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묘

고향에는 37기의 조상묘가 있다. 32개는 쌍분이고 5개는 단분이다.  벌초할 면적이 많아서 지금도 힘이 드는데 향후 후손들이 제대로 관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하여 화장하여 납골함에 넣고 공원묘지 납골묘로 이장하기로 하였다. 지난 주 예산에 있는 화산공원묘원, 천안 광덕에 있는 천안공원묘원, 천안 병천면에 있는 풍산공원묘원의 3곳을 아내와 들이서 다녀왔다.

고향에서 거리는 화산kjm 31, 천안20km, 풍산28km 떨어져 있다. 그리고 납골묘의 형태도 추모공원 마다 다르다.

20기, 24기, 36기, 52기,60기가 있는데 우리는 현재 37기를 모셔야하고 앞으로 손자 항렬까지 따져 맥시멈 47기는 필요하다. 결국 80명이 들어갈 납골당을 구입해야 하는데 각 형태별로 들어가는 인원이 달라 적당한 것을 구입해야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화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 묘지로 갈 사람도 있어서 모든 사람이 다 들어온다고 불 수는 없다.

그래서 60기 하나, 24기 3개 72명, 52기 2개  104명의 여러 방안 중에서 고심하고 있다.

9월 중 집안의 대표들과 함께 3곳을 다시 답사하여 결정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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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옛날 같지 않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젊은 시절처럼 건강한 몸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봐야겠다. 요즈음 들어 내 건강에 자신이 없다. 아무 탈 없이 수년 동안 잘 해오던 근육운동을 중단하였다. 거의 모든 운동을 중단했다는 표현이 맞는다.  발뒷금치 들기 운동, 악력기 운동, 스쿼트, 달리기 등을 중단한지 한 달이나 되었다.

물리적 건강만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부 장기에도 문제가 있는지 몇 가지 좋지 않은 느낌이 온다. 아직 할 일도 많고 못해본 일도 많은데……걱정이다.

과거  수원시내 영통지역에 동시대에 근무하던 중학교 교장 9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모임이 있는데 유아무개 교장이 낮에 집에 혼자 있는 상태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버렸다. 나와 같은 해에 정년 퇴직을 한 교장이다. 평소 상당히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아마 본인 스스로 세상을 뜰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죽음은 예고 없이 왔다.

내주에 큰 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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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 긁었다!

어린 시절 부엌에서 밥을 지으려면 아궁이에 불을 땠다. 나무가 타고 남으면 뜨거운 숯이 남는데 그걸 그러모아 화로에 담아 방에 들여온다.  추운 겨울에 난방이 부실한 시골집의 화롯불은 여러가지 용도로 쓰였는데 화롯불 주위에 모여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아버지는 식사하시면서 식은 된장투가리를 화롯불에 얹으셨다. 아침 화롯불을 헤치지 않고 잘 다독이면 점심 이후까지 거의 저녁 밥을 지을 때가지 화력을 유지하곤 했었다.

10년도 더 전에 골동품상을 지나다가 화로를 보았다. 어려서 쓰던 무쇠 주물화로 였다. 그걸 집에 사가지고 왔더니 아버지는 뭘 그런걸 사오냐고 하셨다. 아마도 엿장수에게 주면 쇠값으로 1000원도 안줄 것을 비싸게 주고 사왔다고 지청구를 하셨다. 그날 가게 주인은 이왕이면 백동화로를 사라고 권했다. 백동화로는 주물화로의 3배 값이었다. 나는 그런 화로는 써본적이 없기 때문에 값싼 주물화로를 샀다.

집에 와서 거실에 주물화로를 놓고 보면서 그 안에 내 고향 충남 아산 땅이 들어있는 것을 본다. 추운 겨울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화롯불을 앉은 다리로 감쌀 때 허벅지에 전해오던 따끈한  감촉이 살아나곤 했다. 그 따스함을 어찌 잊으랴!  겨울방학 숙제를 할 때도 방 가온데에서 화롯불이 우리 삼남매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 날  백동화로를 사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물화로를 볼 때마다 백동화로 생각이 났다. 두개를 다 샀어야 했다.

오늘 수원 행궁근처를 지나다가 새로 골동품점이 생긴것을 보고 들여다 보았더니 쇼윈도에 백동화로가 있지 않은가!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니 물건이 마음에 든다. 지금은 돈이 없고 나중에 다시 들려 사겠다고 말하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카드도 받는다고 한다.

두말 않고 팍! 긁었다!

집에 가져와 마루에 놓고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왼 쪽이 오늘 구입한 백동화로이고 오른쪽이 주물화로이다. 백동화로 부젓가락은 제짝이 아니다.

백동화로도 주물제작 형태인데 몸체와 다리는 별도로 만들고 끼워넣기로 결합한 것이다. 오늘 산 이것은 부착 수법으로 보아 조선말에 제작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만들어졌는데 당시 것은 몸체와 다리를 나사로 결합하였다.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무쇠화로다.  정확하게는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것은 아니고 그와 형태가 같은 것이다. 이물건은 백동보다는 더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40년 경으로 약 8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될것이다. 동정을 다리는 인두로 쓰이기도 했던 화롯불 다듬이라 할까? 적당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내놓고 보니 녹이 많이 슬었다. 식용유(콩기름)를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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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경기수필가 협회 사무국장에게 글을 메일로 보냈다. 벌써 보름 전 일이다. 그런데 오늘 한 편이 모자란다고 연락이 왔다. 짧은 1000자 수필 한 편, 일반 수필 두 편 총 3편을 보냈는데 이게 웬말인가! 집에가서 점검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컴퓨터로 보낸 메일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두 음절’ 이라는 제목으로 쓴 같은 수필을 두 번 보낸 것이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ㅠㅠ~

당시에 글을 쓰고 따로 저장해두려다 보낸 메일함에 두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별도로 저장하지 않았다. 어떤 제목으로 쓴 글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거 큰 일 났구나!  이 상황을 어떻게 하나? 다시 쓰려면 주제을 선정해야하고…이미 마감은 지났고…별별 아득한 생각이 다든다.

해결사는 아내다. 며칠에 보낸 것이냐고 묻는다. 7월31일이라도 답하였다. 컴퓨터에 들어가 7월 31일에 작성하여 저장한 문서를 찾아내고야 만다. 아내는 의기양양하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내 덕에 ‘고도’라는 이름으로 썼던 글을 찾아 사무국장에게 다시 보냈다.

나 치매인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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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머리

 

사람은 3명인데 거울을 보면서 촬영하니 등장인물이 5명이 되었다. 어머니는 미장원에 자주가려 하신다. 조금만 머리가 길어도 참지 못하신다. 구불거리는 머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신다. 내가 보기에는 천연 파마머리로 웨이브가 아주 보기좋은데 아침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고 구부러진 머리를 단정하게 하느라 평생 노고가 많으시다.

오늘 날씨도 덥고 하여 미장원에 모시고 가서 머리를 자르셨다. 훨씬 시원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장원 주인도 천연 파마 머리라고 칭찬을 하시지만 어머니는 곱슬머리를 마뜩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 곱슬머리를 내가 받았다. 나는 곱슬한 머리를 그대로 편하게 생각한다.  펼 생각이 전혀 없다. 1만원을 지불하고 머리를 감고 나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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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건강하길…

 

5년 전 여동생 부부는 용인에 전원주택을 샀다.  2층 콘크리트 주택으로 보기에 좋다.  여동생은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여동생 남편은 몇가지 병으로 아프다.  지금도 아프다. 나는 요즈음 동생 집을 자주 방문하는데 엊그제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다녀왔다. 어머니는 치매에도 불구하고 사위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두부, 오징어, 게무침, 호박, 참외를 사서 자동차를 몰고 갔다. 하룻밤 자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어머니가 집에 가시겠다고 하셔서 집으로 왔다. 내일 아산 병원 정기진료 날이라고 했는데 별 일 없기를 바란다.  아직 더 건강하게 살 나이인데 여러가지로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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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뱅이, 수원문학 가을호에 실릴 수필을 보냈다

 

새뱅이 / 맹기호

 

내 고향은 충청도 시골마을로 앞에 들이 훤하게 트인 동네였다. 멀리 강둑 너머로 장항선 열차가 뱀처럼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는 곳이지만 어린 시절 열차를 타본 기억은 없다. 북향을 산이 막아주는 아늑한 골짜기에 스무 채 남짓한 초가가 지붕 높이를 견주며 도란거리는 동네였다. 사람들은 모두 소박했으며 옆집에서 연기가 나지 않으면 뒷문으로 밥그릇이 몰래 드나드는 인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아침에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어유?’ 라고 물었고 너도 먹었냐? 라고 말씀하시면 야~라고 대답하였다. 야는 하대하는 언어지만 그곳은 야가 존댓말이었다. 내가 자라서 다른 지방에 가서 어른에게 야라고 대답하니 듣는 쪽에서 매우 당혹해하였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맨 끝에 위치했고 마을과는 단절되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완전한 문화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내 집은 그야말로 섬이었다. 나는 빈 방에서 홀로 지낸 시간이 많았다. 봄이면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피리를 불었고, 뱁새 둥지에서 새끼를 꺼내 재미 삼아 턱거리를 시켰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토끼에게 먹일 풀을 베었다. 가을에는 멍석에 말린 벼를 뒤집었고, 겨울에는 집 앞 주엽나무 열매에서 꿀을 빨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넓은 강변 풀밭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는 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의 유년 시절은 사람하고 지낸 시간보다 소와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바람과 햇볕이 날 키웠고 강물은 나의 친구였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내가 첫째였기 때문에 요일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일요일에 학교에 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일요일에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학교에 거의 다 갈 때까지 학교 가는 길에 학생이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일요일이라 누가 볼세라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에 내가 제일 싫어한 것은 아버지와 물고기 잡는 일이었다. 왜인들이 금을 캐고 난 후의 웅덩이에 물이 고인 둠벙에서 고기를 잡았다. 아버지는 내 그물질에 화를 내신다. 둘이 마주 잡은 맞그물을 수직으로 동시에 내리치고 둠벙 바닥까지 훑어야 하는데 동작이 정확하지 않고 그물 바닥이 뜬다고 지청구다. 동짓달 바람은 벼린 칼처럼 볼을 때렸고 그 바람 속에서 마른 억새가 길게 울었다. 얼음을 깨고 둠벙에 그물을 던지고 나서 고기를 맨손으로 거두니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시렸다. 열 살 소년은 손을 입에 쑤셔 넣었다. 난방이 된 곳은 입 속뿐이었다. 물고기를 만진 비릿함이 역겨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손이 시리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오히려 뭐가 시리냐고 매우 의아해 하셨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가장으로서 식솔들에게 고기 맛을 보여줘야 했다. 추위가 스며들 틈을 내주지 않았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칼바람도 흩뿌리는 가루 눈도 일상이었다.

아버지와 고기 잡으러 다니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장소는 속셈말 가는 산 밑에 있는 작은 둠벙이었다. 샘이 솟는 못이어서 물이 맑고 아주 깨끗했다. 그곳에만 새뱅이가 있었다. 새뱅이는 깨끗한 물이 아니면 살지 못한다. 고인 물에 새뱅이가 사는 곳은 그곳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민물매운탕을 끓일 때 새뱅이를 넣고 안 넣고에 따라 맛이 천지 차이였다.

아버지! 수원 영통 망포사거리에 엄지민물매운탕이라고 좋은 민물매운탕집이 있는데 오늘 점심에 어떠신지요? 그 집은 새뱅이를 넣고 끓여줍니다. 하여 셋이 길을 나섰다. 아버지 맛이 어떻습니까? 음… 좋구나 오늘 좋은 식사를 했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아범 오랜만에 정말 맛있게 먹었어.

 

맹기호

 詩人, 수필가, 서양화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경기수필가협회 회장

경기문학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문화선양분과 부회장

수원일요화가회장매탄고등학교장 역임

시집 그리워서 그립다, 4인수필집 틈과 여백 사이

홍조근정훈장 수상, 경기문학인 대상 수상, 백봉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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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이한임)의 87세 생신

 

장모님의 87세 생신날에 모였다. 가족 모임도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고 하여 두 차례로 나누어 모였다. 우한코로나로 인하여 오랜만에 장모님을 뵈었다. 얼굴에 살이 많이 내리고 야위셨다. 아마도 혼자 사셔서 식사를 제대로 차려 드시지않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여 여러가지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과거에는 고기도 아주 맛있게 드셨는데 많이 드시지도 못하셨다. 100세 이상 사셔야 될텐데 여러가지로 걱정이다.  영양보충으로 드시라고 등심을 사서 한 끼에 드실 만큼 잘라 냉동실에 넣어놓고 왔다. 제대로 드실런지 모르겠다.  집에서 바쁘게 출발하다보니 과일을 사드리지 못하고 내려왔다. 택배로 보내야겠다. 성주 참외를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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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

 

신중년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우선 신중년이란 60세~70세까지를 이르는 새로운 용어인데 그들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공헌한다는 의미로 정부에서 실비를 받고 시민들을 위한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하는 사업을 말한다.

수원문인협회에서 자치단체에 신청하여 그런 일자리가 생겼다. 일자리라고 해야 용돈 정도 버는 것인데 내가 수원문인협회에서 시창작, 시낭송 강의를 하고 있으니 그와 관련하여 여유시간에 문인협회에 나와 강의록도 작성하고 시민들에게 수원문인협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창작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하여 지난 달부터  인터넷으로 연수를 받고 신중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정부에서 용돈 나눠주기식 사업으로 과거 새마을 취로사업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된다.  마뜩하지 않지만 그냥 나가고 있다.

오늘은 수원문인협회에 나가 여러가지 문헌을 참조하여 시창작, 시낭송 강의록을 작성하였다. 사실 우한폐렴으로 인하여 문협 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의 숫자도 대폭 줄었다. 일단 8명 이상은 강의실에 참석할 수 없도록 지침을 받아서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도 없다.

빨리 우한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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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음절

 

두 음절

맹기호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나서 수영장에 딸린 목욕탕 더운물에 들어가 앉았다가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웠다. 어지러운 가운데 서너 걸음 걸은 것이 다였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내 생각에 30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정신을 잃은 채 1분 정도 목욕탕 바닥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깨어 보니 엉덩이가 아팠다. 선 자세에서 밑동에 톱질을 끝낸 고목처럼 머리부터 넘어진 것이다. 마침 옆에 있던 사람이 넘어지는 내 머리를 받았기에 엉덩이가 지면에 먼저 닿았다.

여름날 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길어지면 여기저기 쓰러지는 학생들이 있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고 오히려 왜 쓰러질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런 내가 쓰러진 것이다. 집에 와서 말했더니 온 식구가 난리다. 식구래야 어머니와 집사람인데 큰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다. 사실 나도 무척 놀랐다. 의식을 잃은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고 내가 의식이 없는 죽음의 세계에 다녀왔다는 신비한 생각까지 들었다.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사실 나는 정신을 잃는 것을 동경해왔다. 8시간 숙면을 하고 나면 몸이 얼마나 개운한가. 그런데 잠을 잔다고 하는 것은 의식이 없는 죽음의 상태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 마취제 주사를 맞고 하나둘 세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만다. 그 순간은 정말 마약처럼 달콤하다. 매번 열까지 세겠다고 맹세해보지만 셋 이상은 어렵다.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회복실에서의 잠자는 동안의 달콤함은 무엇에 비기랴! 모든 예술이 음악적 상태를 동경할 때 빛을 내며 정점을 찍는 것이라면 나는 숙면으로, 마취로, 목욕탕에 넘어져 의식을 잃었을 때 정점을 찍는다. 아마도 내 마지막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못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대학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하루에 커피 몇 잔을 마시냐고 물었다. 커피믹스 다섯 잔 마신다고 했더니 원인이 커피라는 것이다. 커피는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하는데 커피를 마시고 물을 마시지 않으니 없는 물까지 체내에서 짜내어 배출하게 되고 수분 부족으로 정신을 잃은 것이라 하였다. 나는 심각한데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싱글거리면서 커피를 끊고 물을 많이 먹으면 저절로 낫는다고 하였다. 발견한 것이 있다면 혈압이 조금 높다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리하여 팔자에도 없는 대학병원에 몇 년째 다니고 있다.

병원에 가려면 여러 가지 챙길 것이 많다. 우선 진료 카드를 챙겨야 하고, 병원비를 내기 위해 신용카드는 당연히 가져가야 한다. 혹시 모르니 신분증도 가져가야 한다. 언젠가 무슨 증명서를 떼려는데 내 진료카드를 보여줘도 신분증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해서 집에 다시 갔다 온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병원 로비에서 볼 시집(詩集)을 한 권 챙겨간다. 대학병원이라는 곳이 환자가 많다 보니 아무리 예약 시간을 정하고 간다고 해도 30분 이상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안경을 쓰고 가지만 책을 읽기 위해 돋보기를 별도로 가져가야 한다. 책을 읽으며 메모할 연필 한 자루, 약간의 현금, 자동차 열쇠, 빈집에 돌아올 대문 열쇠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챙긴다. 모두 열한 가지다. 여성과 달리 남자들은 손가방이 없다. 모든 것을 주머니에 넣고 가야 한다. 겨울에는 옷에 주머니가 여러 개 있지만, 여름에는 바지 주머니가 전부다. 어찌된 일인지 와이셔츠 주머니는 언제부턴가 허락도 없이 슬쩍 없어졌다.

대학병원에 차를 몰고 가면 주차부터 문제다. 병원 앞 도로에서부터 좌회전 신호 3번을 기다렸다가 간신히 병원 정문에 들어설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 만차 상태인 1층, 2층을 지나 지하 3층에 겨우 자리를 잡고 하차한다. 우한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병원은 자못 경비가 삼엄하다. 지하 3층 출입구에는 여러 명의 안내원이 진을 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질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우선 전화번호를 적어야 하고 해외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 해외에 다녀온 사람과 접촉한 적이 있느냐? 무슨 일로 병원에 왔느냐? 환자냐? 아니면 보호자냐? 어떤 과에 진료를 받으러 왔느냐? 등 묻는 것도 많다. 그걸 작성하고 나면 체온을 측정하고 이상 없으면 병원출입허가증을 내준다. 언제부터 허가를 맡고 병원에 드나들었는가! 출입허가증이라니!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하다. 병원이 무슨 DMZ라도 되는가! 허가증을 받아들고 통과한 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해당 과에 갔다.

접수대에 진료카드를 내고 왔다고 말했더니 출입허가증을 달라고 한다. 이런!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출입허가증이 없다. 받을 때부터 마음이 불편하였는데 어디서 흘렸나? 진료카드, 핸드폰, 신용카드, 시집, 연필, 돋보기, 자동차 열쇠, 현금, 핸드폰은 있는데 통과하면서 받은 출입허가증이 없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보고 시집을 넘겨봐도 없다. 바지 옆 주머니 2개, 뒷주머니 2개에 들어있는 11가지 물건을 탁자에 다 내놓고 뒤져봐도 출입허가증이 없다. 병원 들어올 때 체온 측정하고 이상 없어 발급한 출입허가증을 진료과에서는 왜 또 보여달라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병원에 올 때마다, 은행에 다녀올 때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병원에 와서 진료카드를 잃어버려 재발급 받은 경험이 여러 번이고 은행에서 신분증이나 도장을 두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도대체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인가? 머릿속이 하얘진다. 병원 직원은 완강하다. 물러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11가지 물건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 손에는 시집을 들고 지하 3층 주자장의 병원 출입구까지 내려가 다시 절차를 밟으니 출입구 직원이 나를 알아보고 잠시 전 출입허가증 받으신 분 아니냐고 묻는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진료과에 오니 직원이 찾았느냐? 다시 발급받은 것이냐? 묻는다.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에 여유를 갖고 미리 왔지만 벌써 다음 진료가 나라고 호명한다. 혈압을 재려고 하니 그러잖아도 줄이 긴데 어떤 사람이 내 앞을 빠른 속도로 스치면서 혈압기 줄을 보탠다. 진료과 직원이 보기 딱했는지 책상에서 전자혈압계를 꺼내더니 선체로 혈압을 재준다. 대학병원에서 이런 식으로 혈압을 재보기는 처음이다. 간신히 내 차례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겨울날 한 켠으로 쓸어놓은 눈이 영하의 햇살에 마지못해 반짝이듯 내 마음이 아주 조금 녹는다. 내내 들고 다닌 시집은 제목 두 음절만 읽었다.

 

 

맹기호

 

詩人, 수필가, 서양화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장, 수원일요화가회장

문학과 비평 작가회 명예회장, 매탄고등학교장 역임

시집 그리워서 그립다, 4인수필집 틈과 여백 사이

홍조근정훈장 수상, 경기문학인 대상 수상, 백봉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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