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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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수선화를 기른 지 여러 해 되었다. 늦가을에 수선화가 올라올 자리에 낙엽을 덮어준다.

겨울에 어린 싹이 올라올 때 얼어 죽을까 염려해서다. 1월 영하의 추위에 언 땅에서 싹을 틔운다.

눈이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싹을 씩씩하게 올린다.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수선화의 구근과 싹에는 아마도 부동액이 흐르나 보다.

2월에 싹 중앙에서 아기 밴 새댁 같은 불룩한 꽃대를 올린다.

기온이 급강하하는 날은 얼어 죽을까 하여 쳐다보는 나의 애를 태우다가 3월 초순 온 세상을 밝히며 노란 꽃을 터뜨린다.

수선화가 피어날 때 주변의 잔디는 싹을 틔울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산수국도 마치 죽은 나무처럼 누런 줄기와 죽은 잎만 붙어있다.

지난해 3월 중순 철 늦은 눈이 오던 날 아침에 마당에 나가 수선화 꽃송이에 쌓인 눈을 털어주던 생각이 난다.

청아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얽힌 슬픈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얼굴이 예뻐서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숱한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어떤 인간이나 요정의 유혹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를 시기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나르키소스를 자기 자신만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는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졌고, 결국 샘에 몸을 던지고 만다.

그가 죽은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났는데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소스는 그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매일 샤워를 하면서 163cm의 비교적 작은 내 몸을 사랑스런 눈길로 본다.

어려웠던 중학생 시절 8km 거리의 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하굣길 강변 둑을 걸어올 때면 배가 고파 속이 쓰려 강변 풀밭에 누웠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배고파 속이 쓰릴 때 잠시 누워있으면 통증이 가신다.

그렇게 성장기를 보냈으니 키가 크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작지만 이런 내 몸이 사랑스럽다.

이 몸으로 미군이 쓰던 무거운 M1 소총을 들고 철모에 20kg 배낭까지 메고 10km 구보를 했다.

제시간에 들어오지 못하면 휴가를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뛰었고

특등사수로 현역 3년 복무를 마쳤다.

마흔 넘어 시작한 하프마라톤을 20여 회 뛰었고

40년의 공직 생활도 이 몸으로 정년을 마쳤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自己愛)다.

물론 자신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져야 지식인이고 성숙한 시민이다.

그러나 은퇴하니 나를 봐주는 사람도 없고,

물질만 쫓는 이 시대에 돈도 없는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하랴!

나라도 날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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