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2000원”

지난 일요일 오전 11시

아버지 어머니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계시고

나는 2층 마루에서 그 동안 연수받은 내용을 컴퓨터로 정리하고

컴퓨터를 아버지에게 빼앗긴 둘째 녀석은 제방에서 환타지소설에 빠져있고

아내는 자기 방에서 소설 ‘소환장’을 읽고

집안은 고요하였다.

이 때 정적을 깨트리는 대문 벨이 울렸다!!

개가 목을 세운 소리를 내며 짓는다.

음……누굴까? 식구들은 일순간 숨을 멈추고 귀를 세웠다.

개가 짓는다 그렇다면 외부인이다!

어머니가 나갔다가 현관에 들어오시면서 “웬 거지가 밥을 달라고 왔는데 남은 밥이 없으니

돈을 줘야겠다”라고 하시면서 파란 만원권 한 장을 들고 나가신다. 나는 ‘아니 거지에게 만

원씩이나 주십니까’? 라고 놀라니까 어머니는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기 때문에 만원

은 줘야한다고 하신다. 나는 그러면 버릇이 되어 매일 옵니다! 안됩니다 라고 말하고 어머

니를 만류하면서 1000원짜리 두 장을 들고 나갔다. 웬 40살 정도 먹은 반바지에 고무신을

신은 남자였다. ‘여러 날을 밥을 먹지 못하고 빵과 과자 등을 먹었더니 밥이 먹고 싶습니다.

밥을 좀 주시지요’ ‘나는 남은 밥이 없으니 이거라도 가지고 가시오 라고 2000원을 내밀었다

그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라고 말하면서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들어오면서

어머니는 왜 한사람을 여러 사람이라고 속이시면서 만원짜리를 들고 나가셨을까하고

생각하였다. 음……어머니는 처음부터 거지에게 만원을 주고싶으셨던 것이다.

내 잘못이다. 요즈음 상가를 다니는 거지는 많지만 가정집에 벨을 누르면서 구걸하는 거지

는 없다. 몇 년만에 우리 집에 찾아온 거지인데 안으로 모셔 정식으로 상을 차려주었어야

옳았다. 그리고 그러지 못할 바에야 어머니가 만원짜리를 주도록 모른 체 하거나, 잘하셨다

고 어머니의 행동에 공감을 표시했어야 옳았다. 지난 뒤에 후회해야 무엇하랴 거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주희(朱子)의 열가지 후회(십회)가 생각난다.

거지는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아온 귀인이었다.

다음에 다시 우리 집을 찾아오는 거지가 있다면

안으로 모셔 정식으로 상을 차려 대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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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저녁 외출”

연수원에서 수업을 마친 후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아내를 생각하였다.

아내는 이번 여름 방학에

열흘간 스포츠 댄스를 배우더니

그 후는 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낸다.

그렇다고 아주 노는 것은 아닐테고

집안 일을 하면서 낮에는 책을 읽을것이다.

그렇지만 따분할것이다.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을

해본지도 넘 오래되었다.

여행도 늙어서 하면 재미가 없다던데……

나는 연수를 받는다고 매일다니지만

긴긴 여름방학에 피서계획도 없으니

이사람이 얼마나 따분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왔다.

사실 나는 저녁에도 바쁘다.

낮에 배운 강의 노트도 정리해야하고

14일에는 2차 시험이 있다

모레는 분임발표회가 있는데

내가 발표자로 선정되었으니

발표 연습도 해야한다.

그래도 밖에 나가기로 하였다

혹 아내가 스트레스라도

쌓였으면 어떻하나!

극장에나 갈까?

“부치지않은 편지님”이 보았다는

“라이터를 켜라”를 볼까?

혹 다른영화를 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와프로의 선택권은

아내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가자고 말하자

아내는 현명한 여자이니

아마도 내 시험을 걱정하여

짐짓 나가지 말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끌고 나가야겠다.

우선 베스킨 라빈스에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때리고!!

그 다음 극장으로!! 야호!!

시험은 뭐 어떻게 되겠지……

아래 그림은 대부도에서

고깃배를 타고 1사간거리에

있는 지도에도 안나오는

육도 라는 작은 섬입니다.

8가구 살고있었습니다.

1997년에 갔었습니다.

아주 그림같이 아름다운

섬이었는데요

다시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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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영심이”

1981년, 내가 27살이던 해

나는 시골의 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아이들은 순진했고 잘 따라 주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교육열은 대단하여 그 학

교에서도 대학입시는 주요관심사였다. 가자마자 고등학교 3학년을 맡았는데 학교 앞에서 하

숙을 하면서 밤에는 대학입시를 위하여 학습지도안을 짜고 수업준비를 하였다.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다. 한 시간 수업을 위하여 최소한 두시간을 준비하였다.

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는데 그 하숙집 이름이 “하얀집”이었다. 지붕은 슬레이트였고 벽에는

흰 석회칠을 했는데 그 이유로 어떤 사람은 “White house”라고도 불렀다. 할머니의 음식은

깔끔했고, 바닷가 지역의 토속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으며, 하숙집 둘째 딸은 통기타를

치며 비교적 기품 있게 노래를 불렀다.

그 하숙방에서 총각선생님으로 혼자 살면서 詩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어느 때는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린적도 있다.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제일인줄 알았다.

목이 터지라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좋은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되

었다. 실제로 서울법대를 비롯한 기타 명문대학에도 꽤 많은 학생을 합격시키는 성과를 이

룩하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지금처럼 대학이 많은 시대가 아니었고, 실제로 대학에 가는 학생보다 떨어지는 학생과 포

기하는 학생이 더 많았다. 그런데 계속 공부지상주의로 가는것에 대하여 회의를하기 시작하

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화였다. 시골지역은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 그 지역에서

최고학부이며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로서 어떤 문화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였고,

아이들에게 문화의 참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다른 두 선생님과 함께

고등학교 연극부를 창설한 것이다. 창단 공연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였다.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연극이나 학생연극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삐뚤어진 청소년 제길 찾기나, 부모의 과

잉기대로 망가지는 학생을 다루는 극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느낀 것이 우리나라 연극

대본으로 개발된 학생극은 별로 없었다.

이왕이면 대작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정말 크게 판을 벌렸다. 연극을 해본 사람은 오

영진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이다. 그는 한국의 세익스피어다. 그 중에서도 “맹진사댁 경

사”의 대본을 보면 오영진씨가 얼마나 천재적인 극작가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맹진사댁 경

사는 일반 성인극단에서도 무대에 올리기 어려워하는 작품이다. 1시간 30분짜리 연극을 무

대에 올렸으니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15회 정도의 공연을 했고 연 관람 인원은 2000명이

넘었다. 고등학생, 중학생에 이어 학부모까지……..모두 감동의 물결이었다. 그 학교를 오래전

에 떠났지만 지금도 연극부는 계속되고 있으며 매년 공연이 있을 때 나는 꼭 초청을 받는

다.

나는 그 학교에 내 젊음을 바쳤다. 내 몸을 통째로 던져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공부도 열심

히 가르쳤고, 매년 학교 축제도 열어, 운동도 하고 학생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게

하여 공부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하였다. 그 학교에서 나는 독재자이며 우상이었다.(영심아

이 표현이 맞냐? 푸하하!!)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부를 사랑하였다. 그 연극부에서 만난 아이가 영심이다.

그는 주연 배우였다. “2회 공연인 ‘생일잔치’의 주연으로 발탁하였다.

그는 천부적인 연기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다. 남자배우가 연기를 못

하면 여자인 영심이로 바꾼 적도 있는데 휠씬 잘했다.

영심이는 얼굴도 예쁘지만 인성(人性)은 더없이 훌륭하였다. 나는 영심이

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지금은 영심이가 아마도 30살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영심아 장미꽃 보낸다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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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 제목 없음”

 

새벽에 핸드폰 메세지 오는 소리로 잠이 깼다. 세상에! 새벽 4시에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통신회사가 있다니! 원래 4시 30분에 일어나 책을 볼 예정이었는데 조금 일찍 일어난 셈치

고 책을 보았다. 3시간 정도 공부를 하였다. 연수원에 9시에 도착하였고, 시험은 아침 9시

30분! 문제는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모두 40문항의 개관식 문제였는데 25 문제는 확실히 아

는 문제였고 13문제는 적당히 답이 가려지는 문제였고, 2문제는 확실히 모르는 문제였다. 나

와서 책을 찾아보니 확실히 모르는 문제 2개중에 하나는 결국 틀렸다. 음……그러면 관건은

나머지 적당히 답이 가려지는 문제에 달렸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암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책을 보는 집중력도 떨어졌다

시험은 14일에 한번 더 있다. 잘 보아야 할텐데.

연수원에서 돌아온 후 식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는 냉면집에 들어갈 때마다 주방

쪽을 보면서 이 식당이 진짜 기계로 냉면을 제조하는 집인지 확인하고 들어간다. 냉면 전문

점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아내와 나는 냉면을 먹기로 하였고, 둘째

녀석은 고기를 먹일 생각으로 한식집에 갔는데 녀석도 같이 냉면을 먹겠단다. 냉면과 만두

를 시키고 식당에 와서까지 각자 자기 일에 열중한다. 둘째 녀석은 집에서 읽던 환타지 소

설을 들고나와 식당에 앉자마자 읽고, 나도 역시 집에서 나올 때 식당에서 읽으려고 뒷 주

머니에 꼽고 온 한국문인협회 회보를 읽었다.

냉면을 먹으면서 멀리 집을 떠나 있는 큰아들 생각이 나서 같이 먹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큰 녀석이 보고싶다. 녀석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유치원 다

닐 때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에 대하여 물었고, 물

음 끝에 인간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녀석은 나름대로 자신을 개

척하고, 절제하는 힘을 가진 심지가 깊은 아이다. 녀석은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1차 시험도 끝났으니 조금 편한 마음으로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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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오웅진 신부

 

오늘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에 와서 오웅진 신부님을 만났다. 봉사체험을 위해 꽃동네를

방문했는데 우리 일행을 위해 바쁘신 분이 1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분은 살아있는 성자였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여

러 차례 눈물이 났고, 세상에 이렇게 세상을 사는 분도 있구나!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하

는 자책감이 들었다. 신부님은 거지 4000명을 데리고 사는 왕초거지라고 하셨다.

오웅진 신부!

그는 1976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는

데 어느 날 해질 무렵, 성당 앞을 지나가는 걸인 최귀동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뒤를 따라가게 된 신부님은 성당 뒤 용담산 기슭에 있는 움막 속에서 동냥도

못 나가고 사는 걸인들에게 자신이 얻어온 밥을 먹여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신부님은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도하며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

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튿날 주머니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를 구입한 신부

님은 무극성당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멘트 블록을 찍기 시작, 마침내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 부엌 다섯 칸짜리 시멘트 블록집(사랑의집)을 짓고 무극천 다리 밑에 살던 걸인 18

명을 맞아들였다. (1976. 11. 15) 꽃동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웅진 신부! 그는 살아있는 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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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은솜이의 방문에 대한 답글

은솜아! 예쁜 은솜이가 왔네!

전교 1등을 놓쳐서 마음이 답답하다고?

전혀 그럴 필요 없단다.

학교성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중학교에서의 성적은 별 의미가 없단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을

높이는 일이란다

왜냐하면 인격은 인문적 교양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단다.

인문적 교양이란

세상을 이해하고 문화를 알며

진리의 세계를 살피는 노력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란다.

은솜아

글을 쓰는 능력도 마찬가지야

독서에서 오는 것이야

특별하게 잘 쓰려고 애쓰지 말아라

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글이 잘 써진단다.

그리고 생각도 깊어지게 된단다.

엄마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사주셨다고?

엄마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구나!

이문열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작가 중에서

가장 유려하게 글을 쓰는 분이지

그래서 샘도 좋아해

방학중에 이문열 삼국지 10권을 꼭 읽고, 개학하면 샘하고 이야기해야지!

물론 독후감을 쓸 필요는 없단다

은솜아 안뇽!(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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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10만원

Father

아버지!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잔정이 없으신 분, 구두쇠! 엄한 표정에 별로 웃으시는 적이 없다. 친구들이 놀러와도 아버

지를 보고 무서워 슬금슬금 눈치를 보거나 도망갈 정도였다. 정말로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자식의 친구에게 친절하기로 맹세하였고, 지금은 아들 친

구가 오면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며, 공자가 친구의 방문을 찬미한 유붕

자원(有朋 自願……)을 들먹이면서 환대한다.

내 성격이 오늘날 이정미 선생님처럼 밝고 아름답지 못한 것은 아버지 탓이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평생 딱 한번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

지가 밤길에 내 손을 잡고 걸은 적이 있는데 그 때의 불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왜 이러

시나? 너무나 불편하였다.

아버지는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한 1924년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초등학교

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와 솥을 열어 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괜찮은데, 솥 안에 아무것

도 없으면 눈물이 났다는 말씀을 하실 때면 나도 동정이 간다. 밥도 먹지 못했는데 호연지

기(浩然之氣)와 사단(四端)이 형성될 기회가 있겠는가?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일제의 강제

징병으로 2차 대전에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우들은 모두 죽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일

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후 부모가 사는 원산에 가서 3년 정도 살다가, 거기서 6.25를 만

났는데 이미 군대갈 나이가 지났으나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어 훈련을 받던 중, 부대를 탈출

하여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이 북상할 때, 북에 두고 온 부모가 걱정

되어 전선을 따라다니다가 인원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군에게 붙잡혀 전선에서 현지 입대되

어 결국 국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휴전할 때까지 HID요원으로 활약한 전쟁영웅이다.

아버지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 이렇게 3번이나 입대하였고 생사를 건 2차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하셨다.

한국전쟁이후 충청도에 정착하였으나, 그 때부터는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보다 무서

웠던 가난의 연속! 가난은 하루 세끼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게 했고, 전쟁

은 아버지를 막살게 했다.

술을 한잔하시면 서정적인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르는 것을 보면 아버지도 괘 낭만적이고 정

적인 분이시다. 아버지는 천부적인 미술솜씨도 있다. 내가 그런 대로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도

그리는 것은 아버지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다. 1924년 생! “묻지 마라 갑자 생이다” 이런 말

도 있지 않은가? 현재 살아있는 세대 중에서 가장 고생한 세대이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배달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던 어느 가을날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학교에 다니기를 권유하셨단다.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하여튼 내가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을 원하셨다.

오늘 월급을 탔다. 항상 생활비를 어머니에게만 드리고 아버지는 특별한 때

만 드렸는데 오늘부터는 아버지에게 별도로 매달

10만원씩 드리려 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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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선의지’

아래 그림은 제가 15살 때까지 살던 충청도 고향을 떠나기 전 날 밤에 착찹한 마음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았는데 훗날 1987년에 32살이 되어 15살이던 그 밤의 느낌을 그린 것입니다.

 

선의지(善意志)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긴 겨울방학에 우리들의 놀이문화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이전이었으니 겨울 농한기에 어른들도 할 일 없이, 사랑방에 모여 투전과 술로 시간을 보내

며 개울이 봄으로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어른이 화투치러가서 집에 아이만 남

은 집을 아지트로 삼아 눈을 피해 소위 ‘뽕’이라 불리는 투전을 했다. 그런데 재종형제인 나

이가 한 살 더 먹은 아무개(나이는 한 살 많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는 투전판에서 사탕 장

사를 하였다. 참으로 영악한 아이였다. 시내에 가서 사탕 한 봉지를 사다가 투전판에서 이문

을 붙여 낱개로 파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천안시내로 물건 사러 가는데 같이 가

서 주인을 혼란하게 하고 훔칠 수 있다면서 꼬드꼈다. 8km를 걸어서 갔다.

아!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천안 시내 큰 재에 있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대성상회!!

당시로는 큰 상점이었다 나와 재종은 주인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키고 혼란하게 한 뒤, 옷

을 열고 앞가슴에 물건을 넣었다. 문턱을 넘어오는데 뒤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

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한다. 가게를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긴 후 20m를 벗

어 난 다음 전봇대 10개가 지날 때까지 뛰었으니 500m는 족히 뛰었다. 나는 앞가슴을 열고

오리온 별사탕을 내보였다. 삼각형의 비닐봉지에 빨강, 노랑, 파랑색 별모양의 사탕이 들어

있는 10원짜리 ‘오리온 별사탕’!! 내가 세상에서 최초로 한 도둑질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겨우 그거냐면서 잠바를 여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과자가 꽉 차있었다. 50원짜리 사탕봉지

가 10여 개 나왔다. 나는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자랑삼아 그 날의 전과를 말씀드렸더니 아

버지에게 일렀고, 아버지는 그 집에 다시 가져다주고 용서를 빌라고 하셨다. 도저히 갖다줄

수가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모두 먹어버리고 갖다 주었다고 거짓말까지 하였다 . 이 사건

은 남의 꼬임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에는 순수한 내 의지만으로 도둑질을 하였

다. 중학교 1학년 때 교실 청소 후 남이 두고 간 우산을 훔쳤고, 역시 청소 후 책상 속에

두고 간 플라스틱 필통을 집으로 가져왔다. 우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나서 버렸지만……

아! 문제의 그 필통! 겉에 다보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던 그 필통! 썩지도 않고, 녹슬지

도 않으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나의 양심을 괴롭혔다. 나는 카인의 후예로 생각되었다. 선

천적으로 나는 악인일 수밖에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세 번에 걸쳐서 남의 물건을

훔친 사실로 인하여 아주 오랜 세월동안 괴로움에 시달려야했다.

나는 칸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는 출신성분부터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칸트가 말한 ‘선의지’란 이성(理性)의 가르침에 따른 옳은 행위를 ,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이든 관계없이 단지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는 의지이다. 결과에 대

한 고려나 자연적인 경향과는 추호도 타협함이 없이, 도덕률(道德律)을 준수하는 것이 우리

에게 주어진 절대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의무의식에서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

를 가리켜 Kant는 선의지(善意志) 라고 하였다.

마흔 여덟이나 먹은 오늘

이제는 나도 정언명령에서 나오는 선의지(善意志)대로 살고 싶다.

정말 선의지(善意志)로만 실천하고 살고 싶다. 행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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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月問溫泉


월드컵 성공개최 기념으로 임시공휴일이 지정됨에 따라 연휴를 지내게 되었다. 일요일 하루

는 빈둥거리며 지냈다. 사실 ‘빈둥거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빈둥거림 보다 더 좋

은 것은 없다. 밥먹고, 방바닥에 뒹굴며, 텔레비젼 보다가 인터넷도하고 커피 마시고, 수박먹

고, 전화하고, 낮잠자고……빈둥은 넘 좋다.

연휴 둘째날, 아내는 온천에 가자고 하였다. 이 더운 날에 하필이면 온천이라니! 그러나 아

내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최근에 아내를 위해 특별한 의식(?)을 마련한 적이 없는 나로

서는 물리칠 수 없는 요구였고, 온천이야 뭐 그냥 들어가서 삶은 달걀이나 먹으면 되는것

아닌가! 그정도야 뭐 누워서 떡먹기지! 그래서 택한 곳은 화성시의 월문온천! 그곳에 가면

꼭 온천욕을 할 필요도 없다. 온천 옆에서 부동산을 하는 친구 사무실에가서 담소를 나눌수

도 있고,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할 수 도 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지나다 보니 사무실 문은

닫혀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꼼짝없이 온천욕을 하게 생겼다.

월문온천 로비에서 아내와 헤어질 때, 아내가 나에게 준 시간은 2시간 30분! ” 잘 씻고 나

와요” 세상에 뜨거운 탕안에서 2시간 30분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탕을 열고 들어서니 50

명정도의 남자들이 저마다 몸을 씻고 있었다. 나도 샤워를 하고 탕안에 몸을 담갔고, 정성스

럽게 때를 밀었다. 사우나도 세번이나 들락거렸다. 물은 매끈거렸고, 온천의 분위기도 좋았

다. 온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로 다시 때를 밀고, 그래도 시간은 남고, 할일이 없으니 다시 탕안에 들어가 허공을 보

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게되었다. 나는 인체 크로키 작업을 하지만 남자 모델을 쓴 적은 없

다. 남자 모델을 쓴다면 어떤 사람을 쓸까? 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역시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몸이 보기에 좋았다. 넓은 어깨 아래로 가슴근육이 융기하고, 아랫가슴에서 허리로 내

려가면서 얕은 배꼽을 경유하여 가늘어지다가 엉덩이가 가볍게 발달하고, 이어서 허벅지 근

육이 넓적하게 펴지고 내려가면서 무릎관절을 지나 다시 단단한 장딴지로 이어지다가 가는

발목으로 향하는 몸이 보기에 좋았다. 음……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온천욕 중 1시간 30분은 거의 초인적으로 버틴것이다. 탈의

실에 나와 몸무게를 재보니 62.60kg이었다 들어가기 전보다 400g 줄었다. 그래도 체중을 줄

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밖에 나온 후 자동차 안에서 읽을 거리를 구했으나 오늘따라 시집

한권 없었다. 작은 스켓치북이 한권 있어 야외용 의자에 앉아 소나무 숲을 스켓치하였다. 무

료하진 않았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아내가 나왔다.

우리는 보리밥을 먹으러 갔다. 보리밥은 좋았고, 보리밥집 앞의 2000여평의 묵은 밭에는 백

색 야생화가 군무를 이루며 넘쳤다. 망초꽃이었는데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웠다. 아내

는 “달빛을 받으면 은하수처럼 널리겠다”고 탄성을 지었다. 야호!!!! 온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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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내가 anbindr 인 이유

충청남도 천안중학교에 입학해보니 초등학교에 없었던 교실 두 칸 규모의 도서실이 있었

다. 오늘날의 현대식 도서실보다는 못하지만 35년 전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 못할 규모였다.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대출을 받는 학생의 줄은 복도를 지나 도서실 밖으로 한바퀴를 돌렸

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정경이다. 내 평생 그렇게 활발하게 운영되는 도서실은 없었다.

내가 천안중학교 도서실에서 읽은 책은 몇권 안되지만 그나마 독서의 구력이 짧은 나로서는

책을 활발하게 읽은 시기로 기억된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나의 독서는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 중국동화

집 몽테크리스토백작 등의 이야기책을 읽다가 괴도루팽, 셜록홈스 등의 탐정소설을 읽었고

녹색우주인, 달로켓트의 비밀, 해저2만리 등의 공상소설을 읽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에 와서 그런 흥미위주의 책이 식상하였다. 그 때 눈을 돌린 것은

고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독서의 수준이 조금 높아졌고,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문학

적으로 커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 좁은문, 부활, 죄와 벌, 폭풍의 언덕, 대지, 까

라마조프 형제를 읽었으며 세익스피어를 읽었다. 그리고 부잣집 아들이었던 친구 집에 가서

책꽂이에 있던 헤밍웨이 전집을 빌려다가 모두 읽었다. 그 시절 헤밍웨이는 나의 우상이었

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읽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인공 로버트조단과 마리아가 쫓아오는 적을 앞에 두고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우리나라의 소설도 읽었는데 김동인, 김동리, 염상섭, 황순원, 등이었을 것이다. 김소월과

노천명을 읽었고, 한아훈의 ‘보리피리’를 슬프게 읽었다. 운현궁의 봄이 깊게 추억에 남는다.

그리고 춘원 이광수 전집을 읽었다.

춘원 이광수! 자칭 국보이며 향가를 해독한 무애 양주동 박사는 우리나라의 문학을 쌀 한

가마니 라고 한다면 그 중에 아홉 말은 춘원의 것이고 나머지 한말 중에서 아홉 되는 자신

의 것이라고 했으며, 나머지 한 되를 가지고 수많은 문인들의 몫으로 나누어야한다고 하였

듯이 춘원은 훗날 친일적 행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문학의 거봉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광수의 사랑을 읽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진한 감동으로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왜 눈 앞이 부옇게 흐려졌을까?

한번도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아마 사랑

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책 속의 주인공 이름이 안빈(anbin)이다. 그런데 메일을 등록

하려했더니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 안빈의 직업이 의사(dr)였다. 나는 의사가 아니

니 앞에 붙이지 않고 뒤에 붙였다. anbind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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