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산방일기 7

방은 아주 따뜻하였다.

할머니에게 “오늘 친구들과 함께 가니 미리 군불을 때놓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방을 따뜻하게 데워놓으셨다. 정말이지 이게 얼마만인가! 온돌방에 등을 지졌다. 세 친구는 덥다고 난리다. 늦게까지 밀린 이야기를 했고,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준비한 송판에 대련을 썼다.

모두 세장의 대련을 써서 기둥에 걸었는데

논어에 나오는 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두개를 직접 썼고,

朋友 남기완 교수도 논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글귀를 직접 붓으로 썼다.

내가 쓴 글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興於詩立於禮成於樂

남교수가 쓴글은

逝者如斯夫不舍晝夜

대련을 걸고 밖에서 보니 겨우 비를 가릴 수 있는 초막에

가난한 선비가 거하는 집으로 보기에 적당하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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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6

오늘 드디어 산방에 입주한다.

손님을 초청하였다.

평생을 함께가는 동지들이다.

천안에서 대규모로 농사짓는 전학수

화성에서 사업하는 송기원 사장

중문학을 하는 남기완 교수

이렇게 3명을 초청하였다. 대접이 융숭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좋은 시간이 될것이다. 오늘 저녁 기대된다.

산방에 입주하면서 준비물 목록을 작성하였다. 부모님과 함께 평생을 사는 나로서는 따로 살림을 난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것을 장만한적이 없다. 결혼할 때도 별도로 장만한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산방에 입주하면서 이런 물건을 사니 마음이 새롭다.

<준비물 목록>을 적어본다.

커피, 녹차, 오미자차

통성냥

부루스타

부탄가스 10개

냄비 1개

주전자

컵 4개

바께스 1개

두루마리 휴지 3개, 뽑아쓰는 휴지 1개

쓰레기통

수저 4벌

육개장라면 10개

설거지용 프라스틱 용기

세수대야

퐁퐁

수세미

이불 2채 (겨울용 요, 이불, 여름용 요, 이불)

벼개 2개, 방석 4개

비디오테입 2개

걸래용 수건2장, 걸래그릇 1개

수건 3장

옷걸이15개

나사못 15개

스텐그릇(국그릇) 4개

면장갑 2벌

포도주 1병,맥주 15병

생수 2병

에프킬라

김치 1통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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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5

산방의 난방은 온돌이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다. 내가 산방에 매일 올수는 없다. 아마도 주말에나 찾을 것이다. 그런데 온수보일러를 설치하면 불을 때지 않는 날은 배관이 얼어붙을 것이다. 그러나 온돌은 그런 걱정이 없다.

온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의 독특한 난방 형태이다. 방에 편편한 넙적 돌로 구들을 놓고, 그 안에 불을 때면 달구어진 돌판의 열로 황진이가 서리 서리 펴겠다던 그 긴 겨울밤에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뜨끈했던 온돌방의 아랫목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금년 겨울밤을 산방의 온돌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온돌방은 매일 불을 때야 방이 뜨겁다. 주말마다 와서 가끔 불을 넣으면 지표에서 온돌의 고래로 스미는 습기를 먼저 말려야 온기가 전해진다. 따라서 쉽게 방이 더워지지 않는다. 최소 5시간은 때야 미지근한 소식이 온다. 다만 한번 달궈지면 쉽게 식지 않는 장점도 있다.

아궁이도 엉망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니 방의 옆구리에서 연기가 펄펄 나온다. 오랫동안 불을 때지 않아서 서생원이 방고래를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사방에 쥐구멍이고 구멍마다 연기가 나온다. 시멘트로 모든 구멍을 막았다. 그제야 굴뚝으로 연기가 나온다. 아무래도 굴뚝의 높이가 낮은 것 같다. 용마루 높이까지 올려야겠다.

할머니는 집수리에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고 안스러웠는지

“걱정거리가 없으니 걱정을 사서하는 사람이구려” 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어찌 이 철없고 낭만적인 선비의 마음을 알겠는가! 이것은 내가 공연히 만든 걱정거리가 아니고, 새로운 나의 인생이다! 나도 이런 생활이 불편하고 힘든 것을 왜 모르겠는가?

내가 멋있는 별장도 아니고, 팬션도 아닌 이런 산방에 자리를 잡고, 30년 전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것은

“그리움” 바로 그 곳으로!

내가 두고 온 곳!

그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나는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하든지 변화는 발전이다.

이대로 살 수 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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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4

네 번을 그렇게 했던가!

드나들면서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귤을 가지고 가거나,

사과를 가지고 가거나,

단감을 몇 개 가지고 가거나,

돼지고기 반근을 사가지고 가거나……(냉장고가 없으니 많이 살 수도 없다)

할머니 나이는 85세,

22년전 영감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60살에 후처로 팔자를 고쳐 들어왔는데 물론 자식을 낳지 못했고, 큰 아들, 작은 아들하면서 말하는 것은 아마도 전 처 소생의 자식들인 듯 하다. 60에 시집을 왔으니 전처 소생의 자식들이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후일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낳은 자식은 물론, 공을 들여 키운 자식도 없을 것이다. 현재 자식들은 모두 떠나고 혼자 살고 있는데 그 자식들이 드나들지도 않고, 보살피지도 않는 것 같다.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 몇 달 동안 전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했으며, 어쩐 일인지 현재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있지만 오래 전에 고장 난 것이고, 기름도 없고, 전기요금이 무서워 전기장판도 켜지 않는다. 아니 전기장판도 고장난지 오래다.

세상에! 85세된 노인이 난방도 없이 추운 방에서 겨울을 나는데 죽지도 않고 정정하기만 하다. 몇 해 겨울을 냉방에서 살았는지 너무나 기가 막혀 물어보지도 못했다. 사람의 목숨은 참으로 질기고 모질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이 이토록 처절할 수가 있는가!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추위에 떨면서 진저리를 쳤을까! 그러고도 저렇게 살아남았으니……

할머니는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드나드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고 하면서 어디에 그런 눈물이 남았는지 소매로 눈을 훔치며 말했다. 사람이 한번 드나드는 것이 자기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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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3

할머니 나이는 85세였다.

영감님이 세상 뜨고 22년을 혼자서 사셨다니 그 세월의 쓸쓸함이 오죽했을까! 건너 방을 수리해서 쓰려면 들어오라고 하였다. 목수를 데리고 갔더니 부엌은 무너지고 방에는 쥐가 다닌 흔적이 보여 수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문간방에 소죽을 쑤던 방이 있는데 그 방이 오히려 수리하기 좋다고 하여 그 방을 쓰기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원래 초가집이었던 것에다 기와를 올린 집이다. 집을 지은 지는 약 100년은 족히 되었음직하다. 벽은 수수깡으로 역고 그 위에 짚을 섞어 흙을 바른 집이다. 보통 뼈집이라고 하는 것으로 겨울에 찬바람이 들어와 추위에 약한 집이다. 온돌을 점검하기위해 불을 때보니 연기가 굴뚝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골이 막히지는 않은 듯하다.

집의 기둥과 벽체는 분리된 곳이 여러 군데 있어 방안에서도 밖이 보이고 누우면 하늘도 보일 듯하다. 방안의 벽에는 종이도 붙어있지 않고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다락이 있었는데 신문으로 발랐고 기사를 자세히 보니 박정희 장군의 혁명공약이 실린 것으로 보아 1961년의 기사라면 신문종이 바른지 43년! 반세기가 지났구나! 좋은 공기 마시려고 여기까지 왔으니 대충 수리하고 추위는 참기로 하였다. 벽의 한쪽에 10mm 스치로풀을 붙이고 석고보드를 붙였다. 마루 쪽의 벽은 창호지 문이 세 개나 되어 스치로풀을 붙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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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2

여러 달을 수원에서 가까운 그린벨트 지대를 돌아다녔다. 헌집이나 농가주택을 사기위해 돌

아 다녔는데 너무 비쌌다. 농가라는 것이 깔고 앉은 면적이 넓어 보통 300평 내지 500평

정도인데 평당 최소 80만원을 달라고 하였다. 낙심천만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농가주택에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살고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빈방이 많은

데 꼭 집을 살 것이 아니라 내가 살기만 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동네에 가니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개울은 맑고 가재가 살고 있는 1급수였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동네에 혹시 전세 놓을 빈

방 없습니까?” 할머니는 “세를 놓을 만한 깨끗한 방은 없고 저 너머에 혼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있는데 그 집에 가서 말해보시오. 그런데 집이 좀 험한데……” 이렇게 해서 산방을 얻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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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1

도심 탈출은 나의 오랜 숙원이었다. 내가 사는 집은 수원에서도 아주 오래된 시가지여서

온갖 공해로 찌들어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나로서는 이사 가자고 말씀드릴 형편도 못되

고 또 현재의 집이 아내가 출근하기에는 수원역과 가까워 지리적으로 좋은 이점도 가지고

있다. 역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데에도 괜찮은 여건이다. 그리하여 이사 갈 형편이 못

된다.

그러나 이즈음에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가까운 그린벨트 내

에 방을 하나 얻었다.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이틀 동안 산방(?)에서 도배를 하였다. 선비가

안하던 일을 하니 온몸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그러나 몹시 기쁘다. 얼마

동안 기다려 온 일인가? 나는 지금 약간 흥분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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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양승희 선생님!

요즈음 학교평가를 다녔다. 학교평가는 3년을 주기로 그 학교의 교육활동전

반에 관하여 평가를 하는 것이다. 여러 학교를 평가하여 서열을 매기고, 우

수한 학교와 교사는 표창 하고, 우수학교는 교육활동 지원금을 준다. 평가

받는 학교로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전국적으

로 이 제도가 실시되었으며 이미 미국, 영국 등의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시하고 있고, 경영을 제대로 못하는 관리자나 교사에게는 책임을 묻기도

한다. 평가단은 5명이다. 단장은 유명한 교장선생님이다. 모두 6개 학교

를 평가하였는데 아침 8시에 학교에 도착하여 등교하는 모습에서부터 하교

할 때까지의 교육활동을 본다. 남의 학교에 가서 감독하는 것은 물론 아니

다. 아주 겸손한 자세로 평가에 임하고, 그리고 배우러 왔다고 말하면서 평

가를 시작한다. 수업참관도 하고, 서류도 보고, 당해학교에서 발간한 교육

자료, ICT자료, 도서관, 특별활동, 실험실습, 학교의 여러 가지 교육환경,

급식, 심지어 청소상태, 화장실 등도 본다. 5명의 평가단이 보는 분야가 다

른데 나는 주로 교육활동 면을 평가한다. 역시 교육계는 맑고 깨끗하다. 특

별한 대접을 받은 것도 없고, 점심은 학생들과 함께 학교급식을 먹었다. 급

식도 평가항목이었으니 당연히 급식을 먹은 것이다. 평가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배웠다.

수원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호메실중학교에 갔더니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계

셨다.

과학선생님인데 세상에 이런 교사가 있나! 하고 놀랐다.

과학탐구반을 만들어서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환경 등의 분야에 관

련된 실험 장치를 학생들과 함께 직접 만들고 있었다.

누에를 직접 키우고, 자라는 과정을 표본으로 전시하였으며,

수경재배로 식물을 관찰하고,

전구를 이용하여 인공으로 병아리를 부화시켜 과학실 한켠에 닭을 기르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포유류를 해부하고,

비누를 만들고,

아스피린도 만들고,

생쥐의 미로실험 장치를 만들고

별의 움직임을 여러 시간에 걸쳐 촬영하기도 하고,

솜사탕 기계를 만들어 전시하고,

현미경으로 여러 가지 세포를 관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위의 모든 장치는 과학실에 전시되어 있었으며 코너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실험을 설명하였다. 과학실이 무슨 시골의 5일장처럼 여러 가지

실험장치가 어지럽게 전시되어있었는데 모두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직접 만

든 것이었다.

나는 평가단 방으로 양승희선생님을 불렀다. 젊고 잘 생긴 남자선생님이셨다.

“미국정부가 교육학자 부루너(Brunner)에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노벨과

학상을 받은 사람들이 학생시절에 어떠한 특징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연구

하게 했는데 부르너의 결론은 ”학교다닐 때 그 학생을 굉장히 좋아한 교사

가 있었다“는 결론을 제시하였습니다. 라고 격려하였다.

양승희 선생님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매일 밤늦게

까지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서 황우석박사가 길러지는 것이 아

닌가!

나는 ”같은 길을 가는 교육동지로서 양승희 선생님의 교육활동에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라고 말하였다.

양승희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진짜 선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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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직원회의에서……

모든 것은 물질에서 비롯된다는 유물사관은 20세기 말에 관념론에게 KO패를 당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정신에서 나옵니다. 의식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합니다.

오늘 운동장에서 강강술래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학생들이 늘어져 있고, 모두 땅을 쳐다보며 선생님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듯 합니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강강술래를 하는 학생들의 의식을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중요무형문화재 8호! 강강술래!

임진왜란 때 일본이 쳐들어와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을 믿고 따랐으나 조정에서는 그를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게 하였으니, 장군을 믿고 따른 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다시 복권된 이순신이 군세를 보니 배는 대부분 부서지고, 군사는 빈약하여 생각한 끝에 야간에 부녀자들을 동원하고, 가운데에 불을 피워 놓고, 원을 그리며 돌게 하여 일본군에게 우리의 군세를 가장하여 보인 것이 강강술래입니다.

학생들이 학창생활을 통하여 그러한 민속놀이를 경험해보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지난 여름 유네스코 청소년 문화재 공연 때 일본 학생들이 우리학교에 와서 ‘가와오도리’라는 민속무용을 했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를 낮추어 마치 병신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전통무용이라고 전 세계를 돌며 자랑하고 공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비하면 강상술래는 훨씬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운동감이 크고 매우 역동적입니다. 리듬의 느낌은 어떤 때는 한이 서린 것 같기도 하고(진양조의 느린 박자), 빠를 때는 경쾌함을 느끼기도 하는 순간적으로 변화무쌍한 정말 아름다운 전통무용입니다.

이 춤으로 군세를 위장했던 장군의 마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오늘 강강술래 하는 학생들을 보니 학생들이 무용에 임하는 느낌이 없습니다. 먼지 나는 운동장에서 이것을 왜 하나? 하는 생각들이지요. 다음부터 더 경쾌하게 발을 띄우고 신나게 팔은 흔들어 멋진 춤을 추도록 지도바랍니다.

지급처럼 축 늘어져 추는데 왜놈들이 속겠습니까!!

월요일 학급 조회시간에 꼭 말씀하셔서 강강술래에 최선을 다하도록 당부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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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21.0975km

朋友 남기완 교수가 공주에서 열리는 동아마라톤 하프코스에 출전하자고 나

를 꼬드꼈다. 사실 올 봄 수원마라톤에 출전하고 나서 허리가 아파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직 시일이 많이 남았으니 함께 출전하자고 하여

몇 달 전에 출전신청을 했다. 그러나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다. 토요일(9

일)에 버스를 타고 공주에 가서 남교수와 함께 여관에 묵었다. 밤에 컨디

션 조절로 공주산성에 올랐었다. 아침에 종합운동장에 가보니 수천명이 운

집하였다. 열기가 대단하였다. 마음이 불안하였다.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

다. 처음 출발할 때는 10km 쯤 뛰다가 포기하려 하였다. 10킬로미터를 지나

면서 남교수를 앞으로 보냈다. 연습이 부족한 나를 위해 10킬로까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다. 반환점을 지나면서 근육경련이 일어나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뒤쳐져 뛰어가다 보니 5km 마

다 공급되는 물도 앞 사람들이 다 먹고 없었다.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는데, 이번에 중도포기 하면 다음 대회에도 어려

우면 포기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참고 뛰었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모두 나

를 추월하였다. 수천 명의 사람이 나를 추월하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쳐다

보는 수밖에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면서 내

몸을 달래고, 달래어 뛰었다. 결국 21.0975km를 완주하기는 했지만 기록은

아주 저조하였다. 사진을 보니 내 주변에 남자는 없고 주로 여자선수만 보

였다. 얼마나 느리게 달렸으면……

휘니시라인을 통과하는데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 대면서 소감을 물었다.

“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 아들 생각을 했습니다.”

( 멀리 캐나다에서 아버지를 믿고 공부하고 있는 아들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다! )

함께 뛰어준 붕우 남기완 교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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