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주인이다^-^

43년 째 살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

나는 이 집에서 결혼을 했고, 교사가 되었다.

올해 90세인 아버지는 30년 전 이 집에서 회갑잔치를 했다.

이 골목길에서  두 아들은 자전거를 배웠다. 

큰 아들은 유치원 시절 2층 난간 밑에 살던 말벌에 쏘여 울었다.

 

오늘 문패를 만들었다.

나무에 흰페인트를 칠하고 검은 유화물감으로 썼다.

붓글씨붓이 없어서 뭉뚝한 유화붓으로 쓰다보니 글맵시가 없다

그래도 내 글씨로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것으로 생각되어 그냥 쓰기로 했다.

 

집안의 대표로 아버지의 존함 밑에 내 이름을 썼다.  두사람 이름만 쓰고 여백을 넓게 살렸다.

 

그리고 식구 전체의 이름을 약간  큰 판에 썼다. 우리 식구는 모두 8명이다.

아마도 근동에서 8명이 한집에 함/께 사는 가정은 우리집 뿐일 것이다. 사실 2명은 ㅎㅎㅎ~

써서 달고 앞에서 보니 나름대로 보기에 좋다.

모두가 주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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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은 상쾌합니다 ^-^

을미사변은 1895년(고종 32) 10월 8일 새벽 조선 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우의 지휘하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조선의 왕비인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그 시신을 불태워 버린 야만적 사건을 말합니다. 을미개혁은 을미사변 직후인 1895년 8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추진된 조선의 일련의 제도 개혁을 말합니다.

을미개혁은 친일적 성향이 짙은 점이 특징입니다. 을미개혁의 내용 중 태양력 사용, 연호 건양(건양'(建陽)이란 양력을 새로 세운다는 뜻) 등이 있습니다.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을 보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어요.
 1895년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설을 쇠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의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들이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거나 떡 방앗간을 돌리는 경우에는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웠지요.
 또, 조선인들 중 음력설에 세배를 간다거나 설빔을 입은 사람에게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거나 경찰을 통해 감시하는 등 온갖 박해를 가했습니다.
설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해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에게 벌을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40여년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설을 쇠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부분 가정에서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1989년에 음력설을 부활시켰지요.
실로 94년 만에 설이 회복된 것입니다.
설의 어원에 대한 근거는 여럿입니다. 그러나 설은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날이며 첫머리라는 의미에서 어원을 유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여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설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낯설음이 얼마나 상큼하고 좋습니까? ^-^
낯선 곳에 가서 뜻을 펴고 도전해야 빛이 납니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발전이 없습니다. 이상화를 보세요
2013년 1월21일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빙상대회에서 500m를 36.80으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동양인의 작은 체구로 육상의 100m에 해당한다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낯선 곳에 가서 우뚝설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앞집 황정아네 똥개는 나만 보면 대문 안에서 짓습니다. 내가 걸어가면 집안에서 내가 걸어가는 쪽으로 이동하면서 악다구니로 짓어댑니다.
어느날 대문은 닫히고 똥개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나를 보더니 꼬리를 양다리사이로 내리고 눈치만 보면서 벌벌 떠는데 정말 웃겼습니다.
집안에서만 설치면 뭐합니까! 낯선 곳에서 힘을 내야지! 설은 그렇게 진취적이고 개방적입니다. 낯설은 곳에서는 불안하기 때문에 치열하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상촌중학교 학생여러분! 왜놈들이 빼앗으려 했던 설! 이제 구정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설! 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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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학년도 배정학생 380명에게^-^

2013학년도 상촌중학교 신입생 10학급 380명의 배정을 축하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생의 감소로 수원시내 모든 학교가 학급이 감축되었는데
우리 상촌중학교만 2학급이 증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여러분의 배정을 축하하기 위해 교문에 플래카드를 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은 앞으로 명문 상촌중학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상촌중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될 것입니다.
상촌중학교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교장으로서 배정된 학생들을 위해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입학하기 전까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간에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입학하기 바랍니다.
특히 소설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소설은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게 합니다.
꼭 읽고 입학하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상촌중학교에 배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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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보다 더 잘나온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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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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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단 마라도에서 삼성갤럭시3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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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렉보웬~

 경기도 박물관에서 주관하는 30시간 짜리 박물관 연수에 참여하였다.

작년에도 신청했다가 선착순에 밀려 떨어졌는데 금년에는 부지런을 떨며 신청했더니 40명 선발에 15등으로 연수가 허락되었다.

함께 공부한 선생님들은 모두 평교사 였고 교장이 연수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의아스럽게 여겼다. 공부에 교장과 평교사가 무슨 구분이 있겠는가!

나는 그동안 구석기 문화에 대하여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5일간의 연수는 흥미로웠다. 각계 전문가들의 강의도 아주 좋았다. 전곡리 구석기 유물을 답사하였고

실제로 주먹도끼(손도끼가 더 적당한 표현이라 생각한다)를 만드는 시연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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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삼성갤럭시3로 찍었는데 잘 나왔다.

 

인류의 조상이 지구에 출현한것은 약300만년 전이다.

그리고 구석기 시대는 250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구석기는 시기별로

   전기구석기(70만년 ~13만년 전)

중기구석기(13만년~4만년 전)

                                      후기구석기(4만~8천년 전)의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청동기를 사용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3000년 전이라면

한반도에서 인간은 99.57%의 69만7000년 동안 석기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가 8000천년 전이면 인간이 돌을 깨뜨려(타제석기)사용하다가

갈아서(마제석기)사용하는 생각을 하는데 69만2000년이 걸렸다.

                 그리고  전곡리 유적은 50~30만년 전의 시기로 전기구석기에 해당된다.

 

참고로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는 8천년 전

청동기시대는 3천년 전

철기시대는 2400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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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 박물관 앞에 세워진 아술리안주먹도끼 모형이다

영어로 hand axe 라면 주먹도끼 보다는 손도끼로 번역하는것이 더 좋은데 교과서 마다 주먹도끼라고 나온다.

 

아슐리안이라고 하는것은 전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권을 구분하는 용어 인데

구석기 시대에 돌을 용도에 맞추어 만들어 사용하면서 그때까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양쪽면을 가공해 날카로운 날을 세운 석기(주먹도끼)를 만들게 되는데 이걸 만드는 것을 석기 공작이라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쪽에서 나타난 문화권을 올드완석기공작이라하고 유럽지역은 아슐리안 석기공작라 한다. 

이전까지의 유물을 토대로 이런 석기 제작이 가능했던 곳은 아프리카와 유럽등지였다.

하버드  모비우스 교수는 인도 서쪽은 아술리안 문화권이라 정하고 

인도 동쪽 (중국과 동남아,아메리카 대륙)등은 찍개문화권이라 정하였다. 

상대적으로 아슐리안석기를 가진 문화권은 진보된 구석기 문화를 가졌다는 우월감도 있었다. 

하지만 1978년 우리나라의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됨으로써 그전까지의 학설을 뒤집는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 되었다. 그후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이외에 중국이나 일본등지에서는 아술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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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 박물관의 학예사가 안전장구를 착용하고 주먹도끼 만드는 시연을 하고 있다.

나도 만들수 있다. 야영에서 칼이 없다면 주먹도끼를 만들어 칼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언제 한번 해봐야지…ㅋㅋㅋ~

 

1978년 주한미군 병사 그렉 보웬은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병사였다

그는 한탄강유원지에 들렀다가 우연히 유원지 주변에서 석기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눈에 이 유물들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발견한 석기의 사진과 발견 경위를 소상히 적어

프랑스의 저명한 구석기 전문가인 보르드 교수에게 연락을 취하게 된다.

보르드 교수는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이던 김원용 교수를 찾아가도록 권유했다.

그렉 보웬이 가져온 석기를 살펴본 김원용 교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의 모비우스 교수는 동아시아의 구석기 유물을 최초로 종합적으로 연구한 학자인데

동아시아 지역은 아술리안주먹도끼가 없는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전곡리구석기 유적발견은 그의 이론을 무너지게 하였고

전곡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아시아 구석기 유적지가 되었다.

 

[그렉보웬이 한탄강유역에서 아슈리안 석기를 발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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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교민회 명예회원

영덕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31개 학급에 이디오피아 어린이 한명씩 결연하여 한달에 3만원씩 성금을 보내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달에 93만원, 1년에 1116만원 10년에 1억1천6백6십만원을 보내는 프로젝트다.

결연을 맺은 어린이는 8살 그들이 18세가 될때까지 10년동안 성금을 보내기로 한것이다.

이디오피아는 6.25북한의 남침전쟁 때 3518명의 전투병을 파견해주었고

121명의 꽃다운 젊은이가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어제 이디오피아 교민회를 창립하는데 나를 명예회원으로 임명하는 위촉장을 준다고 연락이 와서 서울에 다녀왔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11층 그랜드볼륨홀에서 행사가 열렸는데 행사장소 등 필요한 부대비용은 모두 기부자들의 성금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이디오피아를 돕는 민간인과 단체 중에서 10명을 선발하여 위촉장을 주었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셨다.

의료활동으로 봉사하는 의사도 있었고 물질과 봉사활동으로 이디오피아를 돕는 분도 있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디오피아 전통음식을 대접받았는데 수저를 주지 않고 손으로 먹는 것이어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디오피아가 형제의 나라이며 우리에게 친근한 나라여서 그런지

음식도 낯설지 않고 검은 피부의 잘생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모두 잘생겼고 여성들도 모두 예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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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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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경관

 

2박 3일 간 제주도를 다녀왔다. 최남단 마라도와 우도에도 들렸다

세계적인 휴양지 태국의 파타야를 오래 전에 보고 제주도 보다 훨씬 못미친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내 나라 풍광은 무시하고 외국만 좋다고 다니는 경향이 나에게도 있었는지

몇 번 해외여행을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다 제주도만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여 제주도를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내 인생에 5번째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것이다.

사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불안한 마음 때문에 집을 비우고 여러날 여행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2박3일의 제주도여행을 선택한 것이다.

제주도에 갈 비용이면 웬만한 해외여행은 하고도 남는다. 박찬일 교장 부부와 함께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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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자수다! 제주도의 가로수를 보면 완전히 남국의 모습이다. 한반도에 이런 자연환경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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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때는 사진만 찍고 실제 말은 타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말을 타고 천천히 운동장을 돌았다.

말이 말을 잘 들었으며 아내가 탄 말은 딴 행동을 하여 당황하기도 했으나 아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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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속마을의 돌하루방 앞에서 앞에서 기념찰영을 하였다.

27년 만의 강추위였는데 남단 제주에서도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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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438호 우도해수욕장! 

 모래가 희고 아름다웠으며 에메랄드빛 바다물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우도 해수욕장은 홍조단괴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해수욕장은 아주 희귀하다.

산호나 패류가 부서져 모래사장이 된것이 아니고 홍조 즉 김, 우뭇가사리 등의 해안초가 굳어서 단단해진 것이다

그것들의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하얀 모래사장을 이루었다. 정말 모래가 희고 아름다웠으며 바닷물 또한 맑고 청량하였다.

 천연기념물 438호 우도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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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도해수욕장에서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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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감귤밭이다. 과거 귤나무는 대학나무라고 불리면서 제주주민 소득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어떻게 감귤이 얼지않고 달려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진 찍으면 몰래 하나 따먹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몰래 딴것이 미안하여 나오면서 귤 한봉지를 샀다.

아내는 귤농장에서 상황버섯을 사자고 졸랐다. 외국산 과일의 수입으로 귤농장에서 상황버섯을 대체작물로 재배하고 있었다.

마뜩하지 않았으나 8만원 주고 상황버섯 분말을 샀다. 항암제이며 만병통치 약으로 선전하고 있었는데

믿기 어려웠으나 아내가 아버님 선물로 사자고 하여 좋을대로 하라고 하였다.

장모님 선물로 귤을 한상자 사려고 했으나 택배비를 별도로 내야하고 웬일인지 육지보다 더 비싸게 팔고 있어 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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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야자나무는 종류도 많았다. 해변에 있는 운치있는 야자나무 밑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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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쇼를 감상하였는데 돌고래쇼관람관 앞 화단에 소철 꽃이 피었다.

소철에 꽃이 핀것은 처음보았다. 신기하였다.

제주주민들에게 소철은 무엇에 쓰이냐고 물었더니

아무짝에도 쓰임이 없고 그냥 관상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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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교장 부부와 함께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의 표적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박교장 부부는 목도리로 중무장했는데 우리는 목도리를 갖고 가지 않았다.

제주도는 따뜻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인데 바람이 많아 체감온도는 매추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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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곳에 가면 나는 식생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작은 식물에 관심이 많다. 카메라에 담아보았는데 이름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라도와 우도에는 바람이 세서 아주 강인하고 잎이 두터운 식물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마라도의 강풍 속에 연약하기 이를데 없는 들국화가 살아남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들국화는 잎이 두껍지도 않고 보통 들국화와 같이 잎이 연약했고  꽃송이도 약간 작았다. 괜히 ‘들’자가 붙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들풀의 강한 생명력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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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쟁이인지, 아니면 구절초의 일종인지 알수 없었으나 국화과의 일종은 분명하다.

바람의 영향으로 키가 낮게 자라고 있었으며 역시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잎이 약간 두텁게 진화되어 육지에서 보는 쑥부쟁이와 달랐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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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다. 역시 육지에서보다 낮은 키로 자라고 있었다. 꽃송이도 매우 작다.

육지에서도 비교적 잎이 두껍고 강한 식물인데 여기에서도 살아남았다.

근접촬영한것인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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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 있는 성당이다.

종모양의 높은 돔이 있고 뒤에 전복 모양의 예배당이 있다.

뒤에 보이는 흰건물은 등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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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바디 꽃이다.

 육지의 섬바디는 키가 1미터 이상으로 자라는데 비하여 바람이 센 영향인지 땅에 납작하게 붙어 키가 한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꽃은 여지없이 흰꽃으로 아름답게 피었다. 섬바디가 분명하다.

다만 육지에는 들국화 엉겅퀴, 섬바디가 꽃이 다 지고 몸체도 없는데 여기 마라도에는 아직도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육지에는이미 땅속의 뿌리로만 존재하고 땅위에는 형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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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날 마지막 만찬을 생선구이로 하기로 결정하고 좋은 음식점을 찾아갔다.

주인과 종업원은 친절했으며 식사 후 제주공항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였다.

만족한 식사였다! 함께 여행에 동참해준 박찬일 교장 부부에게 감사하다.

 

박교장선생님은 내가 존경하는 분이며 나와 동갑내기다. 대부도에서 함께 근무했으며

같은 아파트의 주방과 거실을 함께 쓰는  관사에서 3년동안 식사를 같이 하였다.

아침을 박교장이 하면 나는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형식이었다. 함’께 기숙하면서 깊은 정이 들었다.

박교장님의 사모님 또한 좋은 인물이며 아주 겸손하고 지적인 분으로 존경할만한 분이다.

여행하는 동안 박찬일 교장이 술을 좋아하지 않아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고 하루 일정이 끝나면 호텔에 돌아와 각자 쉬었다.

나에게는 오랜만의 아주 편안한 여행이었으며 아내도 아주 행복해하여 내 마음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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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어 조림을 시켰고 중앙의 양쪽에 놓인것이 옥돔구이다.

옥돔구이도 맛이 좋았으며 고등어 조림도 좋았다.

부대반찬도 정갈하였으며 맛갈스러웠다.

식당이름이 ‘토끼와 거북이호’였는데

우리가 밥을 먹은 시간은 비교적 이른 저녁시간이어서

손님이 한산하여 오히려 우리에게 좋았다.

아주 만족한 식사였으며 식사 후 제공해주는 교통편으로 공항으로 가서

면세점에 들려 쇼핑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대한항공의 승무원은 친절하였다. 아내와 나는 제공하는 음료를 두번이나 요청하여 배불리 먹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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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왔다

인천공항으로 귀국하였다

아내와 같이 차를 몰고 인천공항으로 마중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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