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장편소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읽었다.
정미경은 200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다.
문체가 아름다웠다.
암울했던 시절, 그리고 젊은이 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던 격정의 세월 1980년대! 그 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나도 그 시절에 젊음을 보냈다. 전두환 정권의 권력의 정당성을 상실한 집권에 대한 젊음의 순수한 반격은 거리를 최루탄으로 물들였었다.
지금은 대통령보고 인터넷에서 쥐00라고 대놓고 말하는 시절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다. 국민의 뽑은 대표를 그렇게 비하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1980년대의 암울했던 시절을 상기하기는 했지만 민주화된 오늘에 내 느낌은 그날의 격정에서 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다.
몇가지 아름다운 문장을 적어본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왜 모든 응시의 끝에는 슬픔이 찰랑이는가!
사랑없으면 영화판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나.
누운채 하늘을 보니 구름이 점점이 떠있는 하늘 속으로 어느새 무성해진 여름 숲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하나의 문장이 저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면 비장함과 격정의 옷을 입었지
이 사람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내가 이 그림속에 던져놓은 영혼의 조각들을 이해하는 걸까
哲學 철학이란 한자를 풀어보면 입을 다무는것 즉 침묵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새의 부리처럼 입벌린 목련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초여름의 새벽이 안개를 밀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안개의 틈으로 강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보였다.
부지런한 나무들은 달콤한 수액을 뿜어내고 검초록 이파리들을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삽상한 공기가 천개의 손가락으로 살갗을 어루만지며 감겨왔다.
풍경들이 신경줄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단 하나만이 간절했다 지금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잠에서 깨어난 숲에서 풀잎을 짓이기는 듯한 초록빛 향기가 번져왔다.
강물이 기슭에서부터 뒤채기 시작했다. 발 아래서 노란 애기똥풀 꽃이 하나둘 피어났다.
두개의 낯설고 오만한 세계가 섞일 때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신생의 별처럼 탄생했다. 낮과 밤이 살을 섞는 일몰의 시간,
혹은 여름과 가을이 서로 섞이는 그 형이상학적인 시간 처럼 연애를 시작하는 두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그 두세계가 부딪치는 순간의 광휘에 먼저 매혹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윤희는 그가 들어오면서 흐트러놓는 미묘한 공기의 무늬, 측면에서 보이는 뒤통수를 보는 첫 순간 숨미 멋는다.
잘게 부서진 햇살이 이파리 모양의 그늘과 섞여 지원의 푸른색 어깨위에서 흔들렸다.
사람의 머리속은 보여줄 수 없다.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설득해야한다.
자신감 있는 표정, 기선을 제압하는 최고의 옷차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오만할 정도의 브리핑……
중호는 여자의 목소리와 웃음소리와 자두를 깨물때 나는 신선한 파열음과 단내가 제 세포막 속으로 물처럼 스며드는 것을 기이하게 감지한다.
추락하는 주식시장에서 느끼는 감은 죽음의 공포에 가깝지 잔액에서 하나씩 사라져가는 동그라미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 공포가 빠져나가는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어느 순간 탐욕이 공포를 잊게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