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큰아이가 2월말에 귀국한 이래 집안에 분란이 생겼다.

큰아들의 눈에 보기에 우리집 환경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하긴 건축한지 43년된 집이니….43년 동안 이사가지 않고 여기서 살았다.

나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으나 90세가 되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어서 간섭하지 못했다.

하나 아들은 달랐다.  영국런던과 뉴욕맨하탄의 빌딩숲에서 근무하다 온 아들의 눈에

우리집 마당에 얼기설기 지어놓은 개집과 마당의 구조물 등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1924년 생으로 기미독립 운동이후 일제의 무단통치하에서 어린 시기를 보내셨고  6.25 북한의 남침전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신 분이다.

말해무엇하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2차대전에 일본군으로 참전하셨고 6.25 북한의 남침전쟁 때는 군에갈 나이가 지났는데도 전쟁터에서 국군에 강제 입대되어 

 6.25북한남침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한 용사이시다.

그 할아버지는 소일거리로 마당에 농사를 지으신다. 이게 손자의 눈에 못마땅하게 보인것이다.

 

할아버지의  터전을 놓고 손자와 할아버지가 대결하였다.

내가 중간에서 중재하느라 애를 썼지만 아들이 물러서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 감정을 많이 다쳤다.

나는 두사람간을 조율하면서 집 수리공사를 진행하였고

결과는 어느정도 아름다운 집으로 바뀌었다.

사실 아들의 잘못은 없다. 즉 손자의 잘못은 없다. 손자가 집을 부신것도 아니고 손자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이 날라가게 된것도 아니다.

손자는 그저 집을 아름답게 꾸미자고 한것인데 말씀드리는 방식이 우격다짐이었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집은 아주 아름다워졌다. 동네 사람 모두가 예쁘다고 난리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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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큰 아들의 주장으로 마당을 크게 수리하였다.

할아버지가 농사짓는 부분과 통로 및 차고를 분리하는 흰색 펜스를 설치하였다.

흰색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보니 보기에 아주 깔끔하였다. 마당에 칸나와 백합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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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아파트로 바꿔치기 하여 돈을 벌었어야지 너무 주택에 오래 살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다. 43년동안 이 집에서 살았으니 내 인생의 모든 추억이 이 집에 서려있다.

나는 이 집에서 결혼을 했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다녀와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 집도 여기며

아내가 산기가 있어 병원으로 달려갈  때도 이 집에서 였다. 큰 아들이 말벌에 쏘였다고 학교에 울면서 전화한것도 이 집이며

 두 아들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져가면서 자전거를 배운 것도 이 집 곡목에서 였다.

나는 이 집을 사랑하며 이 집의 골목도 사랑한다.

아파트가 뭐 대수냐?  별거냐? 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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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사가 수구꼴통이라고?

그동안 보려고 해도 왠일인지 손에 잡지 못했던 삼국유사를 읽었다.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삼국유사를 꼭 읽으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서양에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삼국유사가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우리문화의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다.

원전은 한문이어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고 [불국정토의 입장에서 본 삼국유사도 읽기 어려웠다.

하여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를 읽었는데 360쪽의 해설을 곁들인 장편이었다. 해설까지 있어 읽기 좋았다.

다만 일부에서 저자의 편협한 해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신라 박제상에 대한 부분이다.

신라 눌지왕 10년(426년)에 왕이 잔치를 베풀고 있던 중 눈물을 흘리며 신하들에게 왜놈들에게 볼모로 끌려간 아우 미해와 고구려에 끌려간 아우 보해를 구해오라고 하였다.

이에 만고충신 박제상이 나선다. 박제상은 고구려에 들어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보해를 구해온다. 눌지왕은 보해를 보자 일본에 끌려간 미해 생각에 더욱 슬피운다.

이를 보고 박제상은 두 번 절하고 집에도 들리지 않고 길을 떠나 율포바닷가에 이르렀다. 제상의 아내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나 박제상을 실은 배는 떠났다.

일본에 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미해를 탈출시킨다.

미해가 함께 가자고 했으나 같이 떠난다면 왜놈들이 알고 쫒아올 것입니다. 신은 이곳에 남아 추격을 막겠습니다. 미해가 어찌 나혼자만 간단말이요 라고 말하자

박제상은 신이 공의 목숨을 구하여 눌지대왕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미해가 완전히 탈출한 뒤 왜왕에게 잡혀간 박제상에게 왜왕이 네가 왜국의 신하가 된다면 녹을 후히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박제상은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 지언정 왜국의 벼슬은 받지 않을 것이요!

왜왕이 노하여 박제상의 발바닥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베서 그 위를 걷게 하였다.

왜왕이 다시 물었다. 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인가? 나는 계림의 신하요! 왜왕이 쇠를 달구어 그 위에 박제상을 세워놓고 물었다.

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인가? 나는 계림의 신하요! 왜왕이 박제상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불에 태워죽였다.

 

이대목에서 저자 김봉주는 박제상을 다음과 같이 폄하하고 있다. 박제상이 두 왕자를 탈출시킨 이후 신라와 왜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엄밀히 보면 박제상은 전쟁을 막는데 공헌한것도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는데 공헌한 것도 아니며 단순히 왕 개인에게 혈육을 찾아준것에 불과하다.

사회전체에 공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제상은 신라이후 어느 왕조에서나 충신으로 강조되었지만 사실 그는 지배자의 입맛에만 맞는 사람이다.

전제왕조의 입장에서는 가장 내세우고싶은 사람이겠지만 피지배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왕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면 그를 위인으로 부르고 존경하는 것은 망설여진다.

 

저자의 이런 대목이 나를 실망시켰다. 과연 이것이 글쟁이가 할 말인지 의심스럽다. 역사적 안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당장의 백성 안위만 중요한가? 민족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저런 정신이 있었기에 군왕에 대한 충성이 이어졌고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키려는 민초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힘을 보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의병들이 증명하고 있다. 대저 나라를 잃은 백성이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면 당잘 알수 있다.

그리고 임금 개인을 위한 충성이지 백성들에게는 고생만 시켰다고 하는데

1500년 전의 사실을 지금의 윤리적 잣대로 재서 해석하는 것이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의 책임있는 글발인지 묻고 싶다.

아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박제상을 파견했으니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하지 그랬나?

 

박제상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만고의 충신이다. 신라에 박제상이 있다면 조선 병자호란 때의 김상헌이 있다.

김상헌은 심양에 끌려가 청태종이 수시로 감옥에서 불러내 나의 신하가 되면 풀어주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꼬였지만

그 때마다 김상헌은 더러운 소리 듣기 싫다. 어서 빨리 내목을 쳐라라고 결기를 보였다.

지금생각해도 보석처럼 빛나는 나라사랑의 정신이다. 이와 같은 결기가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정신적 지주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당장은 백성을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그런 정신을 보고 만백성이 애국의 불씨를 피우는 것이다.

당시에는 성리학적 전통으로 임금에 대한 충성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국가와 민족을 빛내는 정신으로 보아야한다.

역사에서 비굴함만 가지고 살아남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강인함과 비굴함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민족의 물결과 역사는 도도히 흘러가는 것이다.

 

인터넷에 보니 다음과 같은 잡글이 있다.

3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정말 답도 없고 세계정세 뒤떨어진 무뇌충들…….이런 주전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당했는가!

병자호란으로 삼학사는 청나라로 끌려가게되고 청나라황제 홍타이지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주전의 대의를 끝까지 밝히다가 모두 선양성 서문 밖에서 처형당하였다.

민중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던 수구꼴통들이다.

이게 말인가? 글인가?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의 저자 김봉주가 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삼국유사(三國遺事:1281)에서 유사(遺事)란 남겨진 이야기라는 뜻으로

삼국시대에 일어났던 일 중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남은 사실들을 적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 기록되지 않은 일이란 1145년 고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삼국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 빠진 일들을 말한다.

김부식은 유교적사대주의와 신라정통론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기록에서 누락시켰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스님은 중국에서 나라가 생겨날 때는 여러 가지 신비한 일들이 발생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삼국 시조의 신비로운 탄생과정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며 기록하였다.

유교적 합리주의에 근거해 삼국의 신령하고도 기이한 이야기를 모두 믿지못할 것으로 보고 역사에서 제외한 김부식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중국과 다를것이 무엇이냐는 저 당당한 일연스님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편찬하면서 갖고 있던 자주적 역사관을 뚜렷이 보여준다.

신라는 23대 법흥왕이 처음 연호를 만들어 사용하고 진흥왕,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까지 모두 독자적인 연호를 정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진덕여왕 4년인 650년 여름에 왕이 태평송이란 노래를 지어 당나라 황제에게 올리고 이때부터 당나라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김부식은 천자의 나라에 속한 작은 나라는 사사로이 연호를 지어쓸 수 없는 것이다.

신라는 한뜻으로 중국을 섬기고 조공을 계속하면서도 법흥왕이 스스로 연호를 썼으니 의심스럽다.

그 뒤에서 그릇된 대로 여러해가 지났으며 태종의 꾸지람을 듯고서도 오히려 주저하다가

이제 당나라의 연호를 받들어 행하니 비록 부득이하게 시작하였으나 허물을 고쳤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 제5 진덕왕

 

이런 점에서 보면 삼국유사는 단순히 삼국사기에 누락된 내용을 보충하는 것을 넘어

삼국사기의 사대주의적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 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 결과 삼국사기의 중국 중심주의와는 구별되는 자주의식이 분명한 책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오늘날 삼국사기는 보물이고 삼국유사는 국보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삼국사기는 기원전57년 신라의 건국을 첫머리에 두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단군조선부터 시작한다. 여기서도 일연스님의 자주적 태도를 볼 수 있다.

고려 충렬왕 13년(1287)에 이승휴(1224∼1300)가 쓴 역사시(歷史詩)에도 단군신화가 나와있지만

단군신화를 처음 언급한 책이 바로 삼국유사이다.

이런 점에서 삼국유사는 얼마나 소중하고 다행스러운 기록인지 알 수 있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단군신화는 없었다.

 

 

 

<참고자료>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7년(1281)경에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이며 목판본이다. 국보 306호로 지정되어있다.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은 삼국·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다.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서술하였다.

흥법편은 삼국의 불교수용과 그 융성에 관한 내용, 탑상편은 탑과 불상에 관한 내용, 의해편은 원광서학조(圓光西學條)를 비롯한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전기를 중심으로 한 내용,

신주편은 신라의 밀교적 신이승(神異僧)들에 대한 내용, 감통편은 신앙의 영이감응(靈異感應)에 관한 내용,

피은편은 초탈고일(超脫高逸)한 인물의 행적, 효선편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적인 선행에 대한 미담 등을 각각 수록하였다.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그 특징을 보면 첫째, 역사·불교·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古記)·사지(寺誌)·비갈(碑喝) 등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되었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둘째, 차자표기(借字表記)로 된 자료인 향가, 서기체(誓記體)의 기록, 이두로 된 비문류, 전적에 전하는 지명 및 인명의 표기 등은 한국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되며

14수의 향가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연구의 값진 자료이다. 세째,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다.

기사는 탑·불상·사원건축 등에 그리고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유적을 조사·연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네째, 풍류도(風流道)를 수행하던 화랑과 낭도들에 관한 자료를 상당히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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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일연이 쓴 삼국유사 국보306호 이다. 원전은 위와같이 한문으로 쓰여져 내가 읽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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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수가 쓴 불국정토을 이루었던 삼국유사를 샀는데 역시 읽기 어려웠다. 아니 재미가 없었다. 

하여 학교 도서실에서 해설을 곁들인 고등학교 교사 김봉주가 쓴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를 읽었다. 

김봉주선생님은 나름대로 좋은 책을 썼다. 하나 몇군데는 내가 찬성하기 어려운 해설을 덧붙여 놓아 동의하기 어려웠고

학생들의 나라사랑의 건전한 가치관 정립에 해가 되는 내용이 있었다. 

  

수원역로터리에 있는 커피숍 파스쿠치에서 읽었다. ^-^

까페라테를 시켰는데 칼로리가 많아보였다. 다음에는 먹던대로 아메리카노를 시켜야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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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제목

주일 예배 시간에 기도제목을 작성하였다.

대부분 주변 사람을 위한 기도이며 나 자신의 신앙(self belief)을 위한 기도를 마지막으로 정하였다.

나중에 주보를 보고 목사님이 편찮으신 것을 알았다. 김정기 담임목사님을 위한 기도를 추가하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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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도전의식을 길러요!

  

      

 

 

사랑하는 상촌중학교 학생여러분!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을 앞둔 시점에 교내예능경연대회를 열었습니다.
음악, 미술, 무용 등의 분야에서 열리며
음악도 여러 분야로 세분화하였습니다.
국악과 양악으로 나누고, 기악도 피아노, 관악, 현악 등으로 나누어 경연하게 됩니다. 작곡분야도 개설하였습니다!
 
교과서의 문화는 고급이며 클래식한 문화입니다.
그러나 학교 밖의 현실은 다릅니다. 교문을 나서면 학교에서 배운 고급문화는 없고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에서는 교과서 문화와는 다른  거리문화가 펼쳐있고
가정의 거실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문화는 방송사마다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이
비슷한 사람들에 의해 저급하게 펼쳐집니다. 상업주의에 물든 방송은 문화적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학교는 이제 고급문화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학교에서는 그럴수록 고급문화를 배워야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 미술, 체육 등의 모든 문화는 인문적 교양이며
학교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인격의 완성이 이같은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상촌중학교 무대에 오르는 연주와 공연 그리고 미술실기대회 등은 모두 클래식한 고급문화입니다.
경연대회에 수상한 우수 작품은 모두 복도에 게시하여 감상하게 될 것입니다.  ^-^
 
학교복도에 세계적인 명화를 게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학생들은 자신은 그림을 그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완벽한 작품한 세계적인 작품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학교 복도에는 교내 미술대회 수상작을 게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수상한 작품을 보고 많은 학생들이 나도 열심히 하면 저만큼 할 수 있고 그래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불타는 도전 의식을 키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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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fati(運命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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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근의 소설 아모르파티를 읽었다.

Amor fati(운명애)란 니체의 용어로서,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단지 이것을 감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말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성취하지 못한다. 그것도 운명이니 사랑해야하나…..내용이 슬프고 어둡다.

주인공이 가족 등 여러 인연을 끊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침 8시부터 수원역 로터리 까페 페스부치에 가서 읽었다. 12시 까지는 그 넓은 찻집에 나 혼자였다. 아무도 나를 방해할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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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찻집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보면서 지하철 공사현장으로 뒤얽힌 로터리 풍경을 찍었다.

멀리 소나무가 그런대로 군락을 이루어 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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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늘 기다린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게 되어있는 팩트를 마냥 기다린다…….

오늘 맹기호는 문득 생각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모두 온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자……

 

단센터에 가서 영기통 훈련(기를 통해 영혼과 만난는 것)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단센터는 마음 수련하고 요가 비슷한 동작으로 기체조 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 송혜근은 몸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육체이탈을 하고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서 윤회의 세계에서 전생의 여러 모습을 만난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말하기도 하고 윤회의 순환에서 벗어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 즉 니르바나의 경지에 간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교리인데 

소설에서는 불교적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불교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뇌의 발견과 유체이탈이란 작가가 소설을 통해 궁구하고자 하는 본질적 질문과 다르지 않다.

즉 뇌속의 정보들을 통해 현재의 기억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소설 속의 노력은 작가 송혜근의 작가적 자기 심문의 구체적 형태이자 제유인 셈이다.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본다.

 

깨어 있음의 가혹함에 눈물이 흐르고 진실의 무서움에 뼈가 저리지만 그것이 곧 삶이고 감각이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우리의 인연이 다했음을 나는 안다.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 식당 주인의 정신을 먹는거예요.

 

내 살을 찢고 나온 자식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제가 떠나면 제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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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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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이종환이 쓴 마침내 그림움을 읽었다.

이종환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쓴 에세이다.

그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중부와 전라도를 거쳐 다시 경상도로

그리고 울릉도에 갔다가 다시 강원도를 거쳐서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자전거길에 얽힌 이야기를 썼다.

 

인상깊은 대목을 옮겨본다 타인에게 추천할 만한 아주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종환의 문학적 깊이와 내적 충만함이 엿보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책이다.

 

이 여행에 목적이 있다면 목적이 없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침묵의 힘으로 걷고, 침묵의 힘으로 페달을 밟는다. 침묵은 견자의 힘이다. 자연 역시 그 힘으로 서있다.

 

막 심어놓은 마늘이 파란 혀를 내밀어 눈부시게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 이런 곳에 살면 어떨까? 나는 내면으로 침묵을 빨아들인다.

 

무시무시한 폭우가 밤새 공기를 찢었다

 

젊음으로 포장된 절망은 달디달아서 우리는 마냥 무너져내렸다.

 

세월은 흘렀고 그 친구와 나는 만남이 뜸해졌다. 별다는 이유도 없이 그렇게 됐다.

우리는 일상의 미로 속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길을 잃었다. 우정마져 흩어졌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전체의 완결은 부분의 완결에 기인한다.

 

조화(만든꽃)의 장점은 생명력에 있는데 그 생명력은 생명 없음에서 연유한다.

 

과유불급-지나치면 탈난다-

내생각에는 과유불급은 지나친것은 모자란것과 같다 라는 의미인데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라고 해석한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인가?

 

수백년은 됐을 성싶은 소나무들이 주춤주춤 허리를 꼬고 서서 이방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이 나로부터 멀어져간다. 현실의 꼭지점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면 거기 나의 고향이 있다.

 

혼자하는 자전거여행에서 나는 피곤함과 허전함을 느꼈다. 포만감 뒤의 통증 같은 무기력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휴식의 처연함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결핍이나 고통의 강도에 민감하다. 굶주린 자에게는 식량만큼 절박한 것이 없고 감옥에 있는 자는 자유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너무 허기가 져 식욕까지 먹어치운 모양이다.

 

텔레비젼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식상하기 짝이 없어서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얼굴들로 구성되어있다. 내용이랄 것도 없다.

오락이면 오락, 스포츠면 스포츠가 차이를 구별할 수 없으리만큼 비슷하다.

게다가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연에인들의 신변방담이나 어이없는 오락 행각이라니 시청률을 의식한 제작이며 편성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들은 이제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다. 물욕에 무릎을 꿇은 자본주의의  저 게으른 악순환이라니…

 

부와 권력은 함께 움직이는 모양이다. 자본의 사유화 과정에서 그 둘은 곧잘 무성생식을 일으킨다.

부와 권력의 결합은 그래서 대개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그런것만은 아니다.

시속을 알고 풍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부는 의미 있는 재원이되기도 한다. 그것이 그 인물의 타락을 막는다.

 

여행 내내 나는 내 마음을 뒤졌다. 그 안에서 외로움의 유전자를 발굴하고 가공해냈다.

몸은 사실 더 외로워져야 한다. 현대의 모든 이기와 합의들은 외로움을 모르게 하는 기제들로 가득차있다.

외로움이 깊어질 ‘여유’란 조금도 없다. 외로움이야말로 이 세상과 연결된 다리라는 것을 모른다.

 

한달이 넘는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생활해야할 본거지로 진입하고 있다.

불야성으로 반짝이는 네온의 거리라 살아가야할 내 터전이다.

저 인공의 빛 속에서 어쨌든 부나비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할 그리움이다.

나는 그 불빛 속으로 자전거 머리를 세우고 천천히 떠다 밀었다.

 

수원역 로터리에 있는 까페 페스푸치에서 책을 읽었다.

2층까페에서 밖을 내려다 보니 젊은 연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손을 잡고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 살짝 찍었다.ㅎㅎㅎ~

상촌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책이다. ‘마침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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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로 세분화 시켰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음악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듣는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직접 해보는것이 더욱 좋습니다.
1학기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을 앞둔 시점에 상촌예능경연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음악, 미술, 무용 분야에서 실시되며 음악도 여러분야로 세분화 시켰습니다. 작곡분야도 개설하였습니다.
수업 후 복도에서 청아한 노래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내일 출연하는데 연습중이라 했습니다. 통기타 반주로 열심히 부르고 있었어요
노래도 아름답고 노래부르는 모습도 예뻐 삼성갤럭시3로 얼른 찍었습니다.
통기타 부문은 경연은 아니고 찬조 출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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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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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개 리트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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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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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이승만의 정적 장면이 쓴 이승만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어제 이승만 바로보기라는 책을 읽었다. 30년 전에 읽은 책만 못하다. 다시 구해 읽었으면 좋겠다.

이승만은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였다. 조선말 과거시험이 매관매직으로 전락한 터여서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소용없었다.

이승만은 실망하고 방향을 돌려 머리를 깎고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공부한다.

외국인 교사의 한국어가정교사를 하면서 배재학당에 다녔고 입학한지 6개월만에 배재학당의 영어교사가 된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서재필이 조지간 독렵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나중에 독립신문의 주필까지 역임한다.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주최하고 고종에게 일본의 세력을 떨치도록 건의한다. 왜놈들은 보부상을 중심으로한 황국협회를 조직하여 독립협회를 탄압한다.

급기야는 황국협회 사람들이 이승만이 고종을 폐위하려한다고 모함하여 이승만은 한성감옥에 갇히게 된다.

한글학자인 주시경이 육혈포를 구해주어 탈옥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종신형을 받게 된다.

6년동안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영어성경을 공부하고 선교사들이 들여보내준 책으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또 교도소에 도서실을 설치하고 죄수들에게 영어와 한글을 가르친다.

6년 옥살이 후 민영환의 건의로 석방되며 민영환에 의해 고종의 밀서를 갖고 미국에 가서

미국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일본의 부당한 간섭을 막는 역할을 해줄것을 촉구하는 밀명을 띠고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간다.

미국에 가서 미국대통령을 만났으나(만나기 전날 을사늑약 체결로 만나지 못했다는 설도 있음)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배재학당 선교사 출신 미상원의원의 배려로 조지워싱턴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하바드대학에서 석사를 했으며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논문제본비용 80달러가 없어 논문을 발간하지 못하고

훗날 논문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여러대학에서 교수로 임용시키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그 때부터 미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활동한다.

상해임시정부에의해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평생 지론인 외교로 독립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전에 미국은 소련을 연합국에 끌어들이면서, 또 중국에서 국공합작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해방 후 한국에서의 정부도 좌우합작 정부가 될것을 희망했으나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인물이었기에 반대하였다.

이에 해방 후에도 미국은 이승만에게 여권을 내주지 않는 등 이승만의 대한민국 입국을 방해했다.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은 것이어서 빨갱이와 타협이나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 였다

군정이후 북한에서 먼저 김일성에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남한에서 5.10총선거가 실시될 때

이승만은 한때 민족화합을 위해 좌우를 아우르는 정부를 세우는데 합의하기도 했으나 이후 김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데 합의하였다.

이후 김구과 의견이 대립되어 5.10총선거를 앞두고 이를 막기 위해 김구와 김규식이 휴전선을 넘어 김일성을 만나러 갈 때

이승만은 만나려면 스탈린을 만나야지 김일성을 백날 만나보았자 무슨 소용있나? 라고 말했다.

김구은 김일성을 만나 실컷 선전에 이용당하고 아무 소득없이 내려왔다. 그리고 5.10총선거가 실시되었으며

200명의 제헌국회의원이 대통령을 간선 할때 이승만 180표, 김구11표가 나왔다. 이것만 보더라고 이승만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는 외교로 독립을, 김구는 힘을 길러 일본을 이기자는 것이었으며(일본에서 보면 김구는 오사마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다),

안창호는 백성을 교육시켜야 독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승만은 두번이나 헌법을 고쳤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에 최대의 오명이다. 그는 6대 독자였다. 아마도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원래 이름은 이승룡 이었는데 이승만으로 고쳤다. 늦게 이씨 왕조를 잇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책도 있다.(30년 전에 읽은 장면 지음)

내 생각에 사사오입개헌에 이은 3.15부정선거와 4.19의거 등의 오욕이 있다 해도 그는 우리나라 국부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4.19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만해도 그렇다.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은 위암 수술차 미국으로 가서 선거정에 죽었으니 대통령선거는 해보나 마나 이승만의 당선이었다.

그런데 야당 장면을 떨어트리고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3.15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었다.

내 생각은 선거지휘의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지만 이기붕이가 원흉이라는 뜻이다.

공산당의 침략을 무찌르고 정부를 안전하게 지켜낸 것이야말로 이승만의 공이다.

아직도 6.25가 북침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미 1990년대 중반 공개된 소련의 비밀문서에 의해 6.25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를 받은 북한 김일성의 침략이라고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 신문도 안보나?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되었다. 원래 우리나라는 전쟁에 침략의 주체를 명시해서 부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신미양요 등이 그것이다.

코리안WAR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다. 침략의 주체를 표시해야한다. ‘북한의6.25남침전쟁’   이 맞는 표현이다.

전세계에서 소련과 국경을 같이하고 소련제 탱크로 침략당한 나라 중에서 공산화 되지 않는 국가는 남한이 유일하다.

6.25북한의 남침 때 미군사고문단 500명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미군의 파병을 요구했던 배짱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으며

반공포로를 과감하게 석방한 일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통일을 누구보다도 바랐으며 결코 휴전협정에 도장찍지 않았다.

미군 35000명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너무커 발을 빼기 위해 서둘러 휴전하려는 미국을 거의 협박하다시피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것도 이승만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토대가 있었기에 외국이 남한을 믿고 투자한 것이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바탕위에 2012년 수출5479억불로 세계 7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인도, 브라질, 캐나다 등의 큰 나라도 모두 수출실적이 대한민국보다 아래다. 이건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자원이있나 나라가 크기를 한가!

백범도 훌륭한 독립의 지도자이며 투사이다. 암살당해 그의 인생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김구에 비하여 이승만은 너무 저평가 되어있다.

내 생각에 박정희의 단속도 한목했으리라 하와이 망명지에서 조국에서 죽고 싶다고 병든 몸으로 여러번 탄원했으나 끝내 박정희는 허가하지 않았다. 죽은 몸으로 입국했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혔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디 있겠는가? 5.10총선거를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하겠다고 북으로 간 김구의 충정을 모르는바 아니며 폄하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김일성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어있었고 남한은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당의 활개로 나라는 혼란했다. 그 때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지 않았다면 남한은 벌써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그런 국제적인 정치감각을 갖고 있었다. 공산당과 대화해봐야 소득이 없다는 것은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위한 6자회담만 봐도 알수 있지 않은가?

맨날 질질끌고 알맹이 없는 회담만 하는 가운데 핵실험을 계속되고 북은 이미 핵을 완성하였다. 미국은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시절 차라리 클린턴 생각대로 원자탄 생산시설을 폭격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공산주의자에게 끌려다니면 안된다. 박근혜대통령처럼 개성공단 회담에서도 국제적 원칙을 준용할 것을 주장하고 굽히지 않으며 끌려다니지 않으니 오히려 효과가 나지 않는가!

맨날 질질끌려다니면 또 언제 개성공단 우리나라 국민을 내쫒을지 모르는 일이며 나중에는 개성공단내 우리나라 국민을 볼모로 잡을 지도 모른다.

이참에 공단 정상화나 가동이 늦어도 국제적 법규를 준수할 것을 확실하게 약속받지 않고는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킬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 화이팅!!!

이승만에 대하여 쓸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 관계상 그만 쓰련다. 나중에 또 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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