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옷 입고 출근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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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어린이돕기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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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이제는 돌려줄 때가 되었습니다.

6.25전쟁에 대한민국을 위해 전투병을 파견한 나라는16개국입니다. 16개 나라가 오늘날 대부분 잘 사는 나라이지만 유독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무리한 농경, 유목의 확대 등으로 사막화가 가속화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이 될 만큼 발전하였고, 금년 1/4분기 수출액은 영국과 캐나다를 제치고 세계8위에 등극했습니다. 이제는 은혜를 값을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영덕중학교 학생들이 뜻을 모아 에티오피아 어린이를 돕기 위한 결연 운동을 벌여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기르고 장차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촌 사회를 살아갈 성숙한 시민의 자질을 기르기 위해 에티오피아 어린이와 결연하는 운동을 시작합니다. 1학급당 에티오피아 어린이 1명을 결연하는 사업에 30개 학급이 참여합니다.

각 학급에서 한 달에 3만원씩 월드비젼을 통하여 에티오피아에 보내게 됩니다. 각 학급에서 3만원씩 보낸 돈은 교육시설개선, 소득증대지원, 결연아동서비스, 식수 및 보건의료에 쓰입니다. 현재 결연을 맺은 30명의 아동이 18세가 될 때 까지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영덕중학교 학생여러분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때 황실근위대를 주축으로 3개 ‘칵뉴(Kagnew·물리치기 어려운 적을 궤멸시킨다는 뜻)’ 부대 3518명을 파병했습니다. 이들은 강원도 일대에서 253회 전투를 벌이다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습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은 하일레 셀라시에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는 황실근위대를 주축으로 참전부대를 창설했습니다. 칵뉴는 현지 암하라어로 ‘격파하다’ ‘혼란에 질서를 잡다’는 의미로 황제가 부여한 명칭입니다. 근위대 답게 절도와 명예를 강조했던 칵뉴부대의 철칙은 절대 포로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21명이 전사했지만 단 한명의 포로도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포로로 잡히기 전에 죽을 때까지 싸운 용감한 부대였습니다.

6.25 전쟁 당시 공산집단의 남침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전투병을 보내준 16개국이 모두 고맙지만 그 중 에티오피아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멀리 바다 건너 아프리카에서 달려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셀라시에 황제의 명령에 따라 꽃다운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에 우리 영덕중학교 학생들이 에티오피아 어린이들과 결연을 맺어 도와줌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죽어간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의 참된 죽음에 보답하고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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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아! 에티오피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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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아!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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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인상 깊은 문장 3

이윤택 : 시는 외로울 때 씌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외롭지 않습니다.


 


             지구 역사상 최고의 시는 역시 세익스피어의 햄릿 중    


             무덤에서의 독백으로 평가받고 있지 않는가


 


이형기 : 두루 알다시피 시는 언어로 씌어진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는 일정한 길이를 갖는 언어의 조직인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상상력이


             일정 분량 침투한 의미를 담는 그릇이다.


 


장석남 : 어둠도 뽕잎들과 더불어 싱싱하게 뜯겨져서 자루에 담았다.


 


전경린 : 전생에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나는 틀림없이 허공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정찬 : 그 때 내가 아버지의 눈에서 본 것은 햇살 같은 눈물 조각이었다.


 


정호승 : 상처없는 사람은 결코 먼길을 갈 수 없고 이미 먼 길을 떠난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상처가


            힘이 된다.


 


조성기 : 지금 존재하는 나는 무엇이며 이 땅에서 사라진 후의 나는 무엇인가.


 


허만하 : 섬은 바다에 그늘을 담그고 조용히 자기 그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길을 걸었다. 여느


            때 처럼 나는 길 위에서 사유의 실마리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허만하 : 꽃이 피는 이유 : 장미가 피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핀다. 라고


            독일의 종교시인 질레지우스는 말했다. 창조에는 이유가 없다. 시는 꽃처럼 피는 창조다.


            창조는 이유 또는 목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시는 작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오리나무 숲속에 보석처럼 쏟아져 있던 복수초, 각사탕 처럼 버석거리는 잔설의 두께를


            비집고 피어 있던 야생의 복수초 군락은 아름다웠다, 한겨울에 피는 꽃이라 얼음새꽃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복수초, 그것은 자연히 쓴 시였다.


 


황동규 : 그 동안 나는 좋은 그림과 조각과 건물에서도 음악의 혼을 느끼곤 했다.


            내 문학은 실제 삶과 음악 사이의 주고받음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문학의 출발이지만 시가 음악의 혼에 접근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었다.


            음악이 나를 끈 구체적인 동기는 문학처럼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것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된 오늘날 고전음악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은 : 시의 본적지는 폐허이고 시의 현주소는 폐허의 기억을 가진 미완의 역사 현장인 것이다.


         문학의 힘은 해답에 있지 않고 치열한 질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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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인상 깊은 문장 2

 


배수아 : 예술적 행위는 창의적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 나에게는 특히 문자예술이 그렇다.


            고뇌와 고통과 불행 등 모든 부정적인 조건을 불평없이 껴안을 수는 있어도


            정신의 자유를 배앗기는 것은 거부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있다. 그들이 머무는 곳이다.


 


안종효 : 글쓰기는 어차피 일종의 고백행위요, 궁극적으로는 자아 표현이다.


 


이문열 : 소학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 (維人最貴)란 구절이 있다.


            예전에는 낡고 소박한 인간중심주의를 드러내는 말로 읽어 넘겼는데


            요즘은 느낌이 다르다. 우리는 인식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또한 중요한


            인식의 객체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리에게 세계는 곧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 무엇이고 우주도 사람이 있어야 존재한다. 따라서 소학의 그 구절은


            세계 이해의 출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문학은 특히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의 안목과 인식으로 번역되지않고는 어떤 세계도 드러낼 수 없듯,


           왜 문학을 하느냐는 물음에 이제 다시 답을 찾아야 한다면


           오직 사람이귀하기 때문이다.


 


이시영 : 내 생애에 그런 기쁜 날이 남아있을까 중학교 1학년 새벽밥 일찍 먹고 한손엔 책가방,


            한 손에는 영어단어장을 들고 가름쟁이 콩밭 사잇길로 사잇길로 시오리를 가로질러


           읍내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해에 함뿍젖은아랫도리가


           모락모락 흰김을 뿜으며 반짝이던….


           가을이면 큰 수수들이 바람에 서걱이는 곳….아! 눈감으면 지금도 보인다…..나는 이런


           잃어버린 지명, 잃어버린 고향이 있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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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인상 깊은 문장 1

 요즈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라는 책을 읽었다.


 잊기 전에 책에서 나오는 공감가는 문장을 적는다.


 


고은 : 나의 문학은 폐허로부터 시작했다.


         내 문학은 폐허를 떠도는 자의 비가 이기를 자처했다. 그래서 시의 본적지는 폐허이고 시의 


         현주소는 폐허의 기억을 가진 미완의 역사현장인 것이다.


         문학의 힘은 해답에 있지 않고 치열한 질문에 있다.


         저녁은 숭고하고 슬프다.


 


김광규 : 내 자신은 목적으로서의 자본 축척을 이해할 수 없고 시간을 돈과 함께 계량적으로만


            파악하는 경영마인드에 동의할 수 없다. 숫자의 정확성 보다 문자의 상징성에


            이끌리는 것이 문학인의 숙명적 체질이다.


 


김지하 : 너는 왜 문학을 하는가? 넋의 풍류 탓이다. 그 뿐


 


도종환 : 내 문학은 가난과 외로움에서 출발했다.


 


마종기 : 내 문학의 화두는 자연히 생명이었다. 인가의 생명은 언제나 회망과 사랑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따뜻함이 그리워 나는 시를 써왔고 시를 쓰는 동안은 어줍잖은 고통까지도


            껴안으려고 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모든 인생은 비슷하게 힘겨운 짐을 지고 있다는


            말에 나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런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굽은


            허리의 겸손과 그 고통이 사실은 사랑의 속성이라는 것에도 동감한다.


            그 사랑의 속성을 찾아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세상을 헤멘다.


 


박범신 : 어머니는 부러진 가위로 내 탯줄을 당신이 직접 잘랐다. 하필 부러진 가위라니…..


            나의 출새은 여덟달반! 출생부터 나는 결핍이었다. 그 결핍 때문에 글을 쓸수밖에 없다.


            결핍은 결핍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핍되어있다고 느끼면 그것은 타는 듯한 상처가 될것이고


            그 상처를 통해 그는 결핍을 채우려 할것이다. 그러니까 결핍은 곧 충만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충만에의 그리움이 없다면 누가 읽고 쓰려하겠는가.


 


            고독하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불멸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내가 느끼는 결핍감 속에


            운명처럼   깃들어 있다. 그 모든 그리움을 다 채울 길이 없으니


            쓰지 않고 어떻게 내 목숨 견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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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finish graduate school

아들은 2010년 6월 4일 미국 보스턴에 있는 MIT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우리 큰 아들 맹인영! 졸업을 축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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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영토는 생명이고 사랑이다

 


사랑하는 영덕중학교 학생여러분


영토는 사랑이며 생명입니다. 영토가 없으면 국가가 없고 생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영토는 정치체제나 경제체제 보다 더 존엄한 것이어서 국민들로부터 무한한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금년은 6.25전쟁이 일어난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남북한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였고, 당시 미국은 한반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 국민들이 처절하게 철수 반대데모를 했지만 주한미군은 1949년 6월 완전히 철수하였으며 다음해 1950년 1월 애치슨라인으로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필리핀과 일본으로 하며 한국을 제외하였습니다. 여기에 남침을 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간청하여 전쟁물자를 지원받아 남침한 것이 6.25전쟁입니다. 6.25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북한측 사망자 292만명, 남한측 사망자 232만명 총 532만명의 사망자를 낸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영덕중학교 학생여러분 오늘은 교장선생님이 영토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우선 간도문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도는 백두산 북쪽의 옛 만주 일대, 지금의 중국 둥베이[東北] 지린성[吉林省] 동쪽 끝에 있는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거의 해당되는 지역을 가리키는 호칭. 한국에서 간도라고 하는 이 지역을 중국에서는 옌지다오[延吉道]라고 합니다.


 




 


지도를 봐주세요


우리나라의 북쪽에 있는 중국영토로 중국전체 중에 동북쪽으로 툭튀어나온 땅 전부, 그러니까 지도에서 붉은색으로 둘러쌓인 지역 전체가 만주입니다.


이 지역은 명청시대부터 만주로 불리웠고 나중에 일본이 침공하여 만주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입니다. 지금은 중국의 동북3성(요령,길림, 흑룡강성)과 내몽골자치구일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주국 때문에 중국은 만주라는 이름을 싫어하여 항상 동북지방 혹은 동북3성이라고 부릅니다. 그 동쪽(오른쪽)에 위에서 길게 뻗은 러시아땅이 있습니다. 이 땅은 바다와 접해있다고 하여 연해주라고 합니다. 쉽게 기억하자면 지도상에서 우리나라 북쪽의 중국땅 전체는 만주, 그 옆의 러시아땅은 연해주입니다. 이처럼 만주와 연해주는 명확한 개념인데 비해 간도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쓰입니다. 보통은 우리나라 함경도 북쪽의 조선족자치주지역을 간도라고 부르지만 광의로는 압록강북쪽을 서간도, 두만강북쪽을 북간도라고 하여 접경지역 전체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주 광의로 만주지역 전체를 뜻하기도 하는데 만주전체를 간도로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견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한국인들이 거주했고 한중간 국경분쟁의 대상이 되는 지역을 간도라고 하며 지도상에서는 녹색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간도는 만주의 일부입니다. 동시에 간도협약과 백두산정계비를 둘러싼 문제에서 간도라고 할 때는 북간도 (두만강북쪽, 그러니까 지도에서 녹색테두리안의 오른쪽부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간도의 면적은 얼마나 되나요?


학자들마다 간도의 면적에 대해 설명하는 바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백두산 정계비가 정한 국경을 지도 위에 표시해보면 그 크기는 한반도 전체 면적과 맞먹습니다. 여기에 압록강 대안지역인 서간도까지 포함하면 간도의 면적은 한반도의 1.5배에 해당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남만주 철도부설권과 탄광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청에 간도 땅을 넘겼습니다. 그 후 1909년 9월4일 청·일 간도협약을 통해 조선과 청의 국경을 두만강과 압록강 경계선으로 획정 지었습니다. 결국 을사조약은 일제가 강압적으로 맺은 대표적인 국제조약으로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이며 국제적으로도 확인된 상황입니다. 1909년의 간도협약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의해서도 국제법적으로 무효화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1952년 중일 평화조약에서도 1941년 이전에 일본이 체결한 모든 조약, 협약,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후 무효화된 만주협약과 달리 그 교환조건으로 체결된 간도협약은 여전히 유효한 채 중국이 실질적인 지배를 계속 하였다.


 


그 후 중국과 국경을 대면한 북한은 국경지대에서 마찰을 겪다가 1962년 비밀 변경 조약을 체결하고, 1964년 국경의정서를 교환함으로써 압록강-백두산천지 양분-두만강으로 국경을 획정하였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간도지역은 중국에 편입돼 있고 ,1962년과 1964년 조·중 국경조약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이 확정한 상태입니다. 비록 우리 헌법상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엄연한 실체를 갖고 중국과 북한이 현재의 간도지역을 중국영토로 인정하는 합법적인 조약을 맺은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도 큰 문제입니다.


 


동북공정은 중국 북동부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련된 연구작업을 뜻합니다.


정식 명칭은 중국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입니다.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에 의한 국책사업입니다. 동북공정에 의해 한국의 역사 왜곡이 갈수록 태산입니다. 고조선에서 발해에 이르는 한민족의 고대사를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차 통일 대한 민국이 당연히 중국측에 반환을 요구해야할 우리 영토인 간도지역(만주)에 대하여 역사적 연고권을 미리 확보하려는 작업입니다. 요즈음에는 중국 영토를 아예 한강 유역까지로 간주하고, 신라와 고려, 조선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중국땅을 침범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국의 영토는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던 한반도 남부였는데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면서 압록강 까지 영토을 확장하여 자기들의 땅인 한강 이북 지역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이 대목에 더욱 촌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장차 북한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려는 중국의 음모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북한에 급변 사태가 일어날 때 중국군을 북한에 진주시켜 친중괴뢰정권을 세우고 마침내 북한을 동북 3성의 하나로 흡수,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습니다. 즉, 북한을 강탈하여 합병하였을 때 한강 이북 지역은 원래 중국 땅이었는데 다시 찾은 것이라고 말하려고 한수 이북 지역까지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동북공정으로 역사의 절반이 날아가고 여기에 일본의 우파까지 가세하면 한국사가 공중분해될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고대에 왜(倭)가 한반도 남부지방을 점령하여 식민지를 두고 있었다고 왜곡한 것이고, 근대사 분야는 일본이 한반도, 만주, 중국 등지를 침략한 사실을 정당화(正當化)하거나 미화(美化)한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중고생들이 배우고 있는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당시 조선반도에는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라는 3 나라가 있었는데 대화정권(大和政權)은 임나(任那)라는 땅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에 일본부(日本府)를 두었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任那)가 있었다”, “변한(弁韓:가야) 지방에 진출한 왜인(倭人)은 대화정권(大和政權)을 배경으로 한반도 경영에 나서 김해가라(금관가야 지칭)를 근거지로 하여 낙동강 유역을 공략하여 임나(任那)를 세웠다”, “위 왜곡된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우익 역사학자들이 주장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마치 고대에 왜(倭)가 한반도 남부지방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에 군정기관(軍政機關)인 일본부(日本府)를 두었던 것처럼 왜곡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역사이고, 한반도 중북부는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삼한이 일본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 위는 중국이 아래는 일본이 한국사를 탈취해가고 한국은 역사 주권을 잃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꼭 비탄스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선사시대를 제외한 우리나라 2000년의 역사시대에 930여회의 외적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는 0.5년에 한 번 꼴로 외적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금 한국전쟁이 후 60년 동안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2010년 1/4분기 무역규모는 영국과 캐나다를 제치고 세계 8위를 달성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금보다 더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모두 극복하여왔습니다. 우리를 39년이나 괴롭혔던 몽고는 지금 아시아 북부의 초원지대에서 염소를 끌고 다니면서 천막생활을 하고 마치 500년 전에 문명이 스톱된 나라처럼 살고 있으며 병자호란 때 60만명이나 포로를 잡아가고 인조의 무릎을 꿇렸던 만주족의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과연 누가 더 강하고 질긴 것입니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것이라는 최명길의 말이 생각납니다. 더욱더 다행인 것은 조국을 짊어지고 갈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국은 여기 모인 여러분을 믿습니다.


 


영토는 우리의 생명이며 무한한 사랑을 보내야 하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영덕중학교 학생여러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조국을 위해 순직한 선열들을 생각하면서 자손만대까지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를 물려줄 각오를 마음속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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