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아내는 출근하고 없었다

 


 



 


몇 시간 후면 아들은 간다.


 


또 먼길을 떠날 것이다.


 


갑자기 내가 외식을 하자고 제안 하였다.


 


내가 잘 가는 법원4거리 뒷길의 한정식 ‘풍미’에서 점심을 먹었다.


 


둘째 아들은 아직 기숙사에서 도착하지 않았다.


 


아내는 쉬는 토요일이 아니어서 학교에 출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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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49살에 물러났다.

이 아침 문득 퇴계 이황을 생각한다.

그는 을사사화로 파직을 당하는 등

중앙의 정치무대에  염증을 느끼고

지방의 한직을 자처하여

한때 단양군수를 역임하였다.

단양에 부임하여 군민들이 원하는 바를 낮은 자세로 듣고

실천하여 군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종형이 충북관찰사로 부임하는 바람에

고향에 더 가까운 풍기로 발령이 나는데

이때 단양 군민들이 모두 떠나는 군수를 눈물로 전송하였다 한다.

단양 군수로 재직한 기간이 9개월에 불과하였는데

군민들이 모두 나와 눈물로 전송하였다면

도대체 그의 내공의 깊이는 얼마인가?

 

49세에 풍기 군수마저 물어나

초야에 묻혀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였다.

내 나이 이미 50대 중반에 이르렀다.

나는 무었을 하였는가?

이웃을 위한 일은 고사하고 제 몫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

지금 있는 교육원에 근무한지 벌써 18개월이 지났다.

밥만 축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생각할수록 스스로가 가련하고 참혹하다……

 

맹기호!  너 왜사니?

왜 사는 지도 모르지?  ㅎㅎㅎ~

 

난 그냥 산다.

어쩔래!

너 나한테 뭐 보태준거 있어? ㅋㅋㅋ

이렇게 호기를 부려보지만 그래도 마음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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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Global MBA rankings 2008

아들은 미국 MIT대학원 금융학과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금융학 세계랭킹은 발표되지 않으니

MBA랭킹으로 기준을 삼을 수밖에 없다. 

아래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발표한 2008 MBA랭킹이다.

MIT는 세계 7위다. MIT의 금융학과 금년도 입학정원은 25명이었다.

붉은 색으로 표시한 것은 아이비리그대학을 나타낸것이며

아이비리그대학 중에서도 MBA과정이 없는 프린스턴대학과 브라운대학은 제외하였다.

[Financial Times] Global MBA rankings 2008

Rank in 2008 Business school name Country

  1. University of Pennsylvania: Wharton U.S.A.
  2. London Business School U.K.
  3. Columbia Business School U.S.A.
  4. Stanford University GSB U.S.A.
  5. Harvard Business School U.S.A.
  6. Insead France / Singapore
  7. MIT: Sloan U.S.A.
  8. IE Business School Spain
  9. University of Chicago GSB U.S.A.
  10. University of Cambridge: Judge U.K.
  11. Ceibs China
  12. Iese Business School Spain
  13. New York University: Stern U.S.A.
  14. IMD Switzerland
  15. Dartmouth College: Tuck U.S.A.
  16. Yale School of Management U.S.A.
  17. Hong Kong UST Business School China
  18. HEC Paris France
  19. University of Oxford: Saïd U.K.
  20. Indian School of Business India
  21. Esade Business School Spain
  22. Lancaster University Management School U.K.
  23. Manchester Business School U.K.
  24. Northwestern University: Kellogg U.S.A.
  25. UCLA: Anderson U.S.A.
  26. Emory University: Goizueta U.S.A.
  27. University of Michigan: Ross U.S.A.
  28. Duke University: Fuqua U.S.A.
  29. Warwick Business School U.K.
  30. Cranfield School of Management U.K.
  31. University of Strathclyde Business School U.K.
  32. UC Berkeley: Haas U.S.A.
  33. University of Virginia: Darden U.S.A.
  34. Rotterdam School of Management, Erasmus University Netherlands
  35. Imperial College London: Tanaka U.K.
  36. Cornell University: Johnson U.S.A.
  37. University of Maryland: Smith U.S.A.
  38. Georgetown University: McDonough U.S.A.
  39. Australian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Australia
  40. University of Toronto: Rotman Canada
  41. City University: Cass U.K.
  42. Shanghai Jiao Tong University, ACEM China
  43.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Kenan-Flagler U.S.A.
  44. Edinburgh University Management School U.K.
  45. University of Washington Business School U.S.A.
  46. Nanyang Business School Singapore
  47. University of Rochester: Simon U.S.A.
  48. Carnegie Mellon: Tepper U.S.A.
  49. Leeds University Business School U.K.
  50. Michigan State University: Broad U.S.A.

MBA 랭킹은 발표기관에 따라 다른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2007년에 발표한 랭킹은

MIT대학을 세계 1위로 올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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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MIT !!!!!!!!!!!!!!!

합격통지서!!!!!!!!!!!!!

3/1/2009

Dear Mr. Maeng:

We have just finished reviewing all of the applications to the MIT Sloan Master of Finance program for the year of 2009-2010.  The applicant pool was very strong and included many outstanding candidates.

On behalf of the Admissions Committee, I am delighted to offer you admission to the M.Fin. program – congratulations!

This offer is valid until April 1, 2009.  In order to secure your place in the M.Fin. class enrolling in June 2009, you must submit a $3000 enrollment fee along with the online enrollment decision form by April 1st. This fee will be applied towards your tuition upon matriculation. Please note that if you change your decision, one half ($1500) of the fee will be reimbursed.

The tuition charge for this 12-month program of study is $70,000.  M.Fin. students are expected to be self-funded. For information about funding options, please visit the MIT Financial Aid website at http://web.mit.edu/sfs/financial_aid/index.html.  Information about loan options specifically designed for MIT Sloan students may be viewed at http://web.mit.edu/sfs/loans/sloan_loans.html.

If you accept this offer of admission, you will enroll in the Summer term ’09, Fall Term ’09, and Spring Term ’10. Registration approval each term is contingent upon good academic standing which requires that you maintain at least a B- grade point average. Commencement is scheduled for June 4, 2010.

Please note that the required Finance Theory I and II courses will be consolidated into one intensive Summer course (15.415).  This course will be held throughout the month of August and will be restricted to M.Fin. students only.  The course will meet four days/week, complemented by regular recitations.  In addition, Orientation, career development workshops and required pre-term academic sessions will be held in the weeks prior to the formal start of 15.415.  You should, therefore, plan to arrive in Cambridge with sufficient time to settle in before the start of M.Fin. Orientation, estimated to begin July 20th.

Many more details about the program will be available soon. In the meantime, please let us know by April 1st if you intend to accept this offer of admission.

Please click here to complete the enrollment form, pay the fee, and confirm your enrollment decision.

We hope to welcome you to the M.Fin. program this Summer!

With best regards,

Jiang Wang
Mizuho Financial Group Professor
Faculty Director, M.Fin. Program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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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MIT MIT MIT MIT MIT MIT !!!!!!!!!!!!!

그저께 어머니께서

마루에 난꽃이 예쁘게 피는것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니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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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께 전화드렸더니 그렇지 않아도 너무 좋은 꿈을 꾸어 무슨 일이 생기려나? 하셨다고 한다.

두말 할것도 없이 장모님의 기도 덕분이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나도 교회에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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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mother 79th birthday

 



 


 



 


어머니의 79회 생신이다. 매제의 생일이기도 하다.


 


음식점에서 가까운 일가 모두가 모였다.


총 14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아산이가 참석하였고, 매제네 식구도 모두 왔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동생네 집에 가서 과일을 먹었다.


 


나와 두 동생은 어려서 부터 늘 노래를 불렀는데


오랜만에 함께 노래를 불렀다.


 


70년데 포그송


바우고개


오빠생각


트윈폴리오 노래 등을 불렀다.


 


문득 나와 두 동생은


감성지수가 높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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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혼자의 방

경기도는 외부에서 인구 전입이 제일 많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에도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한다.


 


학생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학교를 더 지어야하고,


 


교원도 늘려야하고,


 


교육전문직의 숫자도 늘려야한다.


 


그런데 이번에 교육전문직의 정원을 늘려주지 않았다.


 


일선 교육청의 직제가 확대되어 장학관이 필요한데  TO를 늘려주지 않아서


 


우리 교육원의 장학관 TO를 빼내어 일선 교육청에 배치하였다.


 


우리 교육원에 후임 장학관을 발령내지 않고


 


현재 있는 인원을 가지고 교육행정을 해나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내가 장학관 직무대리로 임명되었다.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


 


직무대리?   음…..가라 or 마이가리 장학관 이구나 ㅎㅎㅎ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공직에 들어온지 생전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되었다.


 


 


사실 교장을 나갔으면 벌써 독방을 가졌을 것이지만…….


크지 않은 아주 작은 방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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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한 번으로 족하다.


 


교육원에서 송별연이 있었다.


음식점에서 전체 직원이 모였다.


가시오가피술과 소주를 마셨다.


 


나는 젊은 시절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20대 대학시절에 선배들이 주는 술을 맛도 모르고 마셨다.


그런데 소주 반병 이상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괴로웠다.


속이 메스꺼워 토하기 위해 손가락을 목에 깊이 넣어도


넘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속시원이 토하기라도 한다면 몸이 덜 괴로울텐데


나이 50중반에 이르도록 단 한번도 술먹고 토하기를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정신이 멀쩡한 것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필름이 끊겼느니 어쩌니 무용담처럼 말하는데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했더니 설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더 먹으면 어느 순간에 필름이 끊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주 반병이 정량인 나로서는 너무 괴로워 그렇게 많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사가 되어 성인 집단에서 회식을 하게 되면서 부터


술잔을 돌리는 문화에 속하게 되었다.


역시 술자리는 나에게 고역이었다.


선배교사에게 술을 권해야 하는데 그러면 선배가 따라주는 술을 또 받아야하니


그것이 고역이었다. 권하지 않고 구석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


왜 술을 따르지 않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런 내가 교감을 거치고 장학사를 하면서


술자리가 많아지고 서서히 술이 늘게 되었다.


 


어제 드디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송별연 자리에서 여러사람에게 술을 권하고 잔을 받았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특별하게 많이 마셨다는 생각은 없었다.


드디어 필름이 끊긴것이다.


음식점에서 다음에는 노래방을 갔는데


문제는 내가 어떻게 음식점에서 나와 노래방으로 이동했는지 그 과정이 생각나지 않는다.


음식점은 2층이고 거기서 내려와 한참을 걸어야 노래방이 있다. 걸어간 기억이 없다.


 


내가 노래방 소파에 앉은 기억은 난다.


여러사 람들의 몸이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나를 보고 많이 취했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내가 토하는 기색이 보였는지 누가 나를 옮겼다.


내가 옆방으로 가서 바닦에 토한 기억이 난다.


놀랍게도 시원하게 내용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한 번 토했는데


아침에 물어보니


 


노래방에서 토하고


 


노래방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토하고


 


노래방에서 나와 택시를 기다리면서 토했다고 한다.


 


두번째, 세번째 토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택시를 기다린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정현선생이 나를 택시에 태워 교육원 관사로 온 모양이다.


 


택시에서 내린 생각은 안나고 내 방에 들어온 생각은 난다.


방에 들어와 옷을 벗고 그리고 방바닥에 다시 토했다. 이것도 생각난다.


 


일어나니 아침이다.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전화가 여러통이다.


장학관님과 동료들이 내가 없어졌으니 찾은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1차 음식점- 2차 노래방- 3차 호프집- 4차 교육원관사


이렇게 4군데를 거쳤다고한다. 정말 많이 먹는 사람들이다.


나는 1차 음식점에서 뿅 간것이다.


내가 1차에서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게 많이 마셨나?


꼭 그런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컨디션이 나빴는지 모르겠다.


 


어렵쇼! 핸드폰을 보니 내가 아내와 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드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잔뜩 취한 음성으로 무엇을 먹고 살것인지, 어떻게 살것인지 걱정하지 말거라


네 뒤에는 항상 아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여라 뭐 이렇게 말했다한다.


 


음….평소에 늘 하던 이야기구나. 둘째는 더 황당했다고 한다.


아빠가 전화를 걸어 옆 동료를 무조건 바꿔주었단다.


아마도 이정현 선생님을 바꾸어 준 모양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내와 두아들에게 전화를 걸은 것이 전혀 기억이 없다.


 


아침을 먹으면서


동료들에게 무릉도원에 갔다왔다고 자랑하였다.


필름이 끊긴것이다.


이상한 것은 필름이 끊겼다 이어졌다 왔다갔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아주 작은 순간이 기억 나는 것이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도화경에 빠졌었다.


그것 한번으로 족하다.


 


앞으로는 술을 줄여야겠다.


더 이상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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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워낭소리 할머니 끝내줬다.


 


 



 


내가 워낭소리에서 최고의 인물로 뽑은 것은


할머니다. 할머니 연기 정말 대단하였다. 할아버지가 일하다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나를 고생시킨 죄값이라며 눈을 흘기면서  고소한 마귀할멈같은 미소를 짓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워낭소리….


오랜만에 가족이 영화를 보았다.


 


밤10:40분에 4명이 수원역 극장에 갔다.


 


1억들인 영화가 100만 관객에 육박한다 했다.


 


 


보통 소는 20년 사는데 40년동안 살았으니 인간으로 치면 120살을 살은 셈이다.


그런 소와 함께 질곡의 인생을 살아가는 노부부를 그렸다.


 


어려서 소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아주 기대되는 영화였다.


인간과 소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충열 감독은 43살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늙은 소와 늙은 부부가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소와의 깊은 교감을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점이다.


실제로 소는 주인의 말을 다 알아듣고 또 거기에 자신의 감정도 나타낼줄 아는데


그런 면은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다.


 


 


몇 장면은 화면이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는데


전체적으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는지 너무 힘들고 지저분한 장면이 많았다.


아마도 주인공이 장애인이기때문에 주거나 생활이 정갈하지 못한것은 이해하지만


어짜피 영화는 인위적 장면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이 보기에 아름답고 좋아야한다.


노인이기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이해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아파 아파 하는 것은


영화보러 간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다큐멘타리의 범주를 벗어나 영화라면


관객에게 좋은 화면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


그것이 기쁨이든지 슬픔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설령 슬픔이라해도 슬픔의  정서를 아름답게 만들어 서비스해야한다.


 


노인을 양옥집에서 찍으라는 것이 아니고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라 해도 얼마든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만들수있다.


예를 들어 소의 얼굴 주변을 묶은 줄이나 코뚜레 주변도 필요이상으로 지저분하다. 


실제로 저렇게 지저분한 소는 거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소와 인간과의 깊은 교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괴물이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관객을 모았으며


최고의 영화로 추앙받는것은 거기에 가족간의 휴머니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모래시계, 친구, 신라의 달밤 등 각목 휘드르고 칼질하는 영화를 만드는


강호순이와 다를 바 없는 쓰레기 같은 감독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워낭소리가 100만에 육박한다 하니


이충렬 감독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그의 후속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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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추기경은 리더였나?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떴다.

추모객이 4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각계인사들이 추기경의 별세를 애도하며 추기경을 기리는 좋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무조건 동참할 수 없다.

김수환씨는 내가 어릴적부터 추기경이셨다.

그런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에게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방향 제시를 들어본 적 없다. 내눈에는 느릿 느릿한 침묵의 방관자였으며

그저 서로 사랑하라는 말 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 봉사했다고 하는데

그런 봉사활동이야 추기경으로 당연한 임무가 아닌가?

한국천주교 수장이면서 젊은신부들의 정치적 행동에 훈수 한 번 둔적없다. 늘 강건너불구경이다.

광주사태와 박종철 고문사망 때 몇마디했다고 정의 편에 섰다고 치켜세우는데 

추기경이 그것도 아니면 그게 추기경인가?

더 적극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추상같이 갈기를 세웠어야한다고 본다.

나는 추기경을 보면서 최규하대통령을 떠올리곤 했다.

느릿한 행동이 비슷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점도 닮았다.

이런 사람이 무슨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가?

리더는 항상 정의의 편에서서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김수환의 죽음에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 정말 이 시대에 영웅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 

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이 느릿한 추기경의 죽음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언론에 나타난 각계의 애도 반응을 모았다> 동아일보에서 퍼옴

▽김형오 국회의장=모든 신앙인의 표상이시며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족적을 남기신 추기경의 영전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 민족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의 등불을 밝히신 고인께서 부디 하느님의 품 안에서 고이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우리 시대의 큰 별이 졌다. 1960, 70년대의 어두운 시기에 우리 사회의 큰 기둥이 되어 주신 분이다. 국회의원 시절 국회 가톨릭신도회를 통해 추기경을 자주 만났다. 그때마다 김 추기경은 정치인들이 앞장서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분이 남겨 놓은 민주화와 사랑의 씨앗을 잘 키워야 한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종교계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도자이며 국민을 가장 사랑한 국민의 위대한 친구가 떠나서 매우 슬프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현대사의 큰 별이셨다. 어두웠던 시절에는 빛이었다. 그분의 삶은 사랑이셨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한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깊은 신앙과 삶의 철학, 사회와 나라에 대한 통찰과 따뜻한 사랑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이러한 위대한 영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국민과 나라의 안전, 미래를 걱정했고 나라를 위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의 말씀은 바른 길을 가리키는 등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우리 종교계의 큰 스승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불교계 사부대중과 함께 애도한다. 천주교인의 슬픔과 함께하며, 이웃과 고통을 함께 나눈 고인의 지표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정의채 몬시뇰=수난의 민족사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기에 종교지도자로서 용기 있게 일어나 독재정권과 맞섰다. 사심 없이 시대의 바람을 읽고 거기에 응답했기에 현대사에서 중요한 계기를 만든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권오성 목사(총무)=김 추기경은 개신교와 가톨릭과의 대화에 애를 쓰셨고, 민주화와 사회정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사랑을 베푸셨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평화와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앞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함께 이뤄가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최희범 총무=사회 통합과 정의를 위해 애쓰신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한다. 한국사회가 그 뜻을 이어받아 더욱 약자들을 보호하고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불교 경산 장응철 종법사=종교계 큰어른으로 온 국민이 존경했던 김 추기경의 선종에 원불교도와 함께 충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평생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종교 간 대화와 일치, 도덕성 회복, 민주화에 공헌한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민족의 큰 별이셨으며 정신적 지도자로서 그동안 국가 사회발전에 기여하셨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명쾌한 길을 안내해 주셨고 민주화 과정에서도 크게 이바지하셨다. 추기경의 선종을 충심으로 애도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던 2006년 5월 아내(송현옥 씨)와 함께 추기경을 찾아뵈었을 때 덕담과 함께 묵주를 주신 일이 생생하다. 당시 추기경께서는 “시정을 하게 되면 시민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셨다. 시장이 된 뒤에도 뵐 때마다 시정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려울 때마다 지혜를 주셨던 큰어른의 선종이 안타깝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종교를 떠나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큰 사회의 지도자다. 어려운 시절 보여준 용기가 잊히지 않는다. 큰 별을 잃었다.

▽시인 신달자 씨=낮은 곳에서 언제나 사람으로서 부를 수 있는 모든 이의 아버지셨다. 그분은 너무나도 친숙한, 혈육의 아버지보다 또 다른 영성의 아버지 같았다. 치유의 은사가 계셨다. 평범한 말도 그분이 하면 감동을 준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이 행사도 하고 식사도 하고 했었다. 첨보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셨다. 신앙이 있건 없건 모든 이의 길잡이가 되셨고 신앙을 초월하신 분인 것 같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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