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이종환이 쓴 마침내 그림움을 읽었다.
이종환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쓴 에세이다.
그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중부와 전라도를 거쳐 다시 경상도로
그리고 울릉도에 갔다가 다시 강원도를 거쳐서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자전거길에 얽힌 이야기를 썼다.
인상깊은 대목을 옮겨본다 타인에게 추천할 만한 아주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종환의 문학적 깊이와 내적 충만함이 엿보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책이다.
이 여행에 목적이 있다면 목적이 없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침묵의 힘으로 걷고, 침묵의 힘으로 페달을 밟는다. 침묵은 견자의 힘이다. 자연 역시 그 힘으로 서있다.
막 심어놓은 마늘이 파란 혀를 내밀어 눈부시게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 이런 곳에 살면 어떨까? 나는 내면으로 침묵을 빨아들인다.
무시무시한 폭우가 밤새 공기를 찢었다
젊음으로 포장된 절망은 달디달아서 우리는 마냥 무너져내렸다.
세월은 흘렀고 그 친구와 나는 만남이 뜸해졌다. 별다는 이유도 없이 그렇게 됐다.
우리는 일상의 미로 속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길을 잃었다. 우정마져 흩어졌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전체의 완결은 부분의 완결에 기인한다.
조화(만든꽃)의 장점은 생명력에 있는데 그 생명력은 생명 없음에서 연유한다.
과유불급-지나치면 탈난다-
내생각에는 과유불급은 지나친것은 모자란것과 같다 라는 의미인데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라고 해석한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인가?
수백년은 됐을 성싶은 소나무들이 주춤주춤 허리를 꼬고 서서 이방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이 나로부터 멀어져간다. 현실의 꼭지점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면 거기 나의 고향이 있다.
혼자하는 자전거여행에서 나는 피곤함과 허전함을 느꼈다. 포만감 뒤의 통증 같은 무기력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휴식의 처연함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결핍이나 고통의 강도에 민감하다. 굶주린 자에게는 식량만큼 절박한 것이 없고 감옥에 있는 자는 자유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너무 허기가 져 식욕까지 먹어치운 모양이다.
텔레비젼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식상하기 짝이 없어서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얼굴들로 구성되어있다. 내용이랄 것도 없다.
오락이면 오락, 스포츠면 스포츠가 차이를 구별할 수 없으리만큼 비슷하다.
게다가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연에인들의 신변방담이나 어이없는 오락 행각이라니 시청률을 의식한 제작이며 편성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들은 이제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다. 물욕에 무릎을 꿇은 자본주의의 저 게으른 악순환이라니…
부와 권력은 함께 움직이는 모양이다. 자본의 사유화 과정에서 그 둘은 곧잘 무성생식을 일으킨다.
부와 권력의 결합은 그래서 대개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그런것만은 아니다.
시속을 알고 풍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부는 의미 있는 재원이되기도 한다. 그것이 그 인물의 타락을 막는다.
여행 내내 나는 내 마음을 뒤졌다. 그 안에서 외로움의 유전자를 발굴하고 가공해냈다.
몸은 사실 더 외로워져야 한다. 현대의 모든 이기와 합의들은 외로움을 모르게 하는 기제들로 가득차있다.
외로움이 깊어질 ‘여유’란 조금도 없다. 외로움이야말로 이 세상과 연결된 다리라는 것을 모른다.
한달이 넘는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생활해야할 본거지로 진입하고 있다.
불야성으로 반짝이는 네온의 거리라 살아가야할 내 터전이다.
저 인공의 빛 속에서 어쨌든 부나비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할 그리움이다.
나는 그 불빛 속으로 자전거 머리를 세우고 천천히 떠다 밀었다.
수원역 로터리에 있는 까페 페스푸치에서 책을 읽었다.
2층까페에서 밖을 내려다 보니 젊은 연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손을 잡고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 살짝 찍었다.ㅎㅎㅎ~
상촌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책이다. ‘마침내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