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 독립선언서 말미에 공약 3장을 작성하였고 죽는 날까지 일제에 타협하고나 굴복하지 않은 인물이다. 특기할 만한 일은 그가 중의 혼인을 주장하였다. 그 역시 두번이나 결혼하였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가정을 알아야 중생의 아픔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최남선이 길에서 인사하려 했을 때 친일파로 변절했다며 거절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용운같은 사람을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최남선이나 춘원 이광수가 말년에 친일했다고 그 행위를 탓할 생각이 없다.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춘원이 교정을 보았으며 특히 이광수는 나중에 상해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을 지냈다. 그런 사실 만으로도 용서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정답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신채호, 한용운처럼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저항한 사람들에게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천상병 고택은 그냐말로 오두막이었다. 김동리가 주례를 선 사실을 알았다.
한용운기념관 앞에서 찍었다.
한용운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천상병 시인이 살던 생전의 집을 옮겨다 놓았다.
슬레이트 지붕에 블록벽돌로 지은 정말 초라한 집이다.
어쩌면 이렇게…. 정말 많이 늙었다.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