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민족의 성지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참성단은 고조선에서 현재까지 제를 지내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큰 정복왕조였던 몽고의 말발굽 아래 3년을 버틴 나라가 없었지만
고려는 강화로 서울을 옮기고 39년이나 항쟁하였다.
문화적으로도 우수한 시기여서 고려는 강화에서 팔만대장경과 금속활자를 만들고 저 유명한 연꽃무늬상감청자도
강화에서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청의 침략을 받았을 때 왕실이 강화에 피신을 하기도 했고,
병자호란때는 인조임금이 강화에 피신하려 했으나 강화가 먼저 점령당하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청에게 항복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병인양요와 미국의 신미양요, 그리고 일본의 침략을 받았을 때도 모두 강화도로 쳐들어왔기에
여기서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었다.
강화에 발령을 받고 나서 오늘 처음 탐방애 나섰다.
몽고와 항쟁을 벌인 유적은 거의 없어졌고,
조선말 프랑스, 미국, 일본의 신식무기에 대항하여
재래식 무기로 무장했던 조선의 병사들은 최후까지 싸우다 장열히 전사한 유적지가 대부분이었다.
강화의 전투는 우리 나라가 많은 피해를 보았으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기 때문에 프랑스, 미국 모두 물러가고 말았다.
우리나라 병사는 대부분 죽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싸웠기에 상대도 피해가 있었고, 때문에 서양세력이 물러간 것이다.
규장각은 국립도서관으로서 중요한 국가의 문서를 보관하였는데 창경궁에 있었고, 2부를 작성하여 한부는
강화에 별도로 보관하였다. 이것이 외규장각 문서이다 그런데 신미양요 때 프랑스군은 강화에 있었던
외규장각 문서 6000권 중 350여권은 약탈해가고 나머지는 철수하면서 불질렀다.
그것도 1975년에야 프랑스에 있는 것이 밝혀졌고, 미테랑이 돌려줄듯 하더니
고속전철에서 이익만 보고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하긴 세계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도 프랑스에 있다.
조선은 왕조실록을 4부 발간하여 전국 4곳의 깊은 산에 보관하였는데
전북 적상산사고는 6.25때 북한군이 약탈해가서 지금 김일성대학에 있고,
오대산사고는 일본이 약탈해갔다가 관동대지진에 소실되었고,
강화에 있던 정족산사고와 태백산사고가 오늘날 서울대학교 도서관인 규장각에 보관되어있다.
1866년 양헌수 장군과 대부분 사냥군으로 구성된 조선군이 신미양요를 일으켜 강화읍을 점령한 프랑스군과
정족산에서 전투를 벌여 우리가 피해가 컷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큰 데미지를 입은 프랑스가 철수하게 되었고, 이 때 정족산사고를 지킨 것이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고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인것이다.
오늘 돌아본 강화의 유적지는 정말 민족의 성지였다. 처절한 싸움터 였다. 비장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광성보의 정문이다. 보는 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