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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여름 여행
장모님을 모시고 여름 여행을 짧게 다녀왔다. 충남 보령지방에 있는 성주사지, 무량사를 구경하고 성주산 휴양림에 있는 팬션에서 묵었다.
팬션은 깨끗하였고 계곡 물은 맑고 시원했다. 장마철이라 도중에 큰 비를 만나 운전을 쉬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성주사지에서 찍었다. 대부분의 사찰은 금당 앞에 탑이 2개가 있는데 여기는 3층 석탑이 3개였다.
백제 시대의 탑이면서도 화강암의 자른면 각이 날렵하게 살아있어서 놀랐다. 마치 어제 자른것 처럼 각이 예리하였다.
한국 화강암이 얼마다 단단한지 알수있는 증거다. 유럽의 대리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여 1300년이나 풍우에 시달려도 각이 살아있다.
3층 석탑의 몸돌 아래에 보면 돌을 한칸 더 끼운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탑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으로서 아마도 백제에서도 이미 시작된 양식인가 보다.
국보 8호 낭혜화상 탑비 이다. 낭혜화상은 성주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1300년 이상 지났는데 오석의 탑에 음각으로 얕게 새긴 작은 글씨를 눈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지금도 보령 지방의 오석이 비석으로 최고 값에 팔리는 이유를 알겠다.
성주사지에 있는 5층 석탑과 석등 그리고 저 멀리 3층 석탑이 보인다. 모두 보물이다.
성주사지는 아직도 발굴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큰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5층 석탑도 역시 2층 기단과 1층 몸돌 사이에 돌판을 하나 더 끼워넣은 고려의 양식으로 변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백제의 탑이다.
석등은 지붕 윗부분이 없어져 아쉽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삼국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요즈음 절에 가면 중국풍의 이상하게 모양을 낸 술집 작부같은 무게없는 허접한 석등을 많이 보는데 정말 역겹다. 절집에 그런 석등이 보이면 그대로 나오고 싶다.
석등은 역시 화엄사 석등이 화려함의 극치이고, 불국사 석등, 부석사 석등이 단순하며 깔끔한 단순절창이다.
여기 석등은 불국사와 부석사 석등을 닮았다.
나는 이런 곳에 정이간다. 무량사 입구에 있는 도랑인데 이렇게 멋지게 돌을 쌓았다. 물론 근래에 쌓은 것으로 문화재는 아니지만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누구의 생각인지 만든사람에게 감사한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구나. 나도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저런 다리 하나 만들고 싶다.
안개낀 무량사 전경이다. 비가 잠시 그친 순간에 안개가 보기 좋게 끼어 얼른 사진을 찍었다. 석등, 5층석탑, 극락전이 모두 보물이다.
특히 2층 목조건축인 극락전은 국보로 승격해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고, 규모도 컷지만 공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5층 탑도 부여정림사지탑만한 감동은 아니지만 국보로 승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탑의 규모가 장쾌하고 전체적 층간의 감축률이 아름다우며 왜 백제의 문화가 훌륭한지 보여주는 물건이다.
미륵사지석탑, 정림사지5층석탑 등과 함께 이 탑도 백제를 대표하는 탑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제일 사모하는 불국사 석가탑도 백제의 아사달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은가!
이번 여행은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를 다시 돌아보는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솔향기 팬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일보는 아주머니에게 상체 위로만 찍어달라고 했는데 다리까지 전신을 찍었다.
집에 와서 보니 잘 나왔다. 함께 동행했으며 이틀동안 운전까지 해준 둘째 아들 석영에게 감사하다.
물론 장모님에게 제일 감사하고…아산이가 있었으면 더 줗았을 것이다. 큰 아들 아산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 ^-^
청춘!
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한 그런 시절을 말하는 것이다.
청춘은 이처럼 아름답고 파릇파릇하며 내면에 무한하게 잠재된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 에너지는 비젼이나 열정에 연결된다. 청년들이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보석같은 결실을
우리는 청춘에서 기대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은 환상을 경험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의 청춘은 이러한 벽을 뚫어야 한다.
나의 청춘은 어떠했던가? 7080에 청춘을 보낸 나는 집안 일(?)에 종사하던 시간이 많았다.
개인적인 학교 공부보다는 집안 일이 더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일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군사정권에 자유가 짓눌려졌던 시절이었다.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이룩하였던 박정희정권은 나름대로 그 당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박정희 사후 혼란기에 지도자들의 내분 틈으로 전두환군사정권이 다시 들어왔다.
역시 정치적 자유가 억눌린 시절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청춘시기는 정확하게 박정희정권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보다는 박정희 정권이 훨씬 더 무서웠다. 자유가 억눌린 상황에서 청춘이 역할을 나타내는 범주는 제한적이다.
내 청춘은 제한적이었다고 추억된다. 내가 나름대로 민주화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몇군데 기웃거린것도 사실이지만
드러내놓고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적 사명에 인생을 거는 용기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내 청춘의 미래에 대한 욕구 역시 불투명하였다. 어떤 뚜렷한 비젼을 가진것도 아니었고,인생을 걸만한 사명감을 느낀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살아지는 대로 몸을 맡곁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부끄럽지만 내 청춘은 어떤 목표의식도 없었다.
밥먹고 ,나이먹고 그러다 보니 어느날 직업이 생겼고 그 직업에 오늘날까지 봉직하고 있다.
한번 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가끔하지만 별 뾰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살았다.
다만 대충 살은 것은 아니고 내 직업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였다. 처음부터 교장이 되려고 한것은 절대 아니었다. 교장은 꿈도 꾸지 않았다.
어떻게 교장이 되었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성실성을 경기교육이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냥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근무해왔더니 내 조직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교장으로 만들어주었다는 표현이 맞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취업에 실패하면 인생을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청춘은 취업에 매달려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두명의 조카가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구박받는것을 보면 그 청춘이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들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도록 어른들이 도와주어야한다. 일자리도 더 만들고 아름다운 공간도 만들어줘야한다.
오늘 아침 그 조카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처음 7줄은 경기일보에 실린 시인 최문자씨의 글을 참고하였다.
군인 시절의 사진이다. 스캔하다 보니 흐리게 나왔다. 청춘시절의 사진을 다시 찾아야겠다.
지난 토요일 서울 사당에서 교육전문직 동기회 모임이 있었다. 반정도는 아직도 장학사로 재직중이고 나머지는 장학사하다가 교장과 교감으로 일선 학교에 나왔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세상을 살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나보다는 더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지난 토요일 서울 사당에서 교육전문직 동기회 모임이 있었다. 반정도는 아직도 장학사로 재직중이고 나머지는 장학사하다가 교장과 교감으로 일선 학교에 나왔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세상을 살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나보다는 더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수학교육 최우수학교상 수상
한국수학교육평가원이 주관한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우리 영덕중학교가 경기/인천지역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어 학교표창을 받았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체력이라는 생각으로 수학교육을 열심히 해왔던 결과로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되었다.
우리학교는 3년전부터 수학교육 특성화학교로 지정되어 수원시의 지원을 받아 수학교육을 열심히 해오고 있다. 동아일보에도 보도되었다.
원래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최우수교로 선정되었는데 글자수가 너무 많아서 경기지역 최우수교라고만 표시하였다^-^
고등학교는 대원외고, 민족사관고, 한일고, 상산고, 경기북과고, 등이 받았다.
원래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최우수교로 선정되었는데 글자수가 너무 많아서 경기지역 최우수교라고만 표시하였다^-^
고등학교는 대원외고, 민족사관고, 한일고, 상산고, 경기북과고, 등이 받았다.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
단 한번 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
아랫목보다 더 따뜻한 금빛 강변 모래톱을 뛰어가면
후두둑 날개 털며 물새들 날아올랐다.
수정처럼 맑은 강물에 몸 담그며 땅집고 개헤엄 치면
옆구리에 모래무지 파고들어 간지러웠다
멀리 언덕배기 안개 피어나는 뽕밭에 어머니 아버지 김매는데
소는 팽개치고 밀서리에 입술만 까맣게 그을렸다
어린 날의 시간은 길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 스무곡을 불러도 해가 남았다
어머니는 그 희고 긴 목을 싸리 울타리 위로 내밀며
소 몰고 나간 나를 기다렸다.
친구가 없어도 바람과 햇빛이 나를 키웠다
내 생애에 그 강물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작성노트 : 내가 소에게 풀을 뜯기던 강변 풀밭에 지금은 아산고속철도역사가 세워졌다.
내가 그 강물에 갈 희망은 없다. 나는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고향 비슷한 곳이라도 좋다
나는 꼭 간다……
젊은 날의 초상 2
41살 때 사진이다. 초기중년이라고 해도 될 나이인데 지금 보다 어쩜 이렇게 다른지……
윗사진과 비슷한 40살 정도의 사진이다. 흑백 사진인것으로 보아 윗사진보다 더 젊은 시절인지…확신은 없다.
얼굴에 살이 없다. 어디를 보는지 힘이 없어 보인다. 철학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구나.
이 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좋은 대학에 학생을 많이 합격시키는 것이 훌륭한 선생인줄 알았던 시절이다.
내가 가르친 것이 수능시험에 그대로 출제되었을 때 자부심을 느겼던 시절이다.
어떤 때는 중간고사에 출제한 것이 그대로 수능에 출제된 적도 있었는데 답의 번호도 3번으로 같았다.
그런데 40에 철이나는 것을 느꼈다. 학력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40살 이후에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쳤다.
제자를 만나면 언제 배웠냐고 묻는다. 지금도 40이전에 가르친 제자를 만나면 겁이 난다.
그러나 40이후에 가르친 제자를 만나면 힘이 솟고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학생들을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옛사진을 보면 뭘하나?
지금이 내가 살아있는 시절에서는 제일 젊은 순간이 아닌가!
지금이 제일 젊을 때다!!!
젊은 날의 초상
나는 육군 현역으로 군생활을 마쳤는데 나의 군대 사진은 이게 전부다. 당시 카메라도 귀했고, 사진 찍을 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4장의 사진이 전부다.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 나의 군대생활을 그리 낭만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전우들과 사진 찍을 일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자유가 없는 통제된 사회를 내가 좋아하지 않았다.
훈련병시절 사진이다. 그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사진을 찍고 현상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름도 잊었으며 가온데 전우는 서울사람이었고 오른쪽 전우는 오산에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왜 저렇게 헐렐레 하고 웃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운데 군인처럼 당당하게 찍을걸..,.이 사진을 볼때마다후회가 된다.
체포된 베트공 같은 힘없는 표정이다. 심했나? 체포된 포로가 웃지는 않지! 그러나 적당한 표현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철모에 계급도 없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아 계급을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계급장도 없는 군인 ㅎㅎㅎ~
적진지에 몰래 침투하는 훈련 상황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손에 총을 들었는데 풀에 가려보이지 않는다.
여름날 무지하게 더웠는지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계급장을 보니 상병이다. 중고참시절이구나.
육군 병장시절이다. 말련에 BOQ관리병으로 파견생활을 할 때다.
독신장교 숙소를 관리하는 일인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중대장님이 내보내 주셨다.
훈련에서 제외되는 생활이라 말련을 편하게 지냈다. 마땅히 내보낼 사람을 찾다가 나를 내보내 주신 것이지 특별하게 나를 봐주려고 했던것은 아니다.
부하로 방위병 2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한명이 출근을하지 않고 말썽을 부려 가끔 야단을 치기도 했다.
BOQ 숙소 앞에서 폼잡고 찍었다. 반듯하게 찍지 왜 기울여 찍었는지 아마도 방위병이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쩝….
작대기가 2개면 일등병 시절이구나. 아마도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윗 사진보다 더 어릴 때다.
훈련을 마치고 얼마되지 않은 시절! 얼굴을 보니 통통하게 살이쪘다. 규칙적인 훈련과 식사로 몸이 좋았던 시절이다.
극한적인 훈련상황에서 몸은 더욱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내 인생에서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갔던 순간인데 당시 허리는 내 인생에서 제일 가늘었었다. 26인치!!
나의 아둔함은 끝이 없다
경북지방의 전탑을 보기 위해 이틀간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전탑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단순철창을 보인 불국사 석가탑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웬만한 탑은 모두 보았으니 이제 전탑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전탑이란 벽돌로 건물을 짓듯이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탑이다.
경주의 분황사탑, 신륵사의 전탑이 그러한데 볼 때마다 예쁘지도 않고 그저 그렇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180도 바꾸어 놓은 전탑을 이번 여행에서 발견하였으니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5번지에 있는 국보 187호 봉감모전5층석탑이다!
통일신라의 탑으로 보는 순간 대단한 물건임을 한눈에 알았다.
아! 이런 탑을 이제야 보다니 나의 아둔함은 정말 끝이 없다. 집에서 그림으로 보고 말았다면 어쩔 뻔 했나?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처럼 네모지게 다듬어 만든 탑이다.
수성암의 검붉은 색도 아름다웠는데 굽이쳐 흐르는 냇가의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국 탑의 정수인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시기에 전탑을 고집했던 어느 천재적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탑의 옆구리 스카이라인을 보면 5층에서부터 내려오는 감축률이 황금비를 이루었고, 감축의 상쾌함이 탑의 둔중한 느낌을 없애고 있다.
각층의 몸통 돌에 돋움 띠를 둘러 자칫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면의 디자인 밀도를 높였다.
전탑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장중하고 감동적인 탑이었다.
나는 탑 앞에 서서 가슴을 두드리는 두터운 예술적 감동에 몸을 떨었다.
1300여 년 전 이 탑을 만든 장인이 탑을 완성하고 나서 하늘 높은 맑은 가을날 전체 높이 11m의 탑을 우러르며 얼마나 감격했을까!
볼수록 아름답고 장엄하다. 사진을 찍는 순간 하늘도 도와주었다. 사실 지난 해에 쓴 글인데 다시 다듬어서 올렸다.
<국보187호 봉감모전5층석탑>
<국보187호 봉감모전5층석탑>
리베라 유성호텔
대전 유성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주최하는 학교평가요원 전문가 연수교육을 받았다.
1박2일동안 각 시도에서 10명 이내의 요원이 참가하는 연수였다. 경기도에서는 전문직과 초중고관리자 중에서 8명이 참가하였다.
대전은 붕우 남기완교수가 사는 곳이다. 전화했더니 마침 울릉도에서 연수중이었다. 대학은 벌써 방학을 했구나, 좋겠다^-^
28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수력발전의 비율은 5% 정도이고 나머지를 화력과 원자력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발전소에서는 컴퓨터에 의해 연료투입이 자동으로 제어되는데 우리가 전기를 많이 쓰면 그만큼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가 많이 투입되고 적게 쓰면 자동으로 적게 투입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