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혹 잊어버릴까하여 적어둔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1) 수원고등학교에 진학하다.
석영이는 1지망에 인기있는 H고등학교를 희망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H고등학교에 배정 되었으나 유독 석영이는 수원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수원고등학교는 한 해에 서울대학을 50명 이나 보내는 명문고등학교였으나 인구 중심이 신시가지인 동수원과 영통으로 이동함에 따라 수원고가 위치한 지역은 좋은 학군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보니 수원고등학교의 학력수준이 떨어지게 되었다. 석영이는 중학교를 비교적 학력수준이 높은 매원중학교를 나왔는데 중학교 때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상위권에 있기는 했느나 아주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런데 수원고등학교에 입학당시 530명의 학생중 선발고사 성적은 27위 였다. 고입내신이 186점 정도였는데 그 성적으로 27/530이라면 수원고등학교가 우수한 학생이 모인 집단은 아니라는 의미다.
(2) 내신 성적 아! (1학년 국어 “우”)
그런데 석영이는 1학년 입학 직후 실시한 수능모의고사에서 학년석차 5위 에 해당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석영이는 이상하게 암기력이 없는지 단기간에 공부하여 승부를 내는 학교시험에는 별로 신통한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이 점은 아산이도 마찬가지다. 아산이는 모의고사 성적은 학년석차 1위를 계속했으나 학교 내신은 학년석차 1위가 아니었다.
석영이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오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여러차례의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2학년 말에는 드디어 교내 내신성적도 전교 1위를 차지하였다. 생각할수록 신통한 일이었다. 나는 석영이가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하였다. 집에 오면 언제나 컴퓨터 앞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환타지 소설류나 읽는 수준인데 학교 모의고사성적은 2,3학년 내내 전교 1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흠이 있다면 1학년 1학기 국어 성적이 유일하게 ‘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3년동안 전과목이 ‘수’인데 우가 딱 하나 있는 것이 흠이다. 89 점이었다 1 점이 모자라는 것이다. 아! 1 점
(3) 학급 반장에 당선되다
고등학생은 반장을 서로 하려한다. 수시입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학급 반장에 출마했지만 떨어지다가 드디어 3학년에 와서 처음 학급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것도 당당히 선거로 최다 득표를 얻어 반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반장은 수시 입학 추천사유가 된다.
(4) 전문직에 목표를 세우다
1차 수시는 아주대학교 의과 대학에 응시했으나 170:1의 경쟁을 뚫지 못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수시 응시를 권하였고, 최소한 연대와 고대의 공과대학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 사오정이라는 말도 있듯이 회사에 취업하여 샐러리맨으로 평생 직장을 얻어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석영이가 전문직에 종사하기를 바랐고 그리하여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큰 아들이 유학 중인 상황에서 둘째 아들이 전문직으로 홀로 선다면 내 근심을 덜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면 저는 먹고 살 것이 아닌가? 또 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하며 인생을 즐길수도 있다.
(5) 약학대학으로 목표를 세우다
전국의 약학대학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갈만한 대학을 모색하였는데 불행히도 석영이는 국어과목에 ‘우’가 하나 있어서 국어를 보지 않는 대학을 찾아보니 삼육대학 약학과였다. 놀라운 사실은 삼육대학약학과가 서울대 공과대학보다 커트라인 수능성적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나라가 잘 살려면 우수한 인재가 공대에 가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머리 좋은 학생은 모두 법대 아니면 의대에 간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도 졸업하면 대부분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6) 제7안식일 예수재림교
삼육대학교는 제7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 세운대학이다. 제7안식일예수재림교는 세계적인 종단조직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이단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예수재림교 종단이 청교도적인 절제된 생활을 하는 경건한 집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단이 아님은 물론이다. 교회에 가서 조춘호 목사님에게 추천서를 받아서 제출하였다. 조목사님을 알게된 것은 참으로 잘된 일이다.
(7) 하나님의 보살핌
목회자 추천 경쟁 20:1, 일반전형경쟁 60:1 정말로 참혹한 경쟁률이다. 이 경쟁률을 뚫고 어떻게 합격한단 말인가!! 그런데 석영이는 합격하였다. 아마도 심층면접을 잘 본 모양이다. 석영이는 정말 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다. 전도사인 장모님은 계속해서 새벽기도를 드렸고, 아내는 물론이고 나도 몇 주일동안 교회에 나가면서 진심으로 기도드렸다.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석영이가 합격한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8) 그래도 남는 아쉬움
석영이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넣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약사가 평생 직업이라고 해도 서울대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정시에 응시했더라면 성균관대학교 약학과, 또는 중앙대학교 약학과도 어느 정도 합격할 수 있지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석영이에게 약대를 강압적으로 권유한 것에 대하여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다. 훗날 아버지의 진로지도가 잘 맞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에 석영이에게 “나중에 삼육대약학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응시하는 것도 생각해보아라” 라고 말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