 전부다. 나는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인 듯 하다. 술을 마시면 너무나 몸이

괴롭다. 비 오는 날 걸쭉한 흙탕물이 고인 길에 얼굴을 묻고,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사람

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선(詩仙) 이백은 “석

잔을 마시면 통하고 한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친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아무리 마셔도 그

런 경지에 가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실 기회가 있어도 마음

껏 마시지 못했다. 늘 술을 피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술을 마시면 몸이 괴롭기 때문이다. 나

도 풍류를 즐기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명색이 시인이 아닌가! 그런데 필름이 끊기

는 경지는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다. 너무 괴로워 그 이전에 술잔을 놓아버린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제대로 술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한번 제대로 먹어보면 완전히

필름이 끊기고 술이 술을 먹는다는 것이다. 과감하게 한번 도전해보면 신선의 경지에 닿는

다고 말한다. 그런데 몇 번 시도해보았으나 그럴 때마다 더 마시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어 중단하고 만다. 가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죽는 사람에 대한 기사가 나지 않는가. 내가

그런 체질인 것 같다. 언젠가 술을 많이 마신 날 집에 와서 아내에게 “ 내가 죽을 것 같으

니 잠을 자지 말고 나를 살펴주시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내는 얼마나 놀랐을까! 정말

책임 없는 가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나일남 교감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만나

는 것이 고역이었다. 사람이 좋아 만나기는 하지만 이 양반이 꼭 3차를 가야 나를 집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세 차례나 술집을 거쳐야 하니 비싼 집은 가지도 않고, 길거리 허름한

대포집에서 닭발, 돼지 껍데기 등의 안주를 곁들여 소주를 먹다가 생맥주 집에 입가심하러

2차가고, 슈퍼앞의 파라솔에서 3차를 한다. 셋이면 잔을 미룰 사람이라도 있는데 둘이 술을

먹으면서 잔을 돌리니 미칠 지경이다. 내 앞에 두잔의 술잔이 있다는 것은 나일남선생님 앞

에는 술잔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도저히 술친구를 할 수 없다고 했더니 나중에는 각자 잔

을 쓰기로 하였다. 알고 보니 이 양반은 술이 먹고 싶은데 딱히 불러낼 사람도 없어 나를

부르는데, 나는 세 번정도 부르면 한번 꼴로 나간다. 또 나일남 교감선생님이 아직도 워즈

워드의 애너벨리를 원어로 줄줄 외우고, 내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人生讚歌)를 외우면 한

소절마다 영어로 따라 외우며 흥을 돋우는 그의 낭만이 좋아 만나곤 한다. 그는 진정한 시

인이며 평론가다. 이 양반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 몇 년 동안의 고역이었는데 요즈음에는

퇴근길에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이 솔솔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서 먹을 수도 없고,

갑자기 술 먹자고 불러낼 만한 사람도 없고……

이럴 땐 혹, 술 먹자고 전화하는 사람 없나

하고 기다려지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의 초기증상인가?

요즈음에는 백화점에 가서 포도주

코너를 지나면서 눈길을 준다.

지난번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료들에게 두 번이나

술 먹자고 내가 먼저제의하기도 했다.

요즈음 술이 슬슬 먹고 싶어진다.

술 생각이 자주 난다.

그냥 취하고 싶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맥주 두병 정도는 언제든지 먹어줄 수 있다.

의사는 뇌혈관 질환 때문에 어떤 술이든지 한잔 이상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실천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 말을 따를 생각도 없으며 맥주 두병정도 먹어도 죽을 것 같지는 않

다. 오늘도 술 먹고 싶다. 아내와 함께 생맥주 집이라고 가고 싶은데 아내는 절대로 술을

먹지 않는다. 아무리 분위기를 잡고 술을 먹자고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집에서 내가 촛불

을 켜고 포도주를 따라도 거의 먹지 않는다. 오늘도 술을 혼자 먹을 수도 없고……

이런 때는 그냥 참는다. 내일 누구한테서 술 먹자는 전화 한통 오겠지!!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아내의 생일과 석영이의 꽃다발

장미꽃다발

어제는(음력 10월 16일) 아내의 생일이었다. 특별하게 계획된 일도 없어서 충청남도 광천에

있는 오서산을 등반하였다. 사실 아내는 26년이나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느

라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여태까지 버텨준 것만도 감사한일이다. 지난여름에 아내는 골다

공증 검사를 했는데 골밀도가 75로 측정되어 너무나 놀랐다. 충격적이었다. 골밀도는 칼슘

을 섭취하기 보다는 운동을 열심히 하면 높아진다. 무엇보다도 운동이 중요하다. 나는 아내를

설득하여 지난 8월부터 헬스클럽에 함께 나간다. 나도 몸이 아파서 1월 2일부터 운동을 시

작한 것인데 아내와 나는 정말 처절하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특히 아내는 하루도 거

르지 않고 초인 같은 의지로 달리기를 한다.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운동

을 한다. 어떤 때는 저러다가 무슨 일이 날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달리기를 열심히 한다.

그리고 아내의 건강도 눈에 띠게 좋아졌다.

우리 부부는 몸무게도 줄고, 다리에 근육이 생겼으며

허리가 줄어드는 등 체형이 변했다.

일요일은 헬스장을 열지 않기 때문에

등산을 가기로 한 것이다. 등산코스는 우리 부부에게 적당할 정도로 약간 힘들었다. 힘이

들어야 운동을 한 효과가 나기 때문에 아주 흡족하였다. 생일이니 맛있는 음식을 사달라고

해서 수원에 도착하여 아구찜을 먹었다. 저녁 10시 가까이 되어 집에 도착하니 놀랍게도 둘

째 아들 석영이가 엄마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아름다운 장미꽃다발 이었다. 한두 송이가 아

닌 수십 송이 꽃다발이어서 놀랐다. 나는 속으로 “녀석 따뜻한 장갑이나 선물하지 웬 꽃다

발”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둘째 아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감사하였다. 석영아 어찌 너를 사

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껄껄껄 웃었다!!

오늘은 조상님께 시제를 지내는 날이다. 아내와 함께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에 다녀왔다. 모든 일가 식구들이 모였다. 시제 음식도 풍성하고 정갈했다. 정성을 다하여 제를 올렸다. 내가 한글로 축을 써서 읽었는데 내용인즉, 금년에도 많은 후손들이 명예를 높이고 재물을 늘렸으며,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음을 고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나에게는 재종간인 종가집의 종손과 종부를 포함하여 5명을 우리 집에 초대하였다. 아내는 먼 여행길에 지쳤음에도 손님들에게 바쁘게 저녁상을 차렸다. 저녁 전부터 술잔이 오갔다. 위스키를 한 병 따고, 나의 절친한 친구인 남기완 교수가 중국에서 가져온 독주를 곁들여 마셨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시제를 마친 직후부터 술을 드셔서 이미 많이 취한 상태였는데 종손인 신호형이 아버지에게 위스키를 따르는 것을 보고, 내가 반잔만 올리라고 말하면서 손을 잡고 말렸는데도 오히려 나를 밀면서 부득불 넘치도록 한잔 가득 따르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단숨에 마셨다.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어찌 80세 된 노인에게 위스키를 넘치도록 따르십니까! 앞으로 내 아버지에게 술을 과하게 권하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나한테 싫은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종손도 매우 당황하는 눈치였고 초대된 손님들로 일순간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신력이 많이 흐려지셨습니다. 혼절하여 대학병원 응급실에 두 번이나 갔었고, 특히 요즈음에는 당신 스스로 몸을 돌보지 않습니다. 이점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완전한 알코올 중독입니다. 오래 사시고 싶은 욕심도 없어 보입니다. 세상을 비관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술을 즐기면서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입니다. 내 아버지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함부로 술 권하지 마십시오.”

나는 정말 내 아버지에게 술 권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 다른 사람이 권하지 않아도 혼자서 드시는 양만으로 이미 과음이다. 정말로 아버지는 오래 사시지 못한다. 나는 함께 살기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감지하게 된다.

손님들은 돌아갔다. 다시 우리 식구들이 식탁에 모였다. 정겨운 분위기였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그리고 석영이, 나 이렇게 다섯이 식탁에 모였다. 어머니와 아내 석영이가 저녁을 먹고, 나와 아버지는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심심풀이로 반찬을 드시다가 갑자기 어머니를 구박하셨다. 오징어채 반찬을 젓가락으로 한 움큼 집어들고 어머니에게 먹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깍두기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 중이라 오징어채를 먹을 수는 없다고 거절하셨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먹으면 너무 짜서 못 먹겠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젓가락에 들고 있는 오징어채는 한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 붙어달려있었다. 가장의 횡포였다.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평생 동안 어머니와 식구들을 괴롭히셨다. 사실 식구 중에 오징어를 먹는 사람은 석영이 뿐이다. 석영이를 위해 어머니가 만든 반찬이었다.

어머니는 계속 먹기를 거부하고 아버지는 강제로 먹으라고 하고…… 보다 못한 석영이가 “그것은 제가 해달라고 해서 할머니가 만든 반찬입니다” 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석영이 눈에도 할머니를 못살게 구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했으리라. 석영이가 제일 어려워하는 사람이 할아버지인데 사춘기의 정의감을 가진 아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이다.

아버님은 손자가 불손하다고 대노하셨다.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킨 것이냐고 소리치셨다. 그리고는 술을 가져오라고 난리치셨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아내는 석영이를 타이르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없었다. 석영이는 저녁도 먹지 않고 식탁을 떠났다. 한시간 이상 설교가 이어졌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씀드려야 노여움만 더할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는 아내가 감사할 따름이다. 뒷감당이 문제였다. 이제 밤새도록 어머니를 들볶고 술을 마실 것이다. 그리고 며칠은 꼼짝 못하고 끙끙 앓을 것이다. 한 시간 이상 설교를 하던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상황은 뜻밖의 계기로 반전되었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나를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갔더니 방석에 나를 앉히고 “아범아 네 처와 석영이를 데리고 아파트로 살림을 나거라” 라고 말씀하셨다. 기가 막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껄껄걸 웃었다. 그냥 웃었다! 아버지는 내가 웃으니 함께 따라 웃으셨다. 웃으면서 하시는 말 “아들이 웃으니 나도 좋다!” 아버지는 오십먹은 아들을 끌어안고 내 볼에 입을 맞추셨다. 어이구! 내아들! 하시면서……아버지 눈가에 이슬이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의상 코디네이터

오늘은 평택에서 어머니 오빠의 손녀딸이 시집가는 날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가기로 했다. 대충 차비를 차리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열려진 안방 문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신다. “어떤 옷을 입을까?” 어머니가 몇 가지 옷을 내놓으시고 어떤 것을 입을까 고르시고 있던 중에 내가 내려오니 자문을 구하신다.

어머니는 출타할 때면 평생을 나에게 의상을 골라달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건성으로 답하곤 했다. 또는 “아무거나 입으셔요” 라고 말한다. 73세나 되신 분이 아무 옷인들 어떠랴 하는 생각에서 무심하게 답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에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작은 키에 살도 많이 찌셔서 사실 그 어떤 옷을 입어도 별 도움이 못된다고 생각해왔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래도 인텔리인 큰 아들에게 평생 의상 자문을 하고 싶어 하시는 것을 한번도 제대로 충고한 적이 없으니 잘못도 크게 잘못한 것이다. 돌아서려다가 다시 안방에 들어가 여러 가지 옷 중에서 희고 밝은 정장이 어울릴 것이라고 추천하였고,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뒷좌석을 보면서 의상이 잘 어울린다고 말씀드렸으며, 속에 받쳐 입은 연두색 티셔츠가 있어 더욱 좋다고 했더니 “서른네살 먹은 노처녀의 중매를 성사시키고 색시 어머니한테서 얻어 입은 옷이며, 연두색 티셔츠도 그 때 함께 받은 것”이라고 묻지 않은 것까지 신이 나서 말씀하신다.

역시 오늘의 의상 자문은 대 성공이었다. 조금만 신경 써서 말하면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의상자문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이야 말로 ‘의상코디’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닐까!! 거기에다가 한술 더 떠서 34살 먹은 노처녀의 결혼을 성사시킨 것이야 말로 어머니가 이웃을 위해 봉사하신 일이라고 추켜세웠더니 더욱 좋아하셨다.

평택에 있는 예식장은 쉽게 찾았으며 차를 주차시키기도 좋았고, 예식의 진행도 매끄러웠고 신랑도 인상이 좋았으며 신부는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20만원을 부조금으로 내 놓았다. 80세인 외숙은 나를 보자 너무 반갑다며 얼굴을 이그리고 우셨다. 지난해에 외숙모를 잃고 외로우셨을 것이다. 외숙에게도 용돈으로 10만원을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돌아오는 길도 막히지 않고 좋았다.

나는 훌륭한 어머니의 의상코디네이터이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먹고 싶다!

생선은 신선도가 생명이다.

1 살아있는 생선이냐

2 죽으려고 배를 드러내고 물에 떠있는 상태이냐

3 금방 숨이 끊어진 생선이냐

4 어제 죽은 생선이냐

5 원양어선에서 잡아 냉동시킨 생선이냐

위의 다섯 가지 생선의 맛이 모두 다르다.

물론 1번의 생선이 가장 맛이 좋다.

곡물도 역시 그러하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밀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러니 맛이 좋을 리가 없다. 외국에서 추수하여 배를 타고 먼 나라까지 왔고, 또 유통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신선도가 떨어진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밀농사를 지었고, 밀을 추수하면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만들어 국수를 빼왔다. 금방 추수한 밀로 만든 국수는 정말 맛이 좋다. 색깔은 누런 빗을 띠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면발은, 요즈음 국수보다 훨씬 쫄깃쫄깃하다. 어머니가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건지면 나와 두 동생들은 앞을 다투어 맛있게 먹었다.

요즈음 다시 우리 밀을 심는 사람이 생겨나고, 내가 우리밀 국수를 사보기도 했지만, 옛날 그 맛이 아니다. 이미 유통과정에서 신선도가 떨어진 것이다. 내가 먹던 국수는 살아있는 생선을 요리한 것처럼 금방 추수한 밀로 만든 국수였다. 이 나이에도 그 국수가 그립고 먹고 싶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일상일기

조용한 일요일 아침 7시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서

아버지가 어제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고

홈플러스에 가서 사왔다는 조기를 구어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어제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형제들이 모두 빼어난 두뇌여서

미국에서 교수로 활동중인 유도형 교장선생님 형제들에 관하여

교무행정 능력이 뛰어난 교무부장님, 재벌로 성장한 남동생, 의사부부인 여동생, 그리고 치과대학에 다니는 딸에 대하여

사랑받는 아내로 살고 있으며(사랑받는 현장을 목격하고 감동받은적 있음)

거기에다 지난 주에 10킬로 단축마라톤에서 57분대의 기록을 세우고

남자 참가자들을 멀리 따돌렸다는, 멋쟁이 곽니라(郭尼羅) 선생님에 대하여

신호등이 걸린 신영통 사거리에서

운전석 시트에 사선으로 기대서

낭만적인 모습으로 석양을 받으며 상념에 젖어있던(옆차선에서 목격함, 그렇게 진지하게 사유에 빠진 모습은 처음봄), 늘 좋은 사무실 분위기를 연출하는 서순원선생님

늦동이 때문에 온 집안에 사랑이 넘친다는

컴퓨터 전문가인 교수님과 사는 양희영 선생님에 대하여

(실제로 건형이를 본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아이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도 잠을 자고……

나는 커피와 함께 컴에 있다.

늦잠자는 아내를 탓할 수는 없다. 따지면 늦잠도 아니다.

어제 밤에도 퇴근 후 빨래와 부엌일, 그리고 특유의 느림으로(후후)

1시 40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았으니 잠을 자도록 내버려둔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여자가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어제밤에 저녁을 먹고 7시부터 잠을 잤으니….입이 열이어도 할말이 없다.

휴일 아침 늦잠을 자는 것은 아내의 유일한 휴식이다.

일요일 교회에 가는 시간에도, 스스로 일어나기 전에는 아내를 깨우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주 나에게 부탁을 한다. 일요일 아침에 교회갈 시간에 깨워달라고……나는 한번도 부탁을 들어준 적이 없다. 나는 안깨운다.

아랫층에서는 늙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겨운 대화를 나누신다

영통에 사는 조카딸이 아직도 15평 아파트에서 산다는 이야기

어머니가 친구분들 중에서 제일 검버섯이 없이 피부가 좋다는 이야기

내일은 마당에 심은 고추를 따서 말려야 겠다는 이야기

10, 11, 12, 13, 14, 닷새동안의 연휴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편안하게 빈둥거리면서 시작되고 있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개망초꽃

월간문학 8월호를 보다가 수백편의 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수를 건졌다.

스무번도 더 읽었다.

개망초!

요즈음 들판에서 제일 흔한 잡초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는 풀이다. 나는

꽃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풀을 항상 업수이여기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것

이 너무 흔하기도 하거니와 볼품도 없고,밭에도 많이 나서 농사 짓는데 방

해가 되는 아주 골치아픈 잡초이기 때문에 시골에서 자란 나는 개망초를

아주 형편없는 녀석으로 취급해왔다. 멀리서 보면 들국화로 착각을 하기

도 하여 신뢰할 수 없는 영원한 적으로 생각했으며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

으면 들국화하고는 같은 반열에 설 수도 없는 이상한 냄새까지 풍긴다. 이

름 또한 망초이다 못해 개망초가 아닌가!! 그런데 이 시를 읽고 개망초를

다시 보기로 했다.

<개망초꽃>

구 자월

그대가 그립습니다

그대가 눈물로 그리워서

오솔길 너머까지 기웃거리다가

질펀한 벌판 멀리 가물가물

눈물 뿌연 그리움을 피웠습니다

그대

꿈속에 희미하고

쉬이 잠못들어

두 눈 말갛게 떠

뻣뻣이 서서 기다립니다.

때로

희미한 달빛이 서러워

새하얀 울음을 삼켜

지나가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 감췄습니다

반짝이는 밤별이 시샘나서

별보다 많은 꽃을 피웠습니다

비틀거리는 세월이 산모퉁이를 돌며

지난날의 발자욱을 묻고자

바람길에 하얀 눈꽃을 뿌렸습니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