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나의 영웅이었던 대통령 김영삼님께서 서거하셨다.
서슬이 퍼랬던 유신 시절, YH여공사건, 미국언론사 인터뷰 사건을 트집잡아 박정희정부가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시키자
그에 항거하는 시위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고 이 문제를 의논하던 궁정동 안가에서 10.26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박정희독재정권을 종식시킨 사람도 김영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나서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섰고 그 전두환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23일간의 단식투쟁, 군사정부를 종식시키기 위한 대승적 결단인 3당합당!
3당합당 기자회견 당시 노태우 옆에 서있던 김영삼의 초라한 얼굴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는 타협의 정치인이었다. 정치를 아는 분이셨다. 3당합당을 몹시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한다는 그의 말은 적중하였다. 그에 의해 결국 전두한 노태우가 감옥에 들어갔고 하나회를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결국 아들은 나중에 금융실명제위반으로 감옥에 간다) 밀어부친 금융실명제가 지금도 잘한 일로 회자된다.
재임초기 90%가 넘는 지지율은 지금까지도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수치가 되었다. 조선총독부 잔재를 없애기 이해 총독부건물을 헐던일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도 인간 김영삼을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일은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일이다.
어려울 때면 언제나 힘들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정도를 걸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그의 빛나는 투쟁은 우리나라 역사에 영원히 추앙받아야할 것이다.
김영삼 그는 진정한 영웅이다. 돌아가신 다음날 경기도청에 준비된 분향소에 밤9시가 넘어 아내와 함께 조문하였다. 단 앞에 묵념하는 사람이 맹기호 뒷모습이다. 아내가 찍었다.
김영삼 대통령과는 딱 한번 악수한 적이 있다. 대통령에 출마하고 투표하기 전날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자동차로 종단하였든데 수원 남문에서 4시간이나 늦어지는 후보를 기다렸다.
남문약국을 지날 때 자동차가 서행하는 틈을 타서 얼른 자동차 안으로 손을 들이밀며 대통령김영삼! 이라고 소리쳤더니 내손을 잡아주었다.
우리집 대문에 조기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